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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페미니즘 이야기 하기

나는 엄마와 시시콜콜 여성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즐긴다.

엄마가 즐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내가 하는 운동이 어떤것이가에 대해 말하는걸 좋아한다.

(엄마도 내 활동을 듣는것에 대해선 물론 좋아한다)

한번은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에 대해서 엄마와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나는 왜 가사/육아노동이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만 요구되는지, 그리고 왜 '인정'받지 못하는지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너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내가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일하고, 너희를 키우면서 느꼈던 것들이 모두 옳지 않은 것이라고 느껴져. 엄마나 엄마 또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게 살아가는 낛이었고, 너희가 커가는걸 보면서 굉장히 기쁘거든"

 

사실 그렇다. 아무리 여성주의에서 말하는 가사노동의 불평등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거야. 왜 집안일 때문에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거야?라고 말하며,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엄마에겐 "엄마는 왜 집안일 '따위'를 하면서 멋있게 엄마 인생을 살지 못해?"라고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실제로 엄마는 이렇게 듣고, 나와 한참을 싸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싸우고 난 뒤 든 생각이지만, 나의 비혼결심이 엄마가 살아온 그동안의 삶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정리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엄마의 삶을 통째로 부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지금이라도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지지하는 것이 내가 해야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이런 싸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여성주의를 접하고 '오빠'라는 말이 가지는 권력에 대해 세미나를 했을 때, 내가 관계를 맺어온 수많은 남자 선배들에게 '오빠'라고 불러왔던 나는 지극히 반여성주의적이었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장애여성에 대한 세미나를 할 때 "장애인을 보면 항상 도울 수 있는 착한 학생이었던"나를 생각하며, 왜 난 시혜적인 관점으로밖에 장애여성을  보지 못했을까 하며 나를 자책했다.

이렇듯 자신의 삶을 부정하게 되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면 고쳐가면 되는 것이나, 괜한 '기분 상함'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라는 고민도 들었다.

 

요즘 불로그에서 한참 논쟁 중인 '엄마'와 관련된 포스팅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많은 정체성이 존재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않을 여성, 결혼은 했으나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한/아직 갖지않은 여성, 현재 육아중인 여성 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각 정체성에 기반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분명 이 논쟁을 통해 서로의 정치적인 견해 차이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내가 이전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괜한 기분 상함'은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아직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엄마에게 처음 범했던 실수처럼 타인의 경험을 부인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겠다는 결심만 다시 생길뿐.

 

아 진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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