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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정보문화진흥원의 정보화로 가는 길, 아름다운 e세상, 그리고 따뜻한 디지털 세상으로 불리는 월간지에 2년간 기고했던 글들

09. 12. 정치적 성숙이 영국의 디지털 정책을 일구는 힘이다

정치적 성숙이 영국의 디지털 정책을 일구는 힘이다

 

2009. 12. 월간 통

 

이광석

한국이 브로드밴드 인터넷 정책에서 성공했다며 정책결정자들이 우쭐해할 때 놓치는 것들이 많다. 미국과 영국 등이 먼저 90년대 중반이후 내놓은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당시 우리가 벤치마킹하던 시절에서 이젠 그들이 우리의 성공신화를 배우는 시절이니 우쭐할만도 하다. 그런데, 지난 10월호에서도 봤지만 버락 오바마 정부 이래로 미국내 브로드밴드 구축 정책의 움직임과, 올해 영국의 <디지털 브리튼(Digital Britain)> 정책 보고서가 주는 공통된 함의를 우리 정책결정자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상 이 두 나라에서 디지털 정책의 핵심으로 소외된 계층의 참여와 통합(inclusion)을 그 기본 정책 명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쉽게 지나친다.


<디지털 브리튼Digital Britain>은 이미 1월에 영국 문화미디어체육부(Department for Culture, Media and Sport, DCMS)의 핵심 전략 보고서 형태로 중간 발표 후 6월에 나온 최종보고서이다. 대략 5개월 정도 중간 보고서 내용을 각계 시민 구성원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검증을 받아 최종본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 나라의 디지털 미래 청사진에 시민 참여와 통합의 화두를 제 1과제로 삼는 일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일자리 창출과 산업연관 효과에 정책 목표가 압도당하는 대개의 현실에 비춰보면 놀랄만한 정책 입안의 과정이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방송 체제는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 개념에 입각해 있다. 우리식 방송 소유구조에 맞춘 공/민영 이원구조에 비춰보면 훨씬 더 포괄적인 수준의 공공 개념이다. 영국에서 방송을 하는 주체는 공영이건 민영이건 ‘공공서비스’ 의무를 지닌다. BBC와 같은 공영방송은 물론이거니와 광고 시장으로 먹고 사는 민영방송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공공서비스의 의무와 책무를 진다. 영국에서는 일반 민영방송에도 강한 공적 책무를 정부와 의회가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공영성 구현의 핵심에는 BBC가 존재한다. BBC의 대부분 재원은 수신료에 근거하고 정부와 의회로부터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영국 왕실에서 발급하는 칙허장과 협정서에 의해 자체 규제기관인 BBC트러스트(Trust)의 감독을 받고 있다. 오프콤이란 우리식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규제기구가 존재하지만, BBC에 대한 일반적 규제 권한은 없고 생산된 프로그램 내용물에 대한 일부 규제 정도만 허용하는 정도다.

 

