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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0
    미디어법이 폭로한 부르주아 정치의 무능
    PP

미디어법이 폭로한 부르주아 정치의 무능

10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신문법에 대해 표결과정에서 대리투표 등으로 표결의 자유와 공정성이 현저히 저하되었다며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했다. 방송법에 대해 확정된 부결의사를 무시하고 재투표를 실시하여 가결을 선포한 것은 일사부재의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국회의장 등 피청구인의 위법사실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헌재는 권한 침해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결선포 행위의 무효 확인 청구를 6:3(신문법), 7:2(방송법)으로 기각하는 모순된 판결을 내놓았다.
지난 20년간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헌재에 길을 물었고 헌재는 그 기준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스스로의 존립 근거나 다름없는 절차적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함으로써 용도 폐기 시점 도래라는 냉혹한 평가에 직면했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은 신문의 방송 겸영, 자본의 미디어 시장 진입 규제 완화를 요점으로 한다. 헌재의 기각 판결이 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시급히 전체회의를 열어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을 도입하되 조중동의 진입을 보장했다. 지상파의 허가, 승인 유효기간이 3년인데 비해 종편은 5년으로 연장했고, 의무편성에서 규제 완화, 심의제재 불이행 특혜 등에다 조중동이 발행부수의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도 방송소유를 가능케 해놓았다. 지상파방송과 종합유선방송의 겸영 한도를 33%로 정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방송 소유가 가능하게 길을 열었다. 여기에다 황금채널 부여와 채널연번제 도입, 세금 감면의 정책 지원까지 이뤄지면 종편에 절대 유리한 미디어 경쟁체제가 형성될 전망이다.
한편 헌재 판결을 내용과 맥락으로 보면 법률 결정 절차상에 흠결이 있으니 국회가 다시 결정하라는 주문을 담고 있다. 입법부 스스로 입법 능력을 상실하여 헌재로 공을 넘겼는데 헌재 역시 희극적 판결만 남긴 채 다시 입법부로 공을 넘긴 셈이다. 국회가 어떤 형태로든 재논의를 한다면 7월22일 날치기 처리된 법안은 무효가 되는 셈인데, 문제는 헌재 판결 한 달이 다 되도록 국회가 재논의에 부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노조 등 언론당사자들이 국회 재논의를 촉구하는 크고 작은 실천을 벌였지만 눈도 꿈적 않는 실정이다.
법적 대응도 검토됐다. 국회의장이 미디어법 재논의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헌재 결정 취지를 위반하는 ‘부작위(不作爲)’에 해당하므로 재논의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야당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해 다시 권한쟁의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헌재가 기각한 미디어법의 내용에 대한 위헌 심판 청구도 제기된다. 지역구 유권자(투표자)들이 정치적 기본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도 거론된다. 국회는 헌법 및 방통위설치법에 근거해 최시중 위원장 및 방통위원의 탄핵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 나서서 소송을 한들 시효 만료된 헌재가 권위 있는 심판을 내려줄 리 만무하다.
조중동의 방송 겸영과 자본의 미디어 소유를 가능케 하는 미디어법. 그러나 종편을 위해 마련된 시장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미디어산업의 선진화, 일자리 창출과 같은 미디어법 개정 취지도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 방통위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고도 종편 사업자 선정에 박차를 가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종편을 위한 시장이 존재하지 않음에 기인한다. 이런 미디어법을 놓고 부르주아정당과 시민사회는 사회적 합의에 실패했고, 국회는 입법에 실패했으며, 헌재는 판결에 실패했다. 지난 1년간 미디어법을 둘러싼 공방이 폭로한 현실 정치의 단면이라 하겠는데, 노동자 민중은 단지 침묵과 무관심으로 응대할 따름이다.
 

유영주(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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