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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휴가..

불량 스머프님의 [휴가!]에 관련된 글..

 

아이를 보내 놓고 잽싸게 준비해서 튄곳은 경주였다.  이왕이면 멀리멀리 (해외로까지는 못가니까)가보자는 심보로... 서울과는 달리 마침 경주의 날씨는 햇볕 없이 차분하고 바람까지 불어주는 초여름 날씨 답지않게 선선한 날씨였다.  미리 언질을 했던 탓인가, 블로거 체게바라가 터미널에서 나를 반겨주었다.  평일이라 근무중이었지만 짬을 내어 나와준 체가 너무나 반가웠고 고맙게 생각되었다. 이미 온에서 소통을 하기 시작한게 벌써 3년이란 세월을 걸쳐서 인지 전혀 낯설지 않았고, 생김새 또한 사진으로 봐왔던지라 익숙하기만 했다.  사회복지의 한 영역인 자활후견기관이라는 곳에서 근무하는 체는 나의 관심분야와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어서 유독 공감대와 친밀감이 높았는지도 모른다.  (예정된)오프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사실, 사진에서는 그럭저럭 귀여운 느낌을 받곤 했는데 실제로는 키도 굉장히 크고 너그러운 아저씨 같은 분위기였다..^^

 

터미널에서 조금 걸으니 무덤의 도시라는 수식어와 걸맞게 천마총이 나온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무덤은 초록색 잔듸로 뒤덮여 있었고, 여기저기에 관광객들이 거닐고 있다.. 나는 그것보다는 처음보는 체와 수다떨기에 더 여념이 없었지만...대충 천마총 투어를 마치고 사진을 몇장 찍고 근처에 이름난 밥집이 있다고 하여 찾아간 곳은 '도솔마을'이라는 밥집이다.  마당 넓은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밥집은 경상도 특유의 반찬과 동동주를 파는 곳인듯 한데, 관광객들의 발길과 인터넷이라는 정보통신으로 이름을 날려 밥값도 오르고 밥맛도 변한듯 하다고... 뭐, 아무래도 좋다. 서울을 벗어나 마음 통하는이와 마주앉아 썰을 풀 수 있는 방석이 깔린 곳이라면... 



술을 마시지 못하는 체가 미안했는지 같이 일하는 스탭에게 연락을 하여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오기전에 설명을 들은바대로 너그러운 마음씨를 소유한 꽤 재미 있는 분이 틀림없는 듯하다.  오자마자 동동주 한잔을 걸치고는 진보신당 얘기를 하면서 걸쭉한 입담을 풀기 시작, 그리고는 다시 남은 경주 유적지를 안내해 주겠다고 하여 따라 나섰다. 밤이라 제대로 다 볼수는 없었지만, 안압지는 화려한 조명 빛으로 치장을 해 놓으니 입이 벌어질 지경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제잘거림으로 우리의 대화에 지장을 받기는 했지만 뭐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한 궁궐속을 거니는 한가로움은 유적을 만들기 위해 피땀 쏟은 이들의 노고를 가늠할 겨를도 없이 그저 행복감만 느꼈다.  역시나 나는 유유자적 먹고 마시고 노니는것만 해결되면 아무런 고민도 없는 단순한 사람임이 탄로난 것이다..ㅎㅎ

 

황홀한 시간을 뒤로 하고 마지막으로 소주 한잔 걸칠곳을 찾다가 체가 집으로 초대를 하는 바람에 그리로 갔다. 맛있는 회를 사가지고서...같이 온 스탭, 체의 아내, 체, 그리고 나는 마치 엊그제 만난 사람들인냥 전혀 낯설지 않은 분위기를 하고선 하나씩 하나씩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촛불집회는 당연한 안주거리가 되었고, 그 외에도 각자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나 문제를 격의 없이 풀기 시작했다. 서로가 언제 봤다고 이렇게 허물없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입담들이 쏟아지고 또 진지하게 듣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도 여지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그저 야속 하기만 했고...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아쉬운 자리를 접어야만 했던게 못내 속이 쓰리기만 했다..

 

술을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잠이 부족했는지 비몽사몽으로 일어난 아침, 체의 아내는 정성스럽게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아침까지 얻어 먹고 체는 출근을 했다. 출근 시간이 늦은 체의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희연의 담임으로부터.. 모든게 순조롭기만을 바랬던게 잘못인걸까?  전화는 안좋은 내용이다. 희연이가 엊저녁부터 열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헉!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가? 여기는 경주인데...아빠는 근무중이고...담임도 나름대로 걱정이 되었고, 부모에게 알리는게 최선이라는 판단에서 전화를 한거겠지만 나는 화가 났다. 확실하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거면 전화는 뭐하러 하는건지? 수련회간 아이가 아프면 해열제를 먹여보고 그래도 안나으면 병원으로 데리고 가면 되지...갑자기 사고가 난것도 아닌데 아프다고 부모에게 연락하면 부모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아이를 데리러 오라는것도 아니고...참내~ 순간, 계획했던 모든 일정이 틀어지고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기만하다.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무슨 휴가인가? 제길~!

 

담임은 상황을 더 보고 많이 아프면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다음일정에 대해서 갈등을 하고 편치 않은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우왕좌왕...그래도 애가 아프다는데 빨리 서울에 가서 대기라도 하고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하는 마음, 특별히 전화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일정대로 움직여? 하는 마음...수시로 아이한테 전화를 걸어서 상태를 확인하고는 심각하지 않은것 같다는 판단을 하면서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그러나 이미 마음은 서울! 상쾌하지 않은 기분! 이 기분으로 누굴 만난다고 편하겠으며 무엇을 한다고 즐거우리...그리하여 하루 일정을 접고 대충 남은 일정을 치루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집에오니 밤 12시 반, 문을 두드리니 남편은 화가 난 모양이다. 나는 뼈빠지게 일하는데 너는 나가서 놀다오냐? 이런 심보지... 그래도 그렇지 문을 안열어 주는건 넘하는거 아냐?  곤히 자는 옆집 사람들에게 피해줄까봐 서너번 두드리고는 반응이 없자 포기하고 나와 세워둔 차에서 잠을 청한다... 겨우 2박 3일의 휴가를 꿈꾼것 뿐인데, 그거 하나 제대로좀 즐기면 안되는건가?? 빌어먹을!!

 

* 사진 몇장..

 

 

 

 ▲ '도솔마을' 이라는 밥집에서 체와..(동동주를 나혼자 거의 다 마신 탓인지 얼굴이 빨갛다..ㅎ)

 

▲안압지에서 체와..

 

▲스탭이 찍은 안압지...저 화려한 불빛은 보기만 해도 황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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