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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개헌안 부결에 대한 몇가지

어제 이 곳에서 베네수엘라 영사님과 최근 베네수엘라에서 돌아온 몇몇 사람들, 그리고 학자들을 포함해서 조촐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더 큰 토론회가 있기 전에 사전 논의 격으로 진행된 것인데요, 그 곳에서 논의된 내용을 적어봅니다.

 

논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이전에, 이야기해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연임제 폐지에 대해서들 말이 많은데, 연임제한 없는 나라 굉장히 많습니다. EU 대부분의 나라에서 연임에 제한이 없구요, 캐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유신헌법처럼 평생 선거도 안 하고 대통령 해먹겠다는 것도 아닌데, 참 이곳 북미 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조차 연임제 폐지 가지고만 이야기들을 하고 있네요. 복지 서비스 확충이나 노동시간 단축, 특히 참여 민주주의의 확장 이런 중요한 지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가 없구요. 오히려 이런 정책들을 공부해보는 것이, 그리고 이런 정책들이 어떻게 민중적 지지를 형성해 내는 지 그런 것을 연구해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될텐데 말입니다. 한국에서 베네수엘라 자주관리운동 (현재 50000개 정도의 사업장에서 노동자 자주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고 있잖아요. 사실 연임제한이 없는 나라가 그렇게 많다는 것 저도 그 토론회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사람들이 독재니 어쩌니 할 때마다 이야기하기가 쉬웠을텐데 말이예요. 미언론의 세계 장악, 참 문제입니다. 농담이 아니예요!

 

이번 패배(?) 이후, 베네수엘라 내적으로는 좀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선거 전 제가 들은 것은 60% 정도로 헌법개정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말이었는데, 실지로 대부분 이렇게들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워낙 반대파들이 굳세게 단합을 하고 미국에서 돈을 엄청나게 전략적으로 쏟아부은 것과 다른 요인들에 힘입어 이런 결과가 나오긴 했는데, 이것 참 이기고 나니까 반대파들에게는 오히려 자승자박이 된 것이죠. 몇 가지로 정리해보면요,

 

1) 투표결과에 대한 빠른 승복 -> 베네수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즉 차베스는 독재자가 아니다.
2) 개정헌법에 극렬히 반대함으로써 오히려 반대파들이 20021999년 개정된 기존 볼리바리안 헌법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꼴이 되었다.
3) 반대파들의 투표 후의 시나리오에 차질이 생겼다.

 

3)은, 워낙 다들 헌법 개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원래 시나리오는 통과가 되면 부정선거라고 하면서 여기저기서 대규모 집회-시위 벌이고 대대적인 불안정국 형성한다 이런 것이었단 말이죠. 49%와 51%가 바꼈다고 했을 때, 그래서 2% 차이로 헌법이 통과되었다고 했을 때 얼마나 불안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통과가 안 되고 말았다는 것이죠. 반대파들로는서는 참 선거결과에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죠.

 

어쨋든, Maria Paez Victor이라는 사회학자의 이야기에 저의 의견을 섞어서 옮겨보겠습니다. 임승수씨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투표율 하락이 매우 중요한데요, 그러니까 작년에 차베스에게 투표했던 사람 중 3백만 명이 이번에는 기권을 했다는 것이예요. 여덟가지 정도로 정리가 되는데요,

 

1) 승리주의(?)라고 번역하면 될른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볼리바리안들 내부에서 좀 안일한 기운이 있었다는 거죠.

 

2) 매우 복잡한 개정안인데 (법률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하지요) 이에 대해 충분한 안내나 설명같은 것이 진행되지 않았다. 이게 선거와는 다른 건데, 선거에서는 민생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만, 헌법개정국민투표에서는 개정안 글자 하나하나를 가지고 논쟁이 일어나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민중들에게 중요한 것은 부패나 범죄나 의식주, 뭐 그런 것이죠.

 

3) 개정헌법의 핵심이 대통령의 권한 강화에 있는 것은 사실인데요, 연임제한 폐지도 폐지지만 핵심은 '경제적 권력'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는 점이예요. 이 부분은 제 설명인데, 베네수엘라를 한국과 같이 이해하면 안 되는 것이, 한국과는 경제구조, 그래서 계급구조 자체가 완전히 다른 나라예요. 부르주아계급이 석유자원에 기생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부르주아들처럼 교육받은 노동자원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산업도 발전되지 못하고 빈곤율-실업율이 그렇게 높은 것이지요. PDVSA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가 세금도 거의 없기 때문이거든요. 거꾸로 생각하면 차베스가 석유로 들어오는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경제적 부분에 있어서 대통령과 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사실은 이번 헌법 개정의 핵심이었던 것이예요.

그런데 참세상 독자분이라면 '경제개혁'하면 바로 떠오르시겠지요, 그래요, 그래서 그렇게 목숨걸고 반대한 것이었어요.

 

4) 그래서 이번에 반대파들이 완전 단결투쟁한 것이지요. 이들은 (1) 차베스가 평생 대통령하려고 한다 (2) 빨갱이들에게 사유재산 다 뺏긴다 이것 두 가지만 가지고 계속 캠페인을 했던 것이구요. 사실 개헌을 통해서 얻을 것이 더 많은 중간층들은 다시 한번 자신의 이익에 배반하는 투표를 했던 것이죠. 이것이야 계속 반복되는 테마입니다만...

