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21일, 화려한 춘몽(春夢)이기만 한가
-갈등과 혼란에 처한 이 나라에 조타수 같은 역할 해야
{브레이크뉴스 선임기자 박정례}= ‘한여름 밤의 꿈’이라더니,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의 대선정국 판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가 돼버렸는지, 정말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옛 추억인지, “한국에 가면 난 폭풍 대시할 거야!” 작심이라도 한 듯이 뉴욕에서 오자마자 거침없는 직진 행보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했기에 말이다.
그처럼 바삐 움직인 데는 반 총장 본인의 의사가 결정적이었겠으나 곁에서 도와주는 참모들의 역할도 적지 아니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아무튼 반 전 총장의 계획은 어긋났고 성과는 좋지 않았다. 10년 동안 국외자로 살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현실과의 간극이 적잖이 노출되는가 하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행동에서는 너무 서두른다는 인상에, 작은 실수도 잽싸게 잡아내어 침소봉대하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환경에, 박연차씨로부터 23만 불의 뇌물을 받았다는 등 제 1당이 날린 견제구는 그의 위신에 금이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넘어 더는 유세(誘說) 행위를 계속할 수 없도록 의욕을 꺾는데 치명적이었지 않나 싶다.
정말이지 그를 바라보던 사람은 신기루를 쫒다가 홀린 기분이다. 반기문 전 총장의 추락과 불출마를 통해서 그의 행보를 복기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전례 없이 많은 대선후보자들의 출마 러시에 “정치권에 로또바람이라도 불었나?” 싶은 엉뚱한 비약에 “거품이 너무 심하면 국민들은 이를 어찌 감당할까”하는 걱정까지, 우리사회가 더 이상은 쓸데없는 소모전을 최소화해야겠다는 희망사항까지 더해지는 마당이었다.
10년이 어디 적은 세월인가. 그것도 세계 제일의 도시 뉴욕에서의 10년이. 반 총장이 몸 담았던 UN본부가 소재한 뉴욕을 보면 미국제일의 도시로서 더없이 복잡하고 화려한 면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상업, 금융, 미디어, 예술, 패션, 연구, 기술,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유행을 선도하는 세계의 문화 수도이자 도시이며 국제 외교의 중심지대다. 반 총장은 그러니까 이 뉴욕에서, 193개 회원국이 가입한 UN본부의 사무총장이자 최고행정관이라는 영광의 자리에 있었다. 한국에 오기까지 꼬박 10년을 운전기사가 딸린 전용차에 밤낮없이 뒤따르는 수행비서와 보좌진은 기본이고, 세계 어딜 가나 최상의 국빈대접을 받으며 각국의 수뇌들을 상대하는 국제외교관이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귀국성명서를 낭독하는 순간부터 정치인의 삶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곧 정글의 세계였다. 강한자만 살아남는, 반 전 총장은 속도전을 택한 것 같았다. 공항 로비에서 "제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겪은 여러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젊은이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길잡이 노릇을 하겠다"며 "저는 분명히 제 한 몸을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고 이미 말씀드렸고 그 마음에 변함없다"며 빼곡한 시간표를 쥐고 흔들어보였다.
한가지, 정부나 국회주도 혹은 국민대표들이 주도하는 공식적인 환영행사가 안 보였다. ‘유구한 역사에 빛나는 대한민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의 수장을 지낸 세계적인 명사가 귀국을 했는데도 말이다. 반 전 총장 측에서 사양했는지 정부 측에서 이를 간과했거나 무시한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유감스러운 상황이었다. 기능올림픽이나 올림픽 같은데서 메달만 따도 카퍼레이드를 벌여주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어쩌다가 격식도 의전도 잊어버린, 그런 귀국이 됐는지 모르겠다. 국가가 어수선하고 자고 일어나면 비정상적인 일이 우박 쏟아지듯 떨어지다 보니 관계자들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귀국 성명을 마친 반 전 총장은 공항철도로 직행했다. 이동 시간대는 퇴근시간과 맞물려 혼잡을 이뤘고, 직접 승차권을 발매하려다 투입구에 만 원 권 2장을 넣는 실수에, 사전예매도 없이 급행열차를 이용하는 통에 비난을 샀다.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고 한다”며 민생행보에 공을 들인다는 것이 그만 사소한 실수가 발생하며 괜히 ‘서민 코스프레’, ‘정치쇼’라는 비난을 들었다. 이어 고향 방문도 그리 매끄럽진 않았다. 충북 음성에 있는 고향의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 방문지의 요양원에서 할머니에게 죽을 떠먹이는 모습 때문이었다. 반 총장 내외는 환자용 턱받이를 하고서 누워있는 할머니에게 죽을 떠 먹였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측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허울 좋은 정치 교체, 어설픈 서민 코스프레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각을 세웠다.
