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려는 자의 그 변태적임.

2010/01/10 01:50 잡기장

나는 틈만 나면 들여다 본다.

 

마치 눈에 캠코더 하나를 장착한 것처럼 그 장소 그 때로 돌아가 그 당시를 하나씩 카메라를 한바퀴 휘 돌리듯이 그곳을 돌아보고 생각해내려 한다. 그 곳의 냄새, 사물들, 그 모든 것들 말이다. 벽지는 무슨 색이었는 지, 그 방의 가구는 무엇이 있었는 지, 각각의 배치는 어떠했는 지, 둘의 옷차림은, 커텐은 있었는 지, 뭐 그런 것들. 그리고는 이 모든 행위가 얼마나 변태적인 가를 깨닫고 몸이 부르르 떨리도록 전율이랄까 소름이랄까.

 

몇주를 캔버스로 부터 도망쳤다. 작은 스케치북에 쓱싹 그리는 것은 그래도 다음장으로 넘겨놓으면, 표지로 정리하듯이 덮어놓으면 그만이다. 준비가 되었을 떄, 혹은 그냥 다시 가볍게 훑어보며 볼수있다. 하지만 캔버스는 다르다. 그냥 그것은 집안 한가운데 이젤 위에 올려 놓아야한다. 그 그림과 함께 숨을 쉬고, 식사를 하고, 그 앞에서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어렵게 어렵게. 하지만 순간 이 얼마나 변태적인 행위인가. 왜 그 고통을, 생각나는 것도 모자라서, 벌리고 들여다보고 후벼파고 또 더 벌리고 더 잘 보려고 하고 구석구석을 더듬어 보고. 그 모든 손길은 얼마나 변태적인가. 이런 직면은 정말 천형인 것만 같다. 아무도 시키지않았다. 어떤 것도 나에게 그것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그냥 그걸 해야한다. 파고 파고 또 파고. 그렇게 파내는 기억이 얼마나 부정확하며 툭하면 왜곡되는 것인지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나는 그것에 철저하게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을 얻으려고. 그래도 해야한다.

 

 

나는 너무나 두렵다. 너무나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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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0 01:50 2010/01/1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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