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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협동과정 폐지시킨 숙명여대의 ‘여성리더십’

 

여성학협동과정 폐지시킨 숙명여대의 ‘여성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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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가 여성학협동과정 설치 10년 만에 폐지를 결정했다. 한마디로 여성학의 위기적 징후다. 사실 몇 해 전부터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지원자들이 급격히 줄어드는 등 여성학의 제도적 생존은 이미 불안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여성학의 제도적 기반의 침식이라는 점을 넘어서서 여성학의 정체성 자체에 물음을 던진다는 점에서 ‘징후적’이다.


숙명여대는 폐지의 이유로 여성학 수요의 격감을 들면서 ‘여성학’보다는 ‘여성리더십’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여성학’이 ‘여성리더십’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신입생이 오지 않는 것 아니겠냐는 주장도 덧붙였다. 대학에 당도한 신자유주의적 재편 과정에서 학문의 존립 근거가 단시일적인 시장적 수요에 직결되는 논리가 어제 오늘의 일이거나, 여성학에만 국한되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숙명여대의 주장은 매우 이중적이다. ‘여성리더십’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책임을 ‘여성학’에 전가하고 대학의 역할은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일차적으로 협동과정이라는 제도적 틀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이화여대를 제외하고 현재 10여개 남짓의 여성학 관련 과정은 대부분 학제간(interdisciplinary) 프로그램, 즉 ‘협동과정’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협동과정은 논리상으로 봤을 때는 분과학문의 폐쇄성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학문의 경직된 경계를 넘어서고자하는 여성학적 연구에 있어 매우 유용한 체계다. 그러나 사실 대학의 제도적 운용의 측면에서 볼 때, 협동과정은 단순히 수지맞는 장사 수단에 그치고 있다. 협동과정은 과단위에서 요구되는 전담교원 등의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에 대한 부담 없이 손쉽게 설치되고 운영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투자’ 부담은 ‘협동’을 빙자하여 학생을 포함한 학내 여성학 공동체에 떠맡기고 성과만을 회수한다. 숙명여대측이 주장하는 투자 대비 효율성과 같은 시장 논리는 그 투자의 부실함을 생각해 볼 때 시쳇말로 ‘공정무역’조차 아닌 셈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논리들이 만들어내는 여성학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1990년대 여성운동과 여성학의 성장은 여성관련 국가 정책의 도입과 궤를 같이 해 왔고, 여성인력의 수요 증가라는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 과정에서 여성학은 여성리더의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여대의 경쟁 전략으로 적극 유치되었다. 여성학이 여성리더의 양성을 하나의 존립 근거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여성학 없이 여성리더의 양성이 가능하다는 숙명여대의 입장은 억견이다. 그러나 여성학은 또한 경쟁논리와 시장논리로 무장된 리더십을 해체하는 것 역시 자기 임무로 삼는다. 객관적이고 투명해 보이는 (취업)시장이 사실은 매우 젠더화된 조직 논리로 구성되어 여성을 배제하고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구성해 왔음을 제기하는 학문이 다름 아닌 여성학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개인의 자기계발식 성공을 추동하거나 유형화하는 것을 넘어서는 여성주의리더십의 개발과 학문적 연구가 진척되고 있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숙명여대측의 여성학협동과정 폐지의 논리에서 제기되고 있는 ‘여성리더십’은 여성학을 순시장기능적 역할로 축소시키는 것은 물론, 그에 기반하여 여성학의 위기를 호명하는 프레임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는 제도적, 관습적 차원의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기존의 수직적 소통 구조를 극복하고 대학 내에서 새로운 학문적 탐색을 주도하고 있는 여성학 공동체의 노력과 리더십을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학의 학문적 정체성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여성학은 젠더 분석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새로운 젠더관계의 방향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여느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목적이 취사선택될 수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시장이나 취업의 젠더적 효과를 오롯이 여성학이 떠맡아야 할 이유가 없다.


여성학의 정책실천력이나 현실대응적 순발력이 성과 못지않게 많은 한계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지에서 소위 여성학의 ‘위기’를 규정하고,  취업시장과의 연계를 주요 대책으로 내놓는 일부 의견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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