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솔직히 두렵다

이 글은 지금 나의 심경을 솔직히  적는 글이자 (김디온 블로거의 표현처럼) 일종의 '마음의 준비'를 위한 글이다.

 

나는 다음주 화요일, 9월 12일로 예정되어 있는 평택 대추리 빈집철거를 저지하기 위해 내일(모레가 될지 모르겠다) 대추리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결심을 위해서 많은 망설임과 주저함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나를 망설이게 하고 주저하게 만든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연행 후 구속될 확률은 낮기 때문에 연행되는 것은 그렇게 두렵지 않지만, 경찰의 폭력은 두렵다. 경찰의 날 선 방패에 찍혀 얼굴이 찢어져나가거나 코뼈가 내려앉거나, 실명이 될까봐 두렵다. 머리를 가격당해서 뇌에 손상을 입을까도 두렵다.

 

나는 올해 중반까지 회사에 다녔기때문에 상반기의 치열했던 평택싸움에 함께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면회를 다니며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5월 4일 대추분교가 무너지던 날, 인터넷을 통해서 사진을 보며, 영상을 보며, 한겨레21 기사를 보는 마음은 여러 다양한 생각들을 동시에 들게 만든다. 피범벅이 되어 부축받고 나오는 사람의 사진을 보며, 새까만 경찰들과 대추분교 2층 창문에 매달려 있는 시위대를 보며, 무너지는 대추분교를 보며 나는 아래와 같은 생각들이 들었다.

 

국가(경찰)폭력에 대한 공포

국가(경찰)폭력에 대한 분노

내가 지금 그곳에 있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내가 지금 그곳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

바로 위의 생각이 드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 멸시

그곳에 있는 친구들에 대한 걱정

 

위와 같은 생각들은 나를 괴롭혔다.

 

 

 

말하기 쪽팔리는 경험들로부터 나는 두려움으로 인해 그 상황을 피하게 되면 당장은 위기를 모면하게 되지만, 위기가 사라진 그 직후부터 내 스스로가 나에게 가하는 "넌 겁쟁이~" 라는 목소리와 계속되는 자학이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체에 대한 상처와 고통은 순간적이지만(비가역적 부상이 되지 않기를...), 내가 나에게 가하는 심리적인 자학은 훨씬 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고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5월에는 회사를 다니기때문에 시간이 안된다는 물리적인 조건이 자학적 목소리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어느정도 방어막 역할을 하였지만, 지금은 그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어떠한 방어막도 없다. 정말 들어가 힘을 보태고 싶지만, 재판이 진행 중이라든가 다른 시급한 일정이 있어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 어쩔 수 없는 조건이 현재 없는 것이다. 즉, 이번에 안들어가면 내 내면의 자학적 목소리에 완전히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막상 들어가서 경찰폭력과 맞딱뜨렸을때 의연하게 대처할 자신은 없지만, 그럴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그 순간 나 스스로의 기준에 만족하지 못할 행동을 하게 된다면 또다시 두고두고 스스로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한 결심이 바람직한지 모르겠다.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것일까? 모르겠다. 어쨋든 한번뿐인 인생, 두려움으로부터 계속 도망만 다니며 살고 싶진 않다.

 

나는 지금까지 대추리에 두번 가봤다. 작년 7월 처음 가봤고, 올해 5월 두번째로 갔다. 처음갔을때는 대추분교에서 집회를 했고, 두번째 갔을때는 대추분교는 없었다. 처음 갔을때는 들녘에 농작물들이 있었고, 두번째 같을때는 들녘에 철조망과 해자가 있었다. 두번 모두 주민들은 일상도 평화도 빼앗기고 없었다. 이제는 집을 빼앗아 가려 하고 있다. 

 

내일 혹은 모레 들어가게 되면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집을 꼭 지켰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싸움은 지고 집은 흘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권할 것이냐? 3회에 쓰러질 것이냐? 7회까지 버틸 것이냐? 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은 이어지는 싸움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결심과 행동이 평화와 생존권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냉동실의 고고학

설겆이 양을 줄이기위해 반찬통으로만 식사를 하다 어느순간, 밥그릇과 수저를 장식용으로 용도변경하고 보온밥솥 앞에 앉아 김으로 밥솥안의 밥을 싸서 먹는 나를 거울안에서 보고 퍼뜩 '한강에 산다는 괴물이 우리집에와서 나의 밥통을 유린하고 있구나!'하고 느끼다가 정신을 차리고, 거울에 비친 reflection을 한번 더 보고 나의 인생을 찬찬히 reflction해보는 요즘이다.

