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으로 이룬 박근혜 탄핵
-이번엔 정치개혁, 재벌개혁, 검찰개혁 반드시 이뤄야
촛불이 모여 철옹성권력에 균열을 냈다. 사익을 위해 은밀하고 부당하게 헌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하던 자들의 적폐가 만천하에 드러나도록 불을 비췄다. 시작은 작은 촛불이었으나 모이고 모여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탄핵 불을 만드는데 성공을 했다.
9일 오후 4시 경 일이다. 찬성률 78%인 234표로 가결됐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통과되기까지는 각종 매체와 제보자들의 힘이 컸다. 한겨레, TV조선, JTBC 등의 언론의 활약이 컸고 그 이전에는 정윤회 사건을 선도적으로 보도한 세계일보사가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특정한 언론사의 힘만으로 이루어전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헌법 위반행위와 십상시들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해준 것은 내부자 혹은 제보자라 부르는 넓은 의미의 감시자들의 공로가 지대하다. 이들은 서양에서 흔히 말하는 윈도우폴리스(생활 속의 감시자)라 부르는 자발적인 개별 경찰인 셈이다. 감시자의 범주는 그래서 경찰과 검찰 같은 공권력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기관과 목격자나 제보자들, 나아가서는 권력에 저항하는 의협심과 정의감이 넘치는 작은 촛불들까지 총 망라해서 일컫는 개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일이란 곁에서 보고 겪는 것이 제일 정확하다. 어떤 사건이든 가까이서 보고 들은 사람들이 사건의 진실에 가장 가깝게 서있다. 그러므로 내부자들은 사건을 푸는데 있어 가장 확실한 열쇠를 쥐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사안의 해결을 위한 빠른 해결의 길은 제보자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다. 키 맨들의 중요성은 그래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순실이 독일에서 귀국하던 날도 그랬다. 최순실의 모습을 발견하고 재빨리 폰을 눌러 공항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포착해 제보한 사람은 한 시민이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몰래 귀국하려는 최순실의 모습이 전 국민에게 알려졌고. 언론의 취재망은 숨 가쁘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최순실의 행동반경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렇더라도 최순실은 31시간 동안에 KB국민은행 봉은사로지점에서 5억 원을 인출하여 거액을 준비했고, 미리 연락을 해놓은 은행에 들려 여러 개의 도장을 가지고 나타나 은행계좌 명예이전을 마쳤다고 한다. 자신 명의의 재산을 타인 명의로 돌리고 변호사를 선임할 자금을 준비하는 등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최씨는 그러니까 검찰 출석 전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엘루이호텔에서 변호인들과 대책회의를 했다는데 최순실의 오전 입국이 알려지자 이경재 담당 변호사는 마지못해 귀국 소식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갖는다.
하지만 돌연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경기도 청평으로 향했다. 변호사를 뒤 쫒아 간 기자들은 청평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의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그를 발견하고 “최씨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으나 “그건 말해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래저래 기자들은 청평 일대 어디 별장이나 펜션에 숨어서 검찰 수사에 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구구한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는 결국 최순실의 동선이 드러나지 않도록 연막전술을 폈던 셈이다.
누구를 위한 쇼였는지(...) 강남 거부 최순실을 위해서였다. 이 모든 것이 유전무죄를 위한 짬짜미요 권력과 금력의 위력을 말해주는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감시자들의 활약은 김기춘의 경우에도 빛났다. “최순실을 아는가?” 라고 묻는 기자들에게 “모릅니다. 아닙니다. 본적도 없습니다.”를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반복하던 법꾸라지 김기춘으로 하여금 2007년도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후보의 법률자문위원장을 맡아 후보검증 청문회장에 앉아 있던 당시의 모습을 찾아내어 “최순실의 이름을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는 실토를 하게 만든 것도 감시자들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박근혜의 철옹성권력을 탄핵한 촛불의 힘은 내친김에 우리 사회에 콘크리트처럼 쌓인 온갖 적폐를 개혁하고 일소해야 한다. 재벌개혁, 정치개혁, 사법개혁을 재촉해야 하고 지역차별의 해소와 남북관계 복원 등을 견인해 내는 혁명의 활화산으로 타올라야 한다.
박정례/ 기자.르뽀작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