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먹긴 조금 이른 오후였습니다. 그래도 우린 순대국 집으로 가게 됐습니다. 오늘은 왠 가을비가 아침부터 추적추적 많이도 내리는지요. 조금 오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예측은 빗나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겠네요. 자연은 때로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합니다. 엿장수 맘 대로 움직여준다면 누가 뭐랍니까. 그렇군요. 쉬지 않고 내린 비는 하루 종일 하늘을 회색빛으로 물들였습니다,

 

지인과 함께 군자역에서 만나서 노원역에 내렸습니다. 칠보작가전에 출품한 작품전이 끝나서 작품을 회수해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길 나선 김에 종로 뒷골목에서 작품 재료를 샀기에 양손엔 짐이 가득 합니다. 비맞지 않으려면 우산까지 들어야죠. 손에 짐을 든 사람에게 비는 이래서 반갑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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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늘 같은 날을 학수고대하며 반기는 사람도 있겠지요. 해외 명품 레인부츠를 사놓고 폼생폼사 하고 싶은 아가씨요. 옳거니, 이런 아가씨는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순간 무릎을 치며 친구와 부랴사랴 약속을 잡습니다. 거울 앞에서 있는 폼 없는 폼 잔뜩 잡고나자 드디어 코디가 완성됐나 봅니다. 레인부츠를 신고 집을 나서는 기분 나이스에요. 그곳은 왁자지껄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면서 수다 삼매경에 푹 빠져들 수 있는 명동의 어느 찻집이었습니다. 비오는 날 떠올릴 수 있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지인은 오늘 점심으로 한경옥이라는 친구가 사준 9천원짜리 만두국을 먹었답니다. 만두국에 대한 만족도가 좋지 않았는지 만두국 먹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자꾸자꾸 여러 번 되뇝니다. 집에 와서 포스팅 하는 지금 이 시간은 9시인데 그 친구 만두국에 대한 불평 소리가 귀에서 맴돌고 있는 바람에 지금 이렇게 만두국 얘기를 쓰고 있네요.

 

만두국 먹은 곳은 경인미술관 앞에 있는 개성만두집이라나 봐요, 만두 6개 달랑 들어있고 반찬은 깍두기와 김치 딱 2가지였답니다. 맛있었으면 이런 말 나오겠습니까? 그 만두국 맛 별 맛도 없더랍니다. 사람은 와글바글 뭣땜에 그렇게 많은지 자기로서는 이해가 안 되더래요. 음식 맛도 별 볼일 없는 집에 사람은 왜 이리 붐비지? 점심을 먹은 사람은 4사람이었는데 그것이면 됐지 차까지 사주더랍니다.

 

전통 찻집였다나 봐요. 대추차는 그릇도 크고 양도 많아서 6천원짜리 대추찻값에는 크게 불평을 안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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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 이런 시간을 보낸 친구와 노원역 함흥 순대집에 갔습니다. 순대국밥은 토종순대국과 함흥식 2가지가 있는데 우린 함흥식을 주문했습니다. 순대국 가격은 6500원인데요. 이집은 김치가 맛있어요. 정성스럽게 담은 김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는 되는 집입니다. 깍두기도 괜찮은 편입이다.

 

채널 A에서 하는 먹거리 X파일 유명하잖아요. 많은 음식점들이 고백한 게 하나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인공조미료를 약간은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이 조미료 맛에 워낙 길들여 있어서 전혀 안 쓸 수는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고 있어요. 왜 이말을 하냐면요. 설농탕 집이나 갈비탕 혹은 순대국밥 집에서 나오는 깍두기나 무김치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고요. 이집 깍두기도 설탕 조미를 한 것임에는 틀림 없다는 점을 짚으면서도. 먹기엔 괜찮았다는 말을 하려고요. 6500원이면 가격 대비 괜찮은 식사였습니다.

친구야, 오늘 같이 비오는 날의 오후에는 칼칼한 함흥식 순대국을 주문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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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6 09:57 2013/10/1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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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아트에 가면 수많은 전시회를 볼 수 있다. 10개 정도의 전시장에서 연중무휴 전시가 열린다. 한 번의 발걸음이면 최소 10작가들의 전시를 만날 수 있다니!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여는 작가와 그들의 작품의 성찬이풍성하기 이를데 없다. 저마다 고심 속에서 빚어낸 분신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때로는 감동과 때로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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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어 소감 한마디를 적는다. 박민섭이라는 조각가의 전시장이다. 다른 이들의 전시 공간에는 평면작업들이 많았으나 이곳은 묵직한 조형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고재 혹은 동을 이용하여 형상화시킨 황소가 가슴 무겁게 사람을 잡아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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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는 하나의 상징언어다. 한평생 가정을 이끌어가기 위해 희생과 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다.한평생 일만하는 황소, 인간에게 자신의 털끝 하나까지 주기만 하는 황소다. 이는 작가가 들여다 세상살이에 대한 문제의식, 특히나 가족을 생계부양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살아야 한느 가장의 책임과 의무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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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작가가 내세운 황소에는 간단치 않은 의미가 부여됐다. 집을 허물어 나온 목재로 큼직한 조형물을 선보였다. 이어 낮과 밤을 교차하며  무한 반복되는 '또 하루'에 매어 소리없이 의무를 다하는 황소가 있다. 삶의 위험에 노출돼 집꼭데기인 '옥상에서' 서성이는 황소도 있다.

