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21일, 화려한 춘몽(春夢)이기만 한가

-갈등과 혼란에 처한 이 나라에 조타수 같은 역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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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선임기자 박정례}= ‘한여름 밤의 꿈’이라더니,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의 대선정국 판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가 돼버렸는지, 정말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옛 추억인지, “한국에 가면 난 폭풍 대시할 거야!” 작심이라도 한 듯이 뉴욕에서 오자마자 거침없는 직진 행보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했기에 말이다.

 

그처럼 바삐 움직인 데는 반 총장 본인의 의사가 결정적이었겠으나 곁에서 도와주는 참모들의 역할도 적지 아니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아무튼 반 전 총장의 계획은 어긋났고 성과는 좋지 않았다. 10년 동안 국외자로 살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현실과의 간극이 적잖이 노출되는가 하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행동에서는 너무 서두른다는 인상에, 작은 실수도 잽싸게 잡아내어 침소봉대하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환경에, 박연차씨로부터 23만 불의 뇌물을 받았다는 등 제 1당이 날린 견제구는 그의 위신에 금이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넘어 더는 유세(誘說) 행위를 계속할 수 없도록 의욕을 꺾는데 치명적이었지 않나 싶다.

 

정말이지 그를 바라보던 사람은 신기루를 쫒다가 홀린 기분이다. 반기문 전 총장의 추락과 불출마를 통해서 그의 행보를 복기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전례 없이 많은 대선후보자들의 출마 러시에 “정치권에 로또바람이라도 불었나?” 싶은 엉뚱한 비약에 “거품이 너무 심하면 국민들은 이를 어찌 감당할까”하는 걱정까지, 우리사회가 더 이상은 쓸데없는 소모전을 최소화해야겠다는 희망사항까지 더해지는 마당이었다.

 

10년이 어디 적은 세월인가. 그것도 세계 제일의 도시 뉴욕에서의 10년이. 반 총장이 몸 담았던 UN본부가 소재한 뉴욕을 보면 미국제일의 도시로서 더없이 복잡하고 화려한 면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상업, 금융, 미디어, 예술, 패션, 연구, 기술,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유행을 선도하는 세계의 문화 수도이자 도시이며 국제 외교의 중심지대다. 반 총장은 그러니까 이 뉴욕에서, 193개 회원국이 가입한 UN본부의 사무총장이자 최고행정관이라는 영광의 자리에 있었다. 한국에 오기까지 꼬박 10년을 운전기사가 딸린 전용차에 밤낮없이 뒤따르는 수행비서와 보좌진은 기본이고, 세계 어딜 가나 최상의 국빈대접을 받으며 각국의 수뇌들을 상대하는 국제외교관이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귀국성명서를 낭독하는 순간부터 정치인의 삶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곧 정글의 세계였다. 강한자만 살아남는, 반 전 총장은 속도전을 택한 것 같았다. 공항 로비에서 "제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겪은 여러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젊은이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길잡이 노릇을 하겠다"며 "저는 분명히 제 한 몸을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고 이미 말씀드렸고 그 마음에 변함없다"며 빼곡한 시간표를 쥐고 흔들어보였다.

 

한가지, 정부나 국회주도 혹은 국민대표들이 주도하는 공식적인 환영행사가 안 보였다. ‘유구한 역사에 빛나는 대한민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의 수장을 지낸 세계적인 명사가 귀국을 했는데도 말이다. 반 전 총장 측에서 사양했는지 정부 측에서 이를 간과했거나 무시한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유감스러운 상황이었다. 기능올림픽이나 올림픽 같은데서 메달만 따도 카퍼레이드를 벌여주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어쩌다가 격식도 의전도 잊어버린, 그런 귀국이 됐는지 모르겠다. 국가가 어수선하고 자고 일어나면 비정상적인 일이 우박 쏟아지듯 떨어지다 보니 관계자들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귀국 성명을 마친 반 전 총장은 공항철도로 직행했다. 이동 시간대는 퇴근시간과 맞물려 혼잡을 이뤘고, 직접 승차권을 발매하려다 투입구에 만 원 권 2장을 넣는 실수에, 사전예매도 없이 급행열차를 이용하는 통에 비난을 샀다.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고 한다”며 민생행보에 공을 들인다는 것이 그만 사소한 실수가 발생하며 괜히 ‘서민 코스프레’, ‘정치쇼’라는 비난을 들었다. 이어 고향 방문도 그리 매끄럽진 않았다. 충북 음성에 있는 고향의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 방문지의 요양원에서 할머니에게 죽을 떠먹이는 모습 때문이었다. 반 총장 내외는 환자용 턱받이를 하고서 누워있는 할머니에게 죽을 떠 먹였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측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허울 좋은 정치 교체, 어설픈 서민 코스프레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각을 세웠다.

