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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열흘째

#1

 

근 4년간의 기숙사생활을 마치고, 홍대근처에 집을 얻었다.

처음 해보는 자취라 가슴이 둑흔대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어색하기도, 신나기도 한 열흘이었다.

하우스메이트 ㅅㅇㅅ과 함께 복작복작 살아보려했으나 각자의 일정이 바쁘신 관계로 저녁에 잠들기 전 잠시 보는게 전부다.(아침엔 본인이 늦잠을 심하게 자는 관계로 아침의 ㅅㅇㅅ은 보기 힘들다)

 

처음 ㅅㅇㅅ이 오기 전 횡한 방에 누워 혼자 잘 생각을 하니 오만가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도둑이 들면 어쩌나, 귀신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당체 혼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정말 구리다고 생각했던건, 도둑이 들어도 상관없는데(워낙 훔쳐갈 것도 없는지라)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까,  누가 내 집 안을 훔쳐보진 않을까 등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공포는 바로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지난 몇년간 성폭력은 가해자의 잘못이라고 배우고,  더 나아가 성폭력에 맞써 싸우기 위한 자기방어훈련까지 들었으며서도, 20년이 넘게 학습되었던 성폭력에 대한 공포감 하나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싫었다. 이론적으로는 모두 알겠으나, 무서워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그래도, 무서운건 무서운거고, 성폭력이 가해자탓은 탓인거고,

일상 속에서 다시 내 안에 있던 공포를 하나하나 깨어내야하는 것이 바른 순서인것 같다.

차츰 적응이 되면서 도둑 까짓거 들어와보렴.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한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느꼈던 기분이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이었는지, 낯선곳에 대한 두려움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역시 경험으로 하나하나 느껴가는 것은 좀 더 강한 나를 만드는 것 같다.

 

#2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ㅅㅇㅅ이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해. 그렇다고 너무 붙어다니진 말고, 좋아하다가 사랑하는 사이까지 되면 곤란하다"

고 발언하셨다. 너무 어이가 없던 난 정말 한참을 웃었다

(이 어이없음이란, 내가 ㅅㅇㅅ이랑 사랑하는 사이라고?ㅋㅋ 에서 오는 어이없음) 

 

우리 엄마,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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