BBC는 이렇듯 의회와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 시청료를 통한 자체 재원의 확보, 양질의 공익적 프로그램과 콘텐츠 개발로 크게 성공한 방송 모델이다. BBC의 이와 같은 역할은 <디지털브리튼> 구성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디지털 소외 계층의 참여와 통합의 방식에 전통적 공익 매체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다. 현재 영국은 인터넷 초고속망에 대한 일반 기업 공급업자들이 망건설을 유보하면서 산간벽지나 시골 등 전국가구의 3분의 1이 네트워크망의 혜택을 전혀 입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본 BBC는 시청료의 약 2억 파운드(4천억원 정도)를 초고속인터넷망 사업에 투자하겠다 밝혔다. 또한 BBC의 가장 성공적인 인터넷 콘텐츠서비스 사업인 아이플레이어(iPlayer)에서는 방송후 7일 이내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VOD로 무료 시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다. 서비스 개시후 1년간 (2007년 12월~2008년 12월) 2억 7천여건의 프로그램 전송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결국 전통적 공영방송으로서 BBC 모델이 새로운 디지털 영역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공익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사업 다각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소외없이 보다 많은 이들의 방송 접근권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않는 방송 액세스를 보장하려는 노력이 인터넷 방송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디지털 브리튼> 보고서 내용에 대한 소개가 크게 이뤄졌다. 하지만, 이를 소개한 언론과 정부 기관들은 영국 디지털 정책의 핵심을 보지 못한다. 디지털화를 통한 이익과 장점들을 국민 골고루 공평하게 누리고, 이들 모두에게 디지털 참여와 통합을 통한 접근성 향상에 기대를 걸고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실상 기업들의 디지털 영역에서의 독주를 막기 위해 보고서에서 ‘산업적 행동주의’(industrial activism)란 용어를 쓰는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산업 발전이나 일자리 창출에도 국가가 시장 개입을 통해 공익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개입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서도, 2012년 영국의 디지털 텔레비전 보급률이 95%까지 이뤄질 것이란 전망치가 나온다. 이미 2001년부터 영국 정부는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면서 대국민 홍보와 관련 사업자들(방송사, 가전사 등)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디지털 전환 기구 ‘디지털 UK'를 운용해왔다. 이 또한 디지털 전환의 논리를 시민 후생과 보편적 서비스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땅 면적이나 유구한 역사를 따져보면 비슷해 보이는데, 참 서로 많이 다르다. 우리는 물리적 망 사업에서 크게 성공했지만, 서투른 디지털 전환 추진에다 시민들의 디지털 참여와 통합은 사실상 시장과 산업논리 챙기고 난 뒤에 여유되면 뒤돌아보는 목표치가 아니던가. 그래서 더욱더 의회 민주주의의 오랜 전통으로부터 방송의 공익성이 흔들림없이 보장받고, 디지털 신규 정책과 사업에서조차 그 민주적 전통과 재정적 기부로 전이되고 힘이 되는 영국 사회가 한없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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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11. 아이폰 국내 도입에서 정보공유 정신을 보라!

+ 작년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에 제가 썼던 글이네요. 아직도 우리가 정신 못차리거나 유효한 내용들이 많아 보입니다.+

 

아이폰 국내 도입에서 정보공유 정신을 보라!

 

2009. 11. 월간 통

 

이광석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온다. 어렵사리 들어오는 기기이니 즐겁게 받아들이고 이제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 이제까지 국내에 들어왔던 웹2.0 기업들이 크게 시장에서 재미를 못보거나 철수한 것에 너무 즐거워할 이유도 없다. 그들에게 한국의 특수한 토양이 맞지 않았지만, 우리의 시장 폐쇄성도 그들을 내치는데 한몫했다. 그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도 자축할 것만은 아니란 얘기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본적으로 게임의 룰만은 공정해야 한다. 여기서 물론 ‘우리’는 정부나 사업자들일 수도 있지만, 일반 소비자이자 시민들이다. 기본은 공익이고, 이들을 중심에 놓고 판단해야 한다.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는데 이제까지 문제가 됐던 것은 정부보다는 우리의 이동통신업계의 뜨뜨미지근한 자세였다. 기존에 무선인터넷 영역을 상업화하여 이로부터 수익을 크게 얻는 구조를 쉬 버리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통사는 고민 중이다. 그러나, 소탐대실이라 하지 않았던가. 당장 눈앞의 작은 것을 버리면 앞으로 적어도 수십년 이상은 한국사회의 모바일 어플 콘텐츠업계의 활성화와 다종다양한 신생 서비스가 생길 것이다. 이찬진 사장이 아이폰 전도사로 나서고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아이폰 수입을 허하라 성명서를 내는 판이다. 눈앞의 이윤보다 시장 성장의 가능성을 봐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폰은 시장의 논리이기 전에 정보 공유의 논리로 커 왔다. 그것이 미래 경제 모델인 ‘리믹스’(remix) 경제의 모습이다. 돈을 벌더라도 정보재가 지닌 공유 문화의 철학을 따라야한다는 것이 리믹스 경제의 요체다. 이 법칙을 거스르곤 미래에 성공은 고사하고 쪽박 차기 알맞다. 이미 작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에서도 이를 인정했다. 구글을 롤모델로 삼는 삼성도 ‘프리경제’(freeconomy)하에서 이용자들의 문화적 패턴을 읽고 그 속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박리다매의 신경제 모델을 내놓은 적이 있다.

