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 米美味, 남원 보절미술제 개최 성과와 이후의 전망
-김해곤 예술 총감독에게 들어보는 미술제 전후 이야기
들어가며
11월이 시작되는 첫 금요일이었다. 전북 남원의 보절면 황벌리 은천마을 일대는 열흘간 열리게 될 미술제 개막으로 평소와는 다른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이곳의 남다른 점이라면 주민들의 대다수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옥토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 고장이라는 점이다. 총 835가구 중 67.2%가 농가로 분류되는 점을 봐서도 그렇다.
행정상으로는 25개 이장(里長) 단에 면장 한 사람, 작금의 대한민국 어디서나 안고 있는 인구 절벽의 고민을 비켜 가지 못한 이른바 한미한 시골이다. 하지만 눈여겨볼 만한 점이 있는 곳이었다. 자연 호수가 26개나 돼서 제아무리 혹독한 가뭄이 닥친다 해도 이곳만은 물 걱정 가뭄 걱정이 없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때마다 갖가지 농산물이 아쉽지 않게 구색을 갖춰 생산되는 고장이다. 보절면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의 사는 재미가 쏠쏠한 이유다. 여기다 만행산 천황봉은 자칫 평이하게만 보이는 이 고장에 ‘웬 파격이냐’ 싶게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농경지로 이름 난 지역에 높이 909m 천황봉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고 보면 이를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시선을 압도하게 만든다.
보절미술제가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미술관으로 이용된 곳이 비닐하우스이고 미술제를 꾸린 사람들은 은천마을 주민들이다. 면 전체의 인구가 1370명 남짓인 고장인지라 미술제 발원지인 마을 일대는 사실 고령화와 인구절벽 탓에 사람 구경하기가 흔치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제2회 미술제를 11월 3일에 개문발차 하더니 10일간의 전시를 성황리에 끝마치게 됐다. 이를 보면서 누군가는 말한다. ‘그 시작은 비록 미약하지만 그 나중은 창대하지 말란 법 없다.’고
남원 보절미술제 탄생의 배경
딴은 그렇다. 민족종교 증산도 도전(道典)에 보면 교조 강증산(일순)은 ‘똑똑한 사람 둘만 있어도 일은 된다.’라고 했고, 기독교 경전의 구약 편에도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이 기록돼있다. 이쯤 해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일이 되고 안 되고는 많은 사람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보절미술제만 해도 발단은 우연한 기회에 단 두 사람의 대화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바로 90세의 촌로와 김해곤 작가의 만남이었다.
“자네 뭐 하는 사람인가?”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나랑은 평생 관계없는 그런 일이네그려.”
“어렵게 만 생각하실 건 없습니다. 맛있는 것도 드실 겸 그림 구경하시러 저랑 같이 미술관에 한 번 가시지요?”
“나 같은 사람이 그림 구경을 하러가? 어디 먼 곳까지?”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여기라면 보러 오실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만 된다면야 100번이라도 구경할 수 있겠지.”
김 작가는 순간적으로 결심한다. ‘봄에는 작물을 재배하는 저곳을 가을에는 문화를 재배하는 곳으로 만들자’ 이렇게 역사는 시작됐다. 이후 마을 사람들의 힘과 크고 작은 열정이 보태진다. 그 결과 보절면 황벌리 은천마을의 비닐하우스는 미술관으로 변신하여 그림이 걸린다. 소위 보절미술제이다. 비닐하우스를 미술관 삼아 미술제를 개최했으니 대외적인 명칭은 ‘보절비닐하우스미술제’인 건가 그냥 ‘보절농민미술제’ 아니면 쉽게 ‘보절미술제’라고 부를까?
황벌리 은천마을을 가다
아무튼 김 작가를 처음 본 것은 지난 5월이었다. 정말 우연히 “‘작년에 남원에서 하우스미술제’를 보고 주민들이 좋아하셨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모르면 무식하다고 그때 반사적으로든 생각은 이랬다. “이게 무슨 뜻이람?” 어떻게 비닐하우스가 미술관이 되고 사람 구경도 제대로 못하는 시골 마을에서 미술제를 열수 있단 말이지, 혼자 자문자답을 하며 반신반의했다. 미술제 운운 자체가 뜨악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눈 앞 20센티쯤 앞에서 콩나물 대가리 비슷한 의문부호가 둥둥 떠다니는 것이었다. ’비닐하우스에서 미술제를 열었는데 주민들이 좋아했다.‘는 작가의 말마디는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뚜렷한 잔상으로 남아 의식 한가운데서 똬리를 틀고 있는 모양새였다. ’지워버려야 하는데, 떨쳐버려야 하는데‘ 떨치지 못하고 지우지 못하고 있다 보니 마음은 무겁고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중순경에 남원에 가게 되었다. 남원시 춘향파크 안에 있는 한 카페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이어 미술제를 열었다는 현장으로 이동하여 비닐하우스 1.2.3동을 둘러보았다. 하우스는 생각보다 넓었다. 무엇을 하던 충분히 큰 공간임은 분명한 것 같았다. 시쳇말(時體)로 그날의 방문은 한 인간의 꽉 막혔던 의식에 구멍을 뚫어준 계기가 되었다. ‘유능한 기획자가 있다면 안 될 건 없겠구나.’
그 순간 두 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비닐하우스미술관을 보면서 말이다. 벚꽃의 전격성과 TV에서 봤던 태국의 ‘매끌롱 기찻길 시장’의 가변성이었다. 철로 변에 좌판을 깔아 놓은 상인들은 매번 기차가 들어올 때마다 재빨리 포장을 걷고 물건을 치워줘야 한다. 늘 불확실성에 직면하는 상황인 것이다. 빨리 피고 빨리 지는 벚꽃의 찰나성(性)도 그렇다. 비바람과 우박 또는 태풍이 들이칠 때마다 지붕 채 날아가 버리는 비닐하우스의 위태위태한 점 또한 지속성 면에서 뭐가 다를까 싶었기에 이 같은 생각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 보절미술제는 단 열흘 정도 임시 공간에 그림을 거는 미술제였다. 올해로 두 번째 열린 미술제는 박물관이나 여느 미술관처럼 튼튼한 건물에서 열린 것이 아니다. 1관엔 볏짚더미와 왕겨를 이용한 설치미술로 꾸몄고 제2관은 ‘창작의 숲’ 회원들을 비롯한 전국의 54명의 화가들이 출품한 83점의 그림을 걸었다. 제3관은 학생 224명의 글.그림과 400 여 명의 주민들의 참여가 있었다. 면사무소 근처 빈 점포를 비질하고 닦아 참가자 11인의 서각 갤러리로 또 다른 점포에는 그림 책방을 열었다. ➁에서 계속
글쓴이/박정례 피플투데이 선임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