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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4호] <기고>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1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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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1년을 돌아보며

 

 

박현제(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정규직 투쟁이 일반 사업장 투쟁보다 어려운 것은 하청 사장과 원청을 상대로 싸워야 하지만, 원청 노조와의 관계가 더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청 노조는 우리 투쟁의 결정적인 순간에 연대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정리하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조를 통제하려 한다. 이러한 부분은 이상수 전 지회장과 농성 당시 얘기 한 적이 있다. 또한 이런 상황에 대비해 농성장 사업부별로 짧게나마 간담회를 한 적도 있다. 조합원이 버텨주지 못하면 지회장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조합원들이 해줘야 할 몫이라고...

 

  그렇다고 해서 집행부에게 면피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조합원이 흔들릴 때 집행부가 바로 잡아주는 것이 역할이다. 25일 동안 현대차지부 집행부가 농성장에 올 때 마다 지회장과 조합원들을 흔들어 놓고 갔다. 쉰 김밥연대로 허기진 조합원을 우롱했다. 지회장과 일대일 면담을 통해 투쟁을 정리하려 했고 보고대회를 통해 압박했다. 그 결과 지회장은 쟁대위 회의를 통해 정리하려 했으나 쟁대위 동지들이 잘 버텨 줬다.
  정규직 지부는 오히려 악의적인 여론 몰이와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투쟁을 방해 했다. 당시 우리 지회가 좀 더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지만 지회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것을 결정하는 지도부가 지부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것이 투쟁을 이어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농성을 접고 지회가 2차 투쟁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집행부의 비리가 폭로됨으로써 지회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후 비대위가 구성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비대위의 비리가 또 터지면서 우리 지회는 더욱 바닥을 치게 되었다. 하지만 더 문제 되는 것은 비대위가 노동조합으로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리사건 보다 비대위의 무책임한 집행이 조직력을 악화시켰다.
  그리고 현장과의 소통이 단절되면서 노조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 결과 현장 조합원의 신뢰는 떨어졌다. 현장 활동가들이 위축이 되어서 아무런 투쟁도 만들어 나가지 못했다. 또한 55명의 해고자와 500여명의 징계자가 나왔지만 체계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해고자들까지 생계 문제로 떠나가는 최악의 상황까지 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동안 노동조합이 전 사업부가 함께 한 투쟁(생산타격 투쟁)은 3번이다. 05년, 06년 그리고 2010년, 모두 3번의 투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전 두 번의 투쟁과 달리 2010년 투쟁은 다른 게 있다. 수습하는 과정에 기존 활동가들이 없다. 그 동안 역량 있는 활동가를 만들어 내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현장 활동가들이 올바른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과 함께 하기 위한 과정이 중요한데 그런 것을 놓칠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러한 문제점을 이젠 우리의 역할로 돌파하자. 우리의 실력을 확인하고 우리의 방향을 제시하고 만들어야 한다. 총회에 대한 고민은 그 발단이 여기서부터 시작 된 것이다.
총회기획단을 현장사람으로 구성했다. 총회에 260여명의 조합원이 왔다. 많은 동지들은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토론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어떠한 방향도 만들지 못했다. 어떠한 결정도 못했다. 진행상의 여러 문제점도 있었다.

 

