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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 2> 연분홍치마,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독립 다큐의 길을 걷다

사이방가르드 ( Cyvangarde)  _ 2012. 05.

 

 


연분홍치마,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독립 다큐의 길을 걷다

By 이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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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가장 크게 작동했던 순간은 내 30대 유학 시절인 듯 싶다. 미국 땅을 처음 밟아 내 석사 지도교수로 삼았던 이가 게이였다. 그는 한겨울 어둠 속 독일의 한 마을에서 내게 가슴 속 얘기를 꺼냈다. 상아탑내 성적 ‘핍박’을 피해서 샌프란시스코와 같이 문화적으로 개방된 곳으로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고. 그러다 얼마되지 않아 차선책으로 그는 예술을 하던 동거남과 함께 토론토로 떠났다. 텍사스의 마초 문화로부터 ‘팽’ 당해 떠나는 그를 지켜보면서, 곧 난 정반대의 인간을 만났다. 내 석사 지도 교수를 밀어낸 학과의 권력자인 바로 그 여성 교수의 밑으로 박사 지도를 받기 위해 들어갔다. 그녀는 학과내 권력을 배경으로 같은 과 트렌스 여성(MTF; 남성에서 여성으로)에게 대놓고 성적 모욕을 끼친 혐의로 신문에 오르내리기까지 했다. 미국의 학계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그들을 뒤로 하고, 난 학위 후 이역만리 호주로 향했다. 그곳 첫 직장에서 나를 반겨줬던 이도 우연인지 영국 캠브리지 출신의 게이 교수였다. 사실상 십여년을 이국에서 ‘에일리언’이자 유색인종으로 살아가는 내게 게이 스승들은 사회 속 마이너로 살아가는 법을 내게 가르쳤다.


40대에 접어들어 국내에 들어와 살다보니 이 모든 것을 잊고 살았다. 더구나 토양이 바뀌고 정치가 하류이니 관심이 자연 세상 정치에만 쏠리던 차였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아끼는 한 후배의 물음으로 30대에 저 멀리 잊었던 망각이 이 땅에서 꼬리를 물며 되살아났다. 일상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녀는 내게 연분홍치마라는 여성주의자들이 제작한 <종로의 기적>(2010, 연출 이혁상)이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난 그녀의 말에 순발력이랍시고, MB 시장 시절 청계천 복계공사의 허실을 들추는 정도의 이야기 아니냐고 되물었다. 아뿔싸, 이 무슨 무지의 소치란 말인가! 게이의 고향,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서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들이 펼치는 4명의 이야기를, 나는 관성에 이끌려 되는대로 답했으니 이 얼마나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정치의 과잉에 물들고 찌든 이의 표본적 모습이던가. 주류정치의 익숙함에 열정은 온데간데 없고 소수자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무지만 켜켜이 쌓이던 내 모습을 후배에게 처절하게 들켜버렸다. 결국 그 후배의 인도를 받아 난 말로만 듣던 ‘연분홍치마’를 만나러 직접 나서게 된다.
 

 

연분홍치마의 초기 활동

연분홍치마는 2001년 몇 번의 사전 모임들을 갖다가 2003년 정식 발족한다. 제각기 영화학, 미디어학, 사회학 등 서로 다른 공부를 했던 김일란, 홍지유, 한영희, 이혁상, 김성희 다섯명의 여성주의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뭉쳤다. 이들은 처음부터 ‘성적 소수 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출발해, 스스로 성소수자를 위한 문화운동 활동가들의 모임으로 입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연분홍치마는 일상 속 젠더 이분법에 갇힌 현실 속 차별의 지점들을 걷어내려고 사회내 성적 감수성을 바꾸어나가는 문화 활동을 꾸준히 펼쳐나갔다. 처음에는 성적 소수자들의 삶을 알리고 일상적 차별과 억압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을 주로 관련 현장 실태 조사를 중심으로 수행했다. 곧이어 이들은 연분홍치마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쟁점을 드러내고 대중의 성적 감수성을 끌어올리고 이에 대한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한 방법으로 다큐멘터리 매체와 장르적 장점을 발견한다.   

