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 출판사 노동조합 4

분류없음 2013/05/18 13:49

*원래 이게 3이었는데 4로 밀렸다.

 


Dear Mr. Present, (현재 씨)

이메일해주어 고마워요. 심정이 좋지 못하다는 게 읽혀집니다.


현재 씨도 알겠지만,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많아요. 내 진심은 그게 아닌데, 사실은 그게 아닌데, 조금만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진심도 사실도 조금만 더조차도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참 많아요.
견뎌야죠. 진심이나 사실을, 그리고 조금만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점들을, 주변에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시작하면서 견뎌야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거야, 뭐 그런 건 없더라고요. 사람들이, 세상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느냐 이런 것보다는 당장 내가 힘드니까 그렇게 해서 견뎌나가는 수밖엔 없죠.


현재 씨는 이미 현재 씨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현재 씨의 길을 가면서 현재 씨 자신을 옹호하세요. 현재 씨의 처지나 입장이 무엇인지 이성적이든 감성적이든 뭐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세요. 저는 그런 현재 씨가 더 좋아요. 정치적인 입장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이나 뭐 그런 건 하등 문제될 게 없어요. ‘나’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현재 씨, 우리들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한 번 돌아봐요. 규모를 떠나 어떤 단위사업장에서 노조를 만들고 오비이락처럼 징계문제가 불거졌을 때를 돌아봐요. 그 때 우리는 누구의 편을 들었었나. 제 기억으로는 이른바 사측의 처지와 입장까지 다 경청한 뒤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하진 않았어요. 강자와 약자가 싸울 때, 펀치의 위력이 다른 두 사람이 싸울 때 누가 더 잘했나못했나를 계량한 다음에 편을 들진 않았어요. 제 기억으로는, 제 양심으로는, 제 철학으로는 적어도 그래요.

물론 사정은 있겠지요.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회사가 그렇게 나왔을까, 오죽했으면 위에 계신 분들이 그런 방법을 결정했을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다른 비조합원 분들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러나 제가 그런 문제를 계산하기 시작하면, 제 (정치적) 판단은 이미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게 흐를 수밖에 없겠죠. 이건 인간적인 도리나, 시시비비를 가려내는 이성적 판단과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니까요.

논쟁과 분쟁이 시작되면 거기엔 항상 ‘감정적’인 문제들이 얽혀요. 우린 모두 사람이니까요. 상대방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말버릇이나 태도가 바르지 않으면(바르지 않은 것 같으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죠. 옛날에 어떤 단사에서 쟁의가 시작되어 취재를 나갔을 때의 일이에요. 사측 노무팀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데 노조에서 하는 주장들에 다 동의한대요, 그런데 그 방식이, 노조위원장이라는 사람의 싸가지가 싫어서라도 동의한다고 할 수가 없대요. 세 시간이 넘도록 그 사람 말을 들어줬는데 그 사람 말도 일리가 있긴 있더라고요. 저 같아도 노조를 확 깔아뭉개고 싶었겠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의 녹취를 그대로 실을 순 없었어요. 그건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누구의 편에 있는지, 노동조합이라는 게 왜 필요한 거고 지켜야 하는 건지 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기사는 바로 ‘노동자’들이 보는 잡지에 실리는 거였기 때문이었어요.

그린비노동조합, 출판사에서 일어난 이번 일에 관해서는 우리 각자의 입장과 처지를 갖고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이 외의 다른 문제나 사안에 관해선 우리가 서로 대립할 이유도 필요도 없잖아요. 현재 씨도 블로그나 여타 매체, 연단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세요. 다른 사람들이 현재 씨를 소위 ‘나쁜’ 사람으로 설정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왜 현재 씨의 입장이 합당한 것인지에 관해 현재 씨의 방법으로 현재 씨의 정치를 하세요. 필요하다면 회사의 힘과 권위를 이용하세요. 다만, 이 모든 게 현재 씨의 철학과 삶의 지론에 부합하도록 하면 돼요.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과 삶의 불일치,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어요. 그저 그 두 개를 어떤 방식으로든 일치시키면 문제는 쉽게 풀릴 거예요.

우리는 좀 더 프로패녀설해야 해요. 살면서 겪는 여러 문제들이 우리 삶 앞에 닥칠 때 그 문제들이 우리의 존재를 압도하도록 내버려두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그 문제가 무엇인지 규명할수만 있다면 이미 우리는 ‘프로’에요.

현재 씨,
필요하다면 이메일을 보내도 좋고 블로그에 덧글을 써도 좋고 어쨌든 다 좋아요. 소통하는 것, 저는 그것이 가장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꽃개 보냄
 

2013/05/18 13:49 2013/05/1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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