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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적과 담판을 짓고있는 것인가 - 제33차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참관기

이주환 (『노동사회』 편집차장)
물론 '우리' 내부에서도 대립과 갈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하나마나한 소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이유는, 다른 것은 다 떠나서 '사회적 교섭(안) 승인 건' 논의를 앞두고 이어진 휴회, 유회 소동을 지켜보며 느꼈던 복잡한 기분 때문이다.


2005년 1월21일 속리산 유스호스텔 새벽 5시40분. 복도에서 웅성거림과 담배연기가 잦아들고, 2층에 마련된 기자실로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하여 밤샘 대의원회의를 끝낸 민주노총 임원들이 들어섰다. '사회적 교섭(안) 승인'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었던 이날 대회는 서른 세 차례에 이르는 역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중에서도 언론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자리였다. 방송카메라 여러 대가 단상으로 시선을 쏘아댔고, 20여명 기자들은 노트북 자판을 쉴새 없이 두들기며 따닥거렸다. 기자들 앞에 가로로 늘어선 민주노총 지도부는 창립이래 늘 그랬던 것처럼 당당한 모습이었지만, 조금은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날 기자회견은 사회적 교섭방침이 어떤 식으로 통과되던 간에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에 따라, 비정규·양극화 문제나 무상의료 무상교육과 관련하여 사회적 교섭 또는 노·정 교섭을 공세적으로 제안하는 자리여야 했다. 그리고 2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 개악안이 강행 처리될 시 강력한 총파업에 돌입할 것을 경고하는 자리여야 했다. 그러나, 아니 당연하게도, 사회적 교섭방침 논의라는 본경기는 시작도 못하고 끝난 상황에서 다른 자극적인 '사냥거리'를 찾던 기자들의 후각은, 대의원대회에서 가감없이 드러난 내부의 갈등과 훼손된 지도력으로 파고들었다.
"정족수 미달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대의원들이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다. 앞으로 대책은?", "일부 대의원들이 조직적으로 참여 안 한 것을 민주적 절차로 보느냐?" 등등. 열세시간이 넘는 대회 결과를 국민들에게 보고하기 위해 자리에 선 민주노조운동의 대표들은 2월 총력투쟁 계획, 무상의료 무상교육으로 집중된 사회적 요구,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50억원 투쟁기금 모금, 노동자 내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임단협 전략, 2006년 세상을 바꾸는 큰 투쟁 등에 대한 공세적 선언이 아니라(사실, 했더라도 거의 무시당했겠지만), 노동자 민주주의의 '진실성'에 대한 보수언론의 의혹어린 질문에 해명해야 했다.

뜨겁지만 싱거웠던 33차 대의원대회
민주노총 대의원이라면 이번 대회가 과열양상을 보이리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충분한 논의를 위해 한차례 결정이 유보되어 이번에 다뤄지기로 한 사회적 교섭방침의 무게도 그렇거니와, 작년 말 비정규직 관련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한 평가와 올해 2월 투쟁 방침 등을 둘러싼 '입장 차이'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게다가 1월14일 중앙위원회에서 안건상정이 부결되기는 했지만, 지난 해 노동운동의 원칙과 현실에 관련해 고민을 던져준, 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지부의 조건부 탈퇴선언에 대한 징계처리 문제와 공공연맹을 탈퇴한 KT노조 중심으로 설립된 IT연맹의 민주노총 가입 승인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도 쉽게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제33차 대의원대회 상정 안건 및 의사진행 경과

 

- 개회 선언: 총 대의원 785명(의사정족수 393명) 중 538명 참석.(오후 4시30분)

- 안건상정 위한 긴급발의(대의원 30명 이상 서명으로 발의 가능, 재적 인원 과반수 이상 찬성일 때 안건으로 상정됨)

  1) 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지부 지부장 징계 철회 및 지부 운영 규정 승인 권고 안: 494명 중 223명 찬성, 안건 상정 안됨.

