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조승희 사건으로 본 한미 문화 차이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에 미국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 묵직함의 온도는 뜨겁기보다는 차갑다. 번지고 있는 것은 분노가 아닌 추모의 물결이다. 오히려 ‘경악’을 넘어선 ‘자괴감’에 휩싸여 자발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은 한국이다. 가해자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국의 반응은 2004년 고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참혹하게 살해됐던 당시의 한국과 묘하게 교차된다. 시기와 상황은 다르지만 이성과 방향성을 잃은 살해라는 점에서 김씨 사건은 조씨 사건과 같은 분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반응과 대응은 달랐다.

 

당시 한국은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복수’와 ‘응징’으로 달아올랐다. 경찰은 “이슬람성원에 돼지피를 뿌리자”는 네티즌의 선동에 겹겹이 경비를 서는 데 급급했다. 실제 이태원과 부산의 이슬람성원에는 김씨 피살 이후 모두 세 차례의 침입ㆍ난동 사건이 일어났고, 전국 이슬람성원은 끊임없는 협박전화로 들끓었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던 이슬람국가 출신 사람들은 보복 테러의 공포에 떨었다. 김씨를 죽음으로 내몬 테러집단이 아니라 이라크 국민 자체 그리고 이슬람국가 모두를 또다른 테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한국 정부가 조문사절단을 보낼 의사를 타진하자 미 당국은 “그럴 필요 없다. 한국계 이민자가 사고를 낸 것이지 한국이 사고 낸 게 아니다. 모국이 상황에 끼어드는 것은 좋지 않다”며 고사했다. 이에 앞서 티모시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 역시 “앞으로도 아시아계 학생들을 차별대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지금 방향이 다른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다. 200만 재미동포의 사업과 10만 유학생에게 혹시 있을지 모르는 보복에 대한 우려다. ‘만약 이 사건이 한국 내에서 일어났다면’이라는 가정 없이도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목소리 아래 총기관리 시스템을 돌아보는 미국과 “하필이면 한국사람이라니”라며 조씨의 국적 논란이 벌이고 있는 한국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조문사절단 파견 제안에 미국은 “미국문화와 국민정서상 적절치 않다”며 거절했다. 이는 많은 민족과 문화가 경계 없이 만난 미국이라는 용광로의 단면을 보여준다. 입으로는 열린 사고를 강조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는 한국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해럴드경제 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