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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1
    운동판에서의 성차별... “너 아직도 그런 소리 하고 다니니?”
    womensol

운동판에서의 성차별... “너 아직도 그런 소리 하고 다니니?”

전소희


운동사회에서 여성들은 편해졌다


“운동판에서 가부장주의와 성차별은 여전해...” “남자들 끼리끼리 다 해먹으려고 해” “그거, 성희롱이야. 성폭력이야” “겉으로만 동지지 사실은 아냐”


예전에는 긴장을 초래하기도,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분노와 울분을 토하게 만들기도, 잔인한 침묵을 드리우기도, 욕설과 비아냥을 오가게 만들었던 이 말들은 이제 옛 것이 된 듯하다.


한편으로는 운동사회 내 성차별과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던 100인위의 영향으로 주요 사회단체들과 노동조합들 내에서 성폭력 내규를 만들어 신고받고, 대책위 구성하여 징계 내리는 것이 당연한 절차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운동판에서 나름 ‘승진’하는 경우도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남성들 스스로 문제가 될 만한 말과 행동을 자제하게 된 것도 있고, 문제가 될 만한 말과 행동이 나왔을 경우 여성들이 집단적 경고체계를 발동하여 대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보다 솔직해지고 도발적인 젊은 여성들이 운동사회 내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정파를 막론하고 몇 년 전에 비해 운동사회가 보다 덜 가부장적이 된 것도 사실이고, 여성들이 보다 덜 힘들게 활동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100인위’와 ‘성폭력’ 폭풍이 불어 닥친 지 언 8년. 운동판 말아먹는 미친년들, 계급혁명을 배신한 포스트주의자들, 신종 순결주의에 빠진 좌익소아병 환자들, 한 남자 인생 파탄내는 무서운 페미니스트들 - 당시 온갖 비난과 딱지에도 불구하고 100인위로 인해 운동(조직) 내 성폭력이 도마 위에 올랐고, 많은 단체 내 성폭력 내규가 만들어지는 성과가 있었다.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나름대로의 매뉴얼도 생겼고, 노하우들도 축적됐다. 여러 조직과 노동조합 등에서 그 동안 묵혀 있던 사건이 새롭게 조명됐고, 크고 작은 새로운 사건들이 고발되고, 공개되고, 논쟁을 거쳐 가해자가 징계됐다.


운동조직 특히 노동조합 내에서 차심부름시키거나, 여성이라고 특정 업무에서 차별을 두거나, 임신과 출산, 생리 등이 농담거리가 되거나 운동을 그만두게 만드는 문화는 다소 약해진 듯 하다. 요즘은 아무런 배려 없이 “부어라 마셔라”하면서 여성이 “꽃”이길 바라는 술자리 문화도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남성들이 어쩌다 “실수”하면 따 당하기도 하고, 즉석에서 문제제기를 받곤 한다. 그 동안 여성들이 투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확실히 상황이 나아진 것 같다. 또는 그런 듯하다.


운동사회에서 여성들은 편해졌다?


2008년이 막 시작된 지금 이 시점에서 여전히 뭔가 큰 공백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까지 쉴 날 없이 터졌던 각종 성폭력 사건들, 조직문화와 운동이념을 둘러싸고 논쟁 아닌 논쟁을 해야 했던 그 지긋지긋하고 상처깊은 시절이 그리울 일 없는데도 말이다.


온 동네 파장을 일으켰던 이런 성폭력 사건이 요즘 들어 뜸한 것 같다는 생각은 오로지 나만의 생각인가? 정말 운동판에서 성폭력이 근절된 것일까?


또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거나 여성을 소재로 한 모든 말과 행동이 “성”폭력이 되어버린, 그래서 오히려 아무런 긴장조차 불러일으키지 않는 아이러니는 또 어떻게 봐야 하나? “이런 말하면 성폭력인가?“ (그러면서도 한다.) ”그거 성폭력이야!“ (지적한 후 간단하게 웃고 넘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문제제기하지 않고, 문제제기할 명분을 찾지 못하는 사이 몇 년 전 징계받았던 가해자들이 어느덧 운동판에 자연스럽게 복귀해 있는 것은 이제 모든 상처가 치유되었고, 충분한 반성을 하였고, 용서받을 때가 되는 등 “적당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가?


