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의원의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정책 포럼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조세정책의 방향과 전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조세정책의 방향과 전략? 이런 말을 들으면 북유럽이 연상된다. 왜 그럴까. 서구 북유럽은 역동적인 복지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이 덕분에 그 나라 국민들은 누구보다도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를 위한 조세정책은 누구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정치인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단 말이야. 그렇다. 문제는 정치다. 정치인들이 바보 정치를 한다면 이 모든 염원이 말짱 헛일이다. 정치인들은 뭐하는 거야? 뭐하느냐고? 싸움질도 하고 외유도 하고 정파싸움 하느라 직무유기도 한다. 그러니까 도대체가 정치인들이 엉뚱한 짓 못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누가, 누가해야해? 누군 누구겠습니까. 바로 국민이죠.

 

때마침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조세정책의 방향과 전략에 대한 포럼 소식이 들렸다. 바로 무소속 정동영의원이 주최하는 정책포럼이었다. 지난 금요일 국회 의원회관 128호에서였다. 포럼에서 발제된 내용을 간추려본다.

                                        

  

 발제를 맡은 사람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정세은 교수였다. 첫마디부터 사롭지 않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로서 한참 젊음과 낭만을 구가해야할 이 땅의 대학생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말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즘 웬만한 사립대학의 등록금 장난이 아니지요?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국립대학이에요. 그래서 등록금이 130만원에서 140만원 정도 밖에 안합니다. 일반 사립대 보다 등록금이 반값 인거죠. 그런데도 많은 학생들이 알바를 하느라고 공부를 못해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1년 정도 휴학하는 것은 보통입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알바를 하는데, 학교 끝나고 나서 5~6시간씩 일을 한다고 해요. 그럼 나머지 시간에 공부를 하냐? 공부를 못한답니다. 주중에 커피숍에서 일하고 버는 돈이 50만원, 이 정도 돈은 돈을 버는 사람들한테는 큰돈도 아닌데, 정작 학생들은 공부는 뒷전이고 알바에 매달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복지는 학생들이 걱정 없이, 등록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돈 몇 푼에 알바에 묶여서 젊음도, 낭만도 없이 지내고, 더구나 공부도 못하는 나라라면, 창조를 기반으로 하는 고도의 선진사회로 나아갈 수 있냐, 그렇지 못합니다. 단지 졸업장만 달랑 받고 대학을 떠나게 되는데, 이런 상태에서라면 당사자인 학생도, 국가도 정말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발제문을 중심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앞부분은 대부분 아는 이야기가 많을 테고요. 다만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면, 우리 국민들에게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과도한 요구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주 강고하게요. 이런 생각이 복지국가로의 지향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에요. ‘행복추구권’이라는 것은 결코 국가가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가 아니거든요.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고, 국가 정책 방향과 시스템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유가 좀 되는 젊은이들은 취직자리를 위해서 스펙 쌓기에 올인 하다시피 하고 있잖습니까. 이러고도 변변한 취직자리가 없는 나라라면 젊은이들 잘못인가요?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학생 본연의 일을 제쳐두고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알바에 매달리는 슬픈 현실이 흔한 일이 돼버렸어요. 이게 젊은이들의 잘못인가요?

 

복지를, 못사는 사람한테 돈 주는 거 그래서 돈을 낭비하는 거 정도로 생각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서 보수층이나 조,중,동은 감세정책을 말하지만, 적정한 세금을 걷어서 복지정책을 펴는 것이 여전히 세계적으로 대세입니다. 원론적인 입장에서 생각해도 그래요.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한 복지정책은 낭비가 아니라 성장과 안정의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복지정책을 통해서 우리는 역동적인 복지정책의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고, 신자유주의 이론을 등에 업고서 감세정책과 복지축소로 경제적인 곤경에 처한 사례를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복지정책의 획기적인 강화와 올바른 정책이라는 확신이 설 때, 경비 지출을 위한 재정조세정책을 펼칠 수 있어요. 그리고 구체적인 전략이 있어야 만이 목적과 목표가 현실성을 갖는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제도적 기능이 뒷받침 될 때 실행으로 옮길 수 있고, 올바른 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합니다.

