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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이유

이번에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대학원생 모임을 한데에는 대학원 들어오기 전부터 지속되었던 고민이 있다. 사실 난 대학원에서 공부할만한 여력이 없는 사람이다. 학부 학자금 대출만 3천만원이 밀려 있고, 동생도 대학교 2학년 생인데 모든 학비는 대출로,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은 엄마 하나인 상태에, 아빠는...(더이상의 언급은 생략하고 싶다.) 동생, 엄마, 할머니, 사촌오빠, 모두가 내가 적당한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좋아서 취직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조건이 그렇게 만들어져 공부가 하고 싶어도 포기하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알고 있고, 내가 일종의 사치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난 아무래도 행복해질 것 같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 해가면서 돈을 벌어서 아빠가 진 빚을 엄마와 함께 갚아가며, 그돈으로 결혼하고, 애도 낳고 사는 것. 그건 내가 생각했던 삶의 상은 아니었다. 내가 아빠의 빚을 갚기 위해 위해 쓴 돈을 생각하면 얼마나 더 가족들을 위해 살아야 할까? 그래서 대학원 길을 택했다. 아마 난 결혼도 못하고, 남들처럼 비싼 옷에 화장품은 못쓰겠지만 그래도 이 길을 택하는 것이 좀 더 행복할 것 같았고 실제로 취직한 친구들의 삶과 이야기를 들어 볼 때 확실히 그 길을 택했을 때보단 어느 정도 행복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내 고민의 끝은 아니었다. 애초에 노사관계론과 고민하다가 보건대학원 길을 택한 이유는 이것이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노사관계론을 택한 내가 아는 몇몇 사람들은 좌파이고, 많은 고민 끝에 그 길을 택했지만 실은 자기 고민과는 별 상관없는 일들을 상당히 많이 해야 하고, 실제로 자신의 고민을 구체화하기에는 '경영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상당한 어려움이 많은 곳이다. 그에 비하면 보건대학원은 어찌됐건 공공성을 표방하고 있고, 나와 비슷한 의지와 관심을 가진 동지들이 상당히 있는 곳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내 연구의 결과물들이 실천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이다.

당장 만성병역학방에서는 한 선생님이 삼성반도체 공장의 작업조건과 노동자들의 질병 발생에 대한 패널 연구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내려고 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나, 이주노동자들의 건강에 관한 이슈들 등 당장 벌어지고 있는 투쟁에 함께 할 수 있는 연구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무엇보다 이 연구는 억압하는 계급에 의한 억압받는 계급을 향한 생명의 단축과 이 사회가 구조적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분야이다.

(주류는 안 그럴지라도) 어쨌든 대화될 수 있는 담론의 지평이 다른 분야보다는 훨씬 더 넓은 것이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대학원에 입학한 후 구조적인 어려움들을 목격한다. 학자금대출을 받아 대학원에 등록한 뒤 남은 100만원으로 기숙사비를 냈다. 생활비가 없다.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 상당수의 프로젝트들은 내 연구나 관심과 관련이 없다. 하지만 돈 벌려면 해야 한다. 정말 많은 대학원생들, 심지어는 교수님들도 겪는 문제이다. 멘토인 Waitzkin교수님조차 꼭 필요한 연구인데 펀딩소스를 구할 수가 없어서 의과대학에서 환자를 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장 내 지도교수님도 별론 본인의 관심사도 아닌 저출산 문제에 집중해 있다. 게다가 저출산 대책에 대한 정책연구라고 해도 공무원집단에서 원하지 않는 결과들은 모두 커트되니 연구자들이 과연 보람찰까? 학진도 건강형평성에 대한 연구는 커트하는 경우가 많고, 민간재단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서울대는 그나마 아니지만, 국내 다른 대학이나 미국대학의 보건대학원 연구들은 대부분 제약회사로부터 펀딩을 받으니 건강불평등이나 사회역학에 관한 연구자들은 어디서나 소수가 되고, 그나마도 재정문제와 고군분투해야 한다. 당장 이주자 건강에 대한 연구를 생각해보자.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 숫자나 그들의 열악한 작업조건과 임금, 90년대의 성비불균형으로 더욱 늘어날 국제결혼, 그리고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그에 따라 더욱 늘어날 이민자를 생각하면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매우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에 관한 연구는 현재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어느 민간재단이나 기업이 여기에 펀딩을 하려 들까?

 이런 상황에서 법인화가 줄 파장은 명백하다. 보건대학원의 많은 교수님들이 법인화를 찬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실제로 정책과에서 건강불평등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전공인 분들을 빼고 전부 법인화의 수혜를 입을 것이니 이해가 안되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돈 문제로 인해서 건강불평등이나, 사회역학과 같은 문제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연구자들이 대부분 포기하는 상황에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우리 연구실에서 'IMF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한국 중념 알코올 사망 불평등 추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한 선배는 나에게  하고 싶은 연구는 교수가 되서 하고, 일단 지금은 돈 되는 공부를 하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교육 공공성이 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가치인지 되새겨보았다. 물론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재정적 고민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 공공성 없이는 (그닥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자유주의적으로 말하자면) '학문의 다양성' 이 보장이 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퇴출될 것들은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분과들이자 그 무자비함과 비윤리성, 비효율성을 고발하는 연구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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