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8/07

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7/21
    엄마와 페미니즘 이야기 하기(6)
    ㅇㅅㅇ레이
  2. 2008/07/17
    정신없는 하루(4)
    ㅇㅅㅇ레이
  3. 2008/07/12
    아스트랄한 나의 전생(7)
    ㅇㅅㅇ레이
  4. 2008/07/09
    날씨가 덥다(3)
    ㅇㅅㅇ레이
  5. 2008/07/08
    자취 열흘째(6)
    ㅇㅅㅇ레이

엄마와 페미니즘 이야기 하기

나는 엄마와 시시콜콜 여성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즐긴다.

엄마가 즐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내가 하는 운동이 어떤것이가에 대해 말하는걸 좋아한다.

(엄마도 내 활동을 듣는것에 대해선 물론 좋아한다)

한번은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에 대해서 엄마와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나는 왜 가사/육아노동이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만 요구되는지, 그리고 왜 '인정'받지 못하는지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너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내가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일하고, 너희를 키우면서 느꼈던 것들이 모두 옳지 않은 것이라고 느껴져. 엄마나 엄마 또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게 살아가는 낛이었고, 너희가 커가는걸 보면서 굉장히 기쁘거든"

 

사실 그렇다. 아무리 여성주의에서 말하는 가사노동의 불평등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거야. 왜 집안일 때문에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거야?라고 말하며,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엄마에겐 "엄마는 왜 집안일 '따위'를 하면서 멋있게 엄마 인생을 살지 못해?"라고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실제로 엄마는 이렇게 듣고, 나와 한참을 싸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싸우고 난 뒤 든 생각이지만, 나의 비혼결심이 엄마가 살아온 그동안의 삶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정리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엄마의 삶을 통째로 부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지금이라도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지지하는 것이 내가 해야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이런 싸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여성주의를 접하고 '오빠'라는 말이 가지는 권력에 대해 세미나를 했을 때, 내가 관계를 맺어온 수많은 남자 선배들에게 '오빠'라고 불러왔던 나는 지극히 반여성주의적이었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장애여성에 대한 세미나를 할 때 "장애인을 보면 항상 도울 수 있는 착한 학생이었던"나를 생각하며, 왜 난 시혜적인 관점으로밖에 장애여성을  보지 못했을까 하며 나를 자책했다.

이렇듯 자신의 삶을 부정하게 되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면 고쳐가면 되는 것이나, 괜한 '기분 상함'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라는 고민도 들었다.

 

요즘 불로그에서 한참 논쟁 중인 '엄마'와 관련된 포스팅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많은 정체성이 존재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않을 여성, 결혼은 했으나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한/아직 갖지않은 여성, 현재 육아중인 여성 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각 정체성에 기반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분명 이 논쟁을 통해 서로의 정치적인 견해 차이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내가 이전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괜한 기분 상함'은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아직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엄마에게 처음 범했던 실수처럼 타인의 경험을 부인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겠다는 결심만 다시 생길뿐.

 

아 진짜 모르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신없는 하루

쓸데없는 기억력은 참 좋은 나지만, 중요한 기억력은 나쁘다.

한번 봤던 사람 얼굴과 무슨 옷을 입었는지 까지 기억을 하지만, 중요한 약속은 잘 까먹는다.

그래서 오늘도 오전일정이 있는지 전혀 모른채 늦잠을 자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 아차 했다.

눈뜨자마자 씻고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가서 학내 청소미화 용역직 여성노동자들의 휴게실 방문을 정신없이 하고, 친구에게 미안해. 스케줄러에 써두는걸 깜빡해서, 오늘 일정을 기억하지도 못했어.라고 고백했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가, 점점 기력은 쇠해져만가고, 머리는 안굴러가고 그렇다.

그렇게 오전 일정을 마치고 다음 회의를 가는데(방학인데, 방학 아닐때보다 더 정신없다) 좀비처럼 걸어다녔다.

 

이렇게 기분이 축축 처지고, 아무 생각하기도 싫은 이유는 뭘까.

약 세달간에 걸친 모임을 정리하는데, 그동안의 회의 진행경과를 문서화하면서, 참 많이도 모였었구나. 그동안 이런 논의가 있었구나, 좀 더 잘할 순 없었을까.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텐데, 오만가지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이 모임에 얼마나 충실히 결합하였나,란 생각도 들고, 지난한 논의를 통해 하나의 의견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참 힘들었었다.는 생각도 들고, 복잡 미묘하다.

