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의 대화 ~ 외박의

영화감상 후 팬 미팅

 

영화가 끝났다. 팬미팅 시간을 가졌다. 김미례 감독과 다큐멘터리 속에 나오는 실제 인물 두 사람이 함께한 자리였다. 이랜드 일반노조 이남신 전 수석부위원장과 전 사무국장 홍윤경씨이다.

 

김미례 감독은 상당히 들떠있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즐긴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본인의 작품이 상영되고 관객들로부터 직접 질문을 받는다는 사실이 즐겁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니까.

 

이랜드노조원 출신 두 사람은 ‘외박’의 성공을 빌어주며 각자의 발언을 또박또박 이어나갔다. 먼저 이남신 부위원장은 투쟁과정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국회의원으로 출마한 뒷이야기를 잠깐 해줬다. 그 일로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는 짧은 이야기였다.

 

온 나라가 대통령선거로 들썩일 때 그들은 한참 투쟁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 와중에서 투쟁목적을 극대화시키고 나아가서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정당에 몸을 실어 국회로 진출하려는 뜻을 세웠다. 실제 조합원들과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도 잠시 비췬다.

 

상처뿐인 영광이 아니겠는가? 아니다. 영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섣부른 액션이었는지도 모른다. 선거는 연말이었는데 그들의 농성투쟁은 정확히 6월 30일부터 시작했으니까 아무리 그들의 복직투쟁이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정치세력화 하는 데는 ‘꿈도 야무져’하는 평가에 그칠만큼 선언적인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하긴, 이랜드투쟁을 지원하가로 한 정당 자체가 선거체재로 들어간데다가, 같은 둘로 쪼개지는 일이 벌어졌다. 하여 연대와 지원의 끈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선거운동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앞서 말한 대로 1박 2일 예정으로 점거농성에 돌입했다가, 21일 만에 공권력에 의해서 진압되고, 나아가서 510일이라는 장기농성으로 이어진 투쟁인데 어느 누구라도 감당하기가 쉽지 많은 않은 일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일은 여성노동자들에게는, 계속되는 투쟁 하나만도 버거운 일인데 얹혀서 선거운동까지 한 일은 이래저래 힘든 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질문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관객 1: 먼저 홍윤경씨 한테 한 질문이었다. 투쟁의 와중에 있었을 때와 지금의 본인 위상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복직하지 못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데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지금도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에는 변함이 없고요. 어려운 동지들의 일자리 보장과 복직을 위해서는 노조 집행부에서 결단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때문에 동지들이 복직한 것에 대해서 비중을 두고 저희들은 아쉽지만 협상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관객 2(실은 철호씨) : 여성 영화제에서 볼 때와는 엔딩장면이 달라졌는데요. 거기서는 마지

막에 투쟁에 함께 했던 여러 사람의 인터뷰가 있었잖아요? 생략된 이유가 있는지요?

 

네, 사람들이, 관객이죠.... 생각하는 몫을 더 던져주기 위해서라고 이해해 주면 되겠네요.

나머지 질문 하나는 홍윤경씨가 대답하는 게 더...

 

투쟁 중간에서 활동을 접고 직장에 복귀하는 사람들도 있고 노조를 떠난 사람들이 있는데 가족들로부터 좀더 자유로운 사람들이 남은 건지요?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렵고 힘든 가운데도 남아준 동지들도 많습니다. 환경과 위치는 변수는 되겠지요.

결국 열의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줬어요.

 

팬 미팅 사회를 봐준 사람은 나갈 때 투표를 꼭 해달라는 당부로서 끝을 맺었다.

 

          

 

로비에서 사진을 여러장 찍었지만 카메라 불실로 사진이 흔들렸어요. 미안합니다.

그래도 단체사진 한장 올려봅니다. 감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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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2:58 2010/02/04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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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을 보고....

외박은?

 

 외박은 78분짜리 독립영화다. 감독은 김미례씨다. ‘노가다’라는 작품을 내놓았던 여성감독이다. 이번에는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510일 간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품을 선보였다.

 

2007년 6월 30일 밤이었다.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 상암 월드컵 점으로 속속 모여든다. 이들은 저마다의 지점에서 계산원과 판매원으로 일하는 아줌마들이었다. 대한민국의 ‘비정규 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기 하루 전날 대량해고를당한 사람들이었다.

 

그야말로 소박한 꿈, 1박 2일 동안 계산대 점거농성을 통하여 복직을 주장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외박은, 집 밖에서의 잠은, 무려 21일 간이나 계속된다. 여기다가 천막농성까지 합치면 투쟁기간은 무려 510여일로 이어진다.

