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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려면
모든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
중학교때 도덕 시간에 배운 건데,
사실 도덕 배울 때 다른 거는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데
이 원칙만큼은 딱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이 입장은 관용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논하는데에 가장 기본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에서 문장의 구조를 잠시 분석하자면,
가정 : 나의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
결론 : 모든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명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역명제를 순간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즉, 이 표현은
모든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나의 어떤 행위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자.
또 다른 하나는 어떤 명제는 항상 대우명제를 동시에 주장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즉, 이 표현은
모든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없으면 나의 어떤 행위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따라서 보편화 가능성의 원칙은
어떤 구체적 행위의 옳음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구체적 행위의 옳음은 이 명제에서는 가정에 해당하니까.
그래서 구체적 행위의 옳음을 논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함부로 쓰면 안되는 원칙이다.
가정과 결론을 잘 보자.
(이 부분은 헤겔이 칸트를 넘어서는 과정에 비슷한 논리가 있는 걸로만 알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좀 더 공부해야 할 듯.)
꼬미님은 라브님에게 조언을 하면서 조언을 전술적으로 유의미하다고 했지만,
정작 스캔이 꼬미님에게 그 조언이 전술적으로 틀렸다고 조언했을 때는 꼬미님은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보편화 가능성의 원칙은 이런 타이밍에 적용해야 하는 원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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