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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05
    기간제 사유제한은 비정규해법의 핵심이다/ 김성희
    장상환
  2. 2005/05/05
    국회, 비정규직법 처리 유보
    장상환

기간제 사유제한은 비정규해법의 핵심이다/ 김성희

 

기간제 사유제한은 비정규해법의 핵심이다.

정부 입법안 집착과 일본 따라하기의 미망에서 벗어나야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들어가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취재기자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얘기를 듣자니 기간제 사유제한 문제로 비정규입법 관련 노사정 협상이 난항이라고 한다. 논의의 초점이 ‘기간제 사유제한이 타당한가’로 좁혀지고 있고 유럽과 일본의 얘기가 거론된다고 하고, 이미 다른 초점으로 넘어갔다고도 한다.


어찌되었든 외국 얘기를 거론하는 모양새가 결코 올바르지 않아 보인다. 예외적으로만 기간제를 인정하기 위해 기간제 고용이 가능한 특별한 경우를 열거한 사유제한 방식이 서구국가의 기간제 관련 법조항에 들어있는지 여부만 갖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단순한 해석일 뿐이다.


서구 노사관계구조를 총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아 생긴 오해로 중요한 일을 잘못 판단하지 않을까 우려도 하게 된다. 한편 논의 과정에서 인권위가 권고한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관련된 다른 중요한 내용들은 자칫 실종된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협상과정은 당사자들의 몫이지만, 근본적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삶이 달린 문제이기에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독특한 악성 차별적 비정규 구조


‘절반 이상의 노동자가 절반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집약되는 한국 비정규노동의 또 다른 특징은 정규직과 동일한 시간을 근무하며 비슷한 직무를 담당하나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임시직, 기간제 고용이 전체 노동자의 40% 가량, 비정규노동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악성 차별적 비정규 고용형태’라는 점이다.


이와 달리 유럽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짧은 시간 근무하는 파트타임 노동자의 비중이 비정규직 중 가장 많아 전체 노동자의 17.7%(2000년 기준)를 차지하고, 기간제 노동자의 비율은 12.5%로서 이보다 낮은 편이다.


또 하나 서구와 우리가 다른 점은 비정규노동의 확대 이유이다. 노동자에게 강요된 선택인지, 노동자의 자발적 선택 때문인지 여부가 초점이다. 유럽의 경우 파트타임 노동자 중 풀타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취업한 비자발적 파트타임의 비중은 16.9%에 불과하다. 파트타임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비중은 59.5%이다.


절반 이상이 개인의 여건과 필요에 따라 스스로 적은 시간 일하기를 선택했다는 것인데,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도 아니며 차별의 확대와도 관련이 적으며 시간선택주권의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간제의 경우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기간제가 된 비자발적 선택의 비중은 40%를 넘는다. 일정기간동안 풀타임으로 일하는 기간제는 일정시간만 일하는 파트타임에 비해 비자발적인 선택인 경우가 많으며, 파트타임에 비해 기간제 고용이 많은 사회는 ‘강요된 차별’이 주도하고 있는 사회라 할 수 있다.


한국이 바로 그 전형적 예이다. 모든 비정규직이 차별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기간제의 경우 비슷한 일을 하는 비교가능한 정규직 노동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차별에 대한 일상적 체감도가 훨씬 높다. 그래서 서구에선 특별한 조항이 없을지라도 차별금지, 동등대우의 주된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래서 기간제 비중이 높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파트타임과 기간제의 비중 비교(한국은 2003년, 그 외는 2000년)

 

파트타임 고용 비중

기간제 고용 비중

EU 기존 15개국

18.2%

13.1%

EU 신규 10개국

7.8%

11.1%

일본

14.3%

14.4%

미국

17.5%

4.9%

한국

4.9%

37.4%

* 자료= EIRO(2002). 한국은 2003년 자료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월간 『비정규노동』 2004. 12

 

