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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 왔을까? 태풍? 그것보다 우리의 대응.

  • 등록일
    2006/07/10 23:54
  • 수정일
    2006/07/10 23:54

퇴근길


우리가 탄 차는 빠른 속도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나아갔다.
우리가 달려온 도로에는 이미 물이 차오르고 있었고,
그 도로 옆의 논에는 이미 평소의 녹색빛을 잃어버린
황토색 물만이 가득차 있었다.


태풍은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큰 피해를 남기고 있을까?
하루종일 궁금했음에도, 너무 많은 일과에 시달리다 아무것도 모른채
퇴근 길에 올라야 했다.


집에 와서야, 대강의 상황을 알고는 일단은 다행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일단 무사히 집에 왔고, 또 집에 내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 없었다.

 

 

4년전 생존의 기억


4년전에 우리집은 루사의 물결을 감당하지 못했다.
(우리집은 강원도 영동지역 어디... 뒤의 이야기를 보면 어디쯤일지 알 수도 있겠으나...)
그땐, 8월말이라서, 내가 학교 복학을 위해, 서울로 갔던 그 다음날,
부모님 두 분이서, 그 물을 피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이모님 집으로 가셨다.
(이모님 집은 아파트라서 집에 박혀 있으면 웬만한 물난리에 상관없다.)
대강 장기적으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물건(집문서 같은 거...)들은
그래도 미리미리 다 들고 가셨지만,
그런 것 외의 다른 것들은 손을 놓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살았다. 우리 부모님은 어쨌든 피했다.
물론 잃은 것이 많았지만, 그래도 일단 피했고, 또 어찌어찌 여기서 산다.
우리동네에 있는 가장 큰 백화점의 지하상가에서 장사하시던 상인들은
워낙 순식간에 불어난 물길이 지하로 들어오는 것을 미처 피하지 못하여,
지하에서 그대로 익사하였다.
산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산사태가 나서 집이 무너지는데, 미처 피하지 못했다.
우리 옆집 아저씨는 배를 묶으러 바닷가에 나갔다가 실종되어
결국 며칠만에 시신으로 돌아오셨다.


순식간에 우리 동네는 저주받은 땅으로 돌변하였다.
누가 이번에 죽었다더라... 누구도 죽었다더라...
한동안 그 때의 혼령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또 남은 자들은 어찌어찌 살아가고,
이젠 서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 채, 잊혀졌다. 나도 잊었다.
비가 많이 왔다는 기억 외의 다른 것은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또 태풍이 왔다. 그때 그 백화점 주변 도로에는 이번에도 물이차서
한시간 정도 교통통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한시간뿐이라는 게 다행이다.
또 그렇다. 또 물이 모인다. 그나마 여기쯤에서 태풍이 소멸해가니 다행이다.
물이 모인다. 모이는데, 빠질 줄은 모른다.

 



 

 


오염된 호수를 개발한다고...


집 앞에 호수가 있다. 중·고등학교 때, 지리 시간에 배우는 사주와 석호.
우리집은 그 사주라고 칭하는 모래땅 위에 있고,
우리집 대문에서 삼십걸음만 가면 호수다.
아니, 예전에는 그랬다. 지금은 아니고...


우리 부모님이 어렸을 때에는 그 호수가 깨끗했다고 한다. 수영도 하고 놀았다고...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에는 이미 그 호수는 전국 최고의 오염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집 바로 뒤에 공장이 들어서고, 그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가 그대로 호수로 들어갔다.
머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 동네의 모든 집들의 생활하수가 다 그리로 가고,
산에서도 이미 더러워진 물이 내려오니, 말 다했다.


90년대 중반쯤에 이 호수를 개발하겠다고, 자치단체에서 나섰다.
그래, 어떻게? 정말 웃기는 놈들이다. 너무 오염도가 심하다고, 아예 매립을 했다.
한쪽에서는 매립을 하고, 한쪽에서는 바다와 통하는 물길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동네 모래땅('사주'라고 칭하는...)을 깨야 했다.
물론 그 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내 친구들의 가족들은 어디론가 쫓겨나고 말았다.
그럼, 개발한 결과물은? 몇 년이 지나보니, 그 매립한 땅 위에 놀이공원을 만든 것밖에 없다.
그 옆에 매립하지 않는 부분의 물은 여전히 오염되어 있고,
유난히도 매립한 다음해부터 모기, 파리 등의 해충이 늘었다.
머 거기까지도 참을 수 있다. 우리가 머 대단한 걸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니...


그런데, 그곳을 매립하고 나니, 이젠 모래땅에서 홍수가 났다. 모래땅에서 물이 안 빠진다.
호수를 기준으로 모래땅과 반대편에 있던 백화점은 지하매장이 물에 완전히 잠겼다.
우연일 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호수를 메운 그 흙들이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까?
그렇게 지형자체를 바꾸어 놓은 땅에 여전히 예전과 같은 것처럼 살고 있던
우리들의 죽음은 과연 우리들만의 잘못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살아야 죽음을 말할 수 있다.


산을 깎으면 깎은 사람들은 멀쩡한데, 깎은 곳 옆에 살던 사람들이 당한다.
땅을 매립하면 매립한 땅은 멀쩡할텐데, 그 옆의 저지대의 땅에서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 살아야 우리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다.


재해에 대하여,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언론에서 그것이 인재였다고 말하는 맥락은 미리 대비할 수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누군가는 재해에 당하고, 또 누군가는 재해에 대비하는데,
어느 누군가는 재해가 나는 경우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 위험성을 증대시키면서도,
돈에 눈이 멀어, 지형을 바꾸려고 한다. 그게 바로 인재다.


그러니, 살아야 막을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런 재해를 이겨내야만 다시 말할 수 있다.
위험하다고 말하려면 위험한 곳에서도 끝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누군가가 죽고 나면, 살아남은 자들의 입에서는
막을 수 있었다는 미봉책의 가능성만을 말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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