  이번 총회의 가장 큰 성과는 현장의 동지들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현장을 조직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간담회, 보고대회, 식당 선전전을 진행하며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찾고 있다는 게 나름의 성과이고, 이것은 분명 이전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당장의 대중 파업이 안 될 지라도 우리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총회준비 과정에서 보여준 현장조합원의 노력은 이후 우리 투쟁의 시발점이다. 현안 문제 대응을 통해 조직력을 복원해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을 움직일 수 있는 활동가를 키워야 한다. 비대위만이 아니라 이후 집행부가 구성되더라도 역할 할 수 있는 동지들을 만들지 못하면 지금의 비대위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전 집행부의 비리는 이러한 활동가가 없고 또한 지회의 운영 방식이 너무 체계화 되어 있지 않아 언제나 또 터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과정에서 올바른 활동가들이 올바른 집행부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명분이 아니라 차근차근 정비를 해서 이후 뭔가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고 오기만 기다린다면 잡을 수 없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우린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최병승 동지의 파기환송심 판결도 남아 있고, 지노위 판결도 남아 있다. 판결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현대차가 지켜내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비대위는 전 사업부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상수 전지회장의 탄원서로 인한 3.4공장과 엔진 변속기가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통합사업부는 조직조차 못하고 있다. 이후 이 문제를 빠르게 수습하여 전 사업부가 같이 하는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통합사업부도 조직을 하여 이후 투쟁의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
  당장의 현안 문제인 3공장 신차투입 문제, 생관 외주화 전략에 대한 대응은 반드시 해야 한다. 2, 3차 업체도 같이 조직해서 외주화 대응을 함께 해야 된다. 2, 3차 업체도 조합 가입의 대상이고, 조합원이 있다. 노동조합 조직력 확대를 위해서 대응해야 한다. 더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외면하면 안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방법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핑계만 한다. 고민하고 만들지 않는다면 점점 더 망해가는 지름길이다.
실패는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고 해야 될 일도 만들어야 한다.
당장의 큰 투쟁을 못 만들어도 하나씩 만들어가자, 그것이 2차 파업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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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4호] <간담회 후기> 현자 비지회 집회 신고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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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 후기> 현자 비지회 집회 신고투쟁

 

 

김병효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월 15일은 작년 겨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새벽 울산에서 몇몇 동지들이 상경했다. 현대기아차 본사 앞 집회 신고를 위한 것이었다. 15일 도시락을 사들고 서초경찰서 민원실을 찾았을 때 울산에서 상경한 8명 동지들 앞으로 사측에서 고용한 집회 신고 알바(?)들 30여명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사측에서 파업 1주년 및 비지회 총회를 염두에 둬서인지 총회 일정이 다가오면서 집회 신고 용역 수를 대폭 늘렸다고 한다. 집회 신고조차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한 현실이다.

 

   11월 20일에는 비정규직 지회의 총회가 열렸다. 파업 1년, 다시금 투쟁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11월 24일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은 서초경찰서에서 집회 신고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비지회 동지들과 2010년 투쟁에 대한 간략한 평가와 총회를 전후한 비지회 상황과 향후 투쟁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간담회를 가졌다.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

 

  지난 투쟁을 돌아보는 것은 다시 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올 초 2차 파업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얼마 전 총회를 기점으로 해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시금 내년도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2010년 투쟁을 마무리하며 이미 여러 평가글들이 제출되었고, 조합원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토론을 진행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주요 쟁점들이 간담회에서 토론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간담회에서는 먼저 2010년 비지회 투쟁의 시작부터 이 투쟁에 연대, 지원보다는 온갖 방훼와 기만을 일삼은 이경훈 집행부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당장 올해 한진 투쟁에서도 채길용 집행부가 어용 짓거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민노당, 금속노조에서 이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지회의 한 동지는 투쟁 당시 이경훈의 태도에 대해 지회 및 연대세력이 모두 나서서 공격해야 했는데, 비정규직 주체들에 맡겨버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당장 현대자동차의 경우 비지회와 정규직 노조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투쟁시 정규직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비정규직은 직접 당사자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지부 집행부를 비판했을 때 정규직이 외면할 수도 있다는 견해였다. 그리고 어용 세력이 이런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라 했다. 당시 노혁추를 비롯해 많은 정치조직에서 입장을 수차례 내긴 했지만 그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 대공장 집행부 권력이 철옹성처럼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규직 활동가들 혹은 현장조직들조차 관료적 구조 속에서 목소리를 못 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술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11월 15일 시트 점거 파업과 관련해서 파업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속노조 내에서는 연대파업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회의가 있었다. 금속 파견 대의원인 쌍차 동지들은 연대파업은 당연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저런 조건부 파업 대신 아무 조건 없이 구체적인 날짜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있다. 쌍차 투쟁 당시 경찰과 용역들의 공장 진입에도 불구하고 공장 진입이니 아니니 하면서 연대파업을 현실화시키지 못했던 경험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특히 황인화 동지 분신 시점에서 적극 진입투쟁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분신 이후 1공장 담벼락 뚫고 넘어섰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제기였다. 물론 지회 동지들이 벽을 뚫는다 해도 집회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단위들이 지회 동지들의 투쟁에 바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부를 설득해서 같이 가자고 하면서 현장에서의 판단을 꺾어버리는 것이 언제부턴가 정상적 시스템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쉽지 않은 문제였다. 분신 당일에 지회 동지들의 투쟁 요구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경훈이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연대 동지들은 돌아가시라고 하면서 투쟁 요구를 꺾어버렸다. 지회 동지들은 당시 지부에 너무 짓눌려 있어서 독자적인 전술 기획을 못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어쨌든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은 요구사항을 관철시키지는 못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투쟁의지를 충분히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97, 98년 정리해고 도입 이후 비정규직 철폐는 구호일 뿐이고 실제로는 “차별 철폐” 주장 정도인 상황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실질적 과제로 제기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8대 요구로 표현되는 핵심적 주장과 함께 완강하게 공장점거 투쟁까지 진행한 것이다.
 