 

정책방향과 관련되는 것인데요. 사회안전망의 선 기능 즉, 가장 기본적인 복지지출인 사회안전망은 경기가 어려울 때 자동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수단이 됩니다. 주머니에 최소한의 돈이 있어야 필요한 것을 사서 쓰기 때문이지요. 아주 쉬운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잘 짜여진 사회안전망은 경제의 안정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성장과 고용에도 기여하는 좋은 정책입니다.

 

여러분, 잘 알다시피 미국이나 영국에서 감세정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가 언제입니까? 레이건 정부와 대처의 우파 정부 때잖습니까? 클린턴 정부 때 증세정책과 지출삭감을 시행하다가 다시 부시 때는, 강력한 감세정책이 실행되었어요. 이 결과가 어땠습니까? 사회 안전망의 허약함 속에서 국제금융위기가 발발했고, 미국의 서민층들이 입은 충격이 타 국가들에 비해서 컸다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복지정책의 미흡함은 사회계층의 소득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나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같은 재정적자라 하더라도 감세정책은 효율성 및 형평성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정책인 것이라는 점이지요. 공공서비스가 줄어들어서 서민과 중산층의 혜택이 감소하여 이들의 삶이 곤궁해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죠.

 

유로존 국가들이 다소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재정건전화 프로그램을 추진합니다. 여기에는 세율은 높이고 지출은 억제하는 것도 들어있고, 스웨덴 복지모델의 일부 문제점을 인식하고 세계화논리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도 있었습니다. 중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상속세, 증여세, 부유세를 페지한 것이 그것이에요.

 

그럼에도 여전히 스웨덴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전혀 훼손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복지정책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것이지요. 유럽 선진 국가들에서는 사회안전망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확충하여 경제가 심각하게 침체하는 것을 막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잘된 복지정책으로 인해서 양극화와 빈곤화를 어느 정도 봉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해 8월말에 집권에 성공한 일본의 민주당을 보기로 하죠.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민주당은 일본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중지 선언했습니다. 심지어 15년 동안 계속되어 4조 1천억을 퍼부어 3분의 2가 집행된, 군마현에 있는 얀바댐 건설을 중단시켰지요. 그리고 도로나 철도등의 건설계획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민주당 정부가 이러는 것은 ‘세금 낭비형 토건사업’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인 거죠.

 

왜 이 같은 말을 하냐면, 역동적인 복지정책 즉, 보건과 교육, 실업 관련 지출, 의료, 보육서비스, 아동서비스, 구직지원이나 재활서비스 등 불확실성 완화나 사회통합 유도와 위험부담 빙용 축소 등을 통해 총 요소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고, 투자환경 개선으로 인하여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고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수준에 비해 복지수준은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경제성장에 따라서 사회지출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입니다. 이만우와 노상환(2002)은 우리나라의 사회보장 및 보건복지 지출은 적정지출의 32%에 불과한 실정으로서 매우 미흡하다고 분석하고 있어요.

 

정재하(2005)는 공공부문의 고용규모는 선진국이 10%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3%로서 매우 낮은 편으로 보고 있습니다. 황성현(2009)도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 필요한 일자리도 만들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업을 하려면 재원이 있어야 하겠지요. 세계적인 추세가 이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일부 부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부자감세라든지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부동산 보유세 후퇴와 불로소득의 창출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입니다.

 

세수 증가를 위해서도 경제 정의가 바로 서게 하기 위해서도 낮은 소득세율, 탈세, 광범위한 비과세, 감면제도의 남발, 불로소득에 대한 미진한 과세 등의 문제를 바로 잡도록 강화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공평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얘기죠.