 

   자 아이폰은 무엇인가? 전화보다 어플리케이션의 부가 기능이 중심이 되고, 그러자면 무선 인터넷이 중심에 서는 모바일 기기다. 매달 전화비를 내지만 미국 소비자들 대부분은 무선 접속 공간에 노출돼 있다. 게다가 AT&T가 자사의 3G차세대 모바일망을 스카이프 인터넷전화(VoIP)에 개방한다는 발표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시장 이윤도 이윤이지만 최소한의 망 개방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용인된다는 점을 주목하라. 이것이 시장을 죽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은 대다수의 가정들이 무선 인터넷 네트워크를 공유한다. 어떤 사람들은 옆집과 자신의 와이파이 대역을 함께 나눠 쓰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우리의 무선인터넷을 ‘와이파이’라 부른다. 이는 철저히 공유의 철학에 기반한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오스틴 등은 무선인터넷 천국으로 꼽힌다. 이 도시들이 천국인 이유는 시민단체들과 시당국이 무료로 시민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핫스팟(와이파이 안테나 반경이 미치는 구역)을 공원, 도서관, 카페 등에 무료로 계속해서 구축해 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기업들이 이 틈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좀더 고품질로 이 분야에 진출하고, 우리의 ‘와이브로’(WiBro)처럼 와이맥스(WiMAX)라는 기술이 와이파이를 보완해 나옴으로써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와이파이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전파 거리나 전송 속도에서 상업용에 비해 무선인터넷은 한참 처진다. 그래도 시민들을 위한 와이파이의 자유정신은 건재하다. 연방 정부와 주정부, 각급 공공 기관들에서조차 무선인터넷을 공익에 근거한 정보격차 해소방안으로 삼고 있다. 미국에서 광통신망 건설이 우리처럼 확대되지 못한 상황에서 무선인터넷이 근 몇 년간 이를 보완하는 인터넷 접속로 구실을 했다. 마치 우리의 인터넷방 문화처럼 미국에서 무선인터넷은 느리지만 누구나 무임승차할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이처럼 공유 모델에 의해 자리잡은 무선인터넷을 이용해 덕을 본 것은 애플의 아이팟이나 아이폰이다. 개방된 무선망에 휴대용 터치스크린 폰 이상 잘 들어맞는 기기는 없다. 애플은 이미 오래 전에 말 많던 누리꾼들의 ‘불법’ 음악공유 문화에 상업 모델을 적용시켜 성공했던 전례가 있다. 애플은 곡당 저가의 요금으로 그리고 아무 기술적 잠금장치없이 내려받기가 가능한 아이튠 음악제공 서비스를 진작에 실시해 큰 성공을 이뤄냈다. 애플이 그 험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세에도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애플의 문화 적응력에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아이폰 도입에서 이처럼 기술 개발과 서비스에 있어서 공유와 개방의 철학을 배워야 한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모든 측면에서 비상업적 개방성을 지향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안다. 그도 전문경영인이요 이윤을 따라 움직인다. 허나 무선인터넷에 대한 커뮤니티 차원의 운동 그리고 주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 등이 결국 오늘의 아이폰 명성이나 개방형 기술들을 낳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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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통] 미국 초고속 인터넷망에서 늦깎이,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보편적 서비스 노력

미국 초고속 인터넷망에서 늦깎이,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보편적 서비스 노력

 

 

2009. 10. [월간 통, 정보화진흥원]

 