사유제한은 다른 사회적 규제방식으로 보완된다


사유제한이란 일정기간만 고용해야 할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두어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기간제 제한방식이다. 출산, 휴가 등으로 결원이 생기거나 계절적 업무인 경우, 사업완료기간이 정해진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각국의 기간제 고용에 대한 입법 흐름을 보면, 사유제한을 채택하는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기간제 사유제한이 OECD 내 10여 개 국가에서만 채택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사유제한은 직접적이고 가장 강력한 기간제 제한 방식인데, 그것만으로 충분한 억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점 또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유제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스페인의 경우 기간제의 비중이 다른 OECD국가보다 월등히 높고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유제한 방식의 채택 여부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전반적 법제도, 고용정책과 노동시장제도,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의 영향력, 노사관계 구조가 차별해소와 비정규직 억제 기능을 실질적으로 발휘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다음 세가지 측면을 고려해서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규제방식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EU의 기간제고용 지침에서는 우선 차별 금지와 동등 대우 보장의 문제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다. 기간비례의 원칙의 적용으로 차별금지를 명문화한다. 차별금지조처가 실효성 있게 작용하면 인건비 절감 유인만으로 기간제를 활용하려는 사용자의 의도는 대폭 약화된다. 계속 활용할 인원을 굳이 기간제로 뽑아야 할 유인으로서 인건비 절감이란 이점이 확실히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 조항을 실질적 영향력이 있는 조항으로 마련하는 것, 구체적으로 기간제를 비롯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금지를 명문화하는 것을 비정규직 보호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EU의 기간제 지침에서는 각 회원국이 ‘객관적 사유, 최대 지속기간, 반복갱신 횟수’ 중 하나 이상을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견줘 ‘사유제한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하는 반문이 제기된다. 기간제 지침은 동구권을 중심으로 한 신규가맹국들이나 영국과 같이 법적 장치로서 규제하기보다 자치주의적 전통을 가진 나라들을 고려해 탄력적인 제한조처를 마련한 결과이다.


초국가적 규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낮은 수준의 규제방식이 도출된 것으로, 각국의 현실에 맞게 적용할 최소기준이다. 기간제 비중이 월등히 높은 한국의 현실에서 EU의 신생가맹국 수준에 맞춘 낮은 수준의 제도를 도입할 경우 기간제 억제는커녕 오히려 촉진기능만 부추길 수 있다. 현실이 워낙 심각하기에 현실을 제어하지 못하는 성긴 그물로는 남용과 차별의 끄트머리도 붙들지 못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직접 연관되는 법조항만이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사회적 규제의 전부가 아니란 점이다. 특별한 제한규정이 빠져있다고 해도 전반적인 노동법의 고용보호 조처가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있으며, 이것이 더 강한 보호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노조의 영향력이 강하고 단체협상의 포괄 범위가 넓을 때 법률이 아닌 교섭에 의해 실질적으로 기간제 사용이 제한되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기간제 사유제한을 완화했다는 스웨덴, 사유제한이 없고 기간제한만 있는 독일, 유연안정성 모델로 회자되고 있는 덴마크와 이 중에서도 유연화 속도가 높다는 네덜란드의 경우까지 사유제한이 없다고 해서 기간제의 비중이 높거나 급격히 확대되지 않는다. 이 나라들은 애매한 분류기준으로 축소 추계되는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비정규 고용 개념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고, 정규고용이 고용의 기준으로 명확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노조 영향력과 단체교섭의 포괄정도가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OECD의 고용보호 평가순위는 법률 측면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며 고용보호의 실제 효력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정보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아래 표는 OECD국가의 기간제에 대한 규제 기준을 고용보호의 실효력이라는 측면에서 전반적 사회적 규제로 확장해서 살펴본 내용이다.


사유규제를 도입한 국가가 전체 27개국 중 9개국(부분적용까지 11개국)이며, 아무런 규제가 없는 국가가 한국, 일본을 포함해 5개국, 반복갱신 제한국가가 17개국, 기간제한 국가가 13개국이다. 그런데 갱신 시 사유제한이 실행되는 경우가 3개국, 단체교섭의 영향력이 강해 실질적 규제가 이루어지는 국가도 최소 3개국 이상이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차별금지 조항이 유럽국가에서는 포괄적 영향을 미치며, 다른 제도적 규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유제한

반복갱신제한

기간제한

초점

호주

 

 

 

오스트리아

 

 

법원에서 갱신 시 사유제한

벨기에

 

 

캐나다

 

 

 

 

체코

 

 

 

 

덴마크

 

갱신시 사유제한. 단협영향력

핀란드

 

 

프랑스

경영상 해고후 사용못함 추가

독일

 