 

5)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미국에서도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한 것이었어요. 대학생들의 반대집회를 위해서 5십만달러, 그러니까 5억원 정도가 지원이 되었구요, 광고로 3백만달러, 즉 30억 정도 지원되었구요, 다양한 경제 제재가 이루어졌지요. 그러니까 또 헷갈리는 중간층들 불안해하고, 열렬하지 않은 지지자들은 에이 차라리 모른 채 하자 싶고.

 

6) 이런 상황에서 사회복지의 확충이나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내용은 전혀 논의가 안 되고, 그래서 투표에 영향을 못 미치고...

 

7) 사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후견적인 (paternalistic) 관료라는 지점이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참여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이냐면 이전 건강위원회 (comites de salud)에서 발전된 지역위원회(consejos communales)가 의회(parlamento)를 대신해나가는 뭐 그런 것들인데, 꼭 이런 구체적인 것 이외에도 참여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것 자체가 그 정의상 기득권의 권력을 줄여나가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예요. 그렇다보니 관료들 자체가 이런 내용의 헌법 통과를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는 것. 사보타지하지는 않더라도 막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그렇게 하지를 않았다는 것이예요. 그런데다가 볼리바리안이라고 해도 그 중에는 순수한 사람, 이곳에 권력이 있으니까 들어온 사람, 프락션(?)들어온 사람, 이렇게 다양하고,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갈 수록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보면 혁명의 미래에 약간의 먹구름이...;;;

 

8) 마지막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당건설 사업이 아직까지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 그래서 아직은 강력하게 어떤 선전사업을 행할 만한 능력이 안 되었다고 해요.

 

(원래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아니었는데 글이 길어지네요.)

 

이런 맥락에서 사실 중요한 것은 차베스가 독재자가 되려고 한다, 이런 식이 아니라 헌법의 내용을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런 것들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겠지요. 예를 들어 좌파 내에서 많이 나오고 있는 비판은 "사회주의적 경제 (economia socialista)"라는 말이 헌법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데 이것이 충분히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다, 이런 것이랍니다.

 

몇 가지 전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차베스는 집권 세력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쪽이예요. 이것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보통 권력을 쥔 사람이 좀더 우경화되는 쪽이 많잖아요. 국가관료는 매우 완강히 저항을 하고 있구요, (예를 들어 일차 의료 개혁인 바리오 아덴트로의 경우에도 원래 보건복지부 외부에서 건설되었지요) 세력 내에서도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정하게 '민중주의적인 외형을 띄는' 권력이 형성되는데, 즉, 차베스는 민중들에게 직접 호소함으로써 권력 내부와 관료를 좀더 좌측으로 견인하려 하는 것이죠. 이에 대한 개혁세력들의 전략은 따라서 "Chavismo sin Chavez" 즉 차베스 없는 차베스주의입니다. 차베스를 제거함으로써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전망을 거세하고 안정적인 자본주의사회로 안착시키려고 하는 것이지요. 저도 개인숭배 등에 대해서는 매우매우 심한 알러지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좋든 싫든 간에 볼리바리안 혁명이라는 찐빵의 앙꼬는 차베스가 맞습니다.

 

2) 이것이 차베스 1인이 아니라 일정하게 제도적인 틀을 갖춘 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당건설이 핵심입니다. 그 과정에서 Podemos같은 민주화세력(우리나라 평민당이랑 비슷한 역사적 위치에 있는 것 같아요)은 저쪽으로 넘어가기도 했구요. 이 당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건설되는가, 즉, 내부의 적(스탈린적인 경향 등)과 외부의 적(수도없이 많아서;;)을 어떻게 싸워이기고 민주적인 당으로 형성되어가는가가 사실 향후 베네수엘라 혁명의 전망에 있어서는 핵심입니다.

 

3) Paramilitary 문제가 심각한데요, 특히 콜롬비아 접경지역, 해안선, 그리고 수도인 카라카스 등에서 심각합니다. 이들이 정부기관 등에 프락션을 하기도 하구요, 여기저기 많이 들어가 활동을 하는데, 아무도 파악이 안 되구요, 그리고 사람을 그냥 막 죽입니다. 니카라구아 산디니스타 혁명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그러면 민중들이 지치게 되죠.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내 아들이 죽었는데 이유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자꾸 개혁을 하려고 해서 그렇다는 거죠. 인생이라는 것이 워낙 살기 힘든 것인데, 이런 일까지 생기면 아주 열렬한 사회주의자가 아닌 이상은 이제 좀 그만하지 싶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이야 고유가지만 (그런 일 없을 것 같긴 해도 예를 들자면) 유가도 내리고 경제제제가 막 들어오면 몇 십년만 참자, 이렇게 이야기하기 힘들게 되겠죠. 콜롬비아의 군사력이 베네수엘라 10배 정도인데, 사실 쳐들어올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되어 왔구요.

 

두서없는 글 이만 마치겠습니다. 국내에서의 논의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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