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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뺑뺑이 삶을 위하여!

제가 도당에서 일 한지 1년이 되었습니다.

저 는 업무상 우체국에 가야하는 일이 많습니다.

각 당협에 선전물, 기타등등을 배송하는 일이 제 일이거든요. 전 수원역 앞에 있는 우체국을 갈 때마다 참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편 업무를 보는 창구가 총 세개인데 그 중에 왼쪽 첫번째 창구에 계시는 제일 고참인 중년의 여성분이 참 친절하고 열심히 일하시거든요. 그 분을 뵐 때마다 매일 어쩜 저렇게 열심히 일하실까 생각하곤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창구에는 저와 비슷한 또래의 남성분, 세번째 창구에는 역시 제 또래의 여성분이 계셨습니다.남자분은 그냥 너무 평범해서 뭐 별달리 드릴 말씀이 없고 세번째 창구의 여성분은 확실히 저보다 힘이 약했습니다.빼빼 마른 몸으로 선전물이 한 가득 담겨있는 박스를 저보다도 더 낑낑대며 겨우 들어 업무를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왠지 좀..다른 분들과 달리 움츠러 들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우체국이란 공간에 완전히 적응해 있는데 그 분은 좀.. 적응이 덜하다고 할까요.

세 분은 모두 왼쪽 가슴에 명찰을 차고 있는데 첫번째 두번째 분들은 이름이 써 있는 명찰이었고 세번째 여성분은 '연수생'이라고만 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6개월 정도 인턴처럼 일하고 정식채용이 되나보다 하고 짐작했습니다. 연수생이라서 좀 움츠러든 느낌인가? 뭐 그랬죠. 그게 1년이었습니다. 1년간, 제가 그랬듯 그 분도 업무에 익숙해지셨습니다.

어제. 출근을 하면서 일이있어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창구에 다른 여성분이 '연수생' 명찰을 차고 앉아계시는 겁니다.

그 래서 저는 옆의 남자분께 물어봤습니다. 그 여자분 어.디.가.셨.냐.고.

그랬더니 다른데로 갔다고  대답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제 정식발령이 되어 다른 곳에서 근무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어. 디.로.가.셨.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계.약.이.끝.나.서 가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렇 습니다. '연수생'이라는 명찰을 차고 1년간 일하셨던 그 분은 비정규직이었던 것입니다.

1년간, 옆의 두 분과 똑같은 창구에서 똑같은 일을 하던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차별받다가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 녀는 지금쯤 별다른 '스펙'이 없는 자신의 이력서를 탓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고용주 혹은 인사담당자 앞에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를 외치고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채,

그리고 비정규직의 뺑뺑이 삶에서 놓여날 수 없겠죠.

새로 '연수생'이 되신 20대 초중반의 그 여성분도 역시.........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에서 흔히 쓰는 '우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이렇게 절절히 느낀 건 처음이었습니다.

1 년 동안 같이 일했던 사람에 대해서 '계약이 끝나서 가셨다'라고 건조하게 말하던 그 남성분,

모피 코트를 입고 화려하게 출근하시던(제 눈에 순간적으로 그 분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편집장처럼 보였습니다) 그 중년의 여성분이 이유없이 미워보였습니다.

그리고 일상적인 고용불안, 저임금,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으로 끝없이 살아가야하는 그 여성분을위해,

또 하나의 뺑뺑이 삶을 시작한 새로 온 '연수생' 그녀를 위해

잠 시 가슴 아파했습니다.

1년 동안 그 여성분 정말 자주뵈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체국 홈페이지에 가서 항의성 글을 올리는 것 정도일 겁니다.

하지만 저의 그 항의가 먹힌다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게 아니라

명찰을 없애버리겠죠.

이런 제 자신의 무기력함에 한없이 허탈한 기분입니다.

많이 고민하고 많이 노력해야겠습니다.

더 이상 이런 일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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