 

결론을 내려 보죠. 이명박 정권은 집권 초기의 정책의지에서 보듯이 재정 및 전반적인 기조는 부자감세와 복지축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진보적인 대안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사이클을 작동하게 해야 된다고 봅니다.

 

이병찬(2007)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가 아니라 네덜란드와 덴마크 같은 고용, 혁신, 평등을 병행시킨 ‘사회적 시장 신경제’의 길이어야 하며 여기에 스웨덴 같은 공공서비스와 사회서비스, 사회적 일자리 부문을 결합시켜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한 번 더 총괄해서 강조해보겠습니다. 위와 같은 복지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마련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자감세를 할 것이 아니라 예산의 낭비와 탈세를 막아야 합니다. 각종 감면제도 정비, 불로소득에 대한 철저한 과세, 토지불로소득의 환수가 추진되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공평과세인 거지요. 이렇듯 공평한 과세가 이뤄진다면 국민들도 ‘역동적인 복지국가’를 위한 세금 부담에 기꺼이 동의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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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3:31 2010/02/04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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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이 대수냐?... 반듯한 내 코도 의심받는다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

 

얼마 전에, 부산의 한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2명이 사망하고 한사람은 중태에 빠진 것이다. 다른 나라, 미스 아르헨티나 출신의 ‘솔란지 마냐노’도 성형수술 후 닷새 만인 지난 11/29일(현지시간)에 목숨을 잃었다. 미스 아르헨티나 솔란지 마냐노의 성형수술 이유는 좀 더 탄력이 넘치는 엉덩이 라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게 다 성형외과에서 벌어진 의료사고다. 예쁘게 다시 태어나려다가 아주 영 저세상으로 가버린 이 사건들,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잘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대로, 미스 아르헨티나인 ‘솔란지 마냐노’는 솔란지 마냐노 대로 모두 다 미에 대한 집착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예뻐지려는 욕구 앞에는 이제 남녀노소가 따로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그러나 돈 많이 들고 위험이 따르지만, 잘만 하면 달라진 용모를 바탕으로 새로운 인생을 꿈 꿀 수 있다는 환상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을 감행하는 사람이 흔해졌다.

 

성형에 대한 기대감은, 매스컴과 각종 광고는 물론 성형으로 인해서 예뻐진 연예인들이 부지런히 역할모델을 해대는 바람에 평범한 사람들도 성형을 결심하는 데 아주 큰 몫을 하고 있다.

 

                                

 

언뜻 생각나는 한 예가 있다. ‘ㅍ’이라는 유명한 3인조 여자가수 중 하나였던 ‘ㅎㄹ’이 초창기에는 가슴이 빈약했었단다. 근데 가슴확대수술을 한 후부터는 가히 cf의 여왕이라고 할 정도로 승승장구하는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수많은 연예인들과 기획사들은 돈과 명예를 거머쥐기 위한 비슷한 욕망으로 인해서 나도, 우리 소속사 누구누구도 ‘ㅎㄹ’처럼 되기 위하여 ‘ㅎㄹ’ 따라하기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음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러 저런 이유로 우리 사회도 지금 바야흐로 ‘성형을 권하는 사회’를 넘어 이제는 성형중독사회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그렇다. 하도 많은  환상과 욕구가 맞물려  있는지라  이  성형이라는  열차는 이제  좌우당간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싶어하는  신묘한  열차가 되어가고 있다.

 

세상이 이렇다보니 나 역시 성형에 대한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생겼다. 며칠 전 이다. 옷 수선 집에서였다. 한동안 사람들 앞에 나설 일이 없었던 터라서 굽 낮은 신발에 바지 차림으로 굳어진 나의 오랜 패션 스타일, 드뎌 변화를 찾아야하는 시점이 찾아왔다.