비지회 선거 무산의 의미

 

  지난 8월에는 비정규직지회의 4기 집행부 선거가 있었다. 과반수 부결로 결론 난 선거 결과는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간담회에 함께 했던 비지회 동지들, 특히 비지회 투표 및 선거 개표에 참여했던 한 동지는 선거 전반에 대해 강하게 의혹을 제기했다. 현자 비지회 조합원들의 일반적 정서가 후보자가 마음에 안 들면 아무리 문자나 직접 투표 독려를 해도 투표 자체를 안 하는 것이고 7년 이상 그래왔고, 어용 후보의 단독 출마시에도 반대표가 30~50 수준이었는데, 이번에 870 가량 투표 가운데 531명이나 반대를 찍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구체적인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투표 당일 투표소별로 투표함이 왔는데 어디 사업부인지 표시도 없고, 투표함도 박스에 구멍 뚫어서 만든 조잡한 투표함이었다. 전체 투표 용지에 일련번호가 있어야 하는데 각 투표소마다 1~100 이런 식으로 동일한 일련번호가 부여되었다. 투표가 17시 종료인데, 그때 각 투표소별로 선관위원들이 선관위 사무실로 가지고 와야 하는데 선관위원장이 투표소 돌면서 수거해서 1공장에 모아다 놨다. 그리고 그걸 다시 사무장이 선관위로 가져왔다. 그 과정조차 제대로 본 사람이 없다. 개표 과정에서 투표소별 인원, 투표수 확인을 해야 하는데 한 데 다 섞어서 개표를 진행했다. 또 투표용지가 낱개로가 아니라 뭉텅이로 집혀서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전 과정에 대해 대한 선관위 회의 내용 및 결과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선거 개시와 동시에 선관위가 선거 기준을 마련해서 공지했어야 하는데 이 과정도 없었다. 금속노조에 진상 조사를 요청했고, 실제 진상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선관위는 몰라서 그랬다고 답했다고 한다. 여태껏 선거 과정을 거쳤는데 몰라서 그랬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어쨌든 금속노조의 진상 조사 결론은 의심은 많으나 물증이 없어서 유효한 선거로 결론짓고 말았다.

 

  선거 이후 설문을 통해 500명 이상이 선거 과정에 문제 있다는 의견과 서명을 제출했다. 작년 투쟁 이후에 다시금 집행부 정상화에 대한 조합원들의 기대가 높은 상황, 그리고 이를 보여준 서명 결과, 그리고 이와 배치되는 선거 결과. 하지만 이 선거는 여전히 의혹으로만 남아 있다.

 


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준 총회

 

  2차 파업 전후한 재정 비리와 8월 선거 무산에도 불구하고 비지회 동지들은 파업 1주년을 맞아 11월 20일 총회를 진행하고 또 다시 새로운 투쟁을 모색했다. 지난 총회에는 300 좀 안 되는 인원이 모였다. 총회 당일에는 당장 인원만 보고 실망하는 동지들도 있었지만 지난 총회 이후 오랜만에 각 사업부별 대표들도 다 모였고, 특근 잡혀서 못 나온 동지들, 집회 신고 투쟁으로 상경한 동지들도 있고 해서 실제로 300 이상이 총회에 뜻을 모았다고 하는 평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총회 자리에서 그간 궁금했던 재정 비리 문제와 그에 따른 변제 문제가 질의응답을 통해서 많이 해소되었다고 한다. 재정 문제에 관해서는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고, 횡령에 대해 조합원들의 분노가 높은 상황이었으나 대의원대회 결정에 따라 집행하고 변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총회를 앞두고는 설문 형태로 조합원들 의견을 수렴하고 소자보, 홈피 등을 통해 공개했다고 한다. 작년 투쟁 이후 현장 출입도 안 되고, 복귀한 조합원들도 조반장들 눈치 보느라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 설문 조사 형태로 진행을 한 것이라고 한다. 이 설문에서도 조합원들의 투쟁의지가 여전히 남아있으며, 빨리 지회 집행부 구성해서 자리 잡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지노위의 부당해고 판결