이광석

   93년 미국에서는 클린턴-고어 행정부에 의해, 너무나도 잘 알려진 '국가정보기간망'(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일명 '정보초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사업이 제안된다. 미 대선 당선 전부터 이 젊은 두 콤비가 주장했던 것은, 한마디로 물리적 공간에서 마냥 전자공간을 시장화하는 방안이었다. 광통신으로 초고속망도 깔고 그 곳에다 돈되는 사업를 기획하고 저작권 체계도 정비해 미국 주도의 새로운 경제 도약을 삼자는 야심이 깔렸었다. 적어도 WTO를 통한 전세계 통신분야 개방 압력에는 미국의 이런 입지가 반영됐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이런 변화에 당시 한국의 관료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것이 94년 정보관련 법안을 정비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만 10년 꼬박 진행했던 '초고속국가망'(KII) 사업으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통신업자들 자율에 의해 함께 이뤄졌던 '정보초고속망' 사업은 이와 같은 국가망에 힘입어 민간 인터넷망으로 꾸준히 성장한다. 전자는 전국에 산재한 국가 기관들과 학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고, 후자는 소위 민간 인터넷 접속 환경을 개선하는데 기여했다. 2001년에 이미 1천만 가구가 초고속 인터넷을 쓰고, 이제는 인구의 95%가 접속하면서 인터넷은 한국민에게 삶의 필수 요소가 됐다. 더불어, 해외 언론들과 정책 입안자들의 극찬을 받는, 우리의 '브로드밴드 천국'의 건설은 사실상 초고속망의 성공 시나리오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우리의 초고속망 사업을 공치사한 이유는, 한국이 벤치마킹했던 미국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이 우리와 달리 크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90년대초 두 정·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AT&T 등 미국내 거대 통신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국내에선 국가 지원을 통해 통신기업들이 광통신을 전역에 까는데 성공했으나, 2천년대 중반까지도 미국은 사정이 달랐다. 연방 정부의 정책 제안이 각 주정부에 미치는데 힘이 한참 모자랐고, 기업이 우리처럼 정부의 한마디에 쉽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결국 통신회사들은 통신망 개선 사업을 게을리했고 기존의 노후한 구리선을 이용해 서비스를 계속하면서 초고속 인터넷망 설비를 그대로 방치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몇몇 주 정부들이 거세게 미국의 초고속 인터넷 상황을 비판하면서,  미국의 기반 사업 움직임이 남다르다. 2007년 자료 기준으로 보면, 가구당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50%를 넘어섰고 최근 케이블이나 ADSL가입자 수도 급증하는 추세다.

 

누구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보망 기반사업에 대한 의지는 굳건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인수위원회의 핵심 3대 영역 중 하나가 기술 부문이었다. 오바마는 또한 올해 2월 '미국 회생과 재투자법'(ARPA)에 서명을 했고, 현재 상무성의 연방정보통신국(NTIA)과 농무성의 지역 유틸리티 서비스(RUS)에 미화 280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한 상태다. 현재 2천 2백여건에 이를 정도의 초고속 인터넷 사업 신청서가 접수되었는데, 이미 이 숫자는 배당된 예산의 7배 정도라 하니 이도 심사를 통해 우선 집행 대상을 추려야한다. 지원 대상은 주 정부, 지역 자치 단체와 정부, 비영리 단체, 도서관·대학·지역 병원 등을 주재하는 기관들, 그리고 공공 안전 조직들이다. 미국도 한국처럼 아직까지 인터넷은 공중파 방송과 전화처럼 보편적 서비스에 포괄할 것인지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ARPA와 같은 특별 정부 예산을 통한 간접 지원이 주종이다.

 

이번 망사업의 50개 주 지원 사업들은 원격교육, 원격진료 및 초고속인터넷 프로그램 지원이다. 효과는 보다 많은 이들이 경제적 수입에 상관없이 지역적 격차 없이 초고속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고 양질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기반 조성이다. 미 상무성과 농무성 중심의 초고속 인터넷 사업 구상에 발맞춰 미연방통신위원회(FCC)는 8월 내내 관련 워크숍과 10월말까지 관련 초고속 인터넷망 기반 사업과 관련된 공공 의견 청취를 받고 있다. 지원 대상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겠지만 정부 지원의 원칙으로 주로 논의되는 기조는, ‘커뮤니티가 지닌 유무형의 자산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발전’ (Asset-Based Community Development, A-BCD) 모델이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90년대초 연방 수준에서 제안된 미 ‘정보초고속도로’의 의도가 순수 시장의 논리로 기획됐다면, 이번 오바마 정부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망은 맥락이 다르다. 인터넷을 보다 아래로부터 사고하는 정책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명시적으로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이제 인터넷을 사회의 소외되고 약소한 계층을 위한 보편적 접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사업 평가와 지원 대상과 방식을 결정하기 위한 미 연방 정부의 수많은 회의와 워크숍, 공청회를 보면서 우리에게 많이 부족한 것을 그들이 지녔다는 부러움이 든다. 정보화 정책의 민주적 의견 수렴 과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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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디지털세상] 스카이프를 위협하는 구글 보이스, 그리고 소비자의 미래는?

