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인간의 영악함과 이기성에 대한 의문이 올라와서 머릿속과 마음속을 괴롭혔다.

 

세상에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고

또 이해할 수도 없는 거라...

의문을 물고늘어져봤자 마음 다치는 일일 것 같아

도려내고 안되는건 덮어두려고 하지만

어쩐지 계속 슬퍼지는 거다.

 

 

진정한 미안함이 존재할 수 있을까.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어떤 상황에,어떤 관계들 속에서 발생하느냐에 따라 다를테지만,

그래도 그 미안함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진득한 관계들 속에서

사람들은 미안함을 갖는게 싫어서 여러가지 이유를 들이대거나, 승화시킬 시를 지어대지만

결국은 그 감정이, 상황을 만들어낸 자신이 두려운 것 뿐...

역으로, 미안한 일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는 것 또한 진정한 미안함은 아닌것 같고.

 

 

남편과의 관계가 빚어낸 삶의 질곡에 서글퍼하던 한 친구는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로, 그 긴 시간과 노력과 외로움들이 위로될지는 모르지만

그 감정, 마음의 진정성이라는게 사람에게는 참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아마도 그 친구는 그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약이 되지 않았을까..

(그걸 주지 못할걸 알기 때문에 원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더 복잡하게 들어가지는 않으련다)

 

 

머리로만 알았지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데 말이지...

존재는 우주다. 그래서 관계는 우주다.

아무리 쿨하다 하더라도,

아무리 인간이 고독한 존재라 하더라도.

(고독은, 그만큼 많은 욕망을 갖고 있기에 생겨나는 듯하니, 관계와 뗄수 없을듯.)

그래서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갖게 되는 상황도

그 감정을 느끼고픈 상황도 생기는 거다.

 

 

미안하긴 하니?라고 물었었다.

너에게는 미안한 감정이라는게 있기는 하니?였던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들이 차고 차서

도저히 품어안을 수도, 참을 수도 없어졌을 때.

 

지나간 시간이 휘몰아치고 지나갔다.

배려, 양보, 희생.

너무 많았구나. 원하지도 않는데, 관계를 위해 요구받았던 것들.

상처를 줄여보고자, 서로 맞추다 힘들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내놓은 마지막 인간적 예의에

돌아온건.

영악함과 파렴치한이라는 단어의 존재에 대한 첫 감사.

... 난 진정한 배려를 받은 적이 없었나보다.

 

그랬었다.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받고 싶었던 때.

그 기회를 주었을때

그 기회를 잡고는 끝까지 이기적으로 가지고 가는 사람을 보며

슬퍼졌던 거다.

 

사회에 관심을 갖고 변혁하고자 하는 이에 대한

어떤 도덕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상황을 받아들이는게 더 힘들었다.

누구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구나.

그걸 포장하고 드러내기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도 그러했는지 모르겠다.

운동사회도, 모든 집단도 개인도...

그렇게 생각하면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근데

미안함은 뭘까.

미안함을 기대하는 마음을 뭘까.

이 빌어먹을 꼬리들.

그래서, 양심에, 도덕에,  잡을 수 없는 것들에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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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1 10:45 2012/10/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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