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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록이로부터의 전화

아파서 꾸역꾸역 전체회의를 버티고 있는 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잠깐 받았더니, 정록. "회의 중이라 조금 있다 내가 전화할께. 전화 받을 수 있지?"하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 전화 오기 전 확인한 메일을 통해서, 내일 재판 마치고 들어간다는 말을 들으니, 확실히 이제까지와는 다른 마음가짐이랄까. 이제 전화도 못하는 구나, 메신져에서 만날 수도 없구나... 연락 두절,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이 어쩌면 익숙할지도 모르는 동기들인데, 다행이다. "잘 다녀올께"하는 밝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다시 보자는 약속을 할 수 있어서...


․일상적인 유무형의 폭력이 만연한 곳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곳, 따라서 오직 번호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곳 ․생명까지 내맡긴 채, 철저한 위계와 폭압적 권위 속에서 살아야 하는 곳 ․여성에 대한 비하, 성적 대상화가 만연한 남성들의 공간 ․구체적 인간 개개인이 아닌 집단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곳 ․모든 시간이 오직 전투력 강화, 즉 살인기술의 강화를 위한 훈련으로 쓰이는 곳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는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 곳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반복하여 스스로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곳 ․그 결과, 인류 역사에서 있어왔던 수많은 전쟁(살인)의 행위자가 되는 곳 저는 군대를 이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병역을 거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와 같은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벌써부터 비난하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꽤나 극단적이군.” “가보지도 않은 군대에 대해서 안좋은 소리만 들었군.” “그 곳도 사람사는 곳인데...“ “저래가지고 사회생활 어떻게 하겠나.” 그렇습니다. 저는 군대 근처도 가보지 않았고, 사회와 군대는 꽤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민감하고 여린 사람들도 군대를 다녀온 것을 보면 군대가 사람 잡는 곳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군대는 사회의 폭력성, 남성중심성, 권위-위계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는 제 나름의 생활방식을 만들어가고 사회적 불평등, 폭력에 저항할 수 있지만, 군대는 둘 중 하나입니다. 거부할 것인지, 적응할 것인지. 적응하는 것, 익숙해지는 것은 저에게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고된 육체 활동으로 생각은 점점 적어지고, 군대의 살인훈련에 몸은 익숙해지는 것, 선임병이 되어 후임병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하는 것, 종국에는 전투명령에 저항하지 못하고 집단의 부속품처럼 살인의 행위자가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군대에 적응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성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군대의 폭력과 문화가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하고, 생명을 죽이는 어떤 짓도 하지 못할 것 같은 착한 사람이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군대의 폭력때문에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보다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입영영장보다 병역거부를 먼저 만났기 때문입니다. 병역거부를 선언한 저를 국가는 병역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감옥에 가두고 저의 양심을 교정하려하겠지만, 저는 군대를 거부한 저의 양심을 꿋꿋이 지킬 것입니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1만 명 이상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갇혔지만, 그들의 양심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회가 그들을 이단종교라고 매도하고 저와 같은 사람을 사회부적응자라고 비난하겠지만 군대가 존재하는 한, 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나올 것입니다. 비록 병역거부자들 한 명, 한 명의 힘은 미약하지만 제 목소리에 공감하고 군대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40년 전 베트남 파병군인은 멋쟁이 군인이었겠지만, 2005년 자이툰은 그렇지 않습니다. 군대는 남자라면 당연히 경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누구나 꺼려하고 그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집단이 될 것입니다. 2005년 10월 4일 오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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