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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방이 좋아...

만화책이 보고 싶을 때 나는 만화방을 찾는다. 대여점이 아니다. 만화방이다. 만화책과 무협지, 판타지 소설이 빼곡이 놓여져있는 공간. 오로지 만화책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만의 공간. 나는 만화책을 보기 위해 그 만화방을 찾는다. 만화방을 찾기 위해 서점보다 멀고 불편한 거리를 일부러 걷기도 한다.

만화책을 사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분명 뭐라 할 것이다. 왜 빌려서 보느냐고. 거기에 대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처음 만난 만화는 빌려서 보는 만화였다고. 허름한 가게,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누렇고 두꺼운 종이에 그려진, 빌려보는 데 30원 하던 만화들이 내 만화인생의 시작이었다고. 그래서 빌려보는 것은 내가 만화를 보는 일상적인 방법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물론 만화책은 기본적으로 사서 봐야 한다. 그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많은 만화책을 사서 보았고, 지금도 수십권의 만화책을 방안 한구석에 쌓아두고 있기도 하다. 최소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스스로 감탄할 수 있는 만화는 경제력이 허락하는 한 반드시 사서 봤었다. 최소한 일상에서 나는 만화책을 사야 함을 절대 동의하며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서 읽는 만화에서는 알 수 없는 부족함을 느낀다. 무언가 빠져버린 듯한 공허함과 허전함마저 느낀다. 집에서 편안히 누워 읽는 만화에서는, 시시때때로 손만 뻗으면 읽을 수 있는 만화에서는, 내가 처음 만화를 읽던 5살 무렵의 그 흥분이 느껴지지 않는다. 풍요속의 빈곤이라고나 할까? 그토록 갖고 싶은 만화를 수없이 모아두고 있음에도 정작 내가 바라는 최고의 재미는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좁은 공간. 어두컴컴한 조명. 때때로 난방이나 냉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손이 곱기도 하고 땀으로 온 몸이 범벅이 되기도 한다. 만화책 한 권을 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다 읽기를 기다려야 하고, 읽다가도 다른 사람을 위해 빨리 읽고 넘겨줘야 하기도 한다. 더구나 볼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빌려보기 위해 낸 돈 300원에 만큼 단 한 번에 모든 내용을 파악하고 재미를 느껴야 하는 공간. 그곳이 만화방이다.

더없이 불편한 환경이다. 여러사람과 책을 공유하며 부대껴야 하는 부자유스러운 환경이다. 주어진 기회도 제한되고, 집에서 만화책을 볼 때와 같은 여유도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만화를 보는 최고의 재미를 느낀다. 만화 삼매경에 빠져 주위조차 둘러보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낸 돈 만큼의 기회동안 만화의 모든 것을 읽기를 강요당할 때 만화를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을 경험한다. 나에게 있어 만화를 보는 최고의 경험은 만화방에서 빌려보는 만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만화방에는 수많은 만화가 있다. 내가 살 수 없는 정말 많은 만화가 있다. 어떤 것들은 지금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어떤 것들은 나와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어떤 것들은 인쇄가 형편없어 보는 것 자체가 고문이고, 어떤 것들은 번역이 엉망이라 읽으면서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페이지를 찢거나 오려간 만화에서부터, 오물이 묻어 읽을 수 없게 된 만화도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만화가 그곳에 있는 것이다.

거기에 만화방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모두 만화를 보고자 모인 사람들이다. 집에서 만화책을 볼 때와는 달리 만화방에서는 만화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화책을 본다. 테이블 위에 쌓인 만화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슬쩍 알 수 있다. 가끔 키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보는 만화를 흘끔 훔쳐보기도 한다. 나와 같은 만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만화를 공유할 수 있다.

서비스로 뽑아주는 커피는 만화를 읽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한여름 얼음을 띄워 갖다주는 커피나 음료수는 만화를 읽는 지루함을 달래준다. 가끔 친해진 만화방 주인이 먹으라며 주는 과자나 과일 등의 간식거리는 심심해하는 입을 분주하게 만든다. 만화방에서 알게 된 사람과의 수다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인터넷과는 다른 오프라인의 생생한 만화이야기는 만화를 읽는 이상의 만화에 대한 재미가 된다.

만화방이란 이런 곳이다. 벽으로 빽빽이 들어선 서가와 그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만화책들.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들리는 침묵속에 만화에 정심없이 빠져든 사람들. 가끔 연인끼리 서로의 만화를 넘겨보며 재미를 공유하기도 하는 만화가 살아있는 공간. 그곳에서 만화를 본다고 생각해보라. 어찌 만화가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화를 읽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아니 사실 이런 이유 따위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 나의 만화 경험이 만화방에서 시작되었으며, 한참 만화의 재미를 느낄 때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곳은 만화방 뿐이었다는 것이 만화방에서 읽는 만화가 더 재미있는 근본이유일 것이다. 단지 나의 습관에 의한 재미에 불과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내세우는 이유라 하는 것은 "빌려보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변명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만화방에서 읽는 만화에서 더 큰 재미를 느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만화방의 불편하고 제한된 환경에서 보다 만화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오히려 집보다 불편한 그곳에서, 주어진 시간동안 읽는 만화에서 더 충족감을 느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내가 가장 재미있게 만화를 읽을 수 있는 곳은 집이 아닌 만화방인 것이다.

그래서일게다. 만화책을 사서 모으면서도 여전히 만화방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솔직히 만화가나 출판사에는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습관적으로 마약에 취한 듯 지금도 만화방을 찾아 만화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가끔 만화방 주인에게 주문해서 사는 만화책은 그에 대한 속죄의 의미일 것이고. 만화가들에게는 다시 한 번 미안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만화방에서 읽는 만화는 너무 재미있으니까.

만화방을 그대로 두면서 출판사와 만화가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방법이 있다면 빌려보는 값이 조금 더 비싸지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텐데. 만화방이 좋은 것은 빌려보는 값이 싸서가 아니라 만화방이라는 환경을 좋아하기 때문이니까. 그런 방법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화방이나 만화가나 어느 하나도 포기하기에는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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