 

한편, 미국 뉴욕 남부 연방검찰이 반 전 총장의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반주현씨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베트남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의 ‘랜드마크 72’ 빌딩건물을 매각하려던 과정에서 중동의 관리에게 뇌물을 건네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 이 역시 더불어민주당의 박경미 대변인은 대변인 성명을 통하여 “성완종 사장이 정관계 자금로비리스트를 남긴 채 자살한 것”과 ”성 사장이 반 전 총장의 마니아이자 스폰서였다는 사실은 홍준표 경남지사에 의해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반기문 때리기’에 열을 올렸다.

 

시사저널도 한몫했다. 반 전 총장을 직접 겨냥하여 2004년5월3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받아 더민당에서는 반 전 총장이 귀국하기도 전에 이재정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에서 “반 총장과 박 전 회장 간에 검은 돈이 오갔다는 의혹이 연일 구체화되고 있다”며 “검찰은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라고 꼬집었고 “이 사건 역시 특검으로 가야만 진상을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압박을 했다.

 

이에 반 전 총장은 동생과 조카 문제에 대해서 "가까운 친척이 그런 일에 연루돼 개인적으로 참 민망하다.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니 그걸 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23만 달러 뇌물수수설에 대해서는 캠프의 박민식 전 의원을 통하여 일기장을 보여주면서까지 적극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크고 작은 악보(惡報)가 반 전 총장의 투혼을 꺾는 높은 산성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특유의 성실한 행보는 계속됐다. 불출마를 선언한 2월1일 오전까지도. 각 정당 대표를 방문하는 일정을 수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돌연히 기자들을 찾았다. 가슴에서 꺼낸 종이 한 장 그는 불출마 선언서를 낭독했고 이로서 그의 대권행보에는 종지부가 찍혔다.

 

그는 “정치권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에 지극히 실망했으며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배석했던 참모들조차 반 전 총장의 깜짝 선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할 정도로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대선행보 21일 만이었다.

 

이쯤해서 그의 실패요인 몇 가지를 더 거론해본다. 너무 서둘렀다. 한국적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단 며칠간만의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없었다는 아쉬움이 든다. 10년 동안 국외자로 살았던 사람이라면 한국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와 너무 동떨어진 사람, 너무 멀리 있었던 사람이라는 거리감을 없애기 위한 작업을 했어야했다고 본다. 반 전 총장 은 남들에 비해서 출발이 늦은 만큼 “더 열심히 뛰어야지!”하는 특유의 부지런한 생각에서였을 터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시간표와 국내의 흐름은 생각만큼 일치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편, 비빌 언덕이 애매했다. 정치 환경이 급변했다는 얘기다. 예정대로라면 새누리당에 입당해 수월하게 대선 레이스를 치렀을 거지만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지금 당이 없어 손으로 땅을 긁는 심정”이라고 토로할 정도로 사정이 달라졌다. 더구나 탈당 후 반 전 총장을 지지하기로 했던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마저 탈당을 보류하면서 그야말로 홀로 일엽편주에 올라 밤바다를 홀로 유랑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반 전 총장이 기자회견에서 ‘정치권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지극히 실망했다’는 내용은 이런 맥락에서 일 것이다.  

 

셋째 제 1야당의 반격이 너무도 드셌다. 한국에 오기도 전에 대선후보 1.2위 주자로 부상한 반 전 총장이었다. 이를 느슨하게 대처했다가는 다 잡은 대권을 빼앗기겠다는 생각이 더불어민주당은 들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더민당 패권파의 기저에는 UN에서의 반기문의 10년은 ‘노무현 대통령의 시혜 덕분이라’는 오너 의식이 깊게 깔려 있다. 일종의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존재 했다고 본다. 이래저래 그의 부상(浮上)을 용납할 수 없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보수 세력들이 전열을 가다듬어 반 총장과 한편으로 뭉치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려는 전술적 차원에서 행하는 발 빠른 공세다.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반주현씨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뇌물 혐의로 기소됐다는 소식에, 반 전 총장을 직접 겨냥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제기 등이다.

