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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10/29
    의사소통(3)
    너나나나
  2. 2007/10/22
    대형사태(8)
    너나나나
  3. 2007/10/02
    몸바쳐 놀아주기(2)
    너나나나

의사소통

"미루야 밥 먹자~~"

"바압~바압~바압~"

 

저 쪽에 있던 미루가

식탁 위로 뛰다시피 옵니다.

 

집에서 평소에 맘마란 말을 안 써서 그런지

성인용 단어를 구사합니다.

 

쇠고기버섯국에

밥을 말아 줬더니

쩝쩝 잘 받아 먹습니다.

 

밥을 받아 먹으면서

미루는 식탁 위로 올라가더니

튀밥을 엎었습니다.

튀긴 쌀 알이 사방으로 튑니다.

 

"미루야 한 숟갈 더 먹자"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듭니다.

 

"더 먹자아~"

"어기 시여요"

 

앗, 먹기 싫답니다.

 

"먹기 싫어?"

"에~"

 

별 말을 다합니다.

요새 부쩍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희안하게 문장을 구사합니다.

 

밥을 다 먹고

미루와의 놀이가 시작됐습니다.

체력이 모자랄 때는 자꾸 말을 걸어야 합니다.

 

"미루야~이게 뭐야?"

아무거나 잡고 미루한테 물었는데

곧바로 대답이 날라옵니다.

 

"모아요"

"몰라요?..."

 

"책 읽을까?"

"에~"

 

미루가

읽고 싶은 책을 꺼냅니다.

 

'Sweet Dreams, Sam'이라는,

우리집에 안 어울리는 영어책입니다.

아는 사람한테서 촉감책을 받은 겁니다.

 

제목부터 읽어줬습니다.

"좋은 꿈 꾸삼~"

 

두 페이지 쯤 넘기더니

이 책 저 책을 마구 꺼냅니다.

 

고전유아서적 '손이 나왔네'가 나왔습니다.

 

"손이 나왔네~"

 

미루가 한손으로 다른 손을 받치고

감자를 먹이는 자세를 취합니다.

 

손도 알고, 머리고 알고, 얼굴도 압니다.

코랑, 눈, 입도 구분합니다.

 

"띵동 띵동"

 

주선생님이 퇴근했습니다.

"5시쯤에 젖 짰어야 하는데 못 짰어. 미루야~엄마 쭈쭈 먹자~"

"주쭈..주쭈..주쭈.."

 

미루는 허리가 뒤로 확 꺾인 자세로

젖에 매달렸습니다.

 

"미루 먹일려고 자전거 타고 막 왔지~~"

"우유 배달이군"

 

"현숙아 근데 미루는 어떻게 이런 자세로 젖을 먹냐?"

"완전 요가야"

 

우리 대화를 듣던 미루가

두 사람을 보고

히~하고 웃습니다.

 

"인제 웃음도 자기 의사를 가지고 웃는 것 같지 않냐?"

"그러게...사교적인 웃음이야, 이건"

 

미루는 지금

점점 더 세상을 잘 이해하고,

의사소통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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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태

오늘은 퇴근하고

제가 미루를 봤습니다.

 

"미루야~밥 먹자~"

 

미루가

밥을 통 안 먹습니다.

 

요새 혀에 물집이 막 잡혔다가

나아가고 있는 중인데

그것 때문에 뭘 먹기가 힘든가 봅니다.

 

어금니가 나는 것도

꽤 아파보입니다.

 

어금니 머리가 세군데에서

올라오는데, 이게 어금니 하나입니다.

으...좀 무섭습니다.

 

"미루야 이거 버섯 볶은 건데 좀 먹어봐"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듭니다.

 

"그럼, 바나나 먹자"

 

역시 고개를 흔듭니다.

 

제가 밥 먹는 걸 보면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해서

미루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쩝쩝..쭈웁"

"미루야, 너 그게 뭐야? 어휴...."

 

식탁 위에 유축기로 유축할 때 쓰는

깔대기랑, 아주 얇고 동그란 고무막 같은 부속물이 있었는데

미루가 그 고무막을 입속에 넣고 오물오물 거립니다.

 

밥은 안 먹고

그런 것만 자꾸 입에 넣습니다.

 

미루가 안 먹으면

저라도 밥 먹어야지

같이 굶었다가 나중에 컨디션 나빠지면

미루한테 화만 냅니다.

 

밥을 먹었습니다.

기왕 먹는 거 열심히 먹었습니다.

 

"켁..케엑"

"미루야!! 너 왜 그래? 미루야~!!"

"커~억"

"미루야! 미루야!"