  2) 제9차 중집회의의 IT연맹 가맹 승인 취소 건: 493명 중 221명 찬성, 안건 상정 안됨.(저녁 6시30분)

- 저녁식사(대략 저녁 8시까지)

- <제1호 의안> 2004년 사업보고·평가 및 결산 승인 건

  1) 정원영 대의원(금속노조 부위원장) 발의, 2004년 사업평가 별도안: 467명 중 129명 찬성, 부결.

  2) 전해투 교부금 지급 관련 논쟁 및 조준성 대의원(발전노조 해고자) 관련 안건 발의 후 철회.

  3) 2004년 사업보고·평가 및 결산 승인 건 표결: 436명 중 327명 찬성, 통과.(저녁 11시10분)   

- <제2호 의안> 2005년 사업계획 및 예산 승인 건

  1) 서동식 대의원(현대자동차노조 조직강화팀장) 발의, 사업계획 중 비정규 조직화 50억 기금 모금 삭제 수정안: 425명 중 172명 찬성, 부결.

  2) 2대 특별사업비 예산으로 책정된 1억5천만원 중에서 1억원을 지역본부 교부금에 사용토록 하는 안: 통과

  3) 2005년 사업계획 및 예산 승인 건 통과: 산별교섭과 관련하여 사용자단체 구성 법적 강제, 유급 노조교육 법제화 추진 등의 내용이 추가 됨.(새벽 2시 조금 전)   

- <제3호 의안> 2월 총력투쟁 계획(안) 승인 건

  1) 이수정 대의원(학습지노조 소속) 발의, 비정규법안 상정과 상관없이 비정규연대회의와 함께 하는 '2월 말 하루 총파업' 수정 안: 399명 중 77명 찬성, 부결.

  2) 이상욱 대의원(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발언, '투본대표자들 자기 자리를 걸고 파업사수의지 밝혀라.'

  3) 2월 총력투쟁 계획(안) 승인 건 통과: '총력 투쟁'에서 '총파업 투쟁', '정치권 내부의 친노동 진영을 광범위하게 조직하여'에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등 문구수정 요구를 반영하여 표결 없이 원안 통과.(새벽 3시30분)    

- 정회(새벽 4시), 속개(새벽 5시): 중집회의 후, 의장이 일단 휴회한 후 1월28일 제4호 안건 이하 논의하자고 제안.

  1) 최용우 대의원(금속노조 충남지부장) 정족수 확인 제안.

  2) 이상욱 대의원(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1월28일 대회 속개 반대(현대자동차노조 대의원대회와 일정 겹침을 이유로) 및 정족수 확인 재차 제안.

- 정족수 확인: 380명(의사정족수는 393명), 유회 선언(새벽 5시23분), 제4·5·6호 의안 자동폐기  

- <제4호 의안> 사회적 교섭(안) 승인 건    

- <제5호 의안> 고용보험과 국가예산 확보 및 남북교류기금 사용 승인 건

- <제6호 의안> 기타 안건




결국 이러한 분위기는 이번 대의원대회 안건 논의와 진행과정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었고, 예상대로 속리산 유스호스텔 대의원대회장은 뜨거웠다. 그런데 내가 그 속에서 느낀 '뜨거움'은 아무래도 우리 노동조합운동의 성장을 위해 다양하고 첨예한 쟁점을 논의하는 주체들의 '진지함'이 발하는 온도를 넘어서는 것 같다. 사실, 그 뜨거움은 단결의 화학작용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의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마찰열에, 피곤을 몰아내는 겨울 아랫목의 포근함이 아니라 한여름 뙤약볕의 날카로움에 가까웠다.
물론 '우리' 내부에서도 대립과 갈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하나마나한 소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이유는, 다른 것은 다 떠나서 '사회적 교섭(안) 승인 건' 논의를 앞두고 이어진 휴회, 유회 소동을 지켜보며 느꼈던 복잡한 기분 때문이다. 보다 솔직하게, 전략적으로 대의원대회를 유회시키는 선택을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참담한 혼란스러움 때문이다.