 

  두 달여 전에 충남 지노위에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해고 판결이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해고 초창기에 부당해고 건에 대해 지노위, 중노위에서 다 졌기 때문이다. 2004년 불파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노위, 중노위에서 뒤집혔다.

 

  그런데 최근 아산 판결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 아산 판결 나면서 현장 동지들이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해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측도 충남 지노위 결과 이후에 부산 지노위 판결이 아산처럼 나오면 불리하니까 법무법인 김&장까지 투입했다. 지노위 심리 과정에는 조반장들을 사측 증인으로 투입해서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아산이 2달 전에 지노위 판결이 난 반면, 울산의 지노위 판단이 늦어지는 것은 심판 청구 자체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회 동지들은 지노위 청구를 두고 논란을 거쳤다. 이미 불법파견 정규직화 판결이 난 상황에서 지노위로 가는 게 맞는가 하는 논란이 있었는데, 생계 문제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고 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데 구직활동 대신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 것이다. 그나마 실업급여도 해고 직전 파업으로 인해 최저치만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장에 해고자 중에는 실업급여가 끝나고, 금속 신분보장기금도 기금 부족으로 두 달 지급된 후에 중단되어서 아침 출투에 참여한 이후 낮에 생계활동 하는 동지들도 많은 상황이다.

 

  지노위 승소할 경우 생계로 어려움을 겪던 동지들이 다시 움직일 계기가 되겠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지회 동지들은 지노위 판결 자체가 중노위, 법원으로 이어질 텐데, 당장 기대 심리 말고 실질적인 생계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많은 동지들이 생계에 나서거나, 아침에 출투 결합하고 생계 나가거나 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비지회와 달리 현대자동차 지부의 경우 단협에 따라 지노위 결과에 따라 일단 복직시켜놓고 중노위 판결에 따라 다시 논의를 하게 된다. 비지회 동지들의 경우에도 충남 판결이 대법 판결 영향으로 업체가 해고할 수 없다고 결론 낸 것이고, 부산 지노위에서도 다른 결론이 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규직화는 아니더라도 원직으로의 복직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조합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지회 내부 토론은 진행한 바가 없고, 비투본 회의에서 이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논의된 바가 있다고 했다. 업체로 복직하고 이후 조직화를 꾀하자는 의견, 정규직으로 가야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당장 사측에서 그런 안을 내거나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는 아니지만 많은 동지들이 일단 현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간담회에 함께 했던 동지들은 대법 소송과 관련이 없다면 현장에 들어가 버텨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현장 복귀의 의미에 대해 한 동지는 현장에 복귀하는 것이 단순히 현장에 돌아가 일하고 돈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장 조합원들에게 힘들게 사는 모습이 아니라 현장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지노위 판결 이후로도 사측은 이를 받아들일 의사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아산에서 판결 이행을 요구하며 피케팅이라도 하려들면 바로 용역들 주먹 날아오는 상황이다. 사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시간을 끌면서 법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회가 다시금 투쟁에 나서면서 당장 지노위, 중노위 판결을 압박하는 것과 별도로 판결 이후 계획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현장권력

 

  간담회를 진행했던 24일 바로 다음 날은 신임 지부장 취임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앞서 지난 투쟁 과정에서의 지부-지회 관계에 대한 질문에 이어 신임 지부 집행부와의 관계 및 전망에 대해서 물었다. 지회 동지들은 신임 지부장이 당선 일성으로 3가지 의제를 가지고 CEO 만나서 이야기 하겠다 했고, 그 가운데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가 들어 있다는 점을 들어 상당한 기대감을 표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작년 지부와의 관계를 돌이켜보면 4대 요구안/ 8대 요구안 문제로 지회와 지부가 충돌했었다. 신입 지부 집행부가 소위 민주파라 하더라도 요구안을 둘러싸고 대립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향후 투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민감하고 딱딱한 문제이긴 하지만 당장 부딪쳐야 할 문제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그래서 향후 투쟁 요구를 둘러싸고 지부와 지회의 관계 설정 혹은 사전 조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재차 질문했다.