단체교섭 영향력 고려해야

그리스

 

헝가리

공공부문 적용

 

아일랜드

 

 

갱신시 정당한 이유 있어야

이태리

 

 

갱신시 

기간제한

 

일본

 

 

 

 

한국

 

 

 

 

 

멕시코

 

 

갱신, 기간은 단체교섭으로

네덜란드

 

 

갱신, 기간은 단체교섭으로

뉴질랜드

 

 

폴란드

 

 

 

포루투갈

 

슬로바키아

 

 

 

스페인

 

스웨덴

일정인원 이하만

사유규제 해제

 

단체교섭 영향력 고려해야

스위스

 

 

 

터키

 

 

영국

 

 

법규제 없는 자치주의전통에서 고용보호 규제로 이동현상

* 자료= OECD, Employment Outlook 2004에서 수정 인용

 

일본 따라하기, 언제까지?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는 정부가 비정규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새삼 확인되는 ‘일본 따라하기(After Japan)’ 경향이다. 고용평등법, 단계적 노동시간단축에서 최근 비정규입법까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계속되는 일본법 베끼기와 일본 노동시장 따라가기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 일본이 사유제한을 도입할 때에야 검토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비정규고용의 증가로 인해 성장기반이 축소되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외톨이가 증가하는 등 일본 사회는 밑바닥으로부터 균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대국, 생활빈국’인 일본이 과연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인가?


요즘 정부는 용어는 유럽 쪽에서 빌려오지만, 구체적인 법안의 내용은 일본을 그대로 쫓아가 유럽식 이름에 일본의 모양새라는 괴짜를 빚어내고 있다. 양극화를 언급하면서 노동빈곤을 양산하는 비정규입법을 내놓는 자기모순을 언제 정부가 명쾌하게 해명한 적이 있는가? 정부 비정규입법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모양이다. 앞으로 일본처럼 제조업까지 파견직 허용을 확대하려고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도 실질적 제재조처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의심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를 바랄뿐이다. 아니 이를 확인할 기회조차 오지 않기를 바라야겠다.


정부법안 폐기 필요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정부는 정부입법안이 유연화 대세를 인정하면서도 남용을 막는 비정규직 보호를 절묘하게 조화한 ‘정답’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는 태도를 보인다. 확산과 보호라는 반대방향의 힘을 아우를 수 있는 천하의 묘안을 제출했다는 말이다. 특히, 확산에만 기여하고 차별해소 효과는 없다는 노동계의 줄기찬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분명한 대답 없이 도덕성에 대한 역공으로만 대응했을 뿐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낳을 법안을 만들어 놓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보호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로 일관하는 정부는 정녕 무책임하지 않다면, 무능력한 거다.


정부는 파견제 확대로 확산 효과가 있지만, 휴지기가 있어 확대 3년 만에 3배 이상 파견직이 증가한 일본만큼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 아닌 추측을 한다. 그러나 휴지기는 기간제와 혼용의 방식으로 무용지물이 되거나, 3년으로 확대된 사용기간이면 3개월 휴지기가 제동장치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


정부는 차별해소효과가 작동한다고 하면서 약 10%의 임금인상효과를 도출한 연구용역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를 분석해본 결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아닌 ‘동일인적속성 동일임금’이라는 편법을 동원한 말 그대로 추산 결과일 뿐이며, 이를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비정규통계(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대입하면 기껏해야 4%의 임금인상효과 밖에 없다.(김성희・황선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사회경제적 효과』, 국회노동기본권의원모임, 2004 참조)


그것도 개별구제장치이자, 이제까지 노동위원회 개별구제 판정 결과를 보건대 노동자가 승소할 확률이 희박한 차별시정장치를 통해서 모든 노동자의 차별이 시정될 때에나 나타날 결과일 뿐이며, 동일노동동일임금 등 차별판단의 기준마저 없는 상태에서 차별여부를 어떻게 판단하겠다는지 모호한 상태에서 대표적인(아니 유일한) 보호조항이라고 내놓은 내용이다.