‘뭐 입을 만한 옷 없나?’ 눈을 번득이며 장롱을 뒤져 찾아낸 것이 정장 옷 두벌이었다. 하지만 옷은 이미 철지난 구닥다리, 무엇보다도 어깨가 넓은 것이 눈에 거슬렸다. 궁리 끝에 당연 빠따로 찾아간 곳이 수선 집이었다.

 

가끔 들리는 동네 수선 집, 이 아줌마 꽤나 멋쟁인 데다가 옷을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차림새며 용모에 대해서 여간 훈수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딸들의 옷 투정, 용모 투정 등등.... 뭐 이런 얘기쯤은 손님들에게 양념 삼아 늘 입에 달고 사는 아줌마다. 다 좋다. 근데 이 아줌마는 대뜸 내게 한다는 소리가

“그 코, 수술 한 거 아니에요?”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참 나? 이거 기분 묘하네! ... 대체 내 코의 어디를 보고 성형을 한 코냐고 묻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빼어난 미모를 가진 모친 덕에 이날까지 코에 대한 콤플렉스 하나만은 벗어나서 살고 있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 중의 하나다. 이런 내게 ‘코 성형했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코 성형했냐’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해지면서 입에서는 참 나? 소리가 절로 나와 나도 몰래 한 번 더 혼자 말을 해봤다. 참나!

 

“참 나 아줌마도, 우리 친정 식구들, 키는 좀 작아도 인물 하나만은 보통은 되는 집이에욧!”

고개를 저으며, 코 성형이 대체 웬 번지수가 틀린 소리냐는 듯이 말했다. 그것도 모자라 손을 코에 갔다 대고서 “이 코 주무르고 흔들어 보세요!”하며 비틀고 누르고 흔들어 보이며 생 쇼를 다 해보였다. 내친김에

“동생 봤잖아요! 이래 뵈도 우리 동생은 여학교 때..... “닥터 지바고 보셨어요? 여주인공은 쥴리 크리스티? 그 여배우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던 용모에요. 지금은 좀 한 물 갔지만요....” 

 

코를 성형하지 않았냐는 수선 집 아줌마의 말에 뜬금없이 동생 얘기며 영화 얘기로까지 번지수가 다른 곳으로 마구 달린다.

“아줌마 동생, 이쁘지요~”
나의 기세에 눌렸는지 수선 집 아줌마는 내 말에 순순히 수긍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냐면, 동생한테도 그 코, 그 눈 성형하지 않았냐는,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이 아줌마는 남의 얼굴 ‘성형이냐 아니냐?’를 판정하는 것이 취미생활로 굳어졌는가 보았다.
 
“그럼, 다른 데는 없어요? 오늘 유난히 얼굴이 튀네요....”
“아이구머니나, 정말.... 참 아줌마도 왜 그러세요?”
화장을 짙게 한 것도 아니고, 유난히 예쁜 얼굴도 아닌 내 얼굴이 튀게 보인다며, 기어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주머니의 말에는 또 한 번  참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정말 어디 손댄 곳 없냐고 재차 묻는 아줌마의 튕이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으이그, 그러는 아줌마는요 어디 없어요?”
“눈~요. 몇 년 전에.....”
“얼마주고 했는데요. 얼마요?”
남이 뭘 했다면 값이 궁금해서 왼 만하면 지체 없이 값을 물어보고 싶어진다.
“80줬어요......”
“네, 그렇군요..... 수술 덕 좀 봤군요. 그 눈?”
‘어쩐지 눈이 동그랗더라니....... 저 아줌마야말로 수술했구만...’

 

쌍꺼풀 수술쯤이야 요즘은 간단한 수술이겠지만, 것도 재수 없음 영 아닌 경우도 있다. 아는 언니의 딸은 쌍까풀 재수술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했다. 그런데도 맘에 안 드는지 눈을 가릴 목적에선지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다. 남 일이라서 평소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 이 시간 지금, 왜 뜬금없이 ‘ 쌍커풀수술’이 잘못되어 속앓이를 하고 사는 남의 집 딸 일에 까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자연미인들 까지 ‘성형했냐?’는 의심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다니... ㅜㅜ   참 참....

