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잎으로 칼을 얻다”
-조선 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문 ‘우당선생과 6형제’
[피플투데이 선임기자 박정례]= 덕수궁 중명전, 예사롭지 않은 장소다. 중명전은 조선왕조가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이고 고종황제가 숨진 곳이다. 이곳에서 독립운동가문인 우당 이회영 선생과 6형제의 삶을 재조명하는 전시회(2014. 11.17에서 내년 3.1일)가 ‘난잎으로 칼을 얻다-우당 이회영과 6형제'라는 전시 명을 갖고 열린다.
우당 이회영 일가 6형제 50명은 나라가 망하자 전 재산을 팔아 일가족 50명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 땅을 향해서 국경을 넘는다. 목적은 오로지 전 재산을 처분한 군자금으로 항일무장투쟁운동을 하여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우당 선생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어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이 아닌가?”하고 일갈했던 분이다. 신분과 재산과 인생 모두를 조국의 독립 하나만을 위해서 여한 없이 바친 거룩한 삶이었다.
서릿발 같이 매섭고 일송정 푸른 솔처럼 변치 않는 자주독립운동의 기개를 세운 때가 서른 살 청년 때였다. 이회영 선생은 물었다. “한 번의 젊음을 어찌할 것인가”고. 예순 여섯의 나이로 옥사하기까지의 삶으로 선생은 자신의 물음에 답했다. 몇 대가 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다 바쳐 칼바람 에이는 압록강의 물살을 가르며 국경의 밤을 그렇게 넘었다.
우당선생은 1905년에 울사늑약 체결의 음모를 저지시키고 무효화 하는 운동을 주도하였고, 고종황제를 설득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 파견을 주장하여 관철시킨 바 있다. 그러나 헤이그밀사 사건은 실패로 돌아가고 기어코 한일합방이라는 이름하에 나라가 망하자 6형제 전원과 일가족 50여 명이 전 재산을 정리하여 망명을 떠난다.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인 이항복의 10대 손 우당 이회영 일가가 전 재산을 팔아 마련한 돈은 40만 원, 요즘 돈으로 치면 600억 원이나 된다.
이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내놓았고, 그래도 돈이 부족해서 묵으로 난초를 그려 총과 칼을 사들였다. 이렇게 만든 군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청산리대첩을 이끌었다. 전시회의 주제로 ‘난잎으로 칼을 얻다-우당 이회영과 6형제'로 명명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11월 17일 오늘은 우당 선생이 순국한 날이자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치욕의 장소였던 중명전이었지만 오늘은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문의 대한독립을 위해 신분, 재산, 목숨, 가족 그리고 모든 것을 희생한 거룩한 인간승리를 기리는 날이다. 전시회 개막식은 서해성 작가의 사회로 오후 6시에 시작됐는데 예원학교 학생들이 신흥무관학교 교가와 압록강 행진곡을 불러서 축하를 해줬고 고은 시인의 ‘이회영’ 시낭송과 망명객을 상징하는 중절모 퍼포먼스가 있었다.
참석인사로는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동영 고문, 이종걸 의원, 이석찬의원 등이다. 이 전시회는 내년 3.1절까지 계속된다.
박정례/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