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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일: 불법/탈법/횡법의 예술, 그리고 저항의 미디어 <사이방가르드> |

* 이 글은 문화연구자 홍성일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불법/탈법/횡법의 예술, 그리고 저항의 미디어

<뻔뻔한 미디어 농장 쇼-‘사이방가르드’ 저자와의 대화>


문화연구자 홍성일의 별별 관찰기

http://blog.daum.net/hongsungil/163

 

 

지난 6월 8일 오후 여섯시. 홍대근처의 허름한 지하 클럽 <공중캠프>에서 이광석 박사의 따끈따끈한 새 책 <사이방가르드-개입의 예술, 저항의 미디어>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딱딱하고 짐짓 격식을 먼저 챙겨버리는 출판기념회라는 말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문 앞에 거대한 축하화환이 놓여 초대한 이들을 압도하는 것도 아니었고, 모인 이들 또한 티셔츠에 청바지와 같은 활동적인 복장이었다. 저자 이광석 박사 또한 예의 캐주얼한 차림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저자의 자리에 올라 글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사람들과 수평적으로 글을 나누고 공감하려는 것이었을까. 장소 또한 젊음과 자유의 거리 홍대 근처니 <출판기념회>보다는 <새 책 맞이> 혹은 <북 파티>란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문화연대가 주관한 이 행사의 공식 명칭 <뻔뻔한 미디어 농장 쇼-‘사이방가르드’ 저자와의 대화>라고 해두자.

 

<뻔뻔한 미디어 농장>은 지난 2009년 7월 초부터 시작해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집단 좌담회로 이번이 11번째다. <뻔뻔한 미디어 농장>(이하 <뻔뻔>)이란 말이 다소 튀는데, 재미있는(fun), 그러면서도 기존의 상식적 잣대에 ‘뻔뻔하게’ 물음표를 제기하는 행동주의를 표방한다. 11번째 <뻔뻔>의 주인공이었던 이광석 박사는 1회부터 참여하며 <뻔뻔>에 애정과 열정을 기울여온 터줏대감이다. <뻔뻔>과의 인연을 말하자면, 필자 또한 3차 모임에 토론자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주제는 <촛불, 용산 참사, 그리고 미디어 행동주의의 미래>로 용산참사가 있었던 남일당 건물 뒤 레아미술관에서 열렸다(레아미술관은 용산 참사의 희생자 고 이상림 씨가 운영하던 레아호프를 이후 행동가와 예술가들이 결집해 용산 참사에 대한 추모의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뜨거운 여름 오후, 냉방기 없이 땀을 흘리며 용산 참사와 그에 대한 예술인들의 개입, 사회적 실천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정작 토론 보다는 <뻔뻔>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 하루로 기억한다. 이처럼 뻔뻔은 개입주의, 행동주의를 표방하며 순발력 있게 문화적/시사적/예술적 국면에 반응하고 새로운 의제를 확산하려는데 노력하였다. 회고컨대, 지난 1년은 MB 시대 국가와 자본의 침탈로 황폐화된 문화/예술 공간과 시민사회를 복원하기 위한 동분서주였다. 멈춤 없이 지난 1년을 달려온 <뻔뻔>에 축하의 말을 전하고, 멈추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전개된 지난 1년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낀다.

 

주변적인 소개를 하다 보니 책 소개가 늦었다. <사이방가르드>는 ‘사이버’와 ‘아방가르드’를 한국식으로 조합한 말이다. 정보의 바다 사이버 세계에서 펼쳐지는 발랄하고도 창조적인 예술 전위들의 저항과 개입의 실천을 학문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강단에 갇히지 않을 생생한 어휘로 풀어내고 있다. 이 자리가 본격적인 서평의 자리는 아니고, 필자 또한 서평을 할 만큼의 내공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언을 한다면,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자칫 가질 수 있는 시간적/공간적/사고의 편협성을 개방시키고, 국적과 계급,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자유로운 접속과 연대를 고무하는 내용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거대 자본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거부와 저항에서부터 인간과 기계/이종생물체와의 융합에 이르기까지 책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다양하고 아방가르드적이다. 허나, 이러한 외양상의 다종다기는 “만국의 넷티즌들이여, 단결하되 분열하라.”로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공식적 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은밀한 일상생활에까지 퍼져있는 자본의 통제, 권력의 통제에 대해 단지 온라인에서의 상징적 저항뿐만 아니라,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어들며 실재적 저항을 꾀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책 속에 살아 숨 쉰다. 저자 가 유학중에 느꼈을 법한 산책자이자 부유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이 그의 비판의 날을 보다 날카롭게 갈아 놓았다.