 

무엇이 이들을, 아줌마들을 510일 동안이나 투쟁하도록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이랜드 그룹에서는 이들을 ‘비정규 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기 하루 전날 몽땅 해고를 해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안다. 이 땅의 비정규노동자라는 것은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에 비해서 받는 월급이나 대우가 딱 반절이라는 것을, 이쪽과 저쪽 우리와 너희로 편을 가르는 차별의 상징이 이라는 것을, 그래서였다. 단 하루라도 자신들의 삶터에서 복직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보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승진할 뻔한 하루 전날 오히려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이었다. 무려 1천여명나 되었다. 그동안 마음껏 싼 값에 부리던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승진시켜 비싼 임금을 지불하기가 싫다는 속내였다. 그리하여 박성구 이랜드 회장은 법 시행 하루 전날 그 어느 업체보다도 빨리 그리고 잔인하게, 바로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노동자들을 추풍에 낙엽 베듯이 전격 내쳐버린 것이다.

 

“생각해보세요. 해고 통보를 받은 상태에서 계산업무를 보는 제 심정이 어땠겠어요? 막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울렁거렸어요.”하며 울먹이는 여성 노동자의 모습은 오로지 살고 싶다는 절규였다. 그 여성 노동자는 아이가 넷 딸린 아줌마였다.

 

이렇듯이 어린 자식들을 집에 두고 온 사람, 병든 시어머니를 병원에 맡기고 온 사람, 사별한 남편을 대신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는 주부 등 온갖 사연의 여성노동자들이 오로지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한 장소에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파업 첫날, 밤을 맞는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카메라가 이 모습을 천천히 훑고 지나간다. 거기엔 각자의 개성을 뽐내듯이 입은 옷색깔 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준비해 온 타올과 여분의 옷을 이불 삼아 덮고서 하나 둘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이냐? 분위기는 들떠있고 눈빛은 꿈을 꾸는 소녀들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빨강 노랑 파랑 그리고 보라, 무지개동산이 따로 없었다. 별이 빛나는 밤이 따로 없었다. 이것이 점거한 계산대 사이사이에 자리를 펴고 누운 그들의 모습이었다.

 

왜일까?

일탈을 꿈꾸며 집 밖에서 처음 맞는 1박 2일의 외박이었으니까.

 

“우리가 매장에서 일하는 시간요? 이게 우리 주부들한테는 오히려 내시간인 거예요.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일에서 떠나있는 시간이 저희들한테는 나만의 시간인 거지요....”이렇게 말하는 아줌마들인지라 ‘하루만 이렇게 하면 내일이면 일할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풀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딱 1박 2일만 집을 나와서 외박을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튿날이 되었다. 아줌마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지만 말고 자신들의 주장을 외쳐야한다는 것을 깨게 된다. 통일된 대오를 형성해야 투쟁이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았다. 8박자 구호를 외쳐보지만, 팔도 안 올라가고 목소리도 잘 안 나온다. 줄도 삐뚤삐뚤 박자도 엉망 이거 원 죽이 맞아야 해먹지....

 

“다시, 자 다시 한 번! 해~봐아!” “박성수는 각성하라! 해고통보 웬말이냐? 일터 복귀 원한다. 성실교섭 응하라! 응하라!” “아· 이제 좀 되네!”

 

먹어야 사니까, 국도 끓이고 밥도 해 나른다. 상추며 쑥갓이며 치커리 등 씻어온 쌈재료를 펼쳐놓고 나무젓가락으로 반찬 뚜껑에 밥을 덜어서 전달, 전달, 그래 맛있게 먹어! 먹어야 힘을 쓰는 것이여!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 그리고 21일 째, 그 사이 아줌마들은 구호를 다듬고 동작을 곁들이는 연습도 한다. 어떤 때는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고 투쟁을 하며 느낀점을 삼행시로 지어서 발표도 한다.

 

“에구, 왜 이놈의 마이크가? ‘틀리면 욕먹는다. 하는 계산 다시 보자. 조심조심 살피며 말없이 슈퍼맨처럼 잘하자!

’ 이상 캐쉬 아줌마 000”

“호호호, 좋아좋아! 박수!”

 

그러나 밖은 살벌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점거농성 첫날부터 수십대의 전경차들은 매장을 에워싸고 있던 터였다. 무전기를 든 사복차림의 형사들은 이날따라서 유독 더 눈을 번득이며 바삐 오가는 것이었다. 끼리끼리는 무엇인가 부지런히 지시를 주고받으며 분초를 다투기나 하듯이 긴박한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자 자! 상황 빨리 이어라!”

한 사나이의 목소리가 터진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전경들이 매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아줌마들은 바닥에 들어 누워있었다. 손에 손을 또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줌마들이 바닥에 누운 것은 점유면적을 좀 더 넓게 하고 대오를 촘촘하게 하려는 뜻에서 인가 보았다.

 

안이나 밖이나 긴장감이 돌았다. 몇 겹이냐? 방패를 든 전경들이 열을 지어 에워싸고 있다. 그 앞에 지시하는 형사들이 있고, 선발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줌마들을 끌어내는 일은 일단의 여경들이 맡아서 진행하고 있었다. 역할분담인가 보다. 성희롱이나 불필요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전술 차원인가 보다.