돈을 쳐 들였을망정 수술에 성공만 했다하면 세상에 다시없는 선녀처럼 폼 잡고 사는 사람이 있고, 일부에서는 성형부작용 때문에 인생을 오히려 한숨과 후회로 사는 사람이 있다. 한마디로 인공과 천연이 뒤섞여 공존하는 세상이다.

 

성형수술이 큰 돈과 직결되는 수술이다 보니 한편으로는 은근히 부를 상징하는 수술로까지 비치고 있는 게 걱정이다. 이래저래 성형수술은 수많은 이야기를 낳고 이 이야기는 다시 확대 재생산 되어 씹을 거리 안주거리를 제공하는 순환이동이 빈번한 세상이 돼버렸다.

 

이래서 이 세상은 재밌고 우습고 흥미진진하다는 건가? 와우! 시끄럽고 희한하고 복잡하다. 그리고 비극이고 희극이다. 미추, 부와 빈, 행운과 불운, 빛과 어둠 등 셀 수 없이 양면성을 띄며 이쪽과 저쪽으로 대비되는 것들로 인해 세상은 요란하고 오늘도 지구는 여전히 자전하고 공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본래 타고난 자기 용모를 가진 자연 미남 미녀들이여 그대들 앞에 비록 도매금으로 ‘성형했다’는 의심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닥친다 해도 ‘성형이 뭐 대수인가?’ 번듯한 코, 성형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예쁘면 좋은 거 아닌가.

예쁜 게 뭔지......
예쁘다는 소리 들어서 싫다는 사람 있음 나와 보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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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3:15 2010/02/04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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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라 건너 뛰고 맛뜨리아에서

포탈라 건너뛰고 맛뜨리아에서!

 

영화를 본 후 감독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왔다. 로비에 서자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윤지미씨가 우리 일행에 합세했고,

여러 사람과 한두 마디씩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꽤 되었다.

 

시작 전에 받은 노란 쪽지에 별표를 해서 팬 투표함에 넣고, ‘독립영화’에 관한 설문지도 작성했다. 요즘 설문지 작성해주는 데는 공짜가 없더라. 여기서도 볼펜 한 개와 커피 한 병씩을 주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무엇을 하지? 우리는 배꼽시계가 보내는 째깍소리에 충실하기로 했다. 극장 뒤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서 두리번 두리번....... 선두에 선 사람의 꽁무니를 좇아서 계단을 올랐다.

 

분위기가 어째 괜찮은 거 같다. 식탁마다 하얀 식탁보가 깔려있고 식기가 세팅되어 있었다. 에그.. 그런데 이게 뭐람? 전부 예약석이란다. 뭔 일이여? 토요일 밤 누가 이곳을 벌써 다 찜해놓았단 말인가. 할 수 없지. 선약이 있다는데... 일행은 줄줄이 다시 내려왔다.

 

‘포탈라’, 우리가 들어갔다가 나온 티베트음식점이다. 포탈라는 모든 티벳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달라이라마를 경외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관심덕분에 이 음식점 ‘포탈라’도 나름대로 단골손님을 확보하고 있나보다. 포탈라, 좋겠다.

           

                  

 

포탈라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 북서부의 포탈라산에 있는 궁전을 가리킨다. 포탈라는 첨에 송첸캄포왕 때 만들었지만 가장 위대한 제 5대 달라이라마가 지은 것이라 한다. 왜 우리는, 왼 만한 사람들은, 테베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거지? 어떤 사람은 말한다. “한국은 작은 나라라서 외국 사람들 중엔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러나 이게 정확한 말일까? 그 보단 사람들에게 각인될 만한 한국의 상징물이 문제인 거지. 안 그래요?