 

홍대에서 열린 <새 책 맞이>는 이광석 박사가 책을 위해 수집한 예술/행동/작업/저항 이미지들의 슬라이드 쇼, 독립미디어 활동가 ‘해ㅋ’와 저자와의 대화, 초대가수 루피(Lupi)의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이 날의 모든 풍경을 다 소개할 수 없어 아쉽다. 무척이나 발랄하고 자유로우며 ‘불법/탈법/횡법’적이었다는 것만 언급한다. 아쉬운 것은 저자가 책을 내놓자마자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시금 오랫동안 한국을 떠난다는 점이다. 한국에 살기에는 정작 자신이 ‘뻔뻔’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을 해본다. 허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그의 새로운 작업과 함께 다시 만날 수 있음을 믿는다. 사이버의 세계에서 국경은 무의미할 것이다. 그럼에도 다음에는 보다 한국적인 사이방가르드를 기대한다. 치이고 채이거나, 광분하고 휩쓸리는 가운데 정작 한국 땅에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되돌아 볼 여유조차 없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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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우리 가족

판화로 지난 겨울 새겨본 우리 가족입니다. 새해에도 건강들하고 화목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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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문화정치]: 개요 & 목차

문화과학 게릴라북 [사이버문화정치](1998), 문화과학사 1. 서문 2. 21세기 문화정치 전략의 재구성 3. 최초의 정보 게릴라운동: 사빠띠스따의 네트전 4. 네트에서의 정치적 교육: 배드 서브젝츠 5. 디지털 미래의 도안가: 사이버펑크 작가들 6. 아나키스트의 적자들: 해커 전위대 7. 네트의 시민운동가들: 전자프런티어재단(EFF)과 그 구성원 8. 사이버 문화정치를 위하여 1. 개요 이 책은 20세기말에 다음 세기를 위한 디지털 문화정치 실험의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후기자본주의사회의 신흥자본가들, 즉 글로벌 지배권력의 강화에 맞서 새로운 대안 기획을 짤 것을 역설한다. 특히 저자는 기존 실천 운동가들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는 재정적 영세성, 소속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지역적 한계로 인한 실천운동의 국지성 등을 넘어서, 전자적으로 매개된 새로운 실천양식으로 이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이 책의 전체 내용은 크게 보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현실 실천집단들이 지닌 과거의 구매체 전략을 수정하여, 전자양식의 대안 매체적 실천의 모델을 재구성하고 있다. 즉 지배 혹은 대중매체에 대항한 미디어 운동영역의 실천 활동을 우회하여, 소규모의 전자 게릴라전을 펼칠 것을 제안한다. 지배의 약호를 교란하는 각 집단들의 해방적 디지털 약호들이 미시적 정치 투쟁의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고, 이 흩어진 해방의 약호들을 엮을 수 있는 힘은 네트를 통해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 새로운 형태의 탈중심화된 소통로가 새로운 정치 형성과 집단화를 위한 접합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현실 운동집단들의 역학에 달려 있다는 데 동의한다. 저자는 본문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사이버 문화정치의 실험 사례들을 통해, 이같은 전자 게릴라운동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우선 최초의 정보 게릴라운동인 사빠띠스따의 네트전. 