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감옥에서 온 편지..

문 ㅇㅇ 받게!

 

고맙다. 전자서신은 잘 받았다. 소식지도 기다리고 있으마, 보내주렴.

내가 2001년에 노실사(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전신인 노숙인복지실무자협의회(노복협)을 시작할 당시에는 서울에만 100여개 정도의 시설(쉼터)에서 박봉의 급여로 생활하는 실무자들의 처지가 고되고 열악하여 실무자들끼리 무엇이든 해보자는 분위기에서 출발되었지. 당시에는 실무자들이 자신의 시설에서도 일을 했지만 밤 10시가 넘어서면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등으로 가 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찾아 나서서 자신들의 시설로, 혹은 약 1000여명 가량 생활하는 대형 시설인 '자유의 집'으로 입소를 유도하는 상담활동을 열심히 하러 다니던 시절이었지. 참 전투적으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하던 때였다.

 

나는 본시 대학시절부터(좀 더 따지면 고등학교 써클활동때부터) '민중'에 feel이 꽂혀 있던 사람이라 시설과 거리에서 만났던 다수의 허름하고 피폐한 상태의 노숙생활자를 보면서 애절한 연민의 감정으로 점점 동화되고 몰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실무자들의 모임쯤으로 시작하려 했던 조직을 노숙인을 위한 특정한 활동을 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을 시작하게 되었지. 시설에서 함께 잠을 자고, 밖에서는 함께 거리급식처를 이용하고, 술을 마시고, 박봉을 털어 개고기를 사주다 한달치 박봉이 몽땅 날아가고 사고치는 분들을 대신해 사과하러 다니다 뒷수습하기 바빴고, 그러다 사람들로부터 '노숙인'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 노숙인들을 악용하는 범죄조직을 추적하려했고, 철거현장에 동원되는 노숙인들을 확인하기 위해 며칠을 서울역에서 밤을 지새우고 사망 노숙인들의 시신을 가루를 대신해서 확인하는 몸과 마음이 가는대로 일을 하다보니 노실사를 창립하게 되었고 그 기반위에 현재의 홈리스행동(준)이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만은 가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의 30대를 보낸 생활이었는데(20대의 10년은 학생운동과 함께)어찌보면 나의 한쪽은 점점 허물어져 갔던것 같다. 활동, 운동의 귀결점은 결국 "나"인데, 즉 살기위해 운동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운동은 "나"로 출발해 "나"로 귀결되어야 하는데 "나"가 유실되는 바람에 모든 관계또한 엉망진창이 된듯하다. "인간해방"을 위한 운동의 귀결이 자신을 잃어버린, 자신조차 "나"조차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고민이 많이 들어 외롭고 쓸쓸하다. 어쩌다 엄병천(동자동사랑방대표)을 만나 의기 투합하여 쪽방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길을 택했는지 다소 의아스럽다만, 만만치 않을 것이다. 너도 느꼈겠지만 말이다. 쉽게 정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책임도 따르는 관계가 될것이니 항시 심사숙고 하길 바란다.

 

동자동사랑방이니 쪽방촌의 옛 복덕방처럼 친근한 공간으로 계속 거듭나길 바란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는 경제적 자립까지 함께 도모하는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길 바래본다. 이웃한 홈리스행동,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과도 연석회의같은 함께하는 틀도 만들어 보고, 노숙인 시설의 실무자들과도 어떠한 교류가 있었으면 한다. 물론 모든 활동의 근거지이자 중심은 동자동 쪽방촌 분들이겠지만.

 

이곳의 여름도 쪽방촌의 여름처럼 꽉막혀 무덥다. 쪽방의 작은방정도 크기에 여전히 6명이 생활하고 있다. 오는 8월31일이 딱 구속 100일차이고, 25일은 마지막 결심 공판이고, 9월 초쯤은 형량을 재판부가 선고하는 선고 공판이 될 듯하다. 그것으로 1심재판은 끝나는 것이지. 재판이 1주일 단위로 8월 한달동안 3번씩 열리는 매우 긴장되고 스트레스 받는 날들을 보냈다(재판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다음 문제는 또 생각해봐야 알겠지만. 항소를 할지 형을 확정받아 다른 지역의 교도소로 이감을 가게 될지..

 

사람들이 고맙다. 이렇게 편지로 면회로 온기를 전해줘서. 곤궁에 처하니 고마운 모습들이 확연히 보이는구나.  늦여름 무더위에 건강 유념하고 다음을 기약하자. 

2009년 8월 24일

 

* 이 친구는 노숙인과함께 하는 단체 활동을 하다가 생계유지를 위해 노점상을 했는데, 그게 또 노점상 단체로까지 옮겨져 활동을 하게 된 친구다. 구속된 이유는 전노련(전국노점상연합회) 활동을 하던중 노점상 단속에 항의 하다가 불가피하게 구속이 되었다. 그 전에도 몇번 집시법이나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나오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 집행유예 기간에 또 잡힌거라서 형이 확정될것 같다고...몇달에 걸친 수배생활 끝에 결국 구속되었다.  참 멋진 친구였는데, 안타까울 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