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은

대부분 집에 있는 사람의 몫. 혹은 눈이 더 좋거나ㅋㅋ 깔끔한 상태에 더 예민한 사람의 몫이 되기 마련이다.

 

 

어쩌다 내게 가사노동이 이슈가 되었나

함양에 있을 때는 짝꿍이 출근을 하고 나는 집에서 농사를 짓다보니 내가 살림을 주로 하곤 했다.

동거 초반에는,

혼자 살 때도 해 온 당연한 일들이려니와, 시골에 내려와서 요리하고 농사짓고 내 맘대로 집 꾸미는 게 재미있어서 가사분담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즐겁고 좋아서 하고 있었으니까.

조금 지나면서,

'어.. 이건 좀 아닌거 같은데.. '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같이 살고는 있는데 생활을 함께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허한 느낌도 들고, 혼자 살 때 보다 가사일이 더 많아진데 대한 부담. 어쩐지 원치 않게 가정주부화되어 가고 있는 내 모습에 대한 갑갑함, 상대에 대한 서운함.

그렇다고 짝꿍이 완전 무심했다는 건 아니다. 퇴근 후에도 가사일에 마음썼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가사일들은 알아서 도맡아 했다.(어찌 그런 일들은 그리도 잘 하시는지!) 그와도 얘기하곤 하지만, 그 부분도 편하지 않았다. 그가 주로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기계다루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가사일의 성별 역할이 나누어지는데 대한 불편함이 그것. 내가 모르는 일들이라면 배워서 같이 하고 싶은데 그가 해버리니 아쉬움도 들고 박탈감도 들었다.

(아.. 이쯤 쓰다보니. 단님, 서운해할까봐 신경쓰인,,;; )

 

하지만 가사노동을 어떻게 분담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움직였다. 조금은 의무감으로. 이때부터 가사일의 즐거움이 퐉 줄었다고 보면 된다. 이즈음에 접어들면서 집은 조금씩 지저분해져가지만 나는 안 보기 위해 노력했고, 점차 밥 먹는 횟수가 줄어들기도 했다. 언니랑 살 때나 친구랑 살 때에는 굳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가사일을 나누어 하곤 했던지라,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 나가야 할 지 막막했다. 후에 알게 되었다. 가사노동이 자연스레 나누어질 수 있는 건, 어느 정도의 비슷한 깔끔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혼자 온전히 살림을 해 왔던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걸.

그와의 첫 동거이기에 초반에는 짝꿍의 깔끔도와 생활 스타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도 하고(그땐 그저 좋았지;)

같이 살기 전에 분명 그에게 "나를 가사노동자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얘기해서 그가 마음씀을 알고 있기에 뭐라 요구하기 어려웠는데, (무언가 요구한다는게 참 어렵다. 내 기준에 맞춰달라고 하는거 같아서 항상 불편하고 매번 말하는 것도 참 거시기하다)

내가 가사일을 즐겨할 수 있는 그 시점을 벗어난 지금, 게다가 함께 농사를 짓기로 하고 이사 와서 같은 일을 하게 된 지금은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대책 마련이 필요해

무슨 일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게 가장 좋은 역할분담이라고 생각한다.

짝꿍은 기획하고 목공일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농사짓고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 정리하는 것과 요리하기도 물론 좋아한다. 그런데 항상 그것만 하고 싶지는 않다.

청소와 밥하기는 매일같이 해야 하지만 어쩐지 그걸 하면서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

요리사가 집에 가면 부엌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요리가 직업화되었을 때만 경력이 되고 집에서 일상으로 하는 것은 하찮게 취급되다니 싫다.

하지만 어쨋든 간에  청소도 하고 밥도 먹어야 할 것 아닌가. 살아가는데 기본이니 말이다.

그러기에 더 어렵고 중요한 거 같다.

그래서 요즘 계속 정해나가고 있다.

 

 

 

 

오늘의 요리사는 누구?

일단 식사.

우리는 하루에 두끼씩 먹고 있는데,

매일 저녁과 다음날 점심을 한 세트로, 두 끼씩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왜 두 끼씩?

요리를 하다보면 반찬이나 재료가 남는데, 한 끼씩 돌아가며 준비하다보면 그런 파악이 안되서 버리게 되는게 많아질 것을 염려했다. 그리고 무언가 집중할 일이 있을 때를 위해서.

*왜 저녁->점심?

점심부터 식사 담당을 맡게 되면 모든 걸(국이나 반찬, 밥) 새로 준비해야 하기에 들어가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데, 점심식사는 하루 노동 중간이라 조리시간이 별로 없고 요리하고 나면 피로해서 오후일에 부담이 생기기 마련이다. 반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은 많고 피로의 부담이 적다. 자면 되니까ㅋ 저녁부터 식사담당을 하게 되면 조금 피로하기는 해도 느긋하게 요리하고 남은 반찬 등은 다음날 점심 때 먹으면 되니 점심의 부담이 줄어든다.

 

 

통탄은 뒤로하고. 노력으로 넘어서기

우리집은, 어머니가 전업주부를 역임하셨고 아버지는 가사노동의 남성 역할만을 하셨다. 서로가 원한다면 이런 역할분담을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게 의무가 되어서는 안되지 않아?

요즘은 시대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가사일을 분담하려 크게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이미 가사노동은 여성주의 이슈를 벗어날 정도로(아랫집 언니가 이런 표현을 쓰더라), 살아가기 위해 당연히 하는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역시나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새로운 면을 계속 마주하게 한다.

어떤 면에서는 '아직도 사회가!' 이런 느낌도 받는다. 아니, '아직도 이 녀석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건가;; 간혹 답답할 때는 이렇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결국 깔끔도의 문제와 무엇을 중요시하는가의 문제라는 거 안다. 짝꿍도 답답하겠지 아마. 

 

여전히 나는, 정리되지 않은 집에 대해 투덜거리고

그는 입을 쭉 내밀고 짐을 슬며시 옮긴다.

서로 노력해서 언젠가 서로에게 적절한 지점을 찾고 살아가기를.

 

 

(여전히 사회화가 성별분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매우 통탄할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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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4 23:36 2010/04/04 23:36

건전한 혁명

from 미세 말 꽃 2010/03/31 00:04

 

 건전한 혁명 _ D.H 로렌스

 

 

 

 혁명을 하려면 재미로 하라

 지나치게 심각하게는 하지 말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말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이 미워서 혁명을 해서는 안된다

 그저 그들의 눈에 침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 때문에 혁명을 하지 말라

 혁명을 하고 돈 따위는 던져버려라

 평등을 위한 혁명은 하지 말라

 혁명이 필요한 건 세상에 평등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사과 수레를 뒤집어 어느 쪽으로 사과가

 굴러가는가를 보는 건 얼마나 재미있는가

 

 노동자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말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작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말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게 아닌가

 노동을 폐지하자,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노동을 그렇게 하자!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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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1 00:04 2010/03/31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