이미 국내에서도 글로벌 자본에 대항한 실천의 전범으로서 다루어진 적이 있는 멕시코 농민운동그룹인 사빠띠스따를, 주로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활용과 관련하여 자세히 풀어나가고 있다. 두번째로, 버클리 대학의 대학원생들이 정치토론을 통해 만들어낸 배드 서브젝츠. 인터넷 웹상의 잡지, 즉 웹진으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배드 서브젝츠 실험을 분석함으로써, 지식인들이 전자공간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적절한 실천 지침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저자는 그 외 나머지 세 가지 사례를 그 발생적 수순에 따라 사이버펑크 작가들, 해커 전위대, 전자프런티어재단(EFF)과 그 구성원으로 나누고 있다. 이들 세 집단들의 관계는, 사이버펑크 작가군이 해커에게 미래사회의 전망에 대한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했고, 전자프런티어재단이 해커들의 억압사를 통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이버펑크 작가군의 평가와 관련하여, 이들 집단은 사회이론과의 연동을 통해 미래사회에 대한 사회적 예측이론으로서, 그리고 문화정치적 저항 실험의 이론적 토양으로서 기능했다고 본다. 한편 10대를 중심으로 한 해커들은 정보공유 정신에 있어서 그 진보적 측면을 인정할 수 있으나, 집단 구성원들의 특권적 지위, 예컨대 남성, 백인, 중산층, 고학벌 등을 고려해볼 때, 그들이 과연 미래 전사로서의 대항적 면모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스러워 한다. 문제는 그들을 개인적이고 사적인 해킹 행위자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닌, '사회적' 해킹 능력을 지닌 세력으로서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전자 시민단체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 집행위원들의 명망성으로 이름을 날리는 전자프런티어재단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보수정당들이 정보초고속도로 정책에 그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전자프런티어재단과의 동침을 모색했고, 결국 실패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이들 재단이 외치는 암호화, 표현의 자유 등의 주장이란 실제 시장에 기반한 최소 자유주의 원칙에 다름아니라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회적 자유주의의 논리를 일정 부분 정책에 현실화시키는 입안 능력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그 전술적 가치를 사고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각각의 정치 실험 단위들을 역사, 성격, 활동, 한계, 목표, 매체전술 등의 내용들로 구성해보고자 했다.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다섯 가지 저항 실험들을 운동 주체, 이론 기반, 적대 세력, 사회적 목표, 매체 전략의 다섯 가지 유형분석에 입각하여 평가하고, 새로운 사이버 문화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몇가지 화두로써 마무리를 짓고 있다. 마지막 결론에서 저자는 먼저 새로운 문화 실험의 사례들의 발굴 작업과 동시에 문화정치학의 새로운 정초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21세기 정치 지형속에서 문화의 집단적 표현 형식에 대한 새로운 징후를 테크노 문화정치 실험 속에서 읽어내어 이론화하는 것과 사이버문화의 집합적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바로 21세기 문화정치를 해킹하기 위한 화두이자 출발이라고 평가한다.// *디지털 사이방가르드 아트의 후속탄을 작업 중이다. 현실화가 될지 말지는 내 게으름이 끝나면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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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디지털 패러독스: 사이버공간의 정치경제학