스카이프를 위협하는 구글 보이스, 그리고 소비자의 미래는?


2009. 4.

이광석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요새 이베이의 스카이프(Skype)에 재미가 한참 붙었다. 미국에서 그리 오래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에 전화할 때면 으레 전화카드를 고집했다. 박사 논문 심사 때도 한 교수와 스피커폰으로 연결해 전화 통화를 했다. 이제와 생각하면, 스카이프와 같은 그 편한 인터넷 화상 전화를 왜 안 썼을까 후회막급이다. 통화 음질도 떨어지는 스피커폰에 매달려 교수의 코멘트를 들으려 애썼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10여 년 간 타향에서 손주 커가는 모습을 그리도 보고싶어 했던 부모님에게 왜 그 간단한 PC카메라 하나 설치 못 해드렸을까. 다 내 게으름의 소치였다.  


그런데 그 게으름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밖으로부터 찾아왔다. 귀국 후 우연히 호주에 있는 교수들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한 교수의 권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스카이프 프로그램을 깔게 됐다. 그로부터 인터넷 쓰는 습관에 변화가 생겼다. 작게는 아내랑 스카이프를 통해 서로 화상으로 보면서 하루 일과와 안부를 묻는 것이 일상이 됐다. 부부가 바깥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오후 늦게 아이의 안부를 묻는데 스카이프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이모티콘을 날리면서 아들과 채팅하는 맛도 그만이다. 외국에 흩어져있는 박사 동기들과 얼굴을 확인하며 인터넷 전화를 하는 시간도 늘었다. 국제 전화비가 아까워서 이제까지 못했던 전화들을 돌려댔다. 직장 일과 관련해선, 인터뷰를 하는데 이 이상 좋은 화상 회의 장치가 없다. 최근엔 외국의 수업시간 중에 스카이프를 이용해 외국 학생들과 한 30여 분간 질의, 응답 시간을 가진 적도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무료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보라! 휴대폰도 있지만, 경제적인 통화 요금과 통화 상대자에 대한 배려(상대가 전화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라는 점에서 스카이프만 못하다. 룩셈부르크의 스카이프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스카이프는, 2005년 이베이에 팔리면서 인터넷 통화의 대명사로 등극했다. 저렴한 국제 통화와 무료 인터넷 통화로 소비자들을 끌어모으면서 4억의 가입자와 매일 35만 명의 이용자로 전 세계 시장을 재패했다. ‘무료경제’(free conomy)의 원리를 통해 가입자를 모으고, 휴대폰이나 국제 전화 등 부가 서비스를 통해 이윤을 취하는 방식이 잘 먹혔던 것이다. 그런데, 이같이 무소불위로 커가던 스카이프에 강적이 나타났다. 구글이 얼마 전, ‘구글 보이스’(Google Voice)라는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들고 나왔다.


