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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정월 대보름날을 맞으며....

글쓴이 : 강의원실 등록일 : 2005-02-23 오늘은 정월 대보름날이다. 지난 한해 인간사(人間事)에 생긴 모든 액을 태워 하늘로 용서 빌며 올려 보내고 쟁반같이 둥근 큰 달에게 하늘의 큰 복을 빌며 함께 살아가는 부락 공동체 사람들과 술과 음식을 나누고 매구치고 장구치고 춤추고 한바탕 어울린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형들의 지시에 따라 대나무 베어주면 힘겹게 어깨 걸고 온통 먼지 날리며 달집 지을 논으로 끌어 나르고 산에서 형들이 베어준 솔가지 엮은 새끼줄 어깨 걸고 신나게 날라 모은다. 키가 크고 높은 나무로 세운 삼발이 작수발 뼈대가 세워지면 그 둘레로 대나무들이 세워진다. 이러한 작업이 진행될 때 동네 아이들은 걸음만 제대로 걷는 정도면 너나 할 것 없이 온 동네로 흩어져 집집마다 찾아가 짚단을 얻어온다. 짚단이 달집문 안으로 수십 아름 전달되고 달집 밑 부분에 쭉 둘러지고 나면 달집 높은 곳에는 밑에서 던져 올린 짚단으로 장식되기 시작한다.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누가 더 높은 곳까지 짚단을 던져 올릴 수 잇는가 하는 시합이 벌어진다. 세살, 네 살배기들도 형들이 하는 몸짓을 따라 한답시고 한아름 되는 집단을 부둥켜안고 던져보지만 짚단이 자기 발 앞에 툭툭 떨어지거나 짚단을 부둥켜안고 뒹굴고 하는 정경은 그야말로 웃음거리다. 짚걸이가 끝나면 달집 주위로 새끼줄이 둘러지고 그곳에 한 해의 액을 상징하는 옷가지나 소지품이 내 걸리고 올 한해 각자의 기원을 적거나 마음으로 담은 종이걸이 들이 내 걸린다. 이맘때가 되면 온 동네 집집마다 돌며 액을 몰아내고 복을 빌어주는 지신밟기 액떨이 풍물패가 각 집에서 차려준 술과 안주, 음식자루와 함께 달집에 요란한 풍물소리로 도착되고 달집앞 문에 쳐진 새끼줄에 액막이패가 받아온 복채가 내걸리고 각자 개인들의 복을 비는 정성들이 화폐로 표현되어 달려진다. 참으로 흐뭇하고 정겨우면서도 평화로운 정경이다. 달이 떠오를 때가 되면 흘금흘금 동녘 하늘 달 떠오르는 자리를 훔쳐보며 동작들이 느려지고 달집에 불 등길 사람은 옷 단정히 갈아입고 고사상이 차려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의 마음과 시선은 달 떠오를 곳으로 집중되며 정적이 흐르고 제각기의 소원을 빌며 부인네들은 두 손을 모으고 허리절을 하며 ‘비나이다’를 되뇌인다. 달을 빨리 볼 수 있는 위치를 찾아 일부 사람들이 높은 곳을 찾게 되고 자기 발 앞에 자그마한 짚불이나 모닥불거리를 준비해놓기도 한다. 기다리던 달이 떠오르면 누군가의 ‘달이다’하는 소리와 함께 후다닥 불지기가 불을 붙이면 달집의 불길과 소원성취의 기원불이 동시에 솟구친다. 매구패는 안간힘으로 풍악을 울리고 사람들의 몸짓도 불길처럼 날뛴다. 그렇게 장난끼에 취하던 아이들은 날뛰는 어른들과 하늘로 치솟으며 대나무 터지는 소리와 째째하며 타오르는 불길에 눈이 둥글해지며 어안이 벙벙해진다. 온동네 사람들은 매구패를 선두로 달집을 돌다 보면 어느새 제각각의 춤사위가 펼쳐진다. 어느새 달은 키의 몇 길 높이로 치솟아 있고 아이들도 늦게야 대열 속에 뛰어들고 그저 미치듯이 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벅수도 넘고 옷도 벗어 내던지고 서로 따라잡기 경주도 벌이는 등 이렇게 좋을 수 가 없는 듯 하다. 물론 달집이 다 타가면 손에 숯을 묻혀 몰래 뒤로 다가가서 얼굴에 시커멓게 숯칠을 하고는 좋아라하며 냅다 도망친다. 어느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숯칠하기 장난은 이내 평소 자기가 장난치고 싶었던 사람, 절친한 사람,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고픈 사람, 친해지고 싶은 사람, 무언가 서먹한 관계에서 더 친숙함으로 가고 싶은 사람, 또 화해하고 싶은 사람을 택하여 장난질하다가 나중에는 도망치고 잡으러 가다가 부딪치는 사람이면 아무에게나 마구잡이 장난질이 순식간에 번져버린다. 까르르 웃으며 달리다 달리다 지쳐 넘어진 김에 그냥 두 팔 벌리고 누워있는 아이, 부딪혀 우는 아이 등 한바탕 소동이 달집불과 함께 잠잠해 지면 어른들은 술과 안주를 가지고 아직도 활활 거리는 불길과 적당한 거리에 술판을 벌여 갈증과 허기를 채우고 아이들도 떡쪼가리, 과자 부스러기 주워 먹고는 깡통에 불담아 슬금슬금 빠져 나간다. 부지런한 사람 몇은 논둑 밭둑 태우기 하는가 하면 아낙네들은 아이들 불러 챙겨서 당부하고는 집으로 들어가고 아직도 흥에 겨운 사람 몇은 술과 흥에 취하여 꽹과리에 춤사위 흐느적거리며 모닥불을 맴돌고 있다. 