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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디지털야만: 기술잉여, 빅데이터와 정보재난』 이광석 지음|한울|256쪽|23,000원
여전히 디지털 주체들에게 희망을 거는 까닭
이번 책에서 나는 한 사회의 통제능력 이상으로 기술과 정보가 비정상적으로 우리 사회에 착근되는 상황을‘기술잉여’란 개념을 갖고 풀어내려 했다.
나 는 오랫동안 해외생활을 전전하면서 바깥에서 디지털 한국을 보려는 특이한 학문적 습관이 존재해왔다. 이를테면 한국형 디지털 야만상태에 대한 이방인적 시선과 비판적 관찰이다. 디지털 자본주의적 질서 속에서 물질화되고 스펙터클화된 삶을 영위하면서 그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의 기술 욕망, 자본을 매개하는 기술과 정보의 과잉 현실, 그리고 독특하게 정치적 퇴행과 굴절로 각인된 정보·기술 퇴적물들 등이 내게 줄곧 포착됐다. 『디지털야만』은 대부분이 칭송해 마지않는 ‘디지털한국’을 타자의 시선으로 지켜보며 거칠게 써왔던 최근 몇 년간의 글들을 모아 만든 앤솔로지다.
이미 1990년대 중반경 인터넷의 부상을 지켜보면서, 나는 디지털기술의 자본주의적 흡수 아래 진행되는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적 이행 논의에서부터 누리꾼들의 부상하는 온라인 문화정치 분석에 이르기까지 기술·정보 영역에서의 (자본)권력화 과정과 그에 대항하는 이용자들에 대한 비판적 탐색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디지털야만』은, 내 연구 결과물의 연대기로 보면 1996년 국내에서 석사 학위논문을 책으로 묶어 낸 『디지털패러독스』(2000), 2008년 미국에서 박사논문을 책으로 낸 IT Development in Korea: Digital Nirvana? (2012)에 이어서 한국형 정보통신기술의 현주소를 살피는 최신판에 해당한다. 이전 글들이 대체로 한국사회에서 부상하거나 형성 중의 디지털 자본주의의 쟁점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일에 집중했다면, 이번 책은 오늘날 기술과 정보 누적 속에서 발생하는 한국 특유의 사회·문화적 ‘야만성’(디지털통치, 정보재난, 빅데이터감시 등)을 유형화하고 특징화하는 데 할애했다.
기술과 정보의 비정상적 착근 상황
한 국 사회에서 정보(미디어)통신기술은 스펙터클 자본주의의 주된 역할에 덧붙여 퇴행의 정치사회적 현실에 의해 구성되면서 우리네 특유의 굴절된 진화 경로를 만들어냈다. 이번 책에서 나는 한 사회의 통제능력 이상으로 기술과 정보가 비정상적으로 우리 사회에 착근되는 상황을 ‘기술잉여’란 개념을 가지고 풀어내려 했다. 즉 기술 디자인, 개인, 커뮤니티, 경제, 정치, 문화의 각 층위들을 통해 국내 ‘기술잉여’의 누적적인 특징들을 살피고, 그 특유의 디지털 기형성과 야만성을 유형화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기 술잉여’의 사례 하나만 들어보자. 바로 오늘 여기 누리꾼들은 도처에서 ‘사이버 망명’을 시도한다. 너도나도 카카오톡에 닥칠 검열을 피해 텔레그램 등 또 다른 메신저로 거처를 옮긴다. ‘정치적’ 사이버망명의 과잉은 이미 한국적 디지털문화의 전형이 된 지 오래다. 기억을 잠시만 더듬어 보자. 한 때 인터넷실명제로 게시판 글쓰기의 자유를 박탈당하면서 누리꾼들이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으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 네이버 등 국내 포털 사이트들에 계정을 두고 메일을 주고받는데 査察의 불안감을 느낀 누리꾼들이 너도나도 구글 계정으로 갈아타던 때도 있었다. 지난 대선 시기 정보기관의 트위터 댓글 조작 의혹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 폐쇄형 페이스북 공간으로 아예 짐을 싸기도 했다. 수그러들지 않고 틈만 나면 스멀스멀 권력의 촉수를 들이밀던 국가 레짐의 퇴행성과 결합된 디지털 환경의 야만 상태가 외려 이용자들에게 특유의 생존 기술과 문화를 터득하게끔 하는 효과를 불러왔던 것이다.