*책의 원문을 잃었습니다. 우선 목차만 소개합니다. 출판사에다 알아봐야 하겠지만, 글이 수집이 되면 공개를 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저작권이 걸린 문제라 쉽진 않겠지만... [디지털 패러독스: 사이버공간의 정치경제학] (2000) 커뮤니케이션북스. 머리말 제1장. 디지털 미래의 명암 사이에서 제2장. 자본주의의 위기와 정보/공간화 1. 축적 위기와 정보화 1) 축적 위기의 구조 2) 축적 위기와 정보화 3) 축적 시스템의 유연적 전환 2. 흐름의 공간과 정보/공간화 1) 자본주의적 공간의 의미 2) 정보/공간화 3) 공간의 불균등 발전 제3장. 글로벌 자본의 사이버 지형 1. 사이버 지형의 조건들 2. 하이테크 공간의 위상학적 지형도 1) 단일체, 모나드, 노드:정보 도시 2) 지원 구조, 서버:테크노폴 3) 다리/고리들, 네트워크:인트라넷과 CALS 4) 추상 지도, 네트의 표준화:지구방화 3. 사이버 공간 통제의 추상적 지형 제4장. 정보 상품의 반미학 1. 정보 상품 분석의 유산 2. 정보 상품의 반미학적 얼굴 1) '아톰' 시대의 흔적들 2) '새로움'의 물신 3) 디지털 중독 4) 디지털 덫 5) 이종/혼종 교배 3. 정보 미학적 가치의 복원 제5장. 테크노 공간과 소비 문화 1. 일상 공간과 소비 문화 2. 소비 공간의 후기자본주의적 풍경 3. 테크노 소비 공간들 1) 결연한 하이테크의 시연장:엑스포 2) 과잉 생산의 집중된 탈출구:테마 공원 3) 전자 게릴라 공간들:전자 게임방 4. 테크노 소비 공간의 사적 변형 제6장. 네트의 신화와 현실 1. '생각의 속도', 그러나 신체의 경련 2. 디지털 계급의 인터넷 죽이기 3. 테크노 시대의 물신들 1) 사이보기즘(Cyborgism) 2) 구역사의 초월과 청산 3) 정치적 비/탈정치화 4) 디지털 환각 기술 5) '지구촌을 위한 솔루션™ 4. 영구적 '인간의 조건' 제7장. 전자 대안 매체론 1. 대안 매체는 아직도 유효한가 2. 구매체를 위한 '진혼곡' 3. 전자 대안 매체론의 기획 1) 분자운동의 역사 2) 리좀과 네트 3) 전자 저항의 아방가르드 4. 전자적 대안 모델 참고문헌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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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대학원신문: 인터뷰] 미디어운동으로의 정진

205호 [선배를 만나다]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94학번 이광석 미디어운동으로의 정진 미국 유학중인 이광석 선배와 인터뷰하기란 쉽지 않았다. 몇 번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전화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지난 금요일 오후 전화를 걸었다. 한시간정도 통화하면서 선배의 유학생활과 현재 관심사 및 여러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광석 선배는 신방과 대학원을 졸업, 99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현재 정보정책 전공으로 박사과정중이다. 우리학교 대학원 졸업이후 <사이버문화정치>와 <디지털 패러독스>라는 책을 내는 등 다양한 저술활동과 강의를 하며 지내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 처음에는 유학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어쩌다 오게 됐다며, 유학생활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해 초기에는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유학중에도 뉴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한겨레신문>에 매주 ‘디지털 사회’ 비평칼럼을 쓰기도 했고, 진보네트워크에서 매달 발간하는 정보운동잡지 <네트워커>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한창 글을 쓸 때는 일주일에 서너편을 쓸 때도 있었다며 요즘은 글쓰기보다는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네트워커> 편집위원 활동은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네트워커> 창간멤버이기는 하지만 편집위원 회의에는 한번도 못나갔다며 이름만 편집위원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꾸준히 네트워커에 글은 쓰고 있는데, 현재 선배가 맡고 있는 꼭지는 <사이방가르드 문화체험>이다. 사이방가르드는 선배가 붙인 개념으로 디지털 시대의 자유로운 실험 정신과 보다 넓은 사회적 차원의 시각으로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정신을 가진 예술가를 발굴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년 7월 창간부터 매월 꾸준히 발간되는 <네트워커>에 대해 선배는 미국에서도 정보운동만을 위해 발간되는 잡지는 없다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했다. 요즘 관심가지고 있는 연구 분야는 세 가지인데, 첫번째는 저작권문제에 대한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지적소유권에 대한 부분이라고 했다. 두번째는 공동체 대안운동으로 라디오, 인터넷 등을 활용한 지역공동체 운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셋째는 비판지리학인데, 이를 사이버 공간에 활용하여 정보에 대한 불평등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다양한 학문영역과 미디어를 접목하여 연구하는 선배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유학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선배는 미국은 실용학문 중심이고 비판학문이 약하다며 유학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했다. 학제간 연구를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학문의 깊이는 없어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충고했다. 미국에서도 유학생들에게 국내연구자들의 시각이 더 낫다고 말한다며 국내연구자들의 육성을 강조했다. 선배 역시 박사과정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사회와 직접 접촉하면서 연구활동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에 와서 미디어 연구집단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과 미디어 관련 지역공동체 운동을 하고 싶다는 선배의 이후 활약을 기대해 본다. (이현옥 편집위원 정리) [중앙대대학원신문 20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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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술 2001. 11 인터뷰

