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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TV. 그 오만방자함!!

시청자마저 천박해지기를 강요하는 TV 토크쇼
무지는 교만을 낳는다고 했던가. 무지를 은폐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에 무지는 대부분 교만을 동반한다. 따라서 무지 자체가 죄악이 아닐진대 시간을 두고 적절한 교양과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함에도 간혹 무지를 자각하고 대처하지 않기 때문에 응당 사람이 비열해지고, 추잡해지기 십상이다. 나아가 그런 비열과 추잡은 무지를 은폐하는 수준을 넘어서 당당하게 자랑하며 용맹의 극치에 이르기도 한다.



방송인지 자기집 안방인지 분간 못하는 그 용맹스러움

TV 토크쇼 진행자들이 꼭 그짝이다. 꽤 많은 토크쇼들이 있음에도, 대부분의 토크쇼에서는 토크쇼를 진행할 능력이 안 되는 진행자들이 얄팍한 지식과 잔꾀로 무지를 뽐내며 토크쇼에 분탕질해댄다. 공중을 상대로 한 방송인지 자기집 안방인지 분간도 못하고 예의 그 용맹함을 자랑한다. 그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려는 눈물겨운 생존의 몸부림만 칠 뿐이다. 적절한 교양과 품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연예인들의 말장난. 그리고 그 말장난에 기름을 붓는 진행자들의 무지의 용맹스러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참을 수 없는 경박성의 난무는 시청자들을 화나게 만든다. 그 덕분에 개그맨들이 진행을 독차지한 토크쇼는 삿대질 등의 행태, 비속어, 반말, 인신공격성 발언 등으로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야!", "너!" 같은 식의 호칭은 예사고, 막말의 사용은 일종의 애교스러운 수사처럼 쓰이고 있다.

어디 이게 비단 일부 토크쇼만의 문제랴. 이러한 양상은 대부분의 토크쇼에 비슷하게 나타난다. 왜 그럴까? 무엇인 문제일까? 진행자들의 능력의 부재 때문일까? 진행자를 바꾸면 될 텐데 바뀌지 않는 걸 보면 아마도 그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오히려 그런 진행자들을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활용하는 방송사의 자세가 문제인 듯 싶다.

방송사 입장에서 토크쇼는 보배 같은 존재다.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방송사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꼬이느냐일 것이다. 게다가 큰 비용을 안들이고도 시청률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아니 좋을까. 따라서 어떻게 양질의 토크쇼를 만들 것인가 혹은 시청자들이 어떤 토크쇼를 원하는가는 처음부터 방송사 입장에서는 고려 사항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인기가 좀 있다는, 그리고 재치를 빙자한 경박성을 소유하고 있는 진행자와 출연자를 등에 업고 싼 값에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손쉽게 올릴 수 있는 게 현실이고 보면 다른 건 당연히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가십이나 수다는 지양, 정보와 교양을 추구해야

토크쇼도 여러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을테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정보가 우선일 것이다. 정보를 다루어야 하는 까닭에 적절한 교양은 필수적이다. 덧붙여 사람을 상대하는 까닭에 적절한 품성 겸비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보를 다룰 만한 능력과 품성을 갖고 있는 진행자를 찾기는 어려웠을 테고, 그럴 바에야 무지를 용맹하게 뽐낼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늘 똑같은 스타 인터뷰나 자질구레한 가십, 혹은 연예인들끼리 사석에서나 오고갈만한 수다만으로 내용이 채워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일지도 모른다.

때로 우리는 격조 높은 토크쇼를 원한다. 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멋진 토크쇼를 원한다. 그게 힘들다면 최소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수준을 갖고 있는 토크쇼를 보여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의 그러한 열망을 애써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같이 천박해지기를 강요하는가?

시청자에게도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 즉 텔레비전은 그 선택권이 발휘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 사항을 제공해야 한다. 채널이 됐든, 프로그램이 됐든, 특정 연예인이 됐든, 텔레비전은 시청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혹자는 그거야 이미 있는 거 아니냐, 보기 싫으면 안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발상은 이미 일방성을 강요하는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일방적으로 시청자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동적 선택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스스로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는 능동적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때로 우리는 토크쇼를 통해 지적 충격, 우아한 교양, 폼나는 대화 등을 만날 수 있기를 원한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연예인들의 일상이나 가십거리 혹은 천박한 수준의 잡담을 듣기 위해 텔레비전을 켜는 것은 아니다. 개판으로 돌아가는 방송판에서 하나쯤 좋은 토크쇼를 기대해보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란 말인가? 많이도 안 바란다. 우리들의 열망이 최소한으로라도 반영된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토크쇼를 적어도 하나쯤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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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필라소퍼(Philosopher)로 TV 리모콘 소유가 곧 권력의 소유라고 믿고 있는 사람. TV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긍정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자면서 늘 삐딱하게 세상에 접근하는 사람. 방송비평가에서 문화비평가로, 그리고 방송인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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