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려치기란

분류없음 2016/03/31 00:44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었을 땐 나름대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두 가지 정도 유추할 수 있는 목적은 첫째, 왕권강화 (신권/사대부 권한 약화) 둘째, 본인의 재미. 

일단 사람들이 글을 쓸 줄 알고 어떤 글이든 그 내용을 읽게 되면 (정보를 획득하게 되면) 그게 대체 뭔지 분석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이치,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사대부의 노예로 살지 않고 독립적으로 기능하게 되면 그만큼 세금도 많이 걷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사대부의 권한은 축소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글창제는 세종이 비사대부계급과 연대한 정치행위로 된다. 그래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이들이 왕권에 도전하면? 그 때엔 사대부계급과 연대하면 된다. 정치는 그때그때 달라요. 이것을 간파한 최만리 등의 사대부들은 강력하게 저항한다. 그 유명한 여섯 가지 조목의 상소문을 내걸고 싸운다. 하지만 상소문의 내용을 보면 임금아 너그 권력 키울라고 너 그거 지금 만든거지, 따위의 내용은 없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명분" 투성이다. 정치는 명분이니까.

둘째 이유는 본인의 재미를 위해서. 세종은 알려졌다시피 엄청난 학구파로 특히 언어학+음성학에 비상했다. 어쨌든 한글을 만든 세종에게 엄청 감사. 이 쉬운 알파벳을 발명하신 점에 감사할 따름. 그런데 한편으론 의미가 담긴 한자 (표어?문자, logogram) 를 쓰면 더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을 문득문득 하는 것도 사실이다. 간혹 중국인들과 필담을 나눌 때 그런 생각이 스친다.   

 

 

 

일찍이 최만리 같은 우리 조상님들께서 일찍이 간파했던 것처럼 일무리의 사람들을 통제-착취, 후려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정보를 차단하는 방법이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한반도에서는 옛날부터 반상제도 같은 계급을 둬서 이른바 양반계급이 정보를 독점하는 명분을 설명했다. 계급제도가 형식적으로 철폐된 뒤에도 이 흐름은 변하지 않았는데 가장 가까운 예로 여자아이를 낳으면 국민학교 공부만 시키거나 아예 학교에 들여보내지 않았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반면 공부를 하지 못한 그 딸들은 대처로 나가서 오빠나 남동생, 집안의 아들들이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돈을 벌었다. 먼 일이 아니다. 1970년대, 1980년대까지 이런 일이 흔했다. 또 다른 예로는 여성들에게 성 (Sex; Sexuality) 에 관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좀 다른 게 - 이불 속에 들어가 딸딸이를 칠 수도 있고 또래들끼리 모여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으니까 공부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처럼 대놓고 말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여성에 성에 관해서는 아예 이들이 애초부터 알 수 없도록 했다. 담론을 조성했다. "여성의 성욕은 없고, (따라서 오르가즘도 없다) 밝히면 나쁜 년이다. 시집가면 알게 된다" 여성들이 아예 아무 것도 모르니까 통제하기가 편했다. 시키는대로 잘 움직였다. 후려치기도 쉬웠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꽃개에게 "철들기 전에 (시집을) 보내버렸어야 했는데"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철이 들면 후려치기 어렵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남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이민온 한 여성 클라이언트. 십년 전에 이민와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이 나라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학교다니는 시간 외에는 철저하게 아버지가 통제하는 삶을 살았다. 친구가 없다. 중고등학교를 이 나라에서 다닌 것에 비해 말하기 (영어) 를 잘하지 못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집안을 대표해 혼자 단식을 했다. 얼굴도/나이도 모르는 같은 나라 출신의 어떤 남자와 정략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스물 세살인데 영양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직 중학생으로 보인다. 어찌어찌하여 구출되다시피 해서 꽃개가 일하는 곳으로 왔다. 갑자기 정보가 쏟아져들어오니까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권리, 이 나라 시민으로서 권리, 그리고 동시에 타인을 존중해야 할 의무... 은행 계좌를 만드는 방법 (과거에는 아버지가 만든 계좌로 생활보조금이 다 들어갔고 당연히 아버지가 그 돈을 집행했다)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지출 계획을 세워야 하는 방법... 다 모른다. 나이는 스물 셋인데 하는 짓은 열 살도 채 안 되어 보인다. 자기자존감이 당연히 낮다. 안타깝다. 동시에 왜 이 클라이언트가 이렇게 세상을 모를까, 바로 답이 나온다. 아버지의 통제 아래에서 살면서 정보를 전혀 공급받지 못했다.

 

 

 

몇년 전에 어카운팅 펌에서 잠깐 일했을 때 일이다. 한국을 포함해 한국보다 더 강력한 가부장제 나라에서 온 고객들이 연말정산 자료를 가지고 왔다. 대개 남편들이 아내의 자료까지 들고 온다. 아내가 서명해야 할 곳에 이미 서명을 다 받아가지고 왔다. 아니면 아내에게 연락을 취해야 해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면 자기한테 (남편한테) 얘기하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심지어 아내가 받아야 할 세금혜택 크레딧을 자기 앞으로 이전하는 일도 있다. 본인 동의가 필요한데요, 제 아내는 제가 하라는대로 합니다. 그냥 진행하세요. 동의서명이 필요하다니까요. 자, 제가 해드리죠. 크레딧은 평생 쌓아서 자기가 필요할 때 쓰면 되는데 이렇게 되면 (남편이 아내의 동의없이 아내의 크레딧을 도둑질하면) 나중에 이혼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내의 이권까지 대놓고 갈취하는 남편의 뇌 속에 "이혼"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리고 많은 아내들이 이런 세상의 이치를 모른다. 이치를 모르고 정보를 모르니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것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모르니까 착취하기 편한 거다. 그리고 그게 그 커뮤니티의 "주류적 흐름" 이다. 이슬람이나 후진국 사람들이나 그러지 설마 한국인도 그럴라구? 천만에. 그런 한국인이 여기엔 지천이다. (한국 본토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우리 여성들은 이 점 하나를 꼭 기억해야 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려고 할 때 가로막고 나서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이거 정말 배우고 싶어, 라고 했을 때 "니가 할 수 있겠어?" 라든지 "지금은 때가 아니야!" 라든지 심지어 "시집이나 가" 혹은 이미 시집간 경우 "밥이나 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당장 관계를 끊어야 한다. 그 사람은 나를 지금 후려치고 있는 거다. 자기자존감을 앙양하려는 나를 깍아내리고 있는 거다. 그래야 밥을 계속 차려 줄 테니까. 

혹은 뭐 새로운 게 궁금해서 그게 뭐야, 라고 물었는데 "넌 알 거 없어" 혹은 "배고파 밥 줘" 라고 답하면 그 사람과 당장 관계를 끊어야 한다. 정보를 차단하는 거다. 네가 알면 더 이상 널 후려칠 수 없어, 너는 나에게 밥을 주지 않을 거야. 

새로운 것을 습득하려는 나에게 늘 자극을 주는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자.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높여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자. 

 

2016/03/31 00:44 2016/03/3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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