 

좋지 않은 조짐들이었다. 반 전 총장의 등장에는 신선미가 부족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게다가 원군이어야 할 여당과 충청 출신의 국회의원들은 오리무중이고, 반 전 총장의 뇌물수수 의혹과 동생부자(父子)의 뇌물공여 의혹을 제기한 친노.친문에 호의적인 언론매체 내지 더민당의 공세는 반씨 일가를 싸잡아 부정부패에 연루된 몹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편으로 시국은 혼미하고 불확실하다. 출발이 빨랐던 타 후보들에 비해 10년 만에 찾아온 반 전 총장은 친숙도나 대중에게 노출된 빈도 등에서 어정쩡한 상태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21일간의 행적은 정녕 일장춘몽(春夢)이었던 걸까. UN이라는 만국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젊은이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길잡이 노릇을 하겠다"던 그의 선한 의지마저 지평선 너머 사라진 신기루처럼 미망(迷妄)한 것이었을까. 사람이 보배고 자산이다. 반기문 전 총장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인적자산이다. 혼미한 이 나라에 조타수 같은 역할을 애써 기대해 마지않는다.

 

*글쓴이/박정례 기자.르뽀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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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9:50 2017/02/2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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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는 것들

-한심하고 덜떨어진 안철수 지지자들 각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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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선임기자 박정례]= 안철수 의원에게 지금 아쉬운 것은 호남으로부터의 지지다. 호남의 지지가 없는 안철수 의원이라면 정치권 어디서든 주목받지 못할 게 자명하고, 어디서 안 전 대표를 유력한 대선후보라 평해줄 것이며 장래가 창창한 후보라 인정해줄까 싶지 않다. 그 원인을 세 부분, 안철수 자신과 국민의당 내부 풍토와 당 외적인 문제로 나눠서 생각해본다.

 

안철수 의원은 어떤 모습이 자신에게 최상인지 하루 속히 감 잡아야 한다. ‘호남에서의 탄탄한 지지세’는 건물로 치자면 탱크처럼 굳건한 기초공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에게 탱크가 건재하다고 볼 수 있는가. 적과 싸워야할 탱크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닦고 조이고 기름처가며 그 성능을 잘 유지하고 있는가도 문제일 텐데 탱크 자체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문제는 심각한 거다. 작금의 안철수 처지는 어떤가?

 

우선 언론에서 씹힌다. 텃밭에서도 지지 받고 있지 못한데 무엇을 믿고 “대선후보로 나섰냐?”고 말이다. 다음으로는 상대후보들에게 씹힌다. 왜냐면 더민당의 문재인과 안희정은 호남에서 조금이라도 자기들의 지지율이 오를 기미라도 보이면 “내가 대세다” “호남이 나를 택했다. 그러니 게임이 끝난 것 아니냐?” 조로 환호작약하며 세몰이를 가중시키고 대세론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을 게 분명하다. 예 컨데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문재인과 안희정에게도 밀리는 안철수라면 전국 어디서든 명함이나마 제대로 내놓을 수 없는 처지에 직면할 것이다. 이래서 호남의 지지율은 안철수 뿐 아니라 다른 당 후보들에게도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된다는 것을 가정하여 4월 말이나 5월 초에 대선이 치러질 전망인데, 단초가 된 굵직한 사건은-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 이어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의혹에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강제모금사건에 박근혜와 최순실 게이트로까지 번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탄핵정국이 아니라면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혼란과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냉혹한 국제정세 등이 빅 이슈로 등장하여 민생안정과 위기타개책에 관심이 모아질 테고 아직은 12월대선과는 거리를 두고 있을 시기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손톱 밑 곪는 줄은 알고, 염통 곪는 줄은 모르는’ 상황논리에 직면해있다. 오로지 대통령 될 욕심에만 골몰하는 사람들과 이에 맞장구쳐대는 언론환경 때문이다. 그들은 대권이라는 과녁판의 정 중앙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 외엔 서민대중의 삶에는 안중에도 없다.

 

이들의 대책 없는 자랑 질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에라 모르겠다. 세상 별 거 있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허무주의적인 패닉 상태를 노출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국민의당과 안철수는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심정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기 전에 정확한 진단평가를 실시하여 치유와 반전(反轉)책을 내놔야 한다.