한편, 미국 뉴욕 남부 연방검찰이 반 전 총장의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반주현씨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베트남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의 ‘랜드마크 72’ 빌딩건물을 매각하려던 과정에서 중동의 관리에게 뇌물을 건네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 이 역시 더불어민주당의 박경미 대변인은 대변인 성명을 통하여 “성완종 사장이 정관계 자금로비리스트를 남긴 채 자살한 것”과 ”성 사장이 반 전 총장의 마니아이자 스폰서였다는 사실은 홍준표 경남지사에 의해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반기문 때리기’에 열을 올렸다.
시사저널도 한몫했다. 반 전 총장을 직접 겨냥하여 2004년5월3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받아 더민당에서는 반 전 총장이 귀국하기도 전에 이재정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에서 “반 총장과 박 전 회장 간에 검은 돈이 오갔다는 의혹이 연일 구체화되고 있다”며 “검찰은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라고 꼬집었고 “이 사건 역시 특검으로 가야만 진상을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압박을 했다.
이에 반 전 총장은 동생과 조카 문제에 대해서 "가까운 친척이 그런 일에 연루돼 개인적으로 참 민망하다.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니 그걸 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23만 달러 뇌물수수설에 대해서는 캠프의 박민식 전 의원을 통하여 일기장을 보여주면서까지 적극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크고 작은 악보(惡報)가 반 전 총장의 투혼을 꺾는 높은 산성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특유의 성실한 행보는 계속됐다. 불출마를 선언한 2월1일 오전까지도. 각 정당 대표를 방문하는 일정을 수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돌연히 기자들을 찾았다. 가슴에서 꺼낸 종이 한 장 그는 불출마 선언서를 낭독했고 이로서 그의 대권행보에는 종지부가 찍혔다.
그는 “정치권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에 지극히 실망했으며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배석했던 참모들조차 반 전 총장의 깜짝 선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할 정도로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대선행보 21일 만이었다.
이쯤해서 그의 실패요인 몇 가지를 더 거론해본다. 너무 서둘렀다. 한국적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단 며칠간만의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없었다는 아쉬움이 든다. 10년 동안 국외자로 살았던 사람이라면 한국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와 너무 동떨어진 사람, 너무 멀리 있었던 사람이라는 거리감을 없애기 위한 작업을 했어야했다고 본다. 반 전 총장 은 남들에 비해서 출발이 늦은 만큼 “더 열심히 뛰어야지!”하는 특유의 부지런한 생각에서였을 터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시간표와 국내의 흐름은 생각만큼 일치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편, 비빌 언덕이 애매했다. 정치 환경이 급변했다는 얘기다. 예정대로라면 새누리당에 입당해 수월하게 대선 레이스를 치렀을 거지만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지금 당이 없어 손으로 땅을 긁는 심정”이라고 토로할 정도로 사정이 달라졌다. 더구나 탈당 후 반 전 총장을 지지하기로 했던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마저 탈당을 보류하면서 그야말로 홀로 일엽편주에 올라 밤바다를 홀로 유랑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반 전 총장이 기자회견에서 ‘정치권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지극히 실망했다’는 내용은 이런 맥락에서 일 것이다.
셋째 제 1야당의 반격이 너무도 드셌다. 한국에 오기도 전에 대선후보 1.2위 주자로 부상한 반 전 총장이었다. 이를 느슨하게 대처했다가는 다 잡은 대권을 빼앗기겠다는 생각이 더불어민주당은 들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더민당 패권파의 기저에는 UN에서의 반기문의 10년은 ‘노무현 대통령의 시혜 덕분이라’는 오너 의식이 깊게 깔려 있다. 일종의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존재 했다고 본다. 이래저래 그의 부상(浮上)을 용납할 수 없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보수 세력들이 전열을 가다듬어 반 총장과 한편으로 뭉치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려는 전술적 차원에서 행하는 발 빠른 공세다.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반주현씨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뇌물 혐의로 기소됐다는 소식에, 반 전 총장을 직접 겨냥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제기 등이다.
좋지 않은 조짐들이었다. 반 전 총장의 등장에는 신선미가 부족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게다가 원군이어야 할 여당과 충청 출신의 국회의원들은 오리무중이고, 반 전 총장의 뇌물수수 의혹과 동생부자(父子)의 뇌물공여 의혹을 제기한 친노.친문에 호의적인 언론매체 내지 더민당의 공세는 반씨 일가를 싸잡아 부정부패에 연루된 몹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편으로 시국은 혼미하고 불확실하다. 출발이 빨랐던 타 후보들에 비해 10년 만에 찾아온 반 전 총장은 친숙도나 대중에게 노출된 빈도 등에서 어정쩡한 상태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21일간의 행적은 정녕 일장춘몽(春夢)이었던 걸까. UN이라는 만국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젊은이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길잡이 노릇을 하겠다"던 그의 선한 의지마저 지평선 너머 사라진 신기루처럼 미망(迷妄)한 것이었을까. 사람이 보배고 자산이다. 반기문 전 총장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인적자산이다. 혼미한 이 나라에 조타수 같은 역할을 애써 기대해 마지않는다.
*글쓴이/박정례 기자.르뽀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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