 

by the way,

 

이렇게 밥이나 물 먹을때 마다 열었다 닫았다하는 아랫칸 냉장실 문과는 달리, 냉동실은 신비와 베일에 싸여 있는 곳이다.

 

 

오늘은 그 냉동실을 탐험해보았다. 냉장실보다 이삼십촉 낮은 으스스한 조명아래 검은봉다리와 흰봉다리 등이 우거져 있는 이곳의 탐험을 시작할때만 해도 이것이 그토록 길고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여행이 될줄은 몰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몇주전 집에서 택배로 도착한 흰색 위생봉다리에 들어있는 마른멸치들, 멸치들을 응시하자 멸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추워~ 빨리 따뜻한 후라이팬 위에서 간장과 물엿을 입고 뒹굴고 싶어~!!"라고 아우성을 쳤다. "기다려라 이놈들아, 지금은 김으로 충분하단 말이닷!"이라며 일갈하긴 했지만, 어머니는 어쩌자고 날 믿고 저렇게 많은 마른 멸치를 보내주셨을까?

 

멸치들의 아우성을 뒤로 하고  조심스럽게 신생대로 진입했다. 그 뒤를 봤더니 역시 흰 봉다리안에 수줍게 몸을 뒤틀고 있는 쑥떡. 아~ 지난 봄에 고향에 갔다가 기차에서 먹으라고 싸주신 저 쑥떡이 왜 이 음침한 곳에서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이냐~! 살포시 꺼내서 보온밥통에 넣어주었다.

 

쑥떡을 빼는 순간 불쑥 모서리를 내미는 붉은색과 초록색의 비닐봉지. 아~ 이것은 고.향.만.두. 중학교때야 비로소 냉동만두의 맛을 깨우친 나는 '복권에 걸리면 그돈으로 고향만두와 통통만두를 반씩 번갈아가며 하나씩 먹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내가 반가운 마음으로 응시했을때 주둥이가 튿어진 봉지안에는 3개의 만두가 사이좋게 고스톱을 치며 아름다운 욕설을 주고받고 있었다. '곧, 라면에게 광을 팔수 있게 해주마'라고 생각하고 싱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갑자기 나타는 미숫가루, 고등어, 고추가루, 쇠고기 조각들을 뒤로하고 점점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내 키의 몇배가 되는 고사리를 헤치며 중생대로 올라가던 나는 큼지막한 검은색 봉다리를 발견했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아~ 냉동실 문을 오래 열고 있어서 추워진거구나....... --;'

 

조심조심 검은봉다리의 매듭을 풀다가 신경질이 나서 찢었다. 그 안에는 다시 흰색 위생봉다리안에 들어있는 정체가 모호한 우유빛깔 고체덩어리.. (참.. 냉동실에는 액체가 없지.) 무엇일까? 한참 관찰하다가 그것이 작년에 어머님이 들고 오신 곰국이라는 것을 알았다. 곰국이 표준어인가? 어쨋든 내 고향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곰이 많이 사는 고향을 가졌구나'라고 생각하는 당신!! yellow card!! '고향이 북극인가?' 당신은 red card!!

아~ 안먹고 있었구나.. 매일 국없이 밥을 먹으며 메이는 목을 보리차로 달랬던 시절들이 한스러웠다. 오늘 저녁에는 어머님의 사랑을 느끼며 원기를 회복해야지~

 

냉동실의 뒷부분을 향해 나아가는동안 나의 탐험은 백악기를 거쳐 익룡이 새우깡 받아먹는 쥬라기를 지나서 이제 고생대까지 이르고 말았다.

 

나는 삼엽충에게 길을 물으며 떨리는 가슴으로 고생대로 들어섰다.

이것이 무엇인가? 1년 반전 사랑니를 빼고 난 흔적..

<발치후 주의사항>이라는 제목아래

-솜이나 가제는 물고 1신간 뒤 빼십시오.

-침이나 피는 뱉지 마시고 삼키십시오.

..... 등의 안내가 쓰여진 '순천향대학교병원치과'라고 오롯이 찍혀 있는 얼음주머니 화석이 나를 맞이했다. 친절한 치과의사가 친절하게 입 부위만 뚫린 흰천을 얼굴에 덮고 친절하게 어금니 안쪽 사랑니를  가로 한번, 세로 한번 해서 4조각으로 아작내고 친절하게 하나씩 태풍이 전봇대 뽑듯이 이빨 조각들을 뽑아내던 기억이 좌뇌의 기억장치에 불량섹터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탐험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고대의 생물들의 위협이 너무 거셌다...기 보다는 손이 너무 시러웠다.