구글 보이스는 스카이프보다 국제 휴대폰 통화시 통화료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게다가 휴대폰, 집 전화, 인터넷 전화 등을 통합해 벨이 울리게 하는 서비스도 선보인다. 전화 음성을 문자로 바꿔 인터넷에서 마치 메일 내용을 확인하듯 볼 수도 있게 한다 하니 인터넷 전화 서비스의 새 장을 열 것으로 보인다. 구글 메일처럼 통화내용을 리스트로 확인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두 거대 사업자들 간의 인터넷 전화 영역에서의 싸움이 어찌될지는 아직까지 분명치 않다. 다만 일개 소비자로서, 이 새로운 서비스의 편리함 뒤에 숨겨진, 음성 통화의 문자화 기술에 슬며시 두려움이 밀려온다. 구글 보이스를 통해 어디서든 기록되는 전화 통화는, 이제 더 이상 정보기관의 감청에 의한 사생활 침해 사례에 국한되지 않는 ‘투명한’ 세계를 의미한다. 누구나 사적 통화 내역을 마음만 먹으면 들춰 볼 수 있는 세상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모든 첨단 영역에서 독점력을 행사하는 ‘구글’ 서비스란 점에서 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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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감옥깨기’가 저작권 위반이라고? - 스마트폰이 사는 길

아이폰 ‘감옥깨기’가 저작권 위반이라고? - 스마트폰이 사는 길


2009년 3월호


이광석


요즘 미국에서 애플이 법정 공방으로 요란하다. 논의의 핵심은 우리가 흔히 위젯 서비스라고 알고 있는 터치스크린폰 혹은 스마트폰의 부가 콘텐츠 추가 기능과 관련이 있다. 유저들은 아이폰 출시 후, 지난 3년여 간 ‘감옥깨기’(jail-breaking)를 통해 기술적으로 닫혀있는 애플의 위젯 서비스를 풀면서 수백 수천의 무궁무진한 위젯들을 내려받아 써왔다. 애플의 사장 스티브 잡스는 당연 노발대발했다. 아이폰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걸리면, 모두다 불법으로 간주해 법적, 기술적으로 이용자들에게 대가를 치를 것이라 엄포를 놓고 있다. 몇 년간 이용자와 기업 간의 막고 푸는 싸움이 결국 도화선이 되어, 과연 감옥깨기가 저작권 위법인가 아닌가로 쟁점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아이폰 자체의 성장은 터치스크린의 핵심인 유저 인터페이스 개발 노력에서 크게 돋보인다. 더불어, 성장 속도에 가속이 붙었던 것은 기업이 불법화하고 있는, 사용자들의 감옥깨기 때문이라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애플이 이용자들을 불법으로 모는 법안은, 1998년에 제정된 ‘디지털밀레니엄 저작권법’이다. 이는 인터넷의 대중화로 소프트웨어나 기술 저작물의 보호에 위기를 느꼈던 저작권자들이 고안한 최초 법안이었다. 이에 따르면, 기업이 생산한 어떤 기술 코드를 풀어서 헤집고 들어가 보는 행위 자체는 이 법에 의해 원천 봉쇄된다(벌금형 혹은 5년의 징역). 예를 들어보자. 이용자가 청계천에서 라디오를 구입해, 여기다 앰프를 달고 내부를 뜯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한다고 해도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적만 해도 아무 일이 없었다. 당시에는 조립도 가능한 ‘키트’(the kit)가 있어서, 설명서를 보면서 납땜해 라디오를 만들던 기억이 난다. 기술의 내용은 선명했고, 이용자들은 쉽게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자기식대로 개발했다.


‘최초 구입 원칙’(the first sale principle)이란 거의 사문화돼가는 저작권 양해 조항이 있다. 일단 이용자에 의해 구입된 물건은 자유롭게 변형하거나 재판매, 임대할 수 있다. 책을 보자. 이용자가 서점에서 구입한 책은 엿을 바꿔먹든 친구에게 선물로 주든 누구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황이 예전과 다르게 점점 팍팍해져가고, 이용자를 보호하는 공정 이용의 권리들도 거의 유명무실해간다. 애플이 말하는 위법, 감옥깨기는 사실상 유저들에 의해 구성되는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감옥깨기를 통해 새로운 위젯들이 명성을 얻어 알려지고, 그에 수없이 딸린 콘텐츠 기업들이 창업을 하면서, 애플이 기술적으로 막고자 했던 아이폰의 새로운 가능성도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애플이 사실상 위젯을 번들로 막아오다 아이폰 2.0에 와서 이를 콘텐츠 업계에 공개해 상업적 내려받기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한 데는, 결과적으로 이용자들의 감옥깨기 공이 크다. 결국, 애플의 법정 공방도 사용자의 거스를 수 없는 문화적 대세를 인정하는 선에서, 그리고 기술의 장기적 전망을 극대화하는 선에서 정리돼야 한다.


