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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8월 2일 오후 5시 20분, 청계광장엔 이미 백여명의 성난 군중이 모여있다. 백골단을 풀고 최루액을 쏘고 인도로 도망가도 끝까지 쫓아가 잡아내겠다고 한껏 엄포를 놓았음에도 이들의 분노는 식을줄 모른다.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린다. 전운이 감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왜 여기에 있는가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어김없이 전경들이 청계광장을 막았다.  이제 나도 시위현장에 좀 익숙해진 듯하다. 전에는 무서워서 전경들근처에 가는 것도 꺼렸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그들 곁에서 그들의 표정을 보고 대화를 듣는다. 

 

시위대는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친다. 한 전경이 옆에 있는 동료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진짜 폭력이 뭔지를 보여줘야겠구만. " 이 무서운 정서에 몸이 후드득 떨린다. 어느새 그들은 이토록 폭력에 무감해진걸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세상에 살고있다.

 

가두행진을 시작한다. 전경들이 막은 까닭에 난 본대와 합류하지 못하고 혼자 서울시내를 걸었다. 폭도들을 진압하기 위해 전경들이 무리를 지어 나를 스쳐지나간다. 나는 혼자인데 무장한 그들은 떼를 지어 뛰며 고함을 지른다. 무슨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패를 사용하는 듯한 '퍽퍽' 하는 소리도 들린다.

 

오랫동안 걷고 길을 물어 드디어 본대와 합류한다. 아는 얼굴이 보인다. 이제 좀 안심이 된다.

 

우리는 계속 걷는다. 어디로 가는건지, 언제까지 걷는건지, 모른다. 이미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홀로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한다. 정권이 이 사회를 어디까지 몰고갈건지, 이명박 정권이 언제까지 버틸건지, 이명박 이후에는 어떻게 될런지.  혹, 박정희 이후가 그랬던 것처럼, 전두환 이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바람보다 못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건 아닌지.   이미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그 후퇴한 민주주의가 다시 진보하려면 또다시 기나긴 시간을 고통속에 보내야하는건 아닌지 , 우려스럽다.

 

명동이다. 앞뒤로 경찰이 포위했고 우린 그저 퇴로를 머릿속에 그리며 진압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난 또 겁에 질려 표정관리가 안 된다. 주위에서 그만 들어가라고 권하고 바로 옆에 있는 명동역 간판이 유난히 빛나보이지만 역시 여기서 물러나긴 싫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으로써 가진 오직 하나뿐인 자존심이다. 

 

시위대는 걷기 시작한다. 명동성당 앞이다.  멜로디언과 리코더 등 소박한 악기들로 구성된 악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한다. 눈물이 난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유린당하는 현장을 온몸으로 겪어내고있다.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가진자들이 그 천박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위해 비무장한 시민들을 방패와 몽둥이로 공격하고  갖가지 싸구려 수단들을 동원해 탄압하는 이 만행을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보아왔던 그 수많은 어르신들처럼,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살겠다. 

힘들고 고단한 길이지만 어쩔수 없다. 내 마음속 깊숙이 소소하게 간직해두었던 작은 꿈인

자유를 위해 나는,  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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