 

내일은 세미나 발제를 맡아서 여성주의 정신분석 관련 커리를 읽고있는데, 당체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려운 단어 남발에,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전혀 모르겠고, 결국 동거녀와 신세한탄을 하고 있다.(이상하게도 동거녀와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재밌는 이야기보단, 우울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거 같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먹고 일정에 쫒기다, 저녁늦은 시간이 되어야 폭식을 하며 더부룩한 속을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나는 참 바보같다.(뭘그리도 먹어댔는지.)

 

지금도 내가 무슨 얘기를 쓰고있는지, 사고의 흐름이 어찌되어가는지. 멍-때리고 있다.

 

겨울 생각해야지. 더운날씨도, 장마아닌 장마도, 다 지나가겠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스트랄한 나의 전생

수륙 양육 생물체가 공룡 발바닥에 깔려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날씨가 덥다

폭염주의보.

마침 회의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에 안나가도 된다!라고 쾌재를 부르며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다.

선풍기 앞에 앉아서 어제 대량으로 만들어 놓은 화채를 먹으며 음악듣고, 불질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다 담배까지 물면 정말 좋겠으나, 실내금연하기로 다짐했으니 패스)

 

 

이상하게 갑자기 시간이 붕뜬 날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실은 해야할 일이 여러개 쌓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이렇게 남는데도 절대  일만은 하기 싫은기분.

날씨가 더워서 그래. 라고 합리화하자.

(내일이면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겠지. 시간도 많았음서 일은 하나도 안했다고)

 

하루 세번 샤워로도 더위가 풀리지 않는 이 여름날은. 정말.

에어컨을 설치해놓고도, 전기세 걱정과 함께 얘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심해진거겠지?라는 생각에 선뜻 켜지지가 않는다. 그래 이렇게 더워진거도 다 우리 인간탓이지. 누굴 탓하겠어

 

피서가고 싶어.

칩거로 해결되지 않는 더위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취 열흘째

#1

 

근 4년간의 기숙사생활을 마치고, 홍대근처에 집을 얻었다.

처음 해보는 자취라 가슴이 둑흔대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어색하기도, 신나기도 한 열흘이었다.

하우스메이트 ㅅㅇㅅ과 함께 복작복작 살아보려했으나 각자의 일정이 바쁘신 관계로 저녁에 잠들기 전 잠시 보는게 전부다.(아침엔 본인이 늦잠을 심하게 자는 관계로 아침의 ㅅㅇㅅ은 보기 힘들다)

 

처음 ㅅㅇㅅ이 오기 전 횡한 방에 누워 혼자 잘 생각을 하니 오만가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도둑이 들면 어쩌나, 귀신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당체 혼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정말 구리다고 생각했던건, 도둑이 들어도 상관없는데(워낙 훔쳐갈 것도 없는지라)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까,  누가 내 집 안을 훔쳐보진 않을까 등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공포는 바로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지난 몇년간 성폭력은 가해자의 잘못이라고 배우고,  더 나아가 성폭력에 맞써 싸우기 위한 자기방어훈련까지 들었으며서도, 20년이 넘게 학습되었던 성폭력에 대한 공포감 하나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싫었다. 이론적으로는 모두 알겠으나, 무서워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그래도, 무서운건 무서운거고, 성폭력이 가해자탓은 탓인거고,

일상 속에서 다시 내 안에 있던 공포를 하나하나 깨어내야하는 것이 바른 순서인것 같다.

차츰 적응이 되면서 도둑 까짓거 들어와보렴.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한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느꼈던 기분이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이었는지, 낯선곳에 대한 두려움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역시 경험으로 하나하나 느껴가는 것은 좀 더 강한 나를 만드는 것 같다.

 

#2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ㅅㅇㅅ이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해. 그렇다고 너무 붙어다니진 말고, 좋아하다가 사랑하는 사이까지 되면 곤란하다"

고 발언하셨다. 너무 어이가 없던 난 정말 한참을 웃었다

(이 어이없음이란, 내가 ㅅㅇㅅ이랑 사랑하는 사이라고?ㅋㅋ 에서 오는 어이없음) 

 

우리 엄마,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