 

  몇몇 동지들은 신임 지부장 취임 이후 지회와 간담회를 진행할 것이고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조율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아쉬운 점으로 지부와의 관계에 있어서 신임 지부장이 당선되자마자 비지회 총회 때 발언 혹은 글도 요청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을 짚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지부/ 지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권력의 문제였다. 즉 이후 투쟁을 준비하면서 문제가 비정규직 동지들이 투쟁에 나서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보다는 정규직 어용이 현장권력을 해체해버린 결과 투쟁을 조직하는 것조차도 어려워진 것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경훈 어용집행부 하에 있다 보니 원하청 업체의 현장 장악력이 높아져서 밖에서 어떻게 투쟁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현장에서는 아무런 논의조차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사측 관리자들이 라인 지키고 있고, 회사 출입시 시위용품 검사를 아직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해고자들이 조합원들과 만날 기회도 없고 밖에서 투쟁을 준비한다 하더라도 현장의 동지들이 논의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사측이 현장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회 동지들이 신임 지부 집행부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히 비정규직 투쟁을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움직일 수 있도록 대응해 주라는 것이었다. 즉 정규직의 현장 장악력을 높이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숨통의 틔워주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 정규직 대의원조차 하청 사장한테 밀리는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기했다.

 

  지회 동지들은 요구안과 관련해서는 8대 요구는 변함없으며, 이를 훼손시키는 순간 더 큰 후회를 할 것이라고 했다. 당장 8대 요구에 수정을 가할 경우에 현장 조합원들이 지회 집행부의 투쟁의지에도 의문을 품을 것이라고 했다.

 

 

집회 신고 투쟁의 의의와 향후 투쟁 전망

 

  마지막으로 지회 동지들에게 집회 신고 투쟁의 의미와 이후 투쟁 계획에 대해서 물었다.

 

  지회 조합원들 대부분이 생계 문제 걸려 있고, 젊은 나이에 가장 역할을 못하는 데서 오는 자괴감, 투쟁 전망의 불투명함, 이런 것들이 겹쳐있는 상황에서 계획이고 뭐고 일단 뭐라도 해보자고 상경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 말기, 누적되는 사회적 불만 등이 희망버스 투쟁, FTA 투쟁 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유리한 정세이기도 하고....

 

  하지만 지회 동지들이 투쟁의 전망을 낙관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소위 진보정당들은 물론이고 제 단체들 및 노동조합이 선거에 휩쓸려 들어가면서 실질적인 투쟁이 뒤로 밀려날 가능성, 그리고 내부적으로 작년 투쟁 이후 비정규직 동지들의 상처들이 너무 크다는 점 때문에 내년 투쟁의 가능성을 확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당장 이번 집회 신고 투쟁을 두고도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총회, 그리고 이번 집회 신고 투쟁을 계기로 해서 다시금 투쟁의 전열을 가다듬고 힘찬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 요구를 전면화 하면서 실질적 투쟁을 통해서 정규직화를 쟁취하고자 하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동지들이 다시금 투쟁의 불씨를 되살리는 데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도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간담회 후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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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4호] 반혁명인가 계속혁명인가의 갈림길에 선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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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혁명인가 계속혁명인가의 갈림길에 선 이집트

 

 

김병효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1년을 대중투쟁과 혁명의 해로 만드는 데 선봉장 역할을 한 중동혁명의 중심으로 전 세계 노동자 민중들에게 영감을 준 이집트혁명! 이 혁명이 지금 패배의 위험에 처했다.

 