연분홍치마는 일단 경기도 평택 기지촌 여성과 함께 하며, 다큐멘터리 제작을 처음 시작한다. 기지촌에서 일하는 혼혈 여성에 대한 실태조사를 병행하며 이뤘던 이들의 첫번째 다큐 프로젝트인 셈이다. 2년여 작업을 통해 연분홍치마는 <마마상>(2005, 김일란, 조혜영 연출)이란 작품을 내놓았다. ‘마마상’은 포주와 성매매 여성들을 연결하는 중간 포주격의 업소 ‘언니’들이자 ‘아줌마’들로 불린다. 연분홍치마는 마마상이란 성매매 노동자의 기생 계급이자 노화로 퇴물이 된 마마상들의 모습에서 기지촌 성매매 메커니즘을 밀착해 살핀다. 하지만, 다큐 연출자들은 단순히 마마상을 성매매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가해자로만 단순화하지 않는다. 그들 성매매 기생 집단 또한 성매매 구조의 피해자임을 보여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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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어설프게 시작했던 이 첫 다큐 작업을 통해 내부 구성원들은 다큐 제작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문화활동가로서의 그들의 운동에 대한 열정과 다르게, 다큐 제작 현실에서 오는 아마추어리즘의 문제나 제작 기술과 기법에 대한 차이나 체득 정도는 반복과 학습을 통해 얻어져야 하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이같은 제작 능력을 서로 엇비슷 끌어올리는 방도를 이들은 이 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한다. 연분홍치마는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다큐 학습과 제작 실습의 시기를 보낸다. 이른바 ‘미디어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자체 다큐 제작 교육을 실시하고, 이주여성과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을 미디어운동의 차원에서 시작한다. 이주여성과 장애여성 스스로가 그들의 사는 모습을 찍고 담는 미디어 교육을 장려하면서, 연분홍치마는 나름 사회적 소수자 운동의 변경을 넓히면서도 그들 내부의 다큐 제작 역량을 튼실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았다.               

 

워크숍으로 다져진 내공으로 첫 작품 후 3년 만에 그들 <3xFTM>(2008, 김일란 연출)이란 두 번째 프로젝트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 작품은 다큐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들만의 고민이 처음으로 짙게 배어 있다. 이전까지 없었던 다큐 관객에 대한 고민, 독립 다큐 운동과의 연계성 속에서 배태된 그들 작품에 대한 성찰, 그리고 수년간의 워크숍에서 축적된 다큐 기술적 역량의 표출 등이 어우러진, 처음으로 프로 의식을 담은 작품이었다. 김일란 감독의 <3xFTM>은 제목처럼 세 명의 ‘FTM’(female to male) 트렌스젠더들의 일상과 삶을 담아내고 있다. 다큐의 주인공들은 영화 속에서 FTM 이전과 이후에 단순히 하나의 감성으로 묶어 세우기 어려운 각각 서로 다른 젠더감각의 결을 드러내고 그들만의 독특한 일상과 욕망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감독의 영화는 성적 소수자들, 특히 트렌스젠더들 속 삶의 가치와 욕망에도 서로 다른 결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에 이르면, 우리가 평소에 기댄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성적 정체성 구도라는 것이 얼마나 박약한 인식에 근거했던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연분홍치마의 다큐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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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트렌스젠더를 다룬 <3xFTM>을 기점으로 연분홍치마의 성원들은 매년 1편의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다큐 영화들을 제작했다. 대표적인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 다큐 3부작으로 꼽는, <3x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이하 레정기)>(2009, 한영희, 홍지유 연출), <종로의 기적>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레정기>는 한국 최초 커밍아웃 국회의원 후보 레즈비언 최현숙의 선거운동본부에 함께 참여하면서 남긴 기록을 다큐 영화화한 것이다. <레정기>는 한국사회 진보진영을 표상하는 가장 유연하고 급진적인 ‘진보신당’조차 그녀의 성적 정체성에 맞딱뜨리면 기성의 정치 세력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조직 생리를 보여준다는 점을 뼈아프게 지적한다. 정치 1번지 종로 지역에서 최후보 선거본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6%의 득표로 관성과 현실의 벽에 좌초하고 말지만, 시종일관 영화의 톤은 유쾌하고 발랄하다. 영화는 단순히 담론정치의 수준이 아닌 최초의 성소수자 정치가 어떻게 조직될 수 있는지를 추적해 보여주고, 기존의 전통적인 노동운동 등 진보 진영과 연합하는 레즈비언 정치가와 이들 선거본의 모습에서 수치상에서 보여준 좌절이 아닌 새로운 문화정치적 희망 가능성을 독해해낸다.