 

박민섭 작가의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적어도 난해해서 다가가지 못하는 혼란은 없을 것 같다. 우직하고 저돌적인 황소를 만나거나 길을 걷는 황소 혹은 슈퍼맨과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것처럼 요술양탄자를 얻어타고서라도 삶의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여러 군상의 아버지를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을 것 같다. 관객은 그가 제시한 갖가지 다른 군상 앞에서 공감 혹은 아쉬움의 탄식을 내지르고야 말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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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3 14:52 2013/10/1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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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초보은과 신세 갚기

반갑게 받아보는 카톡문자가  있다. 한 모임에서 알게 된 분으로부터다. 고사성어도 있고,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있어서 오는 족족 열심히 받아읽고 있다. 오늘은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고사성어였다. 결초보은이라는 뜻은 죽어서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다. 죽어서까지 입은 은혜를 갚는 사람이나 그런 일을 배푼 사람이나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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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갚고 받을 것이 있다면 받아야 하는 세상 이치다. 그러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었을 때는 딱히 보답을 바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입은 은혜나 신세는 "후일 잘 되서 꼭 갚아야지"하는 정신이다. 남에게 신세를 지고도 갚을 줄 모르는 얌체도 좋지 않고 갚을 형편이 됐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이 있다면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이다. 반대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갚을 형편이 못 되는 사람은 세상살이가 그만큼 고달프테니 여전히 딱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초보은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 중국의 진나라에 위무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위무자의 아버지는 아들 위과에게 이르기를 "나 죽거들랑 네 서모(庶母)를 개가시켜라."하고 당부를 한다. 하지만 막상 죽기 바로 전에는 무덤 속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즉 같이 묻어달라는 것이다.

 

산 사람을 묻는 것을 순장이라 하고 쓰던 물건을 같이 묻어주는 것을 부장이라 한다. 오래 전 옛날에는 순장제도라든지 부장제도가 엄존하고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산 사람을 묻는 순장이 될 것이다. 순장을 당하는 사람은 힘없는 천민이나 돈에 팔려온 가난뱅이거나 몸종이다. 반면에 권세있고 돈있고 빽있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아서 여기엔 인간 세상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권세있는 자가 첩이나 종을 같이 묻는 이런 풍습은 살인행위 그 자체라 할 수 있고, 무자비한 생명경시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물건처럼 순장했던 것이다. 풍습이나 관습의 얼굴을 뒤집어쓰고 별 거부감 없이 아무렇제도 않게 행해지는 이 같은 일이야말로 오히려 더한 야만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위무자는 자기 아버지가 죽기 바로 전에 한 말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한 말이기 때문에 정신이 취할 바가 못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멀쩡했을 때 한 말을 제대로 된 유언이라 여겨 서모를 순장시키지 않고 개가시킨다. 

 

한편 위과가 전쟁에 나가게 되었다. 싸움은 끝날 줄 모르고 상대 장수 두회와 백중세를 벌이며 일진일퇴를 거듭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적장 두회의 말이 갑자기 엮어 늘어뜨린 풀에 넘어지게 된다. 이틈을 타서 위과는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게되서 싸움에 이긴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웬 노인 하나가 나타나 말한다. 자신은 개가해서 잘 살고 있는 서모의 아버지라고 밝힌다. 비록 죽은 목숩이지만 딸을 살려준 은혜기 고마워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 풀을 엮어서 상대 장수의 말이 걸려서 넘어지도록 힘을 썼노라고 한다. 노인은 자기 딸의 생명을 구해준 보답을 그런 식으로 보답한 것이다.

 

결초보은은 이렇게 죽어서까지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다. 감동적이다. 옛이야기나 고사성어에 깃들어 있는 미담은 우리에게 사람다운 도리를 가르쳐준다. 공자의 말씀에 '배우고 익히면 이 아니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있다. 배우고 익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인데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 뒤따르는 삶은 얼마나 더 즐거운 일일까?

 

하면,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얼만큼 베풀었으며, 반대로 내가 입은 은혜나 신세는 무엇이었는가 이따금씩 생각해 볼일이다. 저녁이 되면 하루를 점검하고, 일주일 뒤엔 한주간의 일을 헤아려 봐야한다. 이런 일을 소홀히 하면 사람은 그만큼 성숙한 길에서 멀어진다.

 

'오수의 개'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려움에 처한 주인을 구한 개에 관한 이야기인데 짐승도 자기를 길러준 주인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교훈을 들어있는 예화이니 만큼 사람은 말해 무엇하랴 싶다. 결초보은까지는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선행을 하면서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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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9 17:09 2013/10/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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