정부의 기간제‘보호’법안은 현재보다 과연 좋은가


이 시점에서 정부가 제출한 기간제보호법안이 적용되면 과연 현 상태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법안 중에서도 가장 잘 이해하기 힘들고 오해와 섣부를 기대가 많이 나타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현행법으로 기간제고용은 1년 이내로 제한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기계약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막연하게 해석할 수도 있는 이 조항의 틈새를 헤집어 1년 이상 기간제의 고용보장을 명분으로 2년, 3년, 5년 계약직도 등장했고 법원 판례로 최근 인정되어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이미 현실은 법을 넘어서고 있다.


정부입법안을 보자. 고용기간이 1년에서 3년으로 확대되었다. 3년 이내에서 자유롭게 계약기간을 정할 수 있다. 한 달, 3개월, 6개월, 1년, 2년 2년 6개월 등등 다양한 생존기간을 가진 기간제가 현재처럼 여전히 존속한다. 매 1년이 안되어 반복갱신하던 추세가 바뀌었으므로 현재도 이와 똑같다. 3년 이상 계속 고용하면 해고제한이 적용되는데, 그 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건 아니고 기간제로서 계속 고용된다는 뜻이다.


정규직으로 쓸 사람도 3년 이내 계약직으로 고용하고, 일부를 3년 넘어 계속 고용한다 하더라도 굳이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기간제로 계속 고용하면 된다. 개인이 구제신청을 하고 차별시정기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아마도 정규직과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계약직으로 쓰다가 말 사람을 누가 3년 이상 계약직으로 뽑겠는가. 또 유일한 보호장치라고도 할 수 있는 차별시정시구의 실효성은 0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차별이 해소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낙타와 바늘귀의 관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과연 무엇이 더 나아진 것인가? 눈을 씻고 찾아봐야 보일락 말락 하는 보호장치를 놓고 파견제 확대와 교환하자면서 보호방안이라고 우기기까지 하는 걸 그냥 눈뜨고 지켜봐야 하는가?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제동장치가 필요한 때


모든 비정규직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긴 하지만 기간제는 분명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가장 극악한 비정규 활용전략의 산물이다. 외국에선 사유제한을 법으로 명시하든지,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의 영향력으로 보호를 받든지, 일반법의 조항이 구별 없이 적용되든지, 각각 방식은 달라도 또 아무런 제한조처가 없다고 하더라도 기간제가 아무런 제약없이 남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간제 고용이 고용의 정상적 형태는 아니며 차별받지 않는다는 보편적 원리가 밑바탕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간제 사유제한과 같은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규제방식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상황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정규고용과 비슷한 시간, 비슷한 일을 하면서 차별받는 기간제가 비정규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 노동시장의 악성 차별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예를 찾아보기 힘든 최악의 비정규직 ‘악용’ 현상이다.


한국에선 노동자가 기본권을 행사하는데도 정부가 하라마라, 어디까지 하라고 지정하려고 든다. 하청노동자의 원청에 대한 노동자로서 권리 요구나, 노동자에서 자영인 신분으로 전환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부여 여부가 왜 서구에서는 논의거리도 되지 않을까? 이제 기본권을 구축해나가는 의미에서 정규고용을 고용의 기본형태로 삼고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차별받지 않아야 되고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활용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구체화하는 비정규직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차별로부터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다수를 방치하고 오히려 양산해왔다. 시장에서 사용자의 인건비 절감 욕구를 사회적 기준을 갖고 통제할 기반과 장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이제 고용의 정상적 형태로 행세하는 기간제 고용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 사유제한과 같은 분명한 제동장치를 부착해야 한다. 개별 자본의 인건비 절감 욕구가 양극화라는 사회의 파탄현상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갖추자는 대단치 않은, 소박한 요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제동장치로서 ‘부분의 성공이 전체의 실패’를 가져오는 총합의 오류를 제어할 핵심 수단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2005-04-28 오후 1:47:38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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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비정규직법 처리 유보

[비정규직법 처리 또 불발…'장기표류' 가능성]

노사정 11차 협상에도 합의 못봐…"대화 가능성 확인은 성과"


비정규직법 국회 처리가 지난 2월에 이어 또 다시 불발됐다.

노사정이 11차례에 걸친 실무협상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해 '4월 처리'를 넘겨 6월 국회를 기약하게 됐다.