 

트렌스젠더와 레즈비언의 스토리는, 필자를 대오각성하도록 유도했던 게이들의 삶을 다룬 <종로의 기적>에서 완성된다. 성적 억압의 도시풍광 후미진 한 껸, 동성애자들에게 종로 낙원동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진짜 ‘낙원’이기도 하다. 이혁상 감독은, 이곳을 배경으로 네 명 게이남성들의 삶을 경쾌하고 발랄하게 추적한다. 이 영화에서 네 명의 소수자들의 일상을 통해 관객은, 성적 소수자란 사회의 낙오자나 비정상인이 아닌 누구보다 사회와 현장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삶을 적극적으로 꾸려가고 그 사회 체제를 구성하는 적극적 주체라는 자명한 사실에 또 한번 눈을 뜬다. 연분홍치마의 이렇듯 단 다섯명의 구성원은 단 3년동안 매년 서로 다른 정체성을 점유하는 성적 소수자들의 다양한 커밍아웃 스토리를 필름 안에 미친 듯 담아냈다.

 

다큐 영화를 촬영하면서 이들 연분홍치마의 다큐 감독들이자 성원들은, 다큐 작품의 출연자들과 함께 매번 프로젝트를 함께 완성해 간다는 운동적 차원의 철학을 함께 공유하고자 했다고 회고한다. 연분홍치마 다큐의 시작과 엔딩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연분홍치마 프로젝트 O번’이란 번호는 성원들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이들의 다큐가 영화의 형식이자 또한 문화 운동이란 점을 매번 강조하고 있다. 예서 운동이란 전체 독립 다큐 진영의 차원에서 이들이 만드는 다큐의 정치적 역할론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연분홍치마를 두고 보면 성적 소수자를 위한 많은 문화 정치 중 하나로 이들이 다큐를 사유한다는 점일 게다. 상황이 그러다보니 이들은 출연자들을 단순히 배우로 취급하기 보다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고동락의 동지들로 보려고 했고, 이에 출연자들이 그만큼 호응하지 않을 때 실망감 또한 배로 다가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도 그들의 과욕임을 쉽게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같은 지점을 사유하여 공동의 기획에 참여했으나 각각 역할의 차이를 서로 인정한 까닭이다.
    

 

<두개의 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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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순택, 2009

 

출연자에 대한 과도한 동지감이나 기대치를 접고 나면, 연분홍치마의 강점은 명확해진다. 먼저 사회 참여와 다큐 제작을 긴밀히 연결해 문화 운동의 활력과 시너지 효과를 얻는데서 찾을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연분홍치마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현장 실태조사, 현실 사회운동단체들과의 사안 공조, 관련된 다큐 제작 프로젝트 작업을 함께 잘 연계한다. 여느 독립 다큐 제작자들의 제작 동기나 과정과는 사실상 차이가 크다. 즉 개인적 착상이나 작업에 의해 구성되는 일반적인 다큐 제작과 달리, 연분홍치마는 철저히 다큐 제작을 문화운동가나 활동가적 틀에서 사고하고 연계한다. 그러다보니 철저한 현장 조사와 시민 단체들과의 연대에 기반하여 다큐를 제작한다는 특색이 있다. <마마상>의 기지촌 ‘반성매매팀’의 혼혈 성매매 노동자 실태 현장조사에서부터 내려온 이러한 전통은 이후 성전환자 실태조사, 한국 최초 커밍아웃 국회의원 후보 레즈비언 최현숙 선거운동본부의 캠페인 참여, 용산참사 대책 범대위 활동 참여와 법정 녹취작업 등에서 잘 이어져 내려온 바다.

 

현장-운동-다큐 제작의 3박자에 기반한 연분홍치마의 활동은 최근 <두개의 문>(2011, 김일란, 홍지유 연출)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두개의 문>은 오직 용산 참사 이후 이뤄진 법정공방 녹음과 녹취, 법원에 제출되어 변호사들에게 입수된 경찰들의 채증 동영상, 그리고 사자후 등 1인게릴라 미디어에 의해 기록된 동영상만을 가지고 재구성한 작품이다. 사건 이후 국면의 촬영을 통해 거슬러 상황을 추적하는 전통적 다큐의 방식과 달리 오직 사건 현장을 알리는 증거 자료들만을 콜라주 형식으로 주도면밀하게 분석해 당시의 상황을 해석하여 보여준 수작으로 꼽힌다. 이는 사실상 연분홍치마의 용산참사 범대위 활동 참여, 즉 관련 시민단체와의 긴밀한 연계와 활동이 없이는 자료 접근 등 내용 구성면에서 온전한 다큐 작품이 만들어질 수 없음을 뜻한다.