전략적 유회 선택은 '민주적'인가
'조직적 유회 전략'은 실제 있었는가? 애석하게도, 내가 본 바로는 그렇다. 물론 개회 선언 자리에는 있었는데 마지막 정족수 확인 때 자리를 비운 158명 대다수가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보는 것은 비약이다. 그러나 최소한 제3호 안건을 결의하는 과정에는 자리에 있었지만 정회 후 마지막 정족수 확인에서 자리를 비운 19명 중 어느 정도는 사회적 교섭방침 안건을 폐기시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보는 게 옳은 것 같다. 새벽 4시 정회와 5시 속개 사이, 각 연맹별로 중집회의 결과(일단 휴회를 하고 일주일 뒤인 1월28일 사회적 교섭방침 등 나머지 안건을 가지고 대회를 속개하자는 것)를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다.
어느 연맹이 논의하는 것을 참관했던 나는 일부 대의원들이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이들에게 유회 선택을 간접적으로 '선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들은 다른 대의원들에게 회의가 속개되었을 때 대의원수(새벽 3시15분 당시 399명)가 의사정족수(393명)보다 적을 경우 휴회가 아니라 유회가 선언될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유회는 곧 사회적 교섭을 비롯한 남은 안건의 폐기를 의미함을 큰 목소리로 명확하게 주지시켰다. 단지 7명 이상만 빠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 소수가 논의의 연장과 안건의 폐기라는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실제 대회가 속개되고 나서 정족수를 확인했을 때, 대의원석에서 벗어나 참관인들 틈에 멀뚱멀뚱 껴있거나 복도에서 서성대는 대의원들 중에서 그 연맹 소속 사람들 몇몇이 눈에 띄었다. 물론 '선동가'들은 끝까지 의석을 지켰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근거로 할 때 대의원대회 불참이나 중도이탈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것 같다(물론, 특별한 사유 없이 술 먹으러, 졸려서 등등의 이유로 사라진 대의원들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대의원들이 조합원들에게 위임받는 것은 대의원대회 참가 그 자체가 아니라 안건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입장의 결정이고, 대의원대회에 대한 의식적인 거부는 어쩌면 이러한 책임의 연장선에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선동가'들이 했던 것처럼, 규약의 맹점을 이용하여 대중적으로 추대된 지도부의 권위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공조직의 논의와 소통을 적극적으로 막는 행위까지 허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논쟁은 상대방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허용이 된다면, 산별교섭 반대에 확고한 신념과 원칙을 가진 사용자가 법을 악용하여 교섭을 해태하는 것도 '민주적'인 것으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단지 생각이 다른 '동반자'들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출하는 것을 넘어서, 갈등을 굳히고 공조직의 집행기반을 장기적으로 붕괴시키는 해악적인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반민주주의 불감증'을 넘어서기 위하여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입장이든 찬성하는 입장이든 그 근거로서 노동운동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번 대의원대회 경험을 정리하며, 위기는 사회적 교섭방침이 있고 없음보다는 그 논쟁을 주도하는 일부 선동가들이 갖고 있는 '동지를 향한 적대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한 동지를 향한 적대의식이 '반민주주의 불감증'을 키우고, 공조직의 집행력을 붕괴시키는 반조직적 행위에 과감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동지를 향한 적대의식의 뿌리는 대개의 경우 경험에 대한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판단보다는 내부의 권력의지에 잇닿아 있지는 않을까?
최근 민주노총 서울본부 활동가의 자살, 기아자동차 노조 광주지부에서 불거진 입사비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신 등 노조활동가들의 마음을 괴롭히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모쪼록 2월1일 예정된 대의원대회는 치열한 논의를 거쳐 조금은 부족하지만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어내고, 2월 투쟁을 힘차게 열어갈 수 있도록 지친 활동가들이 다시 한번 서로를 추스르고 노동운동 단결의 의지를 다지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노동사회 2005년 2월호, 통권 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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