그러나 5∼6월에는 '춘투(春鬪)'로 불리는 노동계의 임단협이 본격화 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주요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보여 6월 처리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비정규직법의 장기 표류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11차례 협상에도 '마지막 산' 못넘어= 노사정은 국회 주도로 지난달 초부터 11차례의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비정규직법은 정부가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한 뒤 줄곧 계류돼 있었으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대화를 받아들이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주도의 노사정의 논의가 시작됐다.

노사정은 지난달 8일 노사정 실무대표들이 첫 회의를 시작한 뒤 이날까지 11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하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파견업종 범위 규정 등에 대해서는 의견을 접근시키기도 했으나 기간제 근로자(임시ㆍ계약직) 고용기간과 사유제한에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노동계는 현재 사용 제한 없는 1년과 사용 제한을 둔 1년을 포함해 총 2년간 기간제 근로를 사용토록하고 이후에는 정규직으로 간주(고용의제)하자는 안을 최종안으로 주장했다.

이에 반해 경영계는 사용 제한 없이 3년동안 고용한 뒤 3년 이후에는 일정한 사용 제한을 둘 수 있고 임의로 해고를 금지하도록 하는 안을 마지노선으로 내놨다.

그러나 이 같은 노사 양측의 주장은 서로에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이 되면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국회, 합의없는 처리 부담에 유보 결정= 국회는 그동안 주도해온 노사정 실무협상이 합의 도출에 실패하자 법안의 4월 국회 처리를 강행하지 않기로 했다.

국회 환노위는 협상과정에서 노사가 완전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최종 협상까지 합의된 사안들을 반영해 국회의 법안 처리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혀왔으나 끝내 법안 처리에 대한 '강행 방침'을 꺾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노사간 합의하지 못한 법안을 처리한 뒤 발생할 수 있는 노동계의 반발 등 부작용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법은 다시 '6월 국회 처리'를 목표로 재논의 과정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목희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은 "이번 노사정 실무협상에서의 합의 실패가 끝이 아니다"며 "앞으로도 국회 주도의 대화를 계속해 나갈 것이며 노사간 합의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6월 국회의 경우는 노동계의 임단협 시즌의 가운데에 놓이고 비정규직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보여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은 물론 경영계도 이달보다 훨씬 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비정규직법안이 6월 국회는 물론 이후에도 처리되기 어려운 '장기 표류법안'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명분쌓기 급급 눈총…노사정 대화 선례 남겨= 국회와 노사정은 비정규직법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한 데 대해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연간 80만명씩 증가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시급성에 대해서는 정부는 물론 노사가 모두 우려를 표했지만 정작 '보호법안'을 만드는 데는 서로 명분쌓기에 급급해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경영계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경영부담'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한 나머지 적극성을 띠지 않았고 노동계는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눈총을 의식해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서로에 대한 지적이다.

게다가 법안을 제출한 정부도 '우리 안(案)이 정답'이라는 태도로 일관하며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았다는 노동계의 볼멘소리를 듣고있다.

하지만 노사정이 서로 대화를 통해 노동현안 해결을 시도해 합의 직전까지 갔다는 점은 노동문제에 관한한 '실종됐던' 대화를 되살린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법에 대한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는 동시에 지난 2년동안 제자리 걸음만 해온 '노사관계 법ㆍ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 논의에도 '새싹'이 돋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의원은 "이번 비정규직법 논의는 노사정 간 대화와 대타협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향후 로드맵 논의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병석 노동부 차관도 "비정규직법 논의와는 별도로 로드맵에 대한 논의에는 노동계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며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나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에 대해서는 시급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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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교육선전실 보도자료

 

<비정규입법 노사정교섭 결과>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 11차 회의 결과

1) 일시: 5. 2 10:00-24:00(16:30-22:30 정회)

2) 장소: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

3) 참석: 민주노총 이석행 사무총장, 한국노총 권오만 사무총장, 경총 김영배 부회장, 상공회의소 부회장, 이목희 국회환노위 법안소위원장, 정병석 차관

4) 논의 내용
- 각 의제에 대한 각계의 최종입장을 놓고 교섭을 전개하였으나, 기간제 문제 등 주요 쟁점에 대한 최종합의에 도달하지 못함.
※ 합의되거나 의견접근 된 내용 등은 이후 노사정교섭 및 입법과정에서 존중키로 함
- 환노위원장 명의로 법안처리를 위해 5. 3 10:00 환노위가 소집되어 있으나, 노사정대표자 운영위원회가 처리의 유보를 요청키로 하고, 이목희 법안소위장이 이를 책임지기로 함.
- 노사정대표자회의 개최를 요청하여 비정규입법안을 논의키로 함.
※ 사실상 비정규입법안의 4월 임시국회 처리는 유보되었고 이후 노사정대표자회의 개최 등으로 논의가 넘어가게 되었음.