 

연분홍치마가 커밍아웃 3부작 이후에 <두개의 문>을 제작하면서, 기간에 그들이 관심을 가졌던 성 소수자 쟁점에서 빈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권력 엘리트들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들추어내는데로 작품 초점이 확장되거나 이동한 것이 아니냐는 관객의 추측을 낳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시기적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이끌었고, 본연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을 알리고 드러내는 작업이라 확신해 말한다. 그래서인지 <두개의 문>에서도 난 그들의 여성주의 문화운동의 감수성을 감지한다. 이 영화에서 특이하게 김일란과 홍지유 감독은 권력의 수족이 되어 진압에 앞장서야했던 일선의 ‘경찰특공대’를 유달리 주목한다. 용산 철거현장에서 참혹하게 타죽었거나 감옥에 갇힌 남일당 망루의 당시 철거민들과 비슷하게 권력 엘리트들에게 농락당한 힘없는 이들로 진압 경찰을 함께 묘사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실제 ‘마마상’과 ‘경찰특공대’는 쉽게 외양만 보면 권력과 억압을 위해 복무하는 굴종의 존재로 비춰진다. 허나 연분홍치마는 단순 이분법의 사회 논리구도의 허상을 거둬내고 이들을 사회적 약자의 일부로 감싸 안으려 한다. 대신에 두 감독은 실제 참사를 일으킨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그리고 그 대립의 각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지를 좀 더 치밀하게 계산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오히려 망루 아래 놓인 두 개의 문 중 어디로 가야 할지 사전 정보도 없었던 경찰특공대의 모습에서, 그리고 성급한 폭력 앞에서 잿더미가 되버린 철거민들의 시신에서 우리는 권력 앞에 무력하게 표류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연분홍치마는 내년이면 얼추 10년 세월의 무게를 쌓는다. <노라노>(2013, 연출 김성희)를 끝으로 일단 이들은 활동의 시즌 첫 시기를 정리하려 한다. 이 다큐는 국내 1세대 패션디자이너로 주름을 잡던 노라노란 여성을 통해 본 패션의 대중문화사쯤 된다고 한다. 이것이 마무리되면 연분홍치마는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기 위해 재충전의 시기를 가질 것이다. 미술을 통한 사회 치유 프로그램이 주목받는 것처럼, 이들은 이후 미디어워크숍을 통해 새로운 사회 치유의 방도를 고민하겠다 한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 연분홍치마가 쉬어가는 동안, 이제까지의 성적 소재주의(성매매여성,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게이 등)에 기댄 ‘커밍아웃’ 스토리에서 벗어나 그들간 내적 차이나 결들을 드러내는 깊이있는 다큐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하나 더. 좀 더 자본 권력의 맥락 안에서 섹슈얼리티의 퇴화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비판적 다큐 작업들을 후속작에서 담아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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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1> 부산 똥다리 청년 구헌주, 스프레이로 변경을 혁革하다

 부산 똥다리 청년 구헌주, 스프레이로 변경을 혁革하다

By 이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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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용산참사의 정부 해결 노력의 실패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스텐실 그라피티다. (사진: 구헌주, 작품명: <네이버 검색 - 용산참사>, 2009년, 부산대학교 대학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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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출발을 큐레이터 김준기로 잡고 시작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당시 그가 외장하드에 가득 담아 와 마치 봇짐장수처럼 흥이 나 내게 보여줬던 한 부산 청년의 매력적인 그라피티 작업들이 출발이다. 내가 김씨와 처음 대면하던 날, 그는 참여와 현장 예술의 유효성을 재확인하는 인상 깊은 글을 발표했다. 내가 보는 그는 ‘386세대’의 정치적 피를 꽤 많이 수혈받은 예술계 인사다. 정말 참여와 현장 예술의 지킴이같던 그가 갑자기 그의 외장하드에서 부산 ‘똥다리’ (진짜 지리적으로도 언더그라운드한) 청년 구헌주(일명 Kay2) 작가의 작품들을 모니터 앞으로 불러냈다. 그것도 그의 리얼리즘 원칙과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라피티라니!     
 