 

나의 냉동실의 선캄브리아대에는 무엇이 있을까? 두렵고도 설렌다 헤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경찰 방패에 대한 짧은 고찰

경찰의 방패에 찍혀 또 한명의 사람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백과사전에서는 "싸움의 방어물로서 세계적으로 사용된 무구이다"라고 하고 있고, 국어사전에서는 "전쟁때에 적의 칼, 창, 화살따위를 막는 데에 쓰던 무기"라며 "날아오는 화살을 방패로 막았다"를 예문으로 취하고 있다.

 

네이버 사전의 설명과 지난 겨울 명을 달리하신 두분의 농민과 지금 병상에서 뇌사 판정을 받은 한분의 노동자를 동시에 떠올려 우리의 건전한 상식으로 서로 대입해보고, 꿰맞쳐보면 "방어물로 쓰이는 도구에 공격당해 여러사람이 죽었고, 죽고있다"라는 혼란스러운 모순에 직면하게된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일까?  몇몇 사진들이 우리에게 진실로 다가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67748822?Redirect=Log&logNo=26629995

 

사진의 아랫부분 도로에 검은 고무들이 보인다. 이것들은 애초에 알루미늄 재질의 경찰 방패의 테두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시위대와의 충돌을 앞둔 경찰들은 시위대에 좀 더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자 인위적으로 고무를 떼어내었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67748822?Redirect=Log&logNo=26629995

 

고무를 떼어내면 위의 사진처럼 된다. 여기에 속도가 실릴때 이것은 칼이 된다.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이와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책상에 책이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세워두는 철제 책꽂이이다. 이 철제책꽂이의 날이 선 부분으로 옆사람의 머리나 얼굴부분을 있는 힘껏 내리쳐보자. 중요한 것은 있는 힘껏 내리쳐야 한다.

 

왜냐면, 운동에너지는 운동하는 (물체의 질량)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일단, 방패는 책꽂이보다 훨씬 무겁다. 또한 속도는 20대초반의 건장한  청년의 근력으로부터 나오는 속도와 비슷해지기 위해서는 힘껏 당신의 최고 힘껏 내리쳐야 한다.  그나마 책꽂이는 아스팔트에 갈거나 해서 날카롭게 만들지나 않지. 위의 사진을 보면 은색으로 아스팔트에 갈려 있는 부분이 보인다. (실제로 옆사람을 내려치면 안된다!! 상상만 해보시라!!)

자 이제 "칼"이라는 어휘가 부끄럽지 않은 방패가 되었는가? 


사진출처: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자, 방패라고 불리우고, 한때나마 그 이름에맞게 쓰였으나, 이제는 "칼"이라고 불러도 좋은 저 물건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진이 여기 있다. 얼굴과 머리부분을 겨누고 있다. 얼굴과 머리는 눈, 코, 입, 치아가 있고, 뇌가 있다.  뇌는 생명과 깊숙히 연관되어 있다. 두분의 농민도, 지금의 노동자도 다 머리다!!

 

이쯤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잠깐 살펴보자.

 

========================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0조의2 (경찰장구의 사용<개정 1999.5.24>) ①경찰관은 현행범인인 경우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범인의 체포·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내에서 경찰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 <개정 1991.3.8, 1999.5.24>


②제1항의 "경찰장구"라 함은 경찰관이 휴대하여 범인검거와 범죄진압등 직무수행에 사용하는 수갑·포승·경찰봉·방패등을 말한다.<신설 1999.5.24>

========================

'합법보장, 불법필벌'을 외치는 경찰과 정부가 아주 합법적이게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내에서 사람을 죽이고"있는 것이다.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죽인다. 우리는 이것을 살인이라고 부르고 형법 250조는 사람을 죽인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하고 있다. 옷 벗는 것이나 직위해제가 아니라 5년이란 말이다.