월간미술 2001. 11 Special Feature | 21세기 신지식학 21세기는 디지털 영상문화의 이미지로 가득찬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바야흐로 이미지가 새로운 미의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처럼 21세기 시각문화는 ‘(디지털) 미디어’의, 미디어에 의한, 미디어를 위하여 존재할 것만 같다. 뉴미디어 비평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디지털 미디어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광석 씨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 = 벅찬 희망을 안고 시작한 인류의 21세기는 ‘뉴욕 테러’와 그에 따른 또 다른 충돌로 인해 ‘불확실성’을 가득 품은 채 시작되었다. 21세기를 전망하기 전에 20세기를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당신은 지난 20세기를 어떻게 정리하는가? 또한 이를 바탕으로 당신이 기대하는 21세기는 무엇인가? 20세기는 과학기술에 기반한 ‘도구적 합리성’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 시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발전한 기술문명은 인류 미래에 대해 선인들이 꿈꾸던 상상력을 일정 부분 현실화했다. 하지만 합리주의적 인류의 성과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일궈 나갈 공공 논의의 실종은 대체로 과학기술문명의 방향을 권력과 초국적기업 등에 의해 철저히 ‘도구화’했다. 인류문명의 선택과 방향에 대한 결정권이 소수의 힘있는 일방에 집중될 때 마찰이 발생하고 파국을 불러온다. ‘뉴욕 테러’는 그 권력 집중의 부정적 효과다. 21세기는 20세기의 이런 도구적 합리성에 기댄 강력한 권력이 아래로부터 위협받는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다양한 주장을 지닌 다양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분출할 것이다. 다양한 가치를 담은 목소리가 겉으로는 혼돈의 불확실한 미래를 보여 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억눌린 다수의 주장이 힘을 폭넓게 발휘할 수 있는 ‘글로벌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기술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 네트워크 혁명은 20세기의 가장 큰 기술적 소득이며, 이런 작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는 확성장치로 기능할 것이다. = 인간은 그 지식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는다. ‘뉴미디어 시대’로 기억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주체)의 존재 의미를 채워줄 신지식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체적으로 ‘신지식’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지식간 경계 허물기’의 시대가 될 것임은 확실하다. 그것이 앞으로 ‘신지식’의 모습일 것이다. 근대성의 소산인 학제간 구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징후가 현재에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 현실 관찰이나 미래 예측은 좁은 학문의 틀로는 무리임이 입증되고 있다. 외부의 바람막이로 기능하는 배타적 전공의 기득권 속에서가 아니라, 학제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횡단하는 ‘유목하는(nomadic) 의식’의 다차원적 만남에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미래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 21세기는 아날로그의 시대를 지나 디지털 영상문화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평소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보인 당신은 디지털 영상문화 속의 ‘이미지’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디지털 영상은 ‘이미지’의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이 새로운 이미지의 주된 특징은 ‘변형’과 ‘잡종’에 있다. 있는 것의 끊임없는 재구성, 모르핑(morphing), 변화, 그리고 이들간의 새로운 잡종(hybrid)이 주를 이룰 것이다. 디지털 문화의 특성, 즉 빠르게 이동하고, 순식간에 변화하고, 복제되어 붙여지고, 새롭게 재구성되는 특성이 영상 이미지 속에 쉽게 전이될 것이다. ‘가벼운’빛의 이미지는 권력화한 ‘오리지널’과 고정 이미지에 대한 불신을 낳는 긍정적 측면도 지니지만, 존재하는 사실에 대한 의식적인 판단조차 흐릴 수 있는 위험성도 함께 갖고 있다. =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멀티미디어와 인터넷, 게임, CD롬과 DVD, 케이블·위성방송·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영상매체가 시각문화의 지형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영상문화의 진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라디오·TV·영화를 전공한 당신은 21세기 영상문화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시각 영상문화의 ‘진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매체의 출현과 영상 표현능력의 발전이 진정 ‘진보’일까? 