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에게 거는 지지자들의 열망
-정동영의 시대적 책무와 19대 대선에 부쳐
정동영에게는 시대적인 책무가 있다. 돈 없고, 빽 없고, 일자리 없고, 작은 가게를 열 수 있는 초기자본마저 부족하여 1년을 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영세자영업자, 이들 같은 서민들의 애환과 고통을 나눈 경험은 물론이고, 실력도 자질도 부족한 후보들이 우후죽순 나서는 이 혼탁한 대선정국에 정치판의 수준을 높이고 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동영은 대선후보로 나서야할 책무가 있다.
정동영은 더 이상 신중하지 않아도 된다
광속도로 달려가는 한국, 우리는 이 혼란기를 어찌 보내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자고로 지도자가 문제다. 지도자를 잘 뽑아야 국운이 상승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우린 어떤가.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국가를 사적이익을 취하기 위한 사(私) 금고쯤으로 여기는 저급한 지도자들만 줄을 잇는다면 그런 국가와 국민은 비참한 사람이이 분명할 것이고, 동정이나 받는 3류 국가, 멸시나 당하는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것이 요즘의 우리나라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로 일컬어지는 최순실 일파에 의해서 저질러진 헌법유린과 국기문란과 국정농단과 인사권을 무기삼아 사익을 취하느라 빚어진 갖가지 독소와 썩은 환부를 도려내기란 생각보다 요원한 일이다. 때문에 나라를 다시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애꿎은 국민들의 희생과 피를 말리는 고난의 여정이 가로 막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실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파탄 난 국정과 파괴된 정의가 일시에 좋아질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겠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좋은 지도자를 뽑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신념과 끈기와 애국적인 결단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지도자란 무엇인가. 이스라엘 민족의 복음서 구약 편을 보면, 하느님께 달려가 왕을 세워달라고 간청하는 대목이 있다. “너희를 억누르며 종처럼 부릴 왕이 꼭 있어야 하겠느냐?”고 묻는 분께 그들은 “왕이 지배하는 이웃나라가 부러워죽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나라를 말아먹고 군림만 하는 왕과 지도자라면, 어찌하여 우리는 17명에 속하는 대선후보들을 감내하며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방송매체들은 그들을 번갈아 출연시키며 유치원 재롱잔치 수준의 프로를 제작하여 유권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고만고만한 대선후보들 세 네 명만 있으면 큰 돈 안들이고 시간 때우기 용 방송을 할 수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고양이 쥐 생각하는’,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유권자들을 우민화하는 방송 판 꼼수라 해야 옳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서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사활을 거는 후보 말고 진중한 후보를 가려 뽑는 일은 우리들이 직면한 다급한 일이라 주장하고 싶다.
정동영 그가 걸출하다
정동영의 정치 감각은 누구보다 성숙한 단계에 있다. 솔직히 말해서 정치에 갓 입문했을 당시 그가 이룩한 전국 최다득표율 같은 화려한 기록은, 40대라는 젊음과, mbc 앵커로서 얻은 인기와, 큰 인물을 육성해보려는 지역민들의 여망과 김대중 선생을 살려야 한다는 민주진영의 비장한 열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정동영의 지명도는 상당 부분 공중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만하다. 그에 비해서 정동영의 경쟁자인 정세균은 지상전과 게릴라전을 통하여 세력을 다진 후 친노.친문과 야합하여 본격적으로 정동영을 고사시키는 작전을 구사했다고 확신한다.
이때부터 정동영은 당선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배제되고, 수하세력들마저 모조리 제거를 당하는 등 고난이 중첩된다. 더해서 2007년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야당후보 자리를 노리는 정적들로부터 불문곡직(不問曲直)의 공격을 당한다.
하지만 지난 해 4.13총성에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그다. 정동영은 이제 더 이상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고, 남을 의식할 이유도 없다. 오직 간난신고를 겪으며 담금질 해온 그동안의 경험과 경륜으로, 요행수만을 바라보며 인기몰이에 목을 매고 있는 가볍고 실력 없는 후보들에 맞서야 한다. 정동영은 그의 자질과 걸출함을 아쉬워하는 지지자들만을 바라보며 대선을 향한 출정의 깃발을 속히 쳐들어야 한다. 이것이 최 우선시해야할 정동영의 책무이자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준엄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박정례/ 기자.르뽀작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