  11월은 이집트혁명에 또 하나의 결정적인 달이었다. 다시 한 번 타흐리르 광장이 수십만 명의 시위대로 꽉 찼다.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인원이 알렉산드리아와 수에즈, 마할라 알 쿠브라 등 여러 도시들에서 거리를 메웠다. 다시 한 번 유혈 충돌로 시위대 수천 명이 죽거나 다쳤고, 이 때문에 과도내각이 군부에 사퇴서를 내고 전격 퇴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모하메드 탄타위 군사령관(현 군사최고위원회 의장)과 군사최고위원회가 물러나고 민간인 “구국정부”에게 즉각 권력을 이양하라는 시위대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에 카말 알 간주리를 수반으로 하는 또 하나의 군부 지명 내각이 들어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십, 수백만 명이 연일 거리 시위와 광장 점거에 나섰지만 아무 가시적 성과도 쟁취하지 못했다. 훨씬 더 불길한 것은 며칠 뒤인 28-29일에 있은 1단계 총선(총선이 3단계로 구성되는데 1단계가 하원 선거이다)의 결과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반혁명에 커다란 성과를 안겨준 선거라고 평가했다. 무슬림형제단의 정치 프론트인 자유정의당이 가장 많은 36.6%의 득표율을 획득했고, 살라피스트(이슬람 근본주의) 조직들의 연립정당인 누르당이 24.4%로 2위를 차지했다. 자유주의자들의 연합체인 이집트블록은 13.4%를 얻었다. 반혁명의 또 하나 리트머스 시험지였던 이번 선거에서 여성에게는 단 한 석도 할애되지 않았다.

 

  지난 2월 무바라크 퇴진 이래, 이집트 민주주의혁명은 권력을 구체제의 장군들 손에 그대로 놓아 둔 채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이 더욱더 분명해지고 있다. 군부가 지명한 정부 대신 이슬람주의가 지배하는 정부나 또는 심지어 “구국전선” 정부 -- 이슬람형제단과 자유주의자들로 구성되는, 그리고 타흐리르 광장 점거를 이끈 청년조직들의 몇몇 명목상의 대표자들이 포함될 가능성도 있는 -- 가 들어서더라도 노동자와 청년, 여성들에게 절실한 민주주의혁명의 요구들이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지금 이집트에서 제한된 민주적 자유나마 존재하는 것은 오직 대중들의 광장점거와 대중파업 덕분이다.

 

 

최근의 투쟁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최근의 격렬한 가두투쟁은 주말인 11월 19일에 있었는데 이날 시위대는 타흐리르 광장에 다시 텐트를 치려고 했다가 폭동진압 경찰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혔다. 이 소식을 듣고 수천 명의 청년들과 노동자들이 광장에 몰려와서 경찰을 내몰고 마침내 광장을 탈환, 다시 점거했다.

 

  수에즈와 알렉산드리아, 만수라, 마할라 알 쿠브라 같은 도시들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거리의 항쟁으로 30여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고무탄과 산탄, 심지어 실탄까지 쏘아 댔고, 시위대는 짱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이에 맞섰다.

 

  탄압 조치들과 함께 헌법을 개정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군부의 노골적인 시도가 2월혁명을 일궈낸 대중운동을 재점화 시켰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 12,000 명 이상의 민간인이 군사법정에 구인되었는데 이 숫자는 무바라크 30년 독재 전 기간 동안의 숫자보다 많은 것이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서 신음하고 있다. 한편 콥트 기독교도들에 대한 종교적 증오를 부채질해서 종교 간 충돌과 학살을 유도하려는 사악한 시도들이 계속되었는데 그 배후에 군부가 있다는 증거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11월 초에 신헌법 초안이 공표되었는데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군부에게 관리감독자 역할을 보장해주는 내용이었다. 군대와 군대 예산은 민간인 통제로부터 완전 면제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설픈 수라는 것이 드러났다. 노동운동과 좌파로부터의 항의와 저항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무슬림형제단을 소외시켰다. 무슬림형제단은 군사최고위원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사실로 말하면 그들은 2월 이래 협력을 시도해 왔지만, 대중들한테 자칫 그렇게 비쳐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다만 조심스러웠을 뿐이다.
 
