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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들-1
  3. 2006/08/02
    냉동실의 고고학(1)
    돼지들-1

새해 첫 꿈

2007년 새해 꿈을 꿨다.

 

평소에 워낙 희한한 꿈을 많이 꾸지만,  몇분안에 잊어버리곤 한다.

 

오늘은 급하게 한번 적어 보았다. 아침에 적었던 것을 밤에 읽어보니 재밌어서 블로그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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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 달린 숙박집


생돼지고기를 냉장고에 넣다가 손이 모자라 입에 두 조각을 넣었었다


냉장고에 피가 조금 고였다.


쟁반에 담아 넣어야 하는데, 생각하며 쟁반을 가지러 갔다. 어떤 놈이 혜영에게 돌려줄 쟁반을 미리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양철된 쟁반을 찾아서 가야만 했다. 그 녀석은 내게 반말을 했기 때문에 나도 반말을 해야지 생각했다.


거기는 전쟁 혹은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실수로 아드로핀 주사를 내 심장에 찔러넣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정신이 점점 몽롱해져 갔다. 걱정되는 것은 아드로핀 주사는 피하지방에 맞는 건데 심장에 놓았으니 걱정이 되었다. 나는 의무병을 부르기 위해 sos를 부탁했지만, 누군가 그냥 무시해버렸다.


어떻게든 의무병이 왔다.


의무병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이가 절벽을 구겨서 나에게 길을 만들어 줬다.


절벽에서 아드로핀을 맞기 직전 봉황을 봤다. 황금빛 털과 남색, 보라색 털을 가진 새였다.


내가 군인 신분으로 있는 곳은 식당을 함께하는 하숙집 같은 곳이었고, 나는 항상 그곳에서 저녁무렵에는 돼지고기를 냉장고에 넣는 일을 해야 했다. 그곳에는 한 4-5세 정도 되는 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곳 모두는 그녀를 아꼈으며, 그녀에게는 친한 친구인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그곳은 병들이 아닌 하사관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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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두렵다

이 글은 지금 나의 심경을 솔직히  적는 글이자 (김디온 블로거의 표현처럼) 일종의 '마음의 준비'를 위한 글이다.

 

나는 다음주 화요일, 9월 12일로 예정되어 있는 평택 대추리 빈집철거를 저지하기 위해 내일(모레가 될지 모르겠다) 대추리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결심을 위해서 많은 망설임과 주저함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나를 망설이게 하고 주저하게 만든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연행 후 구속될 확률은 낮기 때문에 연행되는 것은 그렇게 두렵지 않지만, 경찰의 폭력은 두렵다. 경찰의 날 선 방패에 찍혀 얼굴이 찢어져나가거나 코뼈가 내려앉거나, 실명이 될까봐 두렵다. 머리를 가격당해서 뇌에 손상을 입을까도 두렵다.

 

나는 올해 중반까지 회사에 다녔기때문에 상반기의 치열했던 평택싸움에 함께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면회를 다니며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5월 4일 대추분교가 무너지던 날, 인터넷을 통해서 사진을 보며, 영상을 보며, 한겨레21 기사를 보는 마음은 여러 다양한 생각들을 동시에 들게 만든다. 피범벅이 되어 부축받고 나오는 사람의 사진을 보며, 새까만 경찰들과 대추분교 2층 창문에 매달려 있는 시위대를 보며, 무너지는 대추분교를 보며 나는 아래와 같은 생각들이 들었다.

 

국가(경찰)폭력에 대한 공포

국가(경찰)폭력에 대한 분노

내가 지금 그곳에 있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내가 지금 그곳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

바로 위의 생각이 드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 멸시

그곳에 있는 친구들에 대한 걱정

 

위와 같은 생각들은 나를 괴롭혔다.

 

 

 

말하기 쪽팔리는 경험들로부터 나는 두려움으로 인해 그 상황을 피하게 되면 당장은 위기를 모면하게 되지만, 위기가 사라진 그 직후부터 내 스스로가 나에게 가하는 "넌 겁쟁이~" 라는 목소리와 계속되는 자학이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체에 대한 상처와 고통은 순간적이지만(비가역적 부상이 되지 않기를...), 내가 나에게 가하는 심리적인 자학은 훨씬 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고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5월에는 회사를 다니기때문에 시간이 안된다는 물리적인 조건이 자학적 목소리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어느정도 방어막 역할을 하였지만, 지금은 그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어떠한 방어막도 없다. 정말 들어가 힘을 보태고 싶지만, 재판이 진행 중이라든가 다른 시급한 일정이 있어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 어쩔 수 없는 조건이 현재 없는 것이다. 즉, 이번에 안들어가면 내 내면의 자학적 목소리에 완전히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막상 들어가서 경찰폭력과 맞딱뜨렸을때 의연하게 대처할 자신은 없지만, 그럴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그 순간 나 스스로의 기준에 만족하지 못할 행동을 하게 된다면 또다시 두고두고 스스로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한 결심이 바람직한지 모르겠다.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것일까? 모르겠다. 어쨋든 한번뿐인 인생, 두려움으로부터 계속 도망만 다니며 살고 싶진 않다.

 

나는 지금까지 대추리에 두번 가봤다. 작년 7월 처음 가봤고, 올해 5월 두번째로 갔다. 처음갔을때는 대추분교에서 집회를 했고, 두번째 갔을때는 대추분교는 없었다. 처음 갔을때는 들녘에 농작물들이 있었고, 두번째 같을때는 들녘에 철조망과 해자가 있었다. 두번 모두 주민들은 일상도 평화도 빼앗기고 없었다. 이제는 집을 빼앗아 가려 하고 있다. 

