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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일다] 인권영화는 아무나 만드나 - <다섯 개의 시선> 중 불량한 시선들

시와님의 [<다섯개의 시선>을 보고나서] 에 관련된 글.


인권영화는 아무나 만드나

<다섯 개의 시선> 중 불량한 시선들



박희정 기자
2006-01-10 00:08:39


<여섯 개의 시선>, <별별이야기>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 지원한 인권영화 <다섯 개의 시선>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작 <여섯 개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다섯 개의 시선> 또한 박경희, 류승완, 장진, 정지우, 김동원 등 다섯 명의 감독들이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참여한 단편들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정말 인권영화로서 관객들에게 다가가려면 단편들 중 두 개의 시선은 제외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경희 감독의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는 다운증후군 소녀 은혜의 일상을 잔잔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어눌한 발음과 다른 외모로 학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은혜를 불쌍하거나 수동적인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 건강한 시선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은혜의 ‘답답한’ 말에 자막을 달거나 ‘정상인’의 속도에 맞춰 편집하지 않는다. 은혜의 ‘잘 들리지 않는 어눌하고 느린 말’의 속도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은 은혜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영화 속 은혜는 외로움을 달래줄 가상의 친구를 만들고, 나이를 뛰어넘어 할머니뻘이 됨직한 아주머니와 친구가 되는 아이다. 친구들의 놀림에도 굴하지 않고 할 말은 하고 마는 당찬 은혜는 장애인에 대한 정형화된 묘사를 넘어서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애가 있는데요, 나쁜 애 아니거든요?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 라는 은혜의 말은 큰 울림을 준다.

송환을 만든 김동원 감독 <종로, 겨울>은 2003년 12월 9일 혜화동 거리에서 중국동포 고 김원섭씨가 동사한 채로 발견된 사건을 통해 중국동포의 인권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영화는 김원섭씨의 사망 후 1년 뒤 같은 날 김원섭씨의 행적을 추적한다. 흐릿하게 흔들리는 불안한 카메라의 시선은 고 김원섭씨의 시점에서 그 날을 재구성하도록 만든다. 가족과 동료들, 주변인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몸이 닳도록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임금체불과 불법체류의 고통 속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분노에 맞닥뜨린다.

영화는 국내 조선족들의 바람이 그러하듯 동포 간 ‘자유왕래’를 주장하며 마무리를 했지만, 관객들이 여기서 더 나아가 ‘중국동포’들이 처한 실상을 통해 전체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정지우 감독의 <배낭을 멘 소년>은 탈북 청소년들의 인권문제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우여곡절 끝에 탈북한 십대소녀 진선은 “북한 사람들은 인육을 먹지 않느냐”는 남한아이들의 말 앞에서 입을 닫아버린다. 북한으로 돌아갈 수도 남한 사회에 섞여 들지도 못하는 진선에게 마음을 열 유일한 상대는 같은 처지의 탈북 소년 현이 뿐이다. 탈북자라는 이유로 월급을 떼어먹는 노래방 주인, ‘북에서 왔다’는 소리에 기겁하고 도망가는 택시 운전사를 통해 탈북자에 대한 남한 사회의 시선을 고발한다.

영화 속 탈북 청소년들의 모습은 수려한 외모에서부터, 소녀의 의존성과 소년의 책임감을 통해 전개된다는 점에서 실제 탈북 청소년들의 현실을 반영했다고 보기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고향인 북한을 떠나 전혀 다른 사회에 홀로 떨어진 이들의 소외감을 전달하고, 탈북자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 하다.

류승완 감독의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는 만취한 상태의 우식이 실내 포장마차에서 보이는 언행들을 통해 성차별, 학력 차별, 이주 노동자,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 “차별”하면 떠올릴만한 이야기들을 쭉 훑고 있다. “우리가 언제부터 블랑카들이랑 술을 마셨어!”, “기집년들이 술은..” “호모는 안되지” 같은 우리 주변에서 한번쯤 접했을 법한 차별적 발언들이 다루어진다. 그러나 구체적인 주제의식이 있다기보다는 단지 얄팍한 나열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한 친구가 “호모”라는 것을 밝히면서 뒤쪽의 두 남자가 우스꽝스럽게 껴안는 모습이 보이거나, 남자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건장한 여자였다는 등 기존의 편견에 기대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한 사람을 내세워 여러 차별들을 나열하면서 구체적인 차별의 구조적 맥락들은 사라지고 ‘질 나쁜’ 개인의 편견의 문제로 환원되어 버리는 것도 씁쓸하다. 가령, 이 영화를 보는 수많은 ‘우식’들은 영화 속 우식이 그러하듯 자신과 비슷하게 쓰레기 같은 주사를 늘어놓는 주인공을 보며 비웃어버리고는 그만일 것 같다.

장진 감독의 <고마운 사람>은 감독의 입을 빌자면, "비정규직의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꼬아 놓은”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 붙잡힌 윤경신과 그를 고문하는 수사관 김주중의 하룻밤을 그리고 있다. 김주중은 “이름은 주중인데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는 장진 식의 코믹한 대사로 관객들을 웃겨가며 “수사관도 처우 열악한 비정규직”이라고 외친다.

장진 감독은 "노동자를 위한 법이 만들어져 있지만 그 혜택을 못 받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며 영화를 통해 노동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고문 수사관”의 비유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게 아닌가 싶다. 비정규직의 현실이 ‘비정규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도 않던 때의 “고문 수사관”을 통해 제기되어야 하는 이유도 이상하거니와, 고문피해자를 앞에 놓고 ‘맞는 것만큼 때리는 것도 힘들다’고 넋두리 하는 상황을 ‘인권’의 관점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당황스럽다.

‘먹고 살자고’, ‘위에서 시키는 거라’, ‘내 처지도 좋지는 않으니까’ 봐줘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고문’을 ‘직업으로 택한 사람’을 이해해줘야 된다고? 고문이 노동인가. 심지어 영화 속 수사관은 고문을 미안해하지도 않고, 고문이 ‘싫어’서가 아니라 ‘피곤’해서 힘들다고 할 뿐이다. 감독의 발칙한 상상력을 위해 가해자로서의 자책감이 없는 사람에게 연민을 보이라고 말하는 영화가 인권영화로 분류되는 현실이 놀랍다.

<다섯 개의 시선>은 인권에 대한 대중적 접근으로 시도되는 기획이다. 대중적 관심을 위해 인지도 있는 감독들을 섭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독의 대중적 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일 것이다. 관객이 많이 보느냐에 앞서 의도에 부합되는 좋은 작품을 만들었느냐가 우선되기 때문이다. 단지 차별문제를 소재로 했다고 해서 인권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권의식 없는 인권영화(?)는 오히려 많은 사람이 볼수록 해다. <다섯 개의 시선>에서 박경희, 김동원 감독의 작품이 더욱 더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를 국가인권위원회는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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