 

‘국민의당’에는 얼치기들이 너무 많다. 제1과 제2당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국당’에서나마 기회를 잡아보려고 모여든 현실이고, 신생정당이다 보니 보다 쉽게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심정은 이해하겠다. 그러나 최소한의 노력과 열정은 정당생활에 있어 기본 양식이다. 어떤 사안에서든 권리가 있으면 의무와 노력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염치와 상식 말이다. 당원모집 현황이 이를 알아보는 하나의 척도요 리트머스시험지라 하겠다. 국민 없는 국가 없듯이, 당원 없는 당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노력 여부로서 애당심을 잴 수 있기에 말이다.

 

당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역구 의원들이야 굳이 할 말은 없지만, 당직 중에서 제일 영양가가 많은 쪽은 당선권에 드는 비례대표 순번이라 보기에 한마디 짚고 넘어가야겠다. ‘짐승도 키워놓고 잡으랬다’고 당을 튼실하게 키워야할 책임이 있는 당대표의 핵심 측근들은 지난 4.13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려는 욕심에 비해서 감투정신이 너무 없었다고 생각한다. 당직을 장악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두어 달 봉직한 이력으로 염치도 체면도 없이 당선권비례대표의원직을 독식하는 이기심을 보였다.

 

지역위원장을 비롯한 기타 당직에서도 문제였다. 자고로 남의 자리를 욕심내는 사람치고 끊임없이 남 탓만 하는 공통점이 있다. ‘국당’의 제일 큰 병통(病痛)은 “호남 색이 강하면 안 된다”고 하는 점이었다. 호남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속내를 그들은 이런 식으로 이유를 댔다. 안철수 전 대표에게도 “호남 색을 지워야 당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귀부추기고 말이다.

 

김 모 최고위원을 보자. 지난 전당대회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1월9일 천안시 당원대회 때, 최고위원에 도전한 김 후보는 연단에 오르더니 “박지원 의원에게 지역당원이 몇 명인가 물으니 8천명이라고 했다. 당원 모집이 잘 안 되는 제 처지로서 당원이 8천명이나 되는 이분에게 경쟁이 되겠나 싶었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바로 그렇다. 남들은 당원을 8천명이나 모집할 때 자신은 몇 백은커녕 단 몇 십 명이라도 모집하려 노력했냐는 거다. 김 모 최고위원은 ‘국당’의 사무총장직에 있었다. 이 사람은 당 사무총장 직을 내놓은 직후 TV조선에 출연하여 “호남 사람들 때문에 일을 못했다.”고 일 못한 핑계를 늘어놓은 사람이다.

 

전.남북의 지역위원장은 당연히 호남 사람들이다. 그 지역에서 ‘국당’ 출신 국회의원을 많이 배출했으니 당연히 호남출신들이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을 건 뻔하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는 왜 일을 못했는지(...) 의문스럽다. 이율배반이 아닌가. 텅텅 비어있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왜 일을 못 했는지, 반성은 하지 않고 남 탓만 해댄다.

 

당의 3대 요직이라 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가 사무총장이다. 그 자리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물리치고 당 대표의 강권적인 배려로 꿰찼으면서 그는 왜 호남 지역 아닌 다른 지역에서라도 의미 있는 활동을 전개하지 못했는지. 이와 같이 국민의당에 들어와 한 자리 하고 싶은 사람들은 걸핏하면 호남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전국정당이 못 된다. 호남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일이 안 된다’는 둥 벼라 별 핑계를 대면서 자기들 욕심을 관철하려는 수단으로 입에 발린 말을 해왔다.

 

이쯤해서 질문 하나 더,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더민당 보다 못나오는 당과 후보라면 장차 무슨 명분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 유망한 대선주자요” 주장할 것인가. 안철수 대표는 그 탄탄했던 호남에서의 지지율에 다른 지역에서의 지지율까지 더 보태는 덧셈 행보를 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호남지역 외의 당원들도 마찬가지다. 호남의 지지율에 의지하지 않고, 자발적인 헌신과 충심을 바치며 배전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다시 하나 더, 당 외부의 적들에 대한 대처다. 그들은 안철수가 가진 지지율을 흠집 내고 어떡하든 균열을 일으키려 갖은 수단을 구사해왔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 화법(話法)으로 도무지 손해날 것는 말을 내뱉어 왔다.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높으면 그래선 전국 정당 못 된다 협박하고,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거 봐라! 호남에서조차 지지를 못 받으면서 무슨 큰 소리냐?”는 식이다. 그러면서 이를 빌미로 그를 주저앉히려 든다. 이쯤해서 정말 묻고 싶다. 정적(政敵) 혹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가짜 지지자들이며 수준 낮은 지지자들로부터 호남의 지지율을 놓고 휘둘린 결과가 뭔가?