땀이 식을수록 밤공기가 더 차지고 하늘의 큰 달은 별을 한 둘 거느리고 몰래 몰래 하늘 가운데로 옮겨가 있다. ------------------------------------------------------------------------------------- 이것이 내가 자란 어린 시절의 정월대보름 동네 풍경이요 평화로움이다. 지금도 농촌 부락에는 달집행사를 더러 하지만 옛날 같으면 할아버지뻘 사람들이 지금도 젊은이 역할을 하고 있고 아이들 뛰놀며 고함치는 모습보기 힘든 상태이니 무슨 흥이 나겠으며 아무리 흥이 나도 뛰어놀고 할 기력을 가진 젊은이들도 없다. 그래도 연세 많으신 분들은 흥과 풍속의 얼이 살아있어 슬금슬금 조용조용 소리 없이 모여 어깨를 들썩이며 흥을 즐기신다. ‘이 농촌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하지 못하시고 그저 운명을 하늘의 섭리로 몸으로 받아들이시며 사시는 분들, 일년 내내 나락(벼)농사 지어도 손에 남는 것 없는 적자농사일지라도 ‘이 농사 올해는 짓지 말고 놀려버릴까?’ 하는 생각, 단 한번도 해본 적 없이 단 한포기라도 더 심어볼 요량으로 농사 지어오신 분들.... 다 꺼져 버린 잿더미 속에 불씨라도 찾아볼 량으로 부지깽이로 뒤적거리는 형국이 되어버린 농촌, 이 농촌에 불씨가 살아 있을까? 키울 수 있을까? 오늘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우리 농촌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쌀관련 법안들이 다루어진다. 어제 법안 소위에서 하루종일 실랑이를 벌이다 빠져나온 나의 심정은 농림부 직원들은 기획예산처나 재정경제부처 관계자로 여겨지고 비교우위론과 경쟁세계로 걸음마하기 힘든 노인들의 등을 밀어붙이는 젊은 몇몇 의원들은 행정부를 견제하고 농업을 생면산업으로, 경제 이전의 문제로 바라보고 살리자고 외쳐야할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의원들이라기보다 기획예산처나 재정경제부나 외교통상부위원회 소속 의원들로만 여겨진다.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우리 농촌을 누가 정부의 개방논리 경제논리, 농업희생을 기정사실화 하는 통상논리에서 구출할 것인가? 하는 암담함으로 정월대보름 아침을 맞았다. 아침 의원실 보좌관 회의때 간단한 나의 심경과 다짐을 펼쳐보였다. 사람이 누구를 미워하면 먼저 나를 상하게 하며 해롭게 합니다. 이웃을 용서하기가 어렵지만 이웃을 진정으로 용서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길이 최선이라고.... 우리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며 반농업, 반생명의 세력과 가치관과 싸우기 위하여 우선 먼저 우리 자신과 싸워나가야 합니다. 첫째는 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미움의 감정과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나의 의견이나 주장에 반하는 사람에 대한 미움,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이웃에 대한 미움에서부터 제반 모든 미움과 철저히 싸워야 합니다. 둘째는 매 순간 순간 깨어 있는 정신으로 매사에 성실하기 위하여 나태와 게으름과 안일과 편안함에 대한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한다면 그리하여 이웃을 위하는 마음으로 매사에 충실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거나 낙담하지 않고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으로 살게 되리라고 .... 농업, 농촌, 농민의 현실이 텅 비어 버린 농촌형국일지라도 우리 의기소침하지 말고 환한 웃음으로 서로 격려하며 오늘 하루 잘 살아보자고.. 3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중요 농업현안 문제를 결정하는 회의에 가서 다시 일전을 치루어야하는데 비정규직 법안이 상정된다고 이것을 막으러 2시에 모이라고 연락이 왔다니, 그곳에 먼저 들러보아야겠다. 05년 2월 23일 강기갑 ****************************************************************** • 쌀 • 은 • 생 • 명 • 입 • 니 • 다 • [강기갑 의원실]150-702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국회의원회관 227호 Tel> 784-5721 Fax> 788-3227 homepage> http://www.gigap.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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