  특히 이슬람주의 청년운동 조직들이 군사최고위원회의 헌법 개정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 조직 중 많은 조직이 무슬림형제단 총선 명부에 청년층 후보를 더 많이 배정해 달라고 과감하게 요구했다가 형제단으로부터 축출 당했다. 민주주의 슬로건을 중심으로 이슬람주의 청년층이 급진화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좌파에게 유리한 사태 전개로서 적극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종교법에 대한 그들의 반민주적 요구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타협해선 안 된다. 그런 타협적 적응이 아니라, (여성과 기독교도 등을 포함한) 모든 인민을 위한 민주적 제권리와 노동자 농민의 당면 요구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전선으로 그들을 견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월 29일, ‘혁명적 섬유노동자연맹’이 타흐리르 광장 점거자들에게 선거에 대당하는 카드로 민중혁명평의회를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무슬림형제단과 누르당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선거를 통해 획득한 그들의 “민주적” 권한을 사용하여 광장의 혁명적 청년들과 새 독립노조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려고 할 것이라며, 이러한 위험에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혁명에서 어느 하나의 전술을 물신화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정세가 다르면 같은 전술이 전위와 대중을 함께 융합시키기보다는 전위를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다. 대중의 눈에 2월의 무바라크와 11월의 탄타위 모두 권력의 끈을 계속 틀어쥐고 있는 것은 “정통성”이 없었다. 그러므로 광장 점거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과, 그리고 대의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그들의 결의가 수백만 대중을 전취해 낸 것이다. 오늘 선거의 “정통성”은 (몇몇 점들에서 부정선거였다 하더라도) 이슬람주의자들이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위험은 그들이 이 지지를 이용하여 좌파와 전투적 노동자 전위들에 대한 탄압을 전면화하는 것이다.            

 

  대중총회와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광장에서 평의회를 선출하는 것은 대중투쟁의 고조기에 확실한 유효성을 가질 수 있다. 그 평회의가 공장과 노동자 민중 거주지에서 그러한 기관의 창설에 영향력을 미치고 자극을 끼칠 수 있다면 특히 타당성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11월 말에 탄타위와 군사최고위원회를 끌어내리는 데 실패하고 선거 국면에 들어가면서 광장 점거 대오가 수백 명으로 줄어드는 결과가 났다. 진정한 대중투쟁기관이려면 -- 대중권력기관은 차치하고서라도 -- 평의회는 공장에, 도시의 가장 가난한 지구들에, 나아가 마을과 병영에도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평의회가 의회보다 대중적 영향력에서 우위를 가지려면 말이다. 평의회는 민주주의 요구들뿐만 아니라 사회 · 경제적 요구들을 위한 대중운동의 일부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그러한 요구들을 내걸고 파업투쟁에 나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투쟁은 결정적인 시점에서는 전면 총파업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조합원 1400만 명의 이집트 독립노조연맹이 11월에 노동자들에게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에 참가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제도권 공식 노조에 소속해 있거나 아니면 미조직 상태로 있다. 독립노조 활동가들과 혁명적 청년 활동가들이 모든 주요 현장을 돌면서 노동자들에게 대중집회를 열고 요구들을 정식화하고 시위를 조직하고 공장평의회를 선출하라고 호소,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장군들이 겁내는 것이다. 11월에 군사최고위원회 위원인 모흐센 엘 팡가리 장군은 인기 있는 TV 채널 알-하야트에 나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파업, 백만행진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목적은 국가의 동량인 군대를 뒤흔드는 것입니다.”
  그렇다. 목적은 독재권력이 혁명을 분쇄할 수 있기 전에 먼저 독재권력의 대들보를 깨부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군대의 사병들을 전취함으로써만 가능한데, 그들이 노동자 농민들과 더불어 새 이집트를 세우고 혁명을 남아 있는 다른 독재체제들로 확산시키는 데에 민주적으로 가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총파업 · 평의회 · 봉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2차 혁명”은 탄타위와 장군들의 철저한 청산과 장교단과 경찰의 해체뿐만 아니라 사병들에 의한 모든 장교 선출, 헌법제정회의에 파견할 소환 가능한 대표자 선출과 함께 근로주민들의 가장 절박한 경제적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조치를 즉각 실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총파업이 대중적인 민중봉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해낼 수 있음을 역사적으로 입증한 바 있는 조직, 즉 노동자 병사 농민 평의회의 창설이 또한 필요하다. 평의회 창설은 한편 대중적인 노동자·청년 정당방위대 구성을 요구한다. 정말이지, 평범한 대다수 이집트 인민 대중이 그들의 긴급한 경제적 사회적 필요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혁명을 경험할 때에 비로소 혁명은 진정으로 멈출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혁명 전위세력들은 이것을 강령으로 구축해내야 한다.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가 권력을 자신들의 손으로 움켜쥘 때까지 혁명을 상시적인 것으로, 계속혁명/영구혁명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세워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혁명은 일체의 반혁명 -- 자유주의 자본가 독재든 이슬람주의 독재든 또는 복고한 군부독재든 -- 으로부터 안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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