올 4월부터 밀려올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스마트폰과 위젯의 위상을 우리도 보다 개방된 인터페이스 기술 형태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용자는 물론이요, 요즘 가뜩이나 힘든 IT 콘텐츠 업계가 사는 길이다. 한둘의 기기 수입과 서비스 공급을 맡은 업체들이 이윤을 독식하고 그 좋은 기술의 가능성을 막는 어리석은 짓은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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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노트북 혹은 넷북의 불안한 미래

미니 노트북 혹은 넷북의 불안한 미래


2009년 2월호


이광석


한때 필자는, 애플 노트북 가운데서도 이제는 단종이 돼서 중고 시장에서나 구할 수 있는 12인치 애플 파워북을 꽤나 좋아했다. 한 십여 년이 지난 골동품 모델이다. 이 모델은 사실상 애플 역사 이래 최고로 작은 노트북이었고, 애플사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이처럼 작은 모델을 생산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래서인지 몰라도 이 12인치 모델은 희귀종으로 취급돼, 중고시장에선 지금도 이를 구하려면 어지간한 새 노트북 가격으로 흥정을 붙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애플은 더 이상 12인치 노트북을 만들지 않을까? 지금처럼 모두가 ‘경박단소’의 IT장비만을 선호하는데 말이다. 추측컨대, 당시 노트북 화면이 좌우로 넓어지는 와이드 쪽으로 흘러가면서, 13인치 이상이 최적으로 평가됐을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이를 제외하면 무엇보다 내가 느끼는 12인치의 종말은 문화격차다.

미국 대학에 가보면 우리처럼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노트북을 쓰는 학생들을 발견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요새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넷북이나 작은 사이즈의 노트북이 아니라, 보기에도 육중한 15인치 이상급 노트북을 끼고 작업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 혹 예외적으로 세련되고 아주 작은 소니나 후지쯔 모델을 쓰는 경우는 있는데, 대체로 한국 유학생을 포함한 동양인들이다.
미국 학생들이 큰 모니터를 끼고 앉는 이유는 작은 노트북이 주는 자판의 불편함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있다. 그들의 긴 손가락으로 두드리기에, 충분한 자판 여백이 없는 작은 크기의 노트북은 실속없는 기기에 불과하다. 지금 필자가 작업하고 있는, 최근 애플 맥북프로 17인치 노트북 시리즈가 그토록 많이 팔리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모델을 처음 샀을 때만해도 그 크기가 너무 부담스러워 교환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도 한국인들처럼 12인치에 열광했었다. 이는 내 나름 IT소비 방식의 한국적 특성에 코드가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작고 가볍고 가방에 쏙 집어넣을 수 있고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그런 IT장비로 12인치가 제격이라 본 것이다. 감각의 차이요, 문화의 차이다.  

지난해부터 국내에 미니 컴퓨터와 넷북의 열풍이 분다. 사실상 이 노트북 기술은 애초에 MIT대학의 미디어랩 교수였던 네그로폰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그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인터넷의 접근권을 높이기 위해 저가의 노트북 프로젝트를 고안해 대중화했다. 즉, 아이들의 컴퓨터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아이들을 위한 컴퓨터가, 대만 등 몇몇 기업가들에 의해 시장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보다 세련된 판매용 노트북으로 개발된 것이다.
아이들의 컴퓨터였다는 사실은, 다른 말로 그 크기에서 체형이 작은 동양인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서양인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아이폰, 구글폰과 같은 스마트폰의 전세계적인 인기를 볼 때, 미니 노트북들 스스로의 위상을 세우기도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 가능하다. 결국 그것이 문화 코드와 맞지 않으면 아무리 작고 효율적이고 가격면에서 저렴하다할 지라도 또 하나의 잉여기술로 쉽게 시장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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