 

앞쪽에서부터 5~6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한 사람을 뜯어내고 곧바로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을 또 떼어내서 차례차례 대오를 무너뜨리면서 차에 싣는다. 공권력의 위력이다. 아줌마들의 매장점거 농성이 21일 간만에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투쟁은 계속되었다. 매장 밖에서 천막농성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소박한 꿈은 바로 병든 시어머니, 어린 자식들을 두고 나온 터에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한 직장복귀였다. 그러니 이 ‘소박한 꿈’을 이루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보자. 이 소박한 꿈을 이루려는 가슴 떨리는 일탈이 어찌하여 510여일의 장기투쟁으로 이어진 거냐 말이다.

 

아줌마들의 요구가 지나친 것인가?

이들을 해고한 자본가의 조치가 악랄한 것일까?

 

물벼락이 쏟아진다. 방패로 천막을 내리치고 지지대를 무너뜨리니 천막농성장이 힘없이 허물어진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물벼락 속에서 대열을 짓고 앉아있는 아줌마들은 서로 의지한 채 고개를 숙이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다. 보아라! 월 80여만원 받는 일자리 하나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며 싸우는 모습을! 절실하고 다급한 웅변이다. 아니, 그것은 절규이며 단말마의 함성일 수밖에 없다.

 

 510일, 이랜드그룹의 홈에버가 삼성그룹의 홈플러스로 넘어갔다.

 

그리고 아줌마들은 각 매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농성을 주도한 간부급들은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일자리를 원하는 동지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생활고를 책임져야 하는 주부가장을 살리고, 아이가 넷이나 되는 엄마에게 일자리를 찾아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다급한 문제 앞에서 정작 자신들의 일자리는 희생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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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2:48 2010/02/04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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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외출, 외박을 만나다.

 

 

모처럼 외출을 하였다. 김미례 감독의 외박을 보기 위해서였다. 르포교실 7기 동기생들과 이루어진 약속이다.

 

얼마 전, 신월동 청년(철호)씨는 까페 게시판에 ‘7기 수강생 모여 봅시다!’라는 공지글을 띄웠다. 덕분에 7기생들의 1차 모임은 ‘삶창 사무실’에서 열렸다. 참석자는 이시규, 홍철호, 김정란, 유정아, 청올(계영씨), 박정례 등 6명이 참석했다. 여기다 강곤씨와 송기역씨가 함께 했고 삶창의 김기중씨가 힘을 실어줬다.

 

이날 참석한 7기생들은 중앙시네마 3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외박’을 보기로 결정했다. 물론 영화 관람만이 목적이 아니다. 뒤풀이가 있을 예정이고 후속 모임에 대해서도 논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드뎌 약속 날이 되었다. 1차 모임 이후 모처럼의 외출이었다. 날씨는 포근하고 바람은 잔잔했다. 좋은 날씨가, 부담없이 외출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4호선 열차를 타고 명동역에 내렸다. 와우! 웬 사람이? 토요일의 명동 거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구세군 자선남비와 저 종소리! 딸랑딸랑 마음을 도닥거리며 부르는 그 소리에 이냥저냥 선뜻 다가가 지전 한 잎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허긴 며칠 전에는 ‘구세군 자선남비’와 함께 나온 원숭이 한 마리가 구름떼처럼 사람들을 모으는 데 일조 했다고 한다. 어쩌다가 그런 모금 대박을 터뜨렸냐고 물으신다면, 원숭이한테 옷 입히고 신발 신기고 모자까지 씌워서 그야말로 구경거리 난리 부르스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원숭이인줄 알고 있었다지만 사실은 오랑우탄이었다나? 어느 일간지에 기사까지 났더란다. 얼마나 비정한 장면인가? 아니 유정한 장면인가? 혹시나 해서 두리번 거려봤지만 원숭이는 없었고 나에겐 동물학대인지 동물우대인지 모를 그 장면을 목도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전 한 잎만(얼마인가는 비밀..) 얼렁 넣고 중앙시네마로 발길을 옮겼다.

 

 

여기도 많이 변했겠지. 정말 서울 촌놈의 오래간만의 극장 외출이다. 그래 많이 두리번거리자. 그러나 시야가 왜 이렇게 좁아? 사물 포착력이 뛰어나지 않은지 보이는 것이 별로 없다. 3관으로 가보자. 좁으장한 계단이 보이고 3이라고 쓴 화살표가 있기에 미로 속을 걷는 기분으로 올라갔다.

 

찿았다. 두 사람의 7기생이 보인다. 눈인사, 손인사, 바디 랭귀지 다 섞은 인사를 하고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얼마 후 영화가 끝났는지 컴컴한 가림막을 젖히면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르포 7기생들도 동시다발적으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철호씨, 시규님, 먼저 온 김정란, 이연희 그리고 유정아, 박정례, 송기역씨 영화가 시작된 후에나 도착한다는 계영씨였다. 결국 1차 모임에 온 사람들 하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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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2:39 2010/02/04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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