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 2011/12/18 14:15

최근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권리가 ‘지나치게 신장’되었다는 주장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여존남비’니 ‘보슬아치’ 따위의 단어들이 인터넷상에 차고 넘친다. 과연 그러한가? 남성의 노동과 여성의 노동은 같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가? 이 사회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남성의 그것과 동일하게 존중하고 있는가?

 

최근 우리 법률원에서 진행중인 직장내 성폭력사건을 한번 보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형 금융권회사의 이야기이다.

 

“회사주최의 산행 뒷풀이 자리에서 K가 신러브샷을 알려주겠다며 손가락을 걸고 술을 마신 뒤에 ‘안주야’라며 갑자기 입을 맞추었습니다. 순식간의 일이라 놀랐지만 그 사람이 윗상사인지라 그냥 웃으면서 분위기를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밖에도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친다든지, 다른 사람과 입맞춰 보라고 강요한다든지 등등의 여러 사례들이 있었다. 제일 상급자인 K가 그러니 다른 자들도 어느틈엔가 ‘자연스럽게’ 그런 행위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문화’처럼 여성들위에 군림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한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후배들도 지속적으로 그런 일들을 당했고, 그녀는 그런 후배들을 지켜주지 못하는게 미안해 눈물만 흘렸다.

 

가해자 K는 이렇게 얘기한다. “엄한 아버지, 허물없는 오라버니의 마음으로 힘든 격무를 참고 일해준 여직원들에게 친근감을 표시하고 감성터치를 한 부분이 외설적인 부분으로 치환되어 집중 부각된 것일 뿐입니다”. 친근감과 감성터치가 법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된 이유는 “그녀들 대부분 활달하고 개방적인 성격으로서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 보수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신체적 접촉이나 성적인 농담이 당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나중에 사이가 틀어져 성추행으로 문제삼은 것”이란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그녀는 노동조합의 간부이며, 리더쉽이 강하고 소위 대가 센 여자입니다”. 당시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일인데 사이가 틀어지자 대가 센 노동조합 간부가 성희롱으로 왜곡하고 있어 억울하다는 것이다.

 

신체적 접촉을 당하거나 하도록 요구받는 일이 계속되자 참다못한 누군가가 사내게시판에 익명으로 글을 올렸다. 회사는 감사에 착수했고 K는 징계를 받았다. K는 억울했다. 억울해서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며 피해 여성노동자들에게 전화를 하여 따졌다. 그녀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도 쫒아가 볼펜형 녹취기를 보란듯이 꺼내놓고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물론 부하직원인 그녀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한사람씩 따로 만나 “내가 널 이뻐해서 그런 것이니 너는 고소에서 빠져라”고 조언도 했다. 회사 게시판에도 “생을 마감할 각오도 되어 있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자들은 현행법에 따라 7년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수 있음을 친절히 안내했다. 심지어 조선시대 경국대전까지 인용해가며 옛날같았으면 곤장 100대에 처해질 중범죄임도 상기시켜줬다. 자신은 너무 억울하니까!

 

독일의 페미니스트 알리스 슈바르쳐는 자신의 책 ‘아주 작은 차이’에서 “남성들은 ‘아주 작은 차이’ 때문에 여성들이 그렇게 지독한 고통을 겪는 다는 것을 모른다”고 주장한다. 남성들은 ‘아주 작은 차이’일뿐이라고만 얘기하고 그 작은 차이가 빚어내는 엄청난 결과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K가 말하지 않고 있는 ‘엄청난 결과’에 대해 들어보자. “무서웠고 남들이 와서 볼에 뽀뽀를 할때 정말 기분이 더러웠다”, “저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것에 더럽고 창피하고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언제 나타나서 협박을 할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저는 임신한 상태로 이런 일까지 있게되어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고 태아에도 안좋고 요즘 자꾸 악몽도 꿉니다”. 피해 여성노동자들은 이런 엄청난 결과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양성평등의 문제에 대해 섣불리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차별과 성폭력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의 호소에 잠시라도 귀 기울여 보자. 그리고 그 목소리앞에 양심으로 대답해보자. 우리는 지금 평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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