 

안철수는 어서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었던 것을 되찾아야 한다. 비중 있는 대선후보로 뛰려면 지지기반을 속히 회복하고, 대내외적으로 발목을 잡는 요인을 제거하며, 한심하고 덜떨어진 지지자들도 대오 각성해야 한다. 이는 필수다.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은 순수한 동기에서 우러나오는 의지이기에 빛나는 대장정(長征)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

 

글쓴이/박정례 기자.르뽀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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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22:49 2017/02/1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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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米壽)를 맞아 DJ 묘 찾은 권노갑 고문

-주승용,장정숙 의원을 위시한 80여 후배정치인들의 축하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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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선임기자 박정례]= 노 정객 한 사람이 DJ묘역에 들어섰다. 미수를 맞은 권노갑 고문, 국립 현충원이다. 볕이 좋았다. DJ 묘역은 훈훈했다. 아직은 오지 않은 봄이건만 양지 바른 그곳은 따뜻하기만 했다. 화요일, 사람들이 모여들자 묘역을 감싸고 있는 훈김은 더해갔고 참배객들이 사르는 향불은 넓게 퍼지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기리는 사람들은 매주 화요일마다 이곳을 찾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8년 6개월 째 암묵적으로 지켜오는 불문율이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정례적으로 대통령을 참배하며 DJ와 함께 민주화 투쟁을 하던 고난의 시절을 회상하고, 건국 이래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을 확인한다.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그렇다. 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공동의 추억을 통하여 그들은 결속하고 뭉치며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소사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다. 시국에 대해 일갈하고 자신과 동지들의 근황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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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반, 때맞춘 참배시간이 되자 구부정한 소나무가 보초병처럼 늘어선 묘역 길을 따라서 권고문이 들어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은 서있던 자리에서 몇 걸음씩 나아가 그를 맞았다. 주승용 원내대표(국민의당)를 위시하여 장정숙 의원 등 80여명의 후배 정치인들이 노(老) 정객을 에워싸는 순간이었다.

권노갑 고문은 해방 직후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돕기 시작하여 선생이 정치에 입문하자 자연스럽게 그의 참모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동교동계라고 불리는 김대중 선생의 조직과 자금을 관리하면서 선생과 함께 고난을 같이 한다. 내란음모사건 때에도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감당했다. 이후 선생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하면서는 민주화추진협의회 상임운영위원을 맡아 동교동계를 추스른다. 이어 제 13대 총선에서 전남 목표에서 당선된 이래 14,15대까지 3선에 성공하고, 1997년도에는 김대중 선생을 보필하며 제 15대 대통령으로 당선시킨다.

바로 그랬다. 형형한 눈빛으로 DJ 앞에서 선 노(老)정객, 권노갑 그는 김대중 선생이 살아생전에 그랬듯이 생사를 넘나들며 얻은 백전노장의 여유와 함께 생애에 대한 겸허한 응시를 통하여 얻은 초연함을 지니고 김옥두,이훈평,박양수,윤철상,문팔괘 여사와 같은 선생의 동료와 주승용, 장정숙 같은 후배들 그리고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강동호.박춘림 같은 까마득한 후배들 앞에서 현실과 피안의 세계를 고루 넘나드는 편안한 눈빛을 투사한다.

이를 귀감 삼은 후배들은 일순간 작은, 권고문의 생일을 아주 작은 축제로 받아들이며 조금 전의 침묵과 긴장에서 벗어나 짧지만 강렬한 희열에 빠진다. 이 아니 봄을 부르는 훈풍이 아니고 무엇이랴! 2017년2월14일, 이런 풍광과 모습이 88세 생일을 맞은 권노갑 고문이 찾은 DJ묘역의 참모습이었다. DJ 묘역은 그래서 따뜻했다.

 

글쓴이/박정례 기자.르뽀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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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5 15:36 2017/02/1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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