※ 주요 의제별 논의 현황

① 기간제 관련
<노동계> 사유제한 및 기간 2년 제한(교섭석상에서 1년 사용 후 사유제한 - 추가 1년까지 사용 후 정규직 고용간주(고용의제)안 최종안으로 제시)
<경영계 및 정부> 3년후 - 해고제한

② 차별폐지 관련
- 동일노동동일임금 큰 틀 의견 접근 확인, 구체적 기준 이견
- 차별시정절차에서 사용자의 차별 입증 책임 명기로 강화 의견 접근
- 차별시정청구주체: <노동계> 당사자 및 노조의 시정신청권 보장 <경영계> 당사자 시정신청권만 인정

③ 파견관련
- 파견허용업종, 기간 현행유지(포지티브 리스트 방식) 의견 접근
※ 허용업종 결정 방식에는 이견: <노동계> 노사기구에서 노사합의로 결정 <경영계> 정부가 노사의견수렴 후 결정  
- 불법파견 고용보장: <노동계> 고용의제: <경영계, 정부>: 고용의무
- 파견노동자 사용기간 후 고용의제
- 파견사용기간: <노동계> 2년, <경영계> 4년, <정부> 3년

④ 파견 관련
- 휴지기: <노동계> 6개월 <경영계> 삭제 <정부> 3개월
- 사용사업주(원청업체) 사용자 책임: <노동계> 명문화 필요 <경영계 및 정부> 없음

⑤ 단시간노동자 관련
- 초과근로 제한: <노동계> 8시간 <정부> 12시간
- 소정노동시간 초과시 초과근로시간: <노동계> 초과수당 지급 <정부> 미지급

⑥ 특수고용노동권 보장 관련
<노동계> 노동기본권 보장 및 기설립노조 노조활동과 노동기본권 보장
<경영계 및 정부> 유보

⑦ 기타
<노동계 요구>
- 기간제 여성노동자 산전후휴가 중 기간만료만을 이유로한 계약해지 금지
- 최저임금 110% 이하 저임금 노동자 무상교육, 무상의료 실시위한 정책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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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경영계안, 현재 비정규직에게 대입해 보니…  

비정규직 신분, 어떻게 바뀔까?
  
5년 일한 임시직 여성 노동자 문근영씨. 올해 말까지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아기를 낳기 위해 출산휴가를 가려는데 사직서를 쓰라는 절망적 소식을 들었다. 매년 말에 재계약 때문에 불안해 하며 정규직에 비해 엄청난 차별을 해도 ‘찍’소리도 못해본 문근영씨는 사직서를 써야 하나, 아니면 쓰지 말고 버티어야 할까?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제72조에 정한 산전후휴가 90일을 사업주로부터 부여받을 수 있고, 사업주는 출산을 이유로 여성노동자에게 해고 등의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문근영씨는 그 이름도 서러운 임시직 노동자! 사직서를 쓰지 않고 버틴다 해도 그 기간은 얼마 남지 않은 계약기간 동안뿐이다. 아기도 나아야 하고 직장도 포기할 수 없는 문근영씨는 노동계가 제시한 비정규입법안에서 해법을 찾기로 했다.

우선 근로계약기간에 대해 알아보자. 현행 근로기준법 제23조는 '근로계약기간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1년을 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래서 사업주가 1년단위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이를 반복갱신하는 것은, 사업주가 어느 날 마음이 변해서 갱신을 거부하지 않는 이상, 현행 근로기준법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갱신거부는 정규직/비정규직 차별문제와 함께 임시직노동자 문제의 양대 축이다. 갱신거부의 대해 근로기준법 제30조제1항의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제한’이 적용될 것인가?