평소 도시미화 담당 구청직원들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던 초등학생 아들놈의 강박적인 그라피티 작업에 노심초사하던 차에, 김씨가 눈여겨보는 그라피티 청년 작가가 있다하니 눈과 귀가 크게 떠지고 솔깃했다. 그날 한순간에 난 구헌주의 팬이 됐다. 그의 작품들에서 난 뱅크시의 유쾌함과 (김씨와 필자가 그토록 연연하며 강박적으로 붙잡고 있는) 나지막히 깔린 리얼리즘 예술의 미학적 톤과 힘을 봤다. 둘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구헌주는 영국의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Banksy)를 스승처럼 여긴다. 아마도 그가 뱅크시를 좋아하는 이유란, 뱅크시의 유쾌하나 진중한 현실 참여적 작품 방식과 스타일일 것이다. 알려진대로 뱅크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익명으로 활동하면서 주로 영국 황실과 경찰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웃음과, 들쥐라는 상징을 통해 저항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뱅크시는 자본에 포획당하는 예술을 봐왔기에 그라피티가 예술가가 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 봤다. 정규 예술 교육이나 돈이 없어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민주적 장르로 그는 그라피티를 꼽는다. 권력의 이미지로 가득한 거리 곳곳을 대중의 캔퍼스로 바꾸는 일은,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요 누구든 페인트나 스프레이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탈리아어, ‘sgraffio’는 긁힘(scratch)이란 뜻이고 그라피티(graffiti)가 게서 왔으니, 결국 ‘벽낙서’란 애들부터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 예술 창작 방식임이 확실하다. 구헌주가 미대를 다니며 미술학원 강사로 연명하는 직업적 일상 속에서 그라피티라는 색다른 유쾌한 탈주를 감행한 이유와 맞닿아 있다.       

 

‘똥다리’ 청년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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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구헌주, 작품명: <역도선수 장미란>, 2008년, 장소:광주비엔날레 때 광주 대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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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으로부터 도리질 당하지 않으면 언제나 은밀하고 내밀하게 속삭이며 권력자를 놀려먹을 수 있는 가장 유쾌하고 통쾌한 말길이 벽낙서다. 그래서인지 익명의 그라피티 작업들은 대도시 거리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 압구정 일대로 가면 마치 흑인들의 힙합 문화에서 ‘강성’(hardcore)의 언더그라운드적 취향이 탈색돼 국내에 수입된 듯한 느낌을 풍기는 벽낙서와 종종 마주친다. 예술인들이 칩거하는 문래동이나 홍대 주변으로 가면 좀 더 전시용으로 다듬어진 듯 하고 뭔가 작품으로 정리된 듯한 냄새를 풍기는 벽낙서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잘 정리된 도시 경관을 조롱하여 배설한 노상방뇨나 영역표시의 벽낙서들과 강제로 조우하며 불편해하곤 한다.
구헌주는 이에 비해 소탈하다. 서울도 아니요 부산 장전동역과 온천장역 고가 전철길이 지나는 온천천, 혹은 ‘똥다리’라 불리는 곳이 그의 주무대다. 외진 곳이다. 그의 작업은 동네 골목길 시멘트 담장, 지하철 교각, 실개천길, 굴다리, 방제벽, 셔터문, 건널목 길바닥, 지하철 역 표지판, 안전 막대, 하수구, 옥탑방 벽 등을 활용해 이뤄진다. 그라피티의 즉흥성과 스타일을 살리기 위한 역할로써 정말 ‘찌질한’ 곳들이 그의 캔버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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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구헌주는, 이 작품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처한 불안하고 우울한 현실을 자신의 초상과 함께 그려낸다. (사진: 구헌주, 작품명: <청년의 초상>, 2006년, 부산대학교 지하철역 아래 온천천, 일명 똥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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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헌주의 그라피티 작업은 세련되지도 않다. 그러나, 젊은 청년의 작품들에는 유쾌하고 소박하며 따뜻함이 있다. 정치와 사회를 얘기할 때조차 그의 벽낙서에는 떠올릴 미소가 있다. 숨박꼭질하는 달동네 어린아이들, 하수구에 앉아 환하게 웃는 소녀, 입안에 가득히 바람을 넣어 비누방울을 허공으로 올리는 아이들, 구멍가게 셔터를 들어올리는 역도선수 장미란의 모습 에는 순진한 민초들의 모습이 녹아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의 4대강사업, 용산참사, 촛불시위를 기억하는 그만의 방식에서도 분노보다는 재기와 쾌활함이 압도한다. 종종 다른 그라피티를 통해 보이는 조루할 운명의 강렬한 반역의 메시지보다는 그에겐 섬세한 돌봄의 미학을 본다. 흔히들 그라피티의 장르와 기법은 마치 레슬링 선수가 상대의 달려드는 가속을 이용해 자신의 몸 위로 그 덩치를 던져 넘기듯, 번뜻하게 차려진 권력의 상징물에 끝마무리로 저항을 각인한다고 말한다. 구헌주의 특별한 리얼리즘은 레슬링의 전술이 아니다. 순박과 천진함의 인간적 본성에 소구하는 미학의 정공법을 택한다. 예를 들어, 그가 최근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공투쟁에 힘을 보태고자 했던 일을 보자. 역시나 자본과 권력에 대한 분노를 스프레이로 담아 표현하는 일보다 그는 희망 풍선을 들고 현장을 지키던 노동자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그 풍선을 기쁘게 나눠주고 하늘로 날려보내고 왔다.      
 

