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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메스 미디어] WBC ‘광풍’에 언론이 춤출 때 언론 자유 수준은 땅바닥으로…

WBC ‘광풍’에 언론이 춤출 때 언론 자유 수준은 땅바닥으로…

지상파 3사가 WBC 중계 및 관련 뉴스에 전력투구하는 동안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이 구속됐다. 국민이 WBC 성적에 환호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언론 탄압국 혹은 인권 후진국으로 후퇴했다.

[81호] 2009년 03월 27일 (금) 22:09:51

이광석



3월26일 이명박 대통령(앞)이 제2회 WBC에서 준우승한 야구대표팀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경기가 끝났다. 3월은 이렇게 야구 경기와 응원으로 지나갔다.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애국주의의 온갖 미사여구에 피로감이 밀려온다. 게임은 이미 끝났는데, 다음 날 방송에도 야구 관전평은 계속된다. 스포츠 광풍은 그렇게 ‘세계 랭킹 2위’로 등극한 우리의 야구 순위에 대한 자화자찬의 장으로 돌변했다. 일본에 이겼다면 더 대단했겠다 싶다. 태극기 휘날리며 ‘위대한 도전’의 승리를 자축하느라 온 나라가 들썩였으리라. 

주최국인 미국은 무척 조용하다. 4강전에 졌기 때문일까? 그리 생각하면 참 순진하다. 이들의 공중파 방송은 WBC를 아예 중계하지 않았다. ESPN 같은 케이블 방송 스포츠 채널에서 이를 독점 중계했는데, 프로농구와 미식축구 경기에 밀려 관심을 끌지 못했다. WBC가 무언지, 그런 대회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미국인이 더 많다. 우리가 스포츠 쇼비니즘에 휘둘려 산다면, 미국인은 프로 농구·야구·미식축구팀에서 거액을 받는 선수들의 시즌 경기를 보며 산다. 국가 대항전을 통한 애국심은 그 다음이다. 나라를 위해 죽기 살기로 야구를 하는 헌신성이란, 이들에게 낯설다. 너무나 상업주의 논리에 충실해, 맹목의 애국주의가 끼어들 틈새가 적다.  

우리 지상파 3사는 모두 WBC 중계에 전력투구했다. 여느 때처럼 재방송, 간추린 방송, 케이블 방송, 스포츠 뉴스 정리까지, 틀기만 하면 WBC 소식이었다. 한술 더 떠, 한 나라의 프라임 시간대 9시 뉴스 절반 이상이 야구 경기 소식이었다. SBS 뉴스는 ‘일본 침몰’과 ‘봉중근 의사’를 연호했다. 보도 프로그램이 나서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한다. 결승전을 지켜본 이명박 대통령은 “목표를 국가에 두고 열심히 뛴 우리 야구선수들”을 치하했다. 우리의 운동은 지금도 애국주의의 힘으로 버텨야 한다. 국가는 한국 대표팀 구단주가 되고 싶어 하고, 방송 3사는 스포츠 채널로 전락한다. 촛불 이후 사라진 군중은, 슬프게도 텔레비전 주위에 모였다.

‘비상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시대


한 국과 베네수엘라 4강전을 치르던 휴일에 YTN 노조 간부들이 업무방해 혐의로 잡혀갔다. YTN 노동조합의 파업을 하루 앞둔 날에 일어난 일이고, 체포 사유는 사장 출근 저지와 사장실 점거 혐의라 한다. 영장 기각으로 현덕수 전 YTN 노조위원장과 기자 2명은 석방됐지만, 일본과 결승전을 하던 날 노종면 현 YTN 노조위원장이 구속됐다. 지금까지 경찰 수사와 출두 요구에 곱게 따르던 이를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잡아 가뒀다. 1999년 방송법 파업 투쟁 후 1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언론인 구속이다. 미국조차 관심 없는 WBC 순위에 온 나라가 열광하는 사이 대한민국 언론 자유의 수준은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 정도가 WBC 경기가 있어서 행복했다 한다. 그만큼 행복의 근거가 없는 척박한 세상을 산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행복의 순간에, 국경 없는 기자단과 국제 앰네스티로부터 언론 자유 탄압국 혹은 인권 후진국으로 지목되는 ‘영광’ 또한 누렸다.

2월 말쯤 지난 1년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에 토론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현 정부의 성격 규정과 관련해 이를 ‘민간 파시즘’으로 봐야 한다는 당시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의 발제에, 필자는 이와 같은 명명에 신중론을 폈다. 종종 폭력성을 드러내지만, 그래도 과거 군부정권과는 다른 세련된 통치 논리가 있다고 믿었던 터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내가 정세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YTN 소식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3월25일 밤에는 MBC 의 이춘근 PD도 수사관 10여 명에 의해 끌려갔다. 비상식의 끝이 보이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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