법원판례는 계약기간을 정한 양 당사자의 의사존중을 기본원칙으로 하여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갱신거부를 해고로 인정하고 있다. 이때 ‘특별한 경우’란 갱신의 횟수와 근속년수, 사업장관행, 갱신거부의 사유, 계약기간을 정한 합리적 이유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판단해야 하는데, 구체적 사례마다 판단이 달라 단정적으로 ‘어떤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노동자의 곤궁한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정해진 계약기간’을 존중하는 원칙 아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계 안은 기존 법원의 입장과 달리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할 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사유는 다음과 같다.

출산·육아·질병·부상 등으로 인한 결원 발생시의 결원대체, 계절적 사업,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인 경우, 일시적·임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어야만 임시직(또는 기간제, 계약직)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기간제 사용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 무조건 정규직으로 간주하도록 하였다.

노동계 안에 따르면 ‘별 이유 없이 그냥’ 임시직으로 5년이나 일해 온 문근영씨는 당연히 정규직이 된다. 정규직이 될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차별받은 서러움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노동계 안에 따르면 문근영씨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노동을 해온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하여 임금과 기타 근로조건에서 차별받은 것을 시정해 달라고 관계기관에 신청할 수 있다.

그리고 노조도 차별시정 신청의 주체가 될 수 있어 ‘나홀로 임시직 노동자’를 대신하여 노조가 차별시정신청을 할 수 있다. 차별시정의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동계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여 정당한 이유 없는 차별을 ‘반사회적행위’로서 금지시키고, 그와 유사한 행위가 장래에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처벌의 성격을 띤 손해배상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계기관에서 차별시정명령이 나오면 그 효과는 신청의 당사자인 문근영씨만이 아니라 유사한 조건에 놓인 사내 모든 임시직노동자에게 적용되어 회사로부터 그동안의 차별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문근영씨 입장에서 중요한 산전후휴가에서도 중요한 대목이 있다. 산전후휴가는 출산 후 45일 이상 확보돼야 하고, 사업주는 60일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휴가기간 도중 계약기간이 만료하면 사업주의 의무도 종료되므로 산전후휴가는 종료된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문제만이 아니라 산전후휴가급여도 상실된다.

고용보험법상 제55조7항 산전휴가급여는 90일의 산전후휴가 기간 중 사업주가 지급하는 60일분의 통상임금을 제외한 나머지 30일분의 급여이다. 수급자격은 산전후휴가 종료일 이전 피보험기간(고용보험가입기간)이 180일 이상 되어야 하고, 산전후휴가가 종료한 이후 사업주로부터 산전후휴가확인서를 교부받아야 고용안정센터에 제출하여야 한다. 따라서 계약기간이 만료돼 산전후휴가가 종료됐다면 고용보험법상 산전후휴가급여를 지급받을 수 없다.

육아휴직급여도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육아휴직을 부여한 경우에 국가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것이므로, 근로관계가 종료하였다면 육아휴직급여를 받을 수 없다.

그런데, 노동계 안은 임시직 여성노동자가 산전후휴가를 사용하는 경우 해당 휴가기간 동안 기간만료를 이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했다. 즉, 휴가를 사용하는 도중 이미 정한 근로계약기간이 끝나도 근로계약관계가 산전후휴가 종료시까지 지속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경영계안은 3년까지는 자유롭게 기간제노동자를 사용하고 3년 이후부터 사유제한을 하자는 것이며, 사유제한을 위반하는 경우에도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3년이라는 기준이 도입된 것을 제외하면 현재와 달라진 것이 없다.

5년째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는 문근영씨의 경우 경영계안대로라면 산전후휴가를 이유로 해고되거나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해고되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3년이 되지 않는 임시직노동자들은 구제신청조차 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지금보다 더욱 답답한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혜수 공인노무사(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withwind22@kcwn.org  
        
2005-04-30 오전 8:43:02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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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법 노사정회담, 손익계산 분주
  노동계 "대만족", 노동부 권위 실추 우려
  [프레시안] 2005-05-04 오후 12:14:52

  김경락/기자

 

 지난 3일 국회 환경노동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간제·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 법률 제정안'(기간제법안)과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개정안'(파견법) 처리를 6월 임시국회로 유보하기로 결정하면서 지난 4월초부터 시작된 비정규법안 관련 노사정 회담은 종결됐다.


