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작가 겨울무대’는 5년 만에 부활하여 한국극작가협회와 한국연극연출가협회가 공동주최하여 총 네 명의 작가와 연출가가 함께 작품을 만들어간다. 그 첫 공연작은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고나 작가의 신작 <향수>로 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극 ‘향수’는 공부 밖에 모르던 모범적이었던 아들과 그 부모가 극단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이야기다. 성적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우리 사회다. 이는 여러 의미에서 한국적인 병리현상과 무관치 않다. 작품 향수는 사랑과 이해가 없는 가정이란 얼마나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가 오랜만에 찾아오는데 아들은 “좋은 향수 없냐?”며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이다가 이내 “한 달 전에 어머니를 죽였다”고 고백하고(...) 향수는 시체 썩는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현실에서의 갈등구조는 불행의 원인제공자인 아버지와 상처받은 아들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죽은 어머니와 소년의 대립에서 빚어진 존속살인이 되겠다.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소년의 어머니는 이혼의 충격과 아픔을 오직 아들이 공부의 화신이 되어 전교 1등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고 한다. 공부를 잘해서 아들이 출세해야만 집을 나간 남편이 머리를 숙이며 돌아오고, 주변 사람들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것이라는 맹신에 빠져 있었던 것,

“어머니를 죽였다. 이런 나를 제발 도와 달라.”고 절규하는 소년에게 뒤늦게 찾아온 아버지 또한 자신의 체면과 젊은 여자와의 행복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소년에게 여자 친구의 소식은 구원이요 희망이었다. 그러나 학수고대하던 친구의 연락에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하는 소년을 필사적으로 가로막는 아버지다. 이를 참다못한 소년의 증오심은 필연적으로 아버지를 향해서 또 한 번 폭발하게 된다.

부모의 이혼은 결손가정을 낳고, 그 희생자는 어린 자녀들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형제라도 많은 집에서 자랐더라면 조금 덜했을지 모르지만, 이혼의 아픔으로 병들어 있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 살고 있는 소년에게는 구원의 여백이 그만큼 협소할 수밖에 없었다. 존속살인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다루는 작품의 무대가 소극장이고 보니 관객은 배우들의 동작과 대사를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가까이서 호흡하게 된다. 폭력과 학대가 낳은 비극을 극중 아버지 역의 문경태에 맞서 날 것처럼 쏟아내는 아들역의 김세환의 연기는 그래서 오싹한 전율과 함께 관객들로 하여금 두려움과 자책과 회환에 빠져들게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극중 역할에 몰입하다보면 배우들 역시 온전할 수 있겠나.”싶었다. ‘국제난민봉사자들도 정기적으로 상담 치유를 받으면서 역할을 수행한다.’는 기억이 떠올라 “아무리 극중에서 하는 역할이라지만 저렇게 격렬한 연기를 하고난 배우들은 심리상태가 괜찮은 것일까?”하는 걱정과 함께 배우들은 직업병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과연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했다. ‘향수’는 우리사회의 병적인 부분을 신랄하게 찔렀고, 속박의 피해자든 가해자이건 사회구성원의 입장에서든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가슴 아픈 단면이기에 이래저래 생각거리를 잔뜩 안겨주고 있었다.

아들 역을 한 김세환 배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캐릭터가 너무 강해 한동안 힘들 수도 있겠다.” 주인공 역의 김세환은 “일인 걸요.”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받으면서 “이 작품 끝나고 다음 작품 바로 들어가니까 그것으로 될 거예요”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폐 일언하고 작품에 대한 아쉬운 점 하나, 17살 소년의 존속살인을 다룬 무거운 주제에 비해 ‘구원의 메시지는 너무 빈약하다’ 싶었다. 또 처절하고 끔찍한 내용으로 이뤄진 작품명으로 ‘향수’라는 제목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불가다.

아무튼 <봄 작가 겨울무대>는 최고나 작 신동인 연출의 <향수>, 이수진 작 이우천 연출의 <고시원 연쇄 화제사건>, 이소연 작 손원정 연출의 <어제의 당신이 나를 가로지를 때>, 송현진 작 류근혜 연출의 <달랑 한 줄>로 올해 신춘문예로 등단한 네 명의 작가들은 각각 장막희곡을 의뢰받아 신작 집필과 무대화의 기회를 제공받은 아르코∙대학로 예술극장의 작가지원 프로젝트의 수혜자들이다. 12월 2일까지 3주 연속해서 대학로소극장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8/11/12 12:40 2018/11/12 12:40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8434pjr/trackback/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