‘정 보재난’도 다르지 않다. 이는 또 다른 한국적 ‘기술잉여’를 구성하는 주요 위험요소다. 수백만이나 천만 명 이상의 개인 정보들이 지난 몇 년간 10여회 이상 대규모로 털리고 유출돼도 여전히 사회의 위기의식은 둔감하다. 그 어느 곳보다 한국사회는 압축 성장에 따른 파행적 근대화를 겪어 왔고 계속해서 신권위주의 체제와 대자본의 공조와 연합에 의해 강력한 통치 기술과 기술과잉의 양상을 보여주는 터라, 계속된 정보재난과 관련 인프라의 오작동 발생시 파국의 범위와 정도를 가늠조차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디지털야만』은 정보재난의 새로운 ‘빅데이터’ 국면까지 포함한다. 즉 현대인들의 무정형 데이터 생산, 예를 들면 카톡,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서 벌이는 좋아요, 댓글, 리트윗, 공유 등 무정형의 개인 ‘빅데이터’ 정보 배출 행위의 보편성이 한국형 정보재난과 맺을 수 있는 위험의 징후들, 더 나아가 국가 통치기술의 일부로 기능하는 ‘빅데이터’ 정보통제 행위의 오늘날 새로운 위기 상황까지 살피고 있다.
한국의 ‘기술잉여’적 디지털 진화와 야만성의 면모는 이렇듯 한국 사회의 굴절된 현실과 쏙 빼닮아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또 다르기도 하다. 정치문화의 비민주적 속성이 기술환경에 그대로 녹아있기도 하고 누리꾼들의 과도한 기술 집착을 낳기도 했지만, 나는 적어도 전자적 네트워크 매개체를 통한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율 문화를 이끌기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디지털 야만』의 후반부 장들은 그래서 온라인문화 속 정치적 퇴행과 권력 억압의 기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돌출하는 새로운 자율적 미디어 주체들의 다양한 움직임들(정보공유운동, 세대별 온라인 문화정치, 소셜웹 행동주의 등)을 포착하려 했다.
미래 대안적 희망의 가능성
예를 들어, 내 책에서 소셜웹에 대한 평가는 양가적이다. 소셜웹이란 민주적 네트워크 장치가 적어도 초창기에 우리 사회에 정착하면서 권력의 억압적 속성을 알리고 주류 미디어를 움직이게 하고 이슈와 관련해 감성의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역동적인 공론장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물론 소셜웹의 대중화는 곧이어 퇴행의 여러 측면을 보여줬다. 대선 시기 정보기관들의 댓글조작과 誤정보 살포 의혹 등이 소셜웹 생태계를 오염시키면서 디지털 야만성의 극단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세월호 참사’에서 침묵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지상파와 보수언론을 사회적으로 감시하는 ‘제3의 미디어’로서 소셜웹의 민주적 소통의 가능성과 이와 결합된 누리꾼들의 역능에서 문화정치의 희망을 또한 발견하고 있다.
『디지털야만』에서 나는 결국 한국적 기술 발전의 과잉 굴절 상황을 분석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대안적 기술 실천의 희망과 가능성을 함께 착안하려 했다. 현 시점에 대한 암울한 기술현실의 분석이 미래 대안적 희망의 가능성을 사그리 부정하는 제스처가 아님을 내 책에서 의도적으로 전제했다. 물론 이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체제적 모순들이 중층적으로 겹쳐져 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기술의 양상이 도착적이거나 비정상적 논리에 의해 압도되는 현실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디지털 주체들의 본능적 탈주와 비순응적 태도가 질기게 살아남지 않았던가. 이것이 디지털야만의 시대에 여전히 디지털 주체에게 희망을 거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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