 

한걸음 건너 두세 걸음 그리고 건너건너 돈까스집으로 갔다. 여기다. 우리가 들어갈 집이, 여기도 알고 보니 나름 자주 와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송기역씨, 근처에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간간히 와본 곳이라고 했다. 똑같은 컨셉으로 모 여대 앞에서 크게 성공한 집이라고 했다.

 

오방찌게 둘, 주먹밥 둘, 돈까스 둘 그리고 원하는 사람마다 밥 한 그릇씩,“이집 고구마 돈까스가 맛있어요!” 송기역씨가 말했다. 곁들여서 음식점의 역사를 간략하게 말해주는 것이어서 앞에서 소개한 것이다. 근데 우리는 이곳에서는 정말 밥만 부지런히 먹었다. 4만 6천원치(?)

 

‘영상포럼’이니 어쩌니를 논해본 곳은 2차로 가서였다. 발단은 뭐시더라? 송기역씨가 감명 깊게 본 ‘시대정신’이라는 다큐멘터리와 또 일본 감독 키타노 다케시의 작품 ‘그해 여름은 푸르렀다’를 얘기함으로서 영감을 얻었다. 우린 이렇게 명동성당 앞에 있는 괜찮은 호프집에서 소세지 안주와 훈제 닭요리를 놓고 생맥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했답니다. 

 

                 

 

 “어떻게, 좋은 영화를 많이 보셨네요?” 아는 사람이(아님, 어떤 사람) 보내줬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 혹은 어떤 사람이 그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 없는 사람은 쪽팔리겠다 싶었다. 그러니 어떤 사람 있는 송기역씨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주시압!’

 

모두 짝짝짝! 7기생들(원하는 사람에 한 해서에요!) ‘7기’라는 이름 안 붙여도 되는 거구요. 어쨌든 1달에 한번이라도 영화사적으로 다큐멘터리 역사 상 기념비가 될 만한 좋은 작품 있음 힘 합쳐 구해보고 포럼을 진행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음다.

 

그 과정에서 모든 준비가 다 잘돼서 첫모임을 번듯하게 시작하면 좋지만 세 번째 7기모임조차도 뭔가를 논의하기만을 위해서 만난다는 것은 시간상 공간상 개인 일정상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썩 내키지도 않고요. 다시 말하자면 두 번의 만남도 여러 번의 전화와 까페 게시판을 통해서 공지한 결과였거든요. 근데 논의하자고 세 번째도 또 그렇게?

 

참석자 8명 중에서 영상이든 다큐든 긴 영화든 간에 ‘영상물’을 매개로 모임을 갖자는 취지에는 전원 찬성을 했어요. 이 과정에서 다시 말을 앞으로 돌리자면, 첫모임을, 모든 거 준비해서 번듯하게 시작하면 좋겠지만, 모임이 완전 정착되기 일보 직전의 과도기인지라 이시규님아이디어를 하나 냈어요. 님의 웹하드에 영상물 하나를 다운 받아놓을 테니 3차 모임을 그냥 논의만 하기위한, 아니면 대책없이 모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집에서 보고 만나자는 것입니다.

 

어때요? 이시규님이 모임을 위해서 배려한 이 제안이 괜찮치 않나요? 아님, 어느 분이 나서서 영상포럼을 포럼답게 하기위한 준비와 배려를 해주신다면 좋은 일인거구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완전 만족은 못하지만 차선책으로다가 이시규님이 제안하신 방법도 좋구요.

 

모든 기수를 뛰어넘어 좋은 추지로 하는 것에 제약이나 구분을 지으면 의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폐쇄적인 공간 보다 열린 공간이 좋겠지요. 아무리 열린 공간이라 노래 불러본들 이 바쁜 세상에 모임 근근히들 이어가는 거 아시지요? 그러니 첨부터 구분 짓고 줄 그어 놓는 모임은 전 원치 않습니다.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를 아시나요?

아동문학에서 본 책 이름이에요.

좋은 의견 많이많이 보태주시고요

댓글 많이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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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3:05 2010/02/0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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