 

내일 혹은 모레 들어가게 되면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집을 꼭 지켰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싸움은 지고 집은 흘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권할 것이냐? 3회에 쓰러질 것이냐? 7회까지 버틸 것이냐? 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은 이어지는 싸움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결심과 행동이 평화와 생존권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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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의 고고학

설겆이 양을 줄이기위해 반찬통으로만 식사를 하다 어느순간, 밥그릇과 수저를 장식용으로 용도변경하고 보온밥솥 앞에 앉아 김으로 밥솥안의 밥을 싸서 먹는 나를 거울안에서 보고 퍼뜩 '한강에 산다는 괴물이 우리집에와서 나의 밥통을 유린하고 있구나!'하고 느끼다가 정신을 차리고, 거울에 비친 reflection을 한번 더 보고 나의 인생을 찬찬히 reflction해보는 요즘이다.

 

by the way,

 

이렇게 밥이나 물 먹을때 마다 열었다 닫았다하는 아랫칸 냉장실 문과는 달리, 냉동실은 신비와 베일에 싸여 있는 곳이다.

 

 

오늘은 그 냉동실을 탐험해보았다. 냉장실보다 이삼십촉 낮은 으스스한 조명아래 검은봉다리와 흰봉다리 등이 우거져 있는 이곳의 탐험을 시작할때만 해도 이것이 그토록 길고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여행이 될줄은 몰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몇주전 집에서 택배로 도착한 흰색 위생봉다리에 들어있는 마른멸치들, 멸치들을 응시하자 멸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추워~ 빨리 따뜻한 후라이팬 위에서 간장과 물엿을 입고 뒹굴고 싶어~!!"라고 아우성을 쳤다. "기다려라 이놈들아, 지금은 김으로 충분하단 말이닷!"이라며 일갈하긴 했지만, 어머니는 어쩌자고 날 믿고 저렇게 많은 마른 멸치를 보내주셨을까?

 

멸치들의 아우성을 뒤로 하고  조심스럽게 신생대로 진입했다. 그 뒤를 봤더니 역시 흰 봉다리안에 수줍게 몸을 뒤틀고 있는 쑥떡. 아~ 지난 봄에 고향에 갔다가 기차에서 먹으라고 싸주신 저 쑥떡이 왜 이 음침한 곳에서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이냐~! 살포시 꺼내서 보온밥통에 넣어주었다.

 

쑥떡을 빼는 순간 불쑥 모서리를 내미는 붉은색과 초록색의 비닐봉지. 아~ 이것은 고.향.만.두. 중학교때야 비로소 냉동만두의 맛을 깨우친 나는 '복권에 걸리면 그돈으로 고향만두와 통통만두를 반씩 번갈아가며 하나씩 먹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내가 반가운 마음으로 응시했을때 주둥이가 튿어진 봉지안에는 3개의 만두가 사이좋게 고스톱을 치며 아름다운 욕설을 주고받고 있었다. '곧, 라면에게 광을 팔수 있게 해주마'라고 생각하고 싱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갑자기 나타는 미숫가루, 고등어, 고추가루, 쇠고기 조각들을 뒤로하고 점점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내 키의 몇배가 되는 고사리를 헤치며 중생대로 올라가던 나는 큼지막한 검은색 봉다리를 발견했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아~ 냉동실 문을 오래 열고 있어서 추워진거구나....... --;'

 

조심조심 검은봉다리의 매듭을 풀다가 신경질이 나서 찢었다. 그 안에는 다시 흰색 위생봉다리안에 들어있는 정체가 모호한 우유빛깔 고체덩어리.. (참.. 냉동실에는 액체가 없지.) 무엇일까? 한참 관찰하다가 그것이 작년에 어머님이 들고 오신 곰국이라는 것을 알았다. 곰국이 표준어인가? 어쨋든 내 고향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곰이 많이 사는 고향을 가졌구나'라고 생각하는 당신!! yellow card!! '고향이 북극인가?' 당신은 red card!!

아~ 안먹고 있었구나.. 매일 국없이 밥을 먹으며 메이는 목을 보리차로 달랬던 시절들이 한스러웠다. 오늘 저녁에는 어머님의 사랑을 느끼며 원기를 회복해야지~

 

냉동실의 뒷부분을 향해 나아가는동안 나의 탐험은 백악기를 거쳐 익룡이 새우깡 받아먹는 쥬라기를 지나서 이제 고생대까지 이르고 말았다.

 

나는 삼엽충에게 길을 물으며 떨리는 가슴으로 고생대로 들어섰다.

이것이 무엇인가? 1년 반전 사랑니를 빼고 난 흔적..

<발치후 주의사항>이라는 제목아래

-솜이나 가제는 물고 1신간 뒤 빼십시오.

-침이나 피는 뱉지 마시고 삼키십시오.

..... 등의 안내가 쓰여진 '순천향대학교병원치과'라고 오롯이 찍혀 있는 얼음주머니 화석이 나를 맞이했다. 친절한 치과의사가 친절하게 입 부위만 뚫린 흰천을 얼굴에 덮고 친절하게 어금니 안쪽 사랑니를  가로 한번, 세로 한번 해서 4조각으로 아작내고 친절하게 하나씩 태풍이 전봇대 뽑듯이 이빨 조각들을 뽑아내던 기억이 좌뇌의 기억장치에 불량섹터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탐험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고대의 생물들의 위협이 너무 거셌다...기 보다는 손이 너무 시러웠다.

 

나의 냉동실의 선캄브리아대에는 무엇이 있을까? 두렵고도 설렌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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