사진출처: 쒸퐉! 연합뉴스

 

경찰은 올해 안으로 우레탄 소재의 위사진의 방패로 진압방패를 교체한다고 한다. 사울산업대 우흥룡교수팀이 개발했다는 저 방패. 안으로 12도 가량 꺽어져 있다는 저 방패가 어떨지는 모르겠다. 위의 칼보다야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방패의 재질을 개선하는 것도 분명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듯 하다. 경착의 진압방식. 시위대에게 방패인지 칼인지를 휘두르는 진압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거리에서 노동자를 농민들을 빈민들을, 힘없는 약자들을 또 떠나보내야하지 않을까? 혹은 내가 떠나거나?

 

방패의 미친 춤을 이제는 잠재워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포스코를 점거한 노동자와 그들을 바라보는 노동자

포스코에서 플랜트를 건설하는 노동자들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해 포스코와의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포스코는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기때문에 교섭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정부는 경찰력을 투입하여 이들을 진압할 수순을 밟고 있다. 강제진압이 집행될 경우, 많은 부상자들이 속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고 독자들이 단 댓글을 읽어보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댓글을 단 사람들 중 대부분이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일텐데(인구의 대부분은 노동자이니)그들의 답글은 건설노조에 대한 적대감으로 살벌하기 그지없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성숙함에따라 자본의 집중과 독점화를 "자본가가 자본가를 잡아먹는 시대"라고 표현했다지만, 그 댓글을 보면 "노동자가 노동자를 잡아먹는" 형국이다. 포스코본사 점거에 대해서 가장 먼저 포스코본사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KTX승무원의 파업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 취직했으면서 공사입사를 그저 먹으려 한다"는 악담은 노동자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다. 그들이 공사를 가고싶은데 못가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노동자인 친구들과 가끔 이야기를 하다보면 일관적인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인 그들이 사장의 입장에서 회사를 걱정하고, 다른 노동자의 행동을 본다"는 것이다. 계급간 적대가 아닌, 계급안에서 노동자들에 적대적인 노동자들 이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그는 무엇일까? 어떻게 그들은 노동자 단결을 위한 자본과 노동의 계급구조를 직시할 수 있을 것인가?

포스코를 점거하게 만든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라는 것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일텐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노동자의 절반을 이미 넘어선지 오래인데.. 지금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내일 나에게 그런 상황이 닥쳐오지 말란 보장이 없을텐데...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 외면하는 것일까?

철도공사를 상대로 지금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KTX승무원은 "예전에는 노동운동하고 파업하는 사람들 정말 다 나쁜사람이고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그들의 편에서 생각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색안경만 끼고 봤다"고 말했다고 한다.


#포스코를 점거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는 보수신문과 악의적 댓글의 내용과 반박.

1. 돈 많이 받는 놈들이 지랄한다.
-그들의 평균 임금은 월 180만원이다. 어떻게 보면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많이 받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그들보다 적게 받고 있다면, 당신이 그들보다 더 많이 착취당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싸우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이 더 열심히 싸워서 당신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2. 네놈들 때문에 경제가 다 망한다.
-비정규직이 날로 확산되고 있는 요즘, 각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한 몫은 고스란히 기업들의 회계장부에 남아있다. 그리고, 경제는 그런식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다. 20세기초 대공황이 어떻게 초래됐는지 간단하게만 살펴보라. 사실, 이문제에 대한 정말 간단명료한 답은 네이버에서 본 댓글로 대신한다. "그렇게 해서 포항경제 망하면 울산의 경제는 20년 전에 망했다."

3.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도 좋지만, 합법파업이 아닌 그렇게까지 남들에게 피해주면서 해야 하느냐?
-그렇다. 남에게 피해주면서 해야한다. 왜냐면, 건설산업의 계단식 하청,재하청 구조는 합법파업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만들고 있으며, 실질적인 사용자인 포스코와 교섭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것이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다. 교통이 좀 정체되는 것은 감수할 수 있지 않는가?

4. 쇠파이프 등 무기들로 전경을 그렇게 폭행해도 되느냐?
-이 부분은 노동자들을 무턱대고 옹호하기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경찰의 폭력성을 눈감을 수 없다. 이미 포스코본사에서 노동자 한명이 경찰의 방패에 찍혀 뇌출혈을 일으켜 중태인 상태이다. 올해초에는 두명의 농민이 방패에 찍혀 죽었다. 올해 오월 평택의 대추초등학교는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시위대의 폭력이 먼저인지, 경찰의 폭력이 먼저인지... 엄밀하게 말해서 어느 한쪽만을 탓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공권력은 더욱 더 신중하게 집행되어야 하며, 시위현장에서 언제나 공권력이 더 강자이고, 시위대가 더 치명적이고 많은 부상을 당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