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米壽)를 맞아 DJ 묘 찾은 권노갑 고문

-주승용,장정숙 의원을 위시한 80여 후배정치인들의 축하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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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선임기자 박정례]= 노 정객 한 사람이 DJ묘역에 들어섰다. 미수를 맞은 권노갑 고문, 국립 현충원이다. 볕이 좋았다. DJ 묘역은 훈훈했다. 아직은 오지 않은 봄이건만 양지 바른 그곳은 따뜻하기만 했다. 화요일, 사람들이 모여들자 묘역을 감싸고 있는 훈김은 더해갔고 참배객들이 사르는 향불은 넓게 퍼지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기리는 사람들은 매주 화요일마다 이곳을 찾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8년 6개월 째 암묵적으로 지켜오는 불문율이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정례적으로 대통령을 참배하며 DJ와 함께 민주화 투쟁을 하던 고난의 시절을 회상하고, 건국 이래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을 확인한다.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그렇다. 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공동의 추억을 통하여 그들은 결속하고 뭉치며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소사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다. 시국에 대해 일갈하고 자신과 동지들의 근황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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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반, 때맞춘 참배시간이 되자 구부정한 소나무가 보초병처럼 늘어선 묘역 길을 따라서 권고문이 들어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은 서있던 자리에서 몇 걸음씩 나아가 그를 맞았다. 주승용 원내대표(국민의당)를 위시하여 장정숙 의원 등 80여명의 후배 정치인들이 노(老) 정객을 에워싸는 순간이었다.

권노갑 고문은 해방 직후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돕기 시작하여 선생이 정치에 입문하자 자연스럽게 그의 참모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동교동계라고 불리는 김대중 선생의 조직과 자금을 관리하면서 선생과 함께 고난을 같이 한다. 내란음모사건 때에도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감당했다. 이후 선생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하면서는 민주화추진협의회 상임운영위원을 맡아 동교동계를 추스른다. 이어 제 13대 총선에서 전남 목표에서 당선된 이래 14,15대까지 3선에 성공하고, 1997년도에는 김대중 선생을 보필하며 제 15대 대통령으로 당선시킨다.

바로 그랬다. 형형한 눈빛으로 DJ 앞에서 선 노(老)정객, 권노갑 그는 김대중 선생이 살아생전에 그랬듯이 생사를 넘나들며 얻은 백전노장의 여유와 함께 생애에 대한 겸허한 응시를 통하여 얻은 초연함을 지니고 김옥두,이훈평,박양수,윤철상,문팔괘 여사와 같은 선생의 동료와 주승용, 장정숙 같은 후배들 그리고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강동호.박춘림 같은 까마득한 후배들 앞에서 현실과 피안의 세계를 고루 넘나드는 편안한 눈빛을 투사한다.

이를 귀감 삼은 후배들은 일순간 작은, 권고문의 생일을 아주 작은 축제로 받아들이며 조금 전의 침묵과 긴장에서 벗어나 짧지만 강렬한 희열에 빠진다. 이 아니 봄을 부르는 훈풍이 아니고 무엇이랴! 2017년2월14일, 이런 풍광과 모습이 88세 생일을 맞은 권노갑 고문이 찾은 DJ묘역의 참모습이었다. DJ 묘역은 그래서 따뜻했다.

 

글쓴이/박정례 기자.르뽀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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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5 15:36 2017/02/1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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