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붕괴의 권력학?

[잡생각]

씁쓸한 이야기를 또 듣게 되어, 오랜만에 정리되지 않은 잡스런 글을 하나 올린다. 사람이 무시를 받는 순간 만큼 화가 날 때가 있을까? 가끔씩 학생들에게 무시받았다고 투덜대는 선생들 -- 물론 이들도 지식생산 구조에서 비정규직 하청업자일 뿐이다 -- 을 보게 된다. 누가(선생? 학생?) 누구(학생? 학생?)를 무시했는지 모르겠으나, 가끔 전문대나 지방대에서 강의를 하고 나서, 엄청 화가나 있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래서 사연을 들어본면, 대부분은 학생들이 마치 중고딩처럼 불성실한데다가 선생을 생깐다는 거다. 예컨대, 잠을 자는 건 약과이고 끊임없는 문자에다가 끼리끼리 지방방송은 기본이다. 한때 유행했던 '교실붕괴'가 대학으로 옮겨온 듯한 분위기라고나 할까. 좀 많이 과장하자면 강의실붕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게 학생들 탓이겠냐만은, 앞에 서있는 사람으로서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일을 나도 전에 겪은 적이 있고 선생질을 해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일. 알다시피 비싼 등록금을 받고 교육다운 교육을 하지 않는 대학이 태반이고 근저에 버티고 있는 학벌사회가 심층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런 구조가 정말 문제이긴 하지만 -- 그리고 엄청나게 화가 난다! --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게 아니다. 이런 구조를 바꾸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달성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좀 다른 얘기를 해보자. 문제는 일상적인 실천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관계, 즉 강의실도 하나의 권력 공간이라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알다시피, 강의실에서의 권력관계는 교탁과 교강사에게 집중되는 것인데, 이런 권력을 끊어내는 학생들의 다양한 행동 -- 전술 -- 이 '교실붕괴' 현상을 낳는다. 내 생각에, 이미 중등교육과정에서 규율이 잡힌 학생들만 상대하다가 그렇지 않은 젊은이들을 접하면, 누구나 당연히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까 권력관계가 역전되어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별스러운 건 아니고 특정한 집단 -- 주로 노동계급이나 다양한 서발턴 -- 의 하위문화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저항방식일 뿐이다. 엄밀히 얘기해서 교실붕괴 따위는 없다. 제도화된 권위체계가 비틀릴 뿐인데, 사실 붕괴 따위로 부르는 문제화가 중요할 것이다. 뭔가 정상적인 걸 복위시키려는 문제화 말이다. 여하튼 일괄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학벌사회에서 전문대와 이른바 지잡대를 다니는 학생들은 어릴때부터 이런 저항 전술을 체득하고 있는 셈이다. 기억해보면, 나도 꼰대같은 선생들 수업에는 일부러 대놓고 농땡이를 부리거나, 좀 심한 짓도 해봤다. 이건 그냥 지난 일이니 넘어가자. 여째튼, 강의실에서도 힘 관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고 교강사와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나름 전술적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면, 천안에 대학들이 많아서 아침저녁으로 스쿨버스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그런데, 매우 슬프게도, 스쿨버스에서 커튼을 치지 않고 당당히 밖을 볼 수는 학생들은 그래도 이름은 들어본 번듯한 4년제 학생들이다. 반면에 이네들의 자부심과는 달리, 커튼 뒤에 숨어 자신을 지킬 수 없 밖에 학생이 더 많다. 사실 이런 학생들이 교실에서 교강사의 권력을 끊어냈다고 해서, 무에 그리 당황스러운 일일까? 그런 식으로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몇 시간의 강의는 다시금 자신을 깍아내리는 고역이 아닐까? 반대로 말해, 교강사들은 자신들이 어느 시점에서인가 자신들이 식자로서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건아닐까? 솔직히 나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는 잘 몰랐고 지금도 모르겠다. 짤은 추억을 돌이켜보면 나는 단지 지식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보다 계기를 만드는 정도에 만족했던 것 같다. 내가 저런 무력한 상황에 처했을 때, 2주만에 강의를 실제로는 관두고, 이후 10주 동안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학생들 한 면이 1시간 반동안 강의를 했고, 나는 그냥 의자에서 듣기만 했다. 학생 수가 20명 정도여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내가 많이 배웠던 것 같다. 그때 맨날 잠자던 학생들의 눈빛이 살아났던 기억은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 또렷하다. 그네들이 나에게 들려줬던 경험과 지식, 생각은 오히려 얼마나 흥미진진하던지!

지난 두 어달 동안 이런 학생들을 몇몇을 인터뷰하다 보니, 물론 자기들의 말이긴 하지만, 놀랍게도 정말 다재다능하고 뛰어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단지 부모를 잘 못 만나서이지, 중산층 가정에서만 자랐어도, 시쳇말로 인서울 대학에 진학할만한 친구들이 많다. 요즘 명망가들이 젊은이들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하시는데, 요점은 자신을 실험하고 도전하라는 거다 -- 엿 같은 말이다! 왜냐하면 알다시피 이런 실험은 돈=여유라는 자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펙을 쌓으려고 해도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내가 만나 본 친구들은 이른바 기만적인 '자아실현'을 위한 기회조차 가질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이 경제적, 심리적으로 가족에 기여를 해야하는 입장이 대다수였다. 이런 젊음들은 위로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기회의 평등조차 확보되지 못한 사회에서 개인과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남겨준 사회에서, 평생 무시와 차별을 내면화한 이런 젊음들이 강의실에서 조그만 '봉기'를 한다고 해서 화를 내야할까? 이런 젊음들에게 어려운 전문어 -- 대다수 식자들은 고급어휘를 연발로 구사한다 -- 로 나열된 말은 외계어나 다름 없지 않을까? 이 자체가 이네들을 무시하는 행위이고 권력을 쥐려는 얄팍한 술수가 아니겠는가. 교실이라는 정상성이 내포한 권력 말이다. 이딴 건 버리자! 이론이나 권위 그런게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라, 뭔가 다른 코드를 서로가 찾아야만 한다는 거다. 서로가 다른 앎을 생성하고 소통해야 하는 것이다. 식자들의 앎은 그냥 하나의 앎일 뿐이다. 무시받는 자들은 그러한 무시를 되돌려 줄뿐이다. 작은 교실에서도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쩌자는 것인지. 그리고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서로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얼마나 놓치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만 이것도 너무나 힘든 건 사실이다...이젠 강의를 더 이상 하지 않지만 그래도 심란하다.

횡설수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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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7 19:37 2011/10/1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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