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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8월 1일 저녁 7시 KBS 본관앞. 침탈 의지가 없는 시민들로부터 KBS를 지키기 위해 전경들이 몇 겹으로 에워쌌다. 우리는 KBS를 공격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손에 초 하나 든 우리를 폭도로 규정하고 시위대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전경들을 배치시켰다. 오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공안정국이 실감난다.

 

일단 퇴로를 확보한다. 내 뒤쪽에 드넓은 여의도 공원이 있으니 여차하면 무조건, 아주 열심히 뛰면된다. 겁이 많은 나는 언제나 집회의 후미, 혹은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선두에서 고생하시는 분들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난 아직 그분들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오늘 집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겁에 질려 일찌감치 집회 참가 포기까지 생각해보았다. 오늘은 정말로 맞을 것 같다. 나 혼자와서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더 두려웠다.

 

시위대의 수도 너무 적었다. 아니 전경의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표정 관리가 안 된다. 정말 쫄아서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나긴 싫다. 무섭다고 이대로 물러나면 이 정권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알겠는가.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이것이 국민 주권주의 이고 헌법 1조 1항의 정신이다.  참내, 이 정권은 시계롤 거꾸로 돌리고 돌려 나마저도 중학교 사회 시간으로 돌려놓는다.

 

네모난 교실에서 단편적으로 습득한 지식을 이제 온몸으로 체득한다.

 

암튼 이렇게 떨고있던 차에 하늘색 단체티를 맞춰입은 범청학련 통선대가 등장한다. 평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조직인데 이럴때 보니 너무 반가워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문화제가 시작된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여의도 공원내 잔디밭에 앉아있다가 KBS 본관앞 본대로 자리를 옮긴다. 문화제가 차질없이 진행되며 긴장이 좀 풀렸다.

 

TV에서 보았던 다인 아빠가 보인다. 저녁식사를 하지못해 라면이라도 얻어먹어야지 했는데 오늘은 음료수만 나누어준다. 아쉬운 마음에 음료수라도 한 컵 얻어먹는다. 박봉인 시민단체 간사가 휴가를 가니 밥 한끼 사먹을 돈도 아깝다.

 

문화제가 반이상 진행되었을 때 칼라 TV가 나타났다.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있다가 칼라 TV를 보니 반갑다. 어디갔다 이제 왔는지 하여간 반갑다.

 

10시, 문화제가 끝나고 행진을 시작한다. KBS가 청와대라도 되는냥 전경들이 꽁꽁 싸맸다. 이제 곧 낙하산 투하할 요충지이니 소중히 지켜줄만도 하다. 안 쳐들어간다, 이놈들아. 욕이 절로 나온다.

 

난 이쯤에서 빠져나온다. 여의도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를 봤다. 사실 우리 초면은 아닌데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달 시사인 거리 편집국에 잠깐 들러서 얼굴도장 찍었었다. 그리고 공짜로 시사인 한 권 받아들었었지 ^^

 

그에게 다가가 시사인 잘 보고 있다고 열심히 잘 하시라고 한마디 건네고 싶었지만 숫기없는 나는 그냥 돌아선다. 그는 내가 시사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까? 맘 같애서는 지금 메고있는 배낭속에 있는 시사인 46호 고재열 기자 기사에 사인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음~ 역시 못하겠다.

 

시사인 기자들 중에 내가 얼굴 아는 기자는 주진우, 고재열 정도인데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잘 생겼으면서 말도 재밌게 잘 한다는 것이다. 난 정말 그들이 좋다.

 

역시 후회된다. 고재열 기자와 몇마디라도 대화 나눠보는건데 . .  . . . .

 

경찰쪽 주장에 의하면 채증 사진이 많이 확보돼 있다고 한다. 그걸 기초로 대량으로 지명수배를 내리겠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집회 참여시 마스크를 착용해야겠다.  내가 지명수배자가 되면? 나야 상관없는데 연로하신 부모님이 걱정이다.

 

경찰이 내 글도 보고 있으려나? 나도 2년쯤 후엔 인터넷 신뢰저해 사범이 되려나? 그럼 민주화 투사 되는건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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