 노사정 실무회담을 주관한 이목희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의 "10여년만에 노사정이 한가지 사안을 두고 허심탄회하고 진지하게 논의됐다"는 자평과 별개로, 이번 노사정협상에 대해 노사정 각 진영의 평가는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노동계, 4월 노사정협상의 최대 승자


 4월 처리 무산에 가장 만족해하는 진영은 노동계다. 비록 '비정규권리보호입법쟁취'라는 당초 목표에는 미달했지만, 스스로 '비정규 확산법'이라고 지칭한 정부 법안 저지에 일단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국회에서 처리 유보를 성사시켰을 때 상황과 달리 정부 법안 원안이 그대로 다음 회의 테이블에 올라 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대목은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라는 게 노동계 자평이다.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정부 법안의 문제점이 상당히 공론화한 만큼, 또다시 정부가 원안 처리를 고집하지 못하게 됐다"며 "향후 노사정 회담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노사정이 이견절충을 본 쟁점들이 그대로 준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끝까지 공조를 유지한 대목은 양 노총간 신뢰를 강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양대노총 위원장의 공동단식이 상징하듯, 4월 노사정회담 기간동안 양대노총은 어느때보다 단단한 공조의 힘을 발휘했다.


 한국노총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비정규법안 노사정 협상 기간 동안 보여준 양대노총의 긴밀한 공조는 노동계 입장에서는 또다른 큰 수확"이라며 "그간 누적된 상호간 선입견의 많은 부분이 이번 기회로 해소됐고, 향후 양대노총의 연대 투쟁이 안정적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노동부, 심각한 권위 실추


 반면에 최대 패자는 노동부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일단 스스로 '최선의 안'이라고 주장한 정부안이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인권위 권고로 백일하에 드러났기 대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14일 정부법안에 대해 "정부법안이 비정규노동자들의 인권보호에 상당히 미흡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하면서 정부법안은 시련을 맞기 시작했다. 인권위의 의견은 최소한 정부법안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은 아니라는 평가로 해석됐다.


 더구나 인권위 의견표명 이후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인권위 공격발언 등은 노동부가 비정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단순히 노동시장 차원에 머무르고 있음을 확인케 한 것이어서 이후 이어진 시민사회진영의 거센 비판은 노동부에게 큰 악재였다.


 실제로 인권위 의견표명 이후 노사정 실무회담의 논의 기준이 정부안에서 인권위 의견 수준으로 대폭 이동됐다.


 또한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정병석 노동차관을 겨냥, 실무회담에 참석하지 말라고 공개 요구한 이후로 노동부는 실무회담에서 이렇다할 발언조차 하지 못했다고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전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노동부가 추진 중인 '노사관계 법·제도선진화방안' 등 각종 사안들이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거취 문제도 여러경로를 통해 제기되지 않겠냐는 섣부른 추측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사용자 단체, 복잡한 심사.5~6월 임단투 경계


 사용자 단체는 이번 실무회담에 대한 평가가 복잡한 상황이다. 표면적으로는 4월 회기 내 처리가 무산된 것에 대해 '아쉬울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비정규법안이 또다시 6월에 재논의될 예정인 만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6월에는 임단협 투쟁과 비정규법안 문제를 연관시켜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부담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5~6월 전개될 노동계의 임단투를 경계해 '부담스럽지만 정부법안 원안 통과에 찬성한다'는 입장은 제출한 바 있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가 이번 실무회담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공론화 된 것은 가장 큰 타격이다.


 IMF 외환 위기 이후 비정규 사용을 무제한 늘렸지만, 경제위기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면서 도덕적 비난만큼은 면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과정에서 비정규직 규모와 근로조건 등이 대중적으로 공론화되면서 더 이상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만큼은 공개적으로 펼 수 없게 됐다.


 이와 관련 노동관련 한 전문가는 "비정규직 문제는 공론화되면 될 수록 사용자들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초래된다"며 "노동계는 비정규 문제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월은 준비기간


 5월 한달간 노사정 각 진영은 6월 임시국회를 대비해 전열정비를 비롯, 전략전술 마련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노동부는 실추된 권위 회복을 위해 5월 내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높고, 사용자 단체도 비정규 노동 사용에 대한 비난 여론을 극복하기 위한 복안 마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역시 6월에도 4월 국면만큼 유리한 환경조성이 될지 여부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새로운 전술과 논리가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특히 최초로 조성된 양대노총 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한편, 비정규직 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에 더욱 주력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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