그래서일까? 한 번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려는 스텐실 그라피티가 그에겐 많지 않다. 손쉽게 찍어낼 수 있는 스텐실의 복제 가능성과 그 강렬한 이미지가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은 기본이다. 구헌주는 세밀하게 밀어넣는 붓질이 불가하고 혼색을 불허하는 스프레이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데 공을 들인다. 안료의 즉시적 착색 능력을 보장하는 스프레이 분사의 특수성을 익히면서 단일의 작품을 공들여 만드는데 더 큰 재미를 찾는 듯 보인다. 네이버 검색 ‘용산참사’ 관련 작업들을 제외하고 그가 스텐실 그라피티 작업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은 오리지널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집착과 그의 소재가 되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리라.
    

주류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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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GooHunJoo4.jpg,
(사진: 구헌주, 작품명: <군부독재 삭제명령>, 2007년, 장소: 부산 온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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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구헌주는 힙합이 좋아 열린 공간이 좋아 부산 똥다리 천변에서 우직하게 벽낙서를 천직으로 삼는다. 아직은 뱅씨의 국제적 명성에 비교하자면 그의 존재감은 비할 바가 아니다. 뱅크시야 이미 주류가 됐지만, 여전히 그라피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그렇듯 그는 그저 스프레이 캔에 방진 마스크 하나에 의지해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적의 환경이다.


뱅크시의 경우, 그의 작품집은 국내에 번역되어 ‘청소년 권장 우수 도서’로 금박이 찍혀 출간될 정도로 국제 스타다. 시각예술계에서 그는 이제 국제적으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유럽과 미술의 화랑들이 그의 작품 시장성에 주목할 정도로 그의 그림은 주류가 됐다. 시드니 중심지 키노쿠니아와 같은 일본 서점에는 그라피티 아트가 한 서가 전체를 차지하고 그 중심에서 뱅크시의 새로운 도록이 산처럼 쌓인 채 호객한다. 그라피티 예술은 이제 주변과 비주류의 오명을 벗어던져 내버린 것처럼 보인다. 뱅크시의 작품들처럼 2천년대 중반경부터 길거리 그라피티 작품들이 경매와 갤러리로 대거 흡수되면서, 대체로 외국의 파릇파릇한 신진 작가들의 저항과 개입 예술 정신은 많이 사그러드는 추세다. 일명 ‘게릴라 아트’(Guerilla Art)라고 불리는 영역은, 초창기 길거리 정신은 사라지고 갤러리와 경매를 위해 존재하는 박제화된 언더그라운드 그라피티 예술들을 호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많은 이들은, 거친 치외 법권의 골목에서 스프레이를 통해 사회, 정치적 저항을 드러내기 보단, 일반 예술계 평단으로부터의 인정투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사실상 전통적 시장 예술 영역을 위해 존재하는 일에 길거리 감각을 안주삼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겐 구헌주의 작업들이 이와 같은 박제화된 그라피티 작업들과 다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는 아이들과 평범한 이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찾고 살맛을 찾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한 그는 인디 예술계에서 이미 잔뼈가 굵다. 부산에서 인디문화 네트워크 단체 ‘재미난 복수’와 이를 통해 만들어진 복합대안 문화공간 ‘아지트 AGIT’ 생활이 그의 사회적 예술 경험을 확장하는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앞으로도 죽 그가 노는 판이 소박하면서도 재미났으면 좋겠다. 이 곳에서 상상력과 다양성을 가로막는 기득권에 대해 콧방귀 뀌어가며 즐겁게 놀며 살며 ‘복수’의 펀치를 날리는 일을 도모하는 한, 그는 오랫동안 우직하게 아름다운 저항을 여기저기 새겨나갈 것이다. 부산의 똥다리 아래가 심심해지면 그도 서울의 대안적 전시 기획공간들이나 동네 놀이터에 나들이할 날도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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