그것이 시작에 불과하든 이미 한참 진행되었든, 중요한 것은 영상문화는 시대의 가치와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영상문화의 가치가 상업적 인센티브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에서 새로운 시각매체의 출현은 대중을 상업적 욕망에 확실히 길들이는 프로파간다로 떨어질 확률이 높다. 물론 영상문화의 발전은 표현수단과 능력의 다양성과 신장이라는 면에서 예술에 영향을 줄 것이다. 형식적 실험의 다양성을 불러오겠지만, 여전히 예술의 ‘내용’은 디지털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고유의 질적 문제다. = 최근 들어 영상문화를 논할 때 단지 디지털이라는 ‘매체’와 ‘기술’에 국한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즉 ‘무엇을’보여 주고, 이야기하느냐보다 ‘어떻게’보여 주느냐가 더 중시되고 있다. 디지털에 의한 21세기 영상문화가 담아내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는 그릇의 차이일 뿐이다. 담을 그릇의 차이가 내용물의 차이를 일부 유도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달리하지는 않는다. 매체와 기술이 중심이 되면 곤란하다는 사실에 적극 동의한다. 문제는 아날로그이건 디지털이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을 가장 적합한 그릇으로 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항상 ‘어떻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스타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21세기 영상문화가 표현방식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달라져야 할 내용은 없다고 본다. = 이미 예술을 바라보는 학문적 패러다임은 예술의 범위를 넘어 문학·철학·커뮤니케이션·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의 혜택을 입고 있다. 이러한 학문과 장르의 ‘크로스오버’시대에서 예술이 안고 있는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크로스오버’ 시대지만 여전히 예술은 수많은 타 학문과의 ‘해석’행위와 별도로 개인 ‘창작’을 예술가적 장인의 배타적 영역으로 남겨 두려 한다. 이 문제의 일부 해결은 수용과 해석 행위를 창작에 적극 개입시키는 방식일 것이다. 디지털이 지닌 창작 주체와 수용자 간의 인터랙티브한 속성으로 일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최근 디지털 예술가 중 수용자와 함께 최종 완성하는 퍼포먼스 실험 등은 관객을 전시공간에서 대상 작품을 수동적으로 해석하는 위치에 남겨 두지 않으려는 적극적 시도로 봐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당신의 관점에서 전공 분야 또는 시각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을 추천한다면?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비주얼 아트의 젊은 교수 레브 마노비치(Lev Manovich)가 쓴 《뉴미디어의 언어(The Language of New Media)》(MIT 2001)다. 우선 필자가 이론과 예술현장을 두루 경험한 인물이기에 뉴미디어를 말하는 데 있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둘째, 그의 책은 이론적 측면에서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미학적 관점과 해석의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셋째, 다루는 대상의 다양성이다. 영화이론·예술사·문학이론·컴퓨터공학 등의 학문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뉴미디어 해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현실 비판의식이다. 첨단기술의 찬사에 이끌리기 쉬운 위치에 있으면서도 뉴미디어 내면을 흐르는 권력의 신화를 하나하나 분석하여 폭로하는 비판적 관점을 잃지 않는다. (윤동희·기자 정리) 이광석 | 뉴미디어 비평가. 현재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라디오·텔레비전·영화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 칼럼(‘@디지털사회’)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사이버 문화정치》, 《디지털 패러독스-사이버공간의 정치경제학》이 있으며, 현재 칼럼집과 ‘디지털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책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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