이명박 시대 모든 사람이 살아가기 척박한 데 또 “여성” 문제 가지고 왈가왈부하기 싫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예전의 긴장감과 논쟁, 상처들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은 심리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굳이 지적하거나 지적당하지 않아도 잘 처신한다는 사고도 기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 또는 모든 것을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지적”하는 것(그리고 여유있게 웃어넘기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착각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차별이 없어지고 여성이 진정 ‘차이’로서 인정받으면서 마음놓고 운동할 수 있는 공간과 문화가 형성된 것일까? 정말 이제는 우리의 운동이 일상에서나 거대 이념에서나 여성의 해방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변혁으로 향하고 있는걸까? 혹시… 여성들 스스로 성희롱적, 성차별적 언어와 행동에 대해 분위기 깨지 않는 수준에서만 문제제기하고, “실수”였다고 인정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돌아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성은 물론이거니와 여성들조차 긴장을 늦춘 것은 아닐까? 차별이 차이가 되어가고 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 차이가 다시 차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조"와 "거대담론" 논하면서 은폐되거나 잊어진 것들


여성할당제가 일정 정도 시행되고 있지만 여성들을 위한 일상적인 사업과 구조적 변화를 위한 노력은 노동조합이든 사회, 정치운동 조직이든 여전히 부재하다. “생물학적 여성이 특정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조와 문화가 문제다!”라는 주장은 오히려 여성할당제조차 필요없다는 핑계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비정규직 80%가 여성이다“라는 말을 할 줄은 알지만 그 여성들에게 어떻게 다가서서 어떻게 주체화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은 별로 없다. 여성들이 각자 제 분야에서 열심히 하고 그 속에서 인정받지만, 그 특정 분야에서만 전문가이지 전체적인 기획은 여전히 남성들의 몫이다.


가부장적 위계질서 자체를 바꾸는 것은 오늘 내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그냥 영원히 지연시키는 사고도 여전하다. 생물학적 여성을 물리적으로 어느 특정 지위에 앉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조가 문제이며, 조직을 친여성적이고 페미니즘적 가치로 운영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결국은 생물학적인 여성도 없고, 페미니즘적 가치도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 아닌가? 가부장제라는 구조와 페미니즘이라는 거대담론은 있는데, 이제는 여성문제도 고민해야 한다는 언급은 있는데, 여성에 대한 착취와 차별을 일상적으로 재생산하고 지탱하고 있는 개개인의 행동과 말, 일상생활은 묵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구조”와 “거대담론” 속에 갇혀서 오히려 반동적인 행동과 말들이 은폐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삼스럽고 유치하기 그지없는, "운동사회 성차별, 성폭력" 다시 꺼내자


지금, 다시 스스로에게, 조직에게, 주위 동지들에게, 운동 전체에 따져보자. “운동판에서 가부장주의와 성차별은 여전해...” “남자들만 다 해먹으려고 해” “그거, 성폭력이야” “겉으로만 동지지 사실은 아냐” 어떻게 보면 세삼스럽고 유치하기 그지없고, “아직도 그런 소리 하냐”라고 문제제기 받을 만한 것들을.


피터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명박식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심화될 계급적대와 여성억압의 관계, 또는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계급주체의 부상과 보다 급진적 정치운동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지난 과거에 대한 또 한 차례의 반성과 성찰, 솔직함이 필요하다. 정치경제적으로 규정되는 성차별적 구조에 대해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성과 여성 개개인의 행동과 말, 이런 것들이 모여 구성되는 사회와 문화를 다시 곱씹어보는 법도 익혀야 할 것 같다. 소위 활동가로서 자기 행동이나 일상 하나 변혁시키지 못하면서 무슨 사회 변혁을 논하는가? 남을 탓하거나 남에게 유보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 이제 중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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