 

미루 얼굴이 금세 빨개 지더니

숨을 못 쉽니다.

고무막을 삼킨 겁니다.

 

등을 퍽퍽 때려주고, 뒤로 번쩍 안아 올려서

먹은 걸 토하게 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자기 밥 먹느라고

애가 뭘 삼키는 데 그걸 몰랐습니다.

 

계속 등을 쳤습니다.

미루는 고개를 숙이고 켁켁 거립니다.

얼마나 그렇게 했을까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고무막을 완전히 먹어버렸습니다.

 

"미루야...물 마셔..."

 

안쓰러워서 쳐다 볼 수가 없어서

미루를 꼭 안아줬습니다.

 

"미안해 미루야..."

 

...

 

10시 조금 넘어서

주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아까, 진짜 대형사태가 났었어"

 

자초지종을 얘기하는데

주선생님 얼굴이 점점 굳어집니다.

 

"게다가 밥은 하나도 안 먹었어"

 

제 설명을 다 듣더니

주선생님은 화도 안 내고

"많이 놀랐겠다" 합니다.

 

"똥으로 나올거야"

"그렇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원 가서 물어보자"

"응"

 

밥을 하나도 안 먹어서

배가 쑥 들어갔던 미루는

주선생님한테 매달려서 젖을 먹었습니다.

겨우 안정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근데 뱃속에 고무가 들어 있는 상상을 하니

속이 울렁거려 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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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바쳐 놀아주기

퇴근하고 자기 전까지 내내

미루는 활력이 넘칩니다.

 

아침에 감기 걸려서

놀이집에 보내놨는데

 

찾을 때쯤 되니까

쌩쌩합니다.

 

"헉헉헉"

 

미루가 숨을 헐떡이면서

엄마한테 한번 갔다가

아빠한테 한번 왔다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주선생님은 쇼파에 앉아서

새로 산 동요CD에 맞춰서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혼자 율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루는 그 옆에 서서

푸우 인형을 껴안고

덩달아 춤을 춥니다.

 

"우와~방금 내가 한 율동이 책에 나와 있는 거랑 거의 똑같애~역시!!"

 

노래마다 '따라해봅시다'라고 해서

율동이 그려져 있는데

그걸 안 보고 그냥 혼자서 한 게 책에 있는 거랑 똑같답니다.

 

확인하면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귀찮아서 응접실 구석에

그냥 누워 있었습니다.

 

미루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시 저한테로 옵니다.

 

뛰듯이 달려온 미루는

제 두 다리 사이로 들어와서

배쪽으로 몸을 날립니다.

 

"헉!"

 

기합을 줘야

장파열이 안 일어납니다.

 

미루가 활짝 웃습니다.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다리 쪽으로 갑니다.

 

한번 더 몸을 날립니다.

 

"헉!"

 

또 다시 다리 쪽으로 갑니다.

이번엔 몸을 날리지 않고

냅다 걸어옵니다.

 

"으허억!!!!!!"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평생 이런 건 처음입니다.

 

미루가 급소를 아주 제대로 밟았습니다.

 

주선생님은 멀리서

어깨를 들썩였다

손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율동 중입니다.

 

얼굴은, 이마쪽은 고정시킨 채로

턱만 왔다 갔다하는 시계추 동작 중입니다.

 

미루는 제 위에서 활짝 웃고 있습니다.

 

"아학..후..후.."

 

신음소리도 제대로 못 내자

주선생님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습니다.

율동은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상구 괜찮아?"

 

"으...죽을 것 같애..."

 

사태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저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방바닥을 느리게 뒹굴었습니다.

 

미루도 심각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다가

자기 엄마한테 달려 갑니다.

 

주선생님이 매우

그럴 듯한 처방을 내놨습니다.

 

"보호대 사줄까?"

 

동요CD를 확 꺼야 합니다.

 

조금씩 몸이 나아질 쯤

주선생님이 외칩니다.

 

"미루 간다~~. 조심해!!"

 

다시 몸을 웅크리고

방어 자세를 취했습니다.

 

미루는 신난 얼굴로

아까랑 똑같이 몸을 날렸습니다.

 

"흐억"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버텼습니다.

 

미루는 만족스러운 듯

다시 주선생님에게로 가고

저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마아이 아프나?"

 

서울 출신이

사람을 위로할 때

강원도 억양을 쓰는 경우는 없습니다.

 

진정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상구, 진짜 아파 보인다. 눈도 퀭하고..."

 

뭐, 이 정도 위로면 됐습니다.

마음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 합니다.

 

문득, 혹시 육아용